너도 곧 쉬게 될거야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고요한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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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강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의 생사도 모릅니다. 그런데 메시지는 말합니다. 3시간 후 너의 목숨과 그리고 딸의 목숨 중 하나를 택하라는 아주 잔인한 명령을 합니다. 이것이 악몽이라면 싶기만 한 레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에게 내려진 벌만 같을 뿐일 것입니다. 아마도요. 조금 더 사랑을 했고 조금 더 유심히 돌봤더라면, 하고 자책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 시간이 있을까요...?

그녀의 아이 엠마, 그토록이나 바라고 또 바라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딸을 돌보 여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인 다니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했으나, 아이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그녀였습니다. 강해져야 하니까요. 이야기의 시작은 어쩌면 그렇게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입니다.





이야기의 시점은 레나의 시점으로 시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보여줍니다. 그녀가 사랑한 남편 다니엘은 자산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만났을 때는 그는 마흔 초 중반으로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고 있던 한 환자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정까지 있단 걸 알았을 때 레나는 관뒀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사랑과 그가 주는 사랑은 그가 이혼을 하고, 그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몇 년간의 시간은 있었지만 딸 엠마까지 임신하면서 드디어 그녀가 꿈꾼 "완벽한 가족"이 눈앞에 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바로 그 일, 집 문제 때문에 벌어졌던 그저 단순한 소동극이라 여겼던 일이 다니엘의 목숨을 앗아가고, 레나에게는 딸 엠마가 사라지고 날아든 메세지는

-자정까지 네가 죽지 않는다면 네 딸이 죽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레나는 제정신일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는 레나의 시점에서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주인공 레나에게는 몰입되진 못했습니다. 그녀의 어딘가 모를 철없음이 저는 느껴졌었고 처음엔 도대체 이 종잡을 수없음이 뭐지? 싶을 정도였는데 만약, 엄마라면 그렇게 마냥 차분하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몰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산만한 듯하지만 또 결코 그리 지루하진 않은 초반을 지나면서, 점점 이야기는 뭔가 좀 물음표를 띠게 하면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은 물음표의 연속이면서 도대체 왜? 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범인이 누구였으면, 하는 것을 갖게 합니다. 레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녀가 가질 동기가 분명 충분하지만 어쩌면 가장 부럽고 그래서 미워지는 사람을 또 무의식중에서 범인으로 지목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녀와 한집에서 살 뻔했던 다니엘의 가족, 조시를요. 다니엘이 가장 사랑했던 딸이었으니까요 그만큼 그 딸의 자신에 대한 증오도 짐작해, 그 미묘한 애증과 장례식에서의 일등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조금 고작 십 대의 소녀가 감당하기엔 힘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결정적으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말이죠. 결국 사건은 계속 레나의 주변으로 들어오고 그녀가 행동 하나하나에 메세지는 계속해서 그녀를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사건의 진짜 결말이 밝혀진 순간 조금은 예상했지 않았나 싶으면서도 전개 과정에서의 그 답답함이 많이 누그러질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또 더 고구마야, 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잠깐 전 그 "어머니"라는 이름을 봤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엄마들이 있었고 그것은 한 명이 아니라 또 같은 사람 안의 다른 모습의 엄마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전의 인간이란 이름들도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너도 곧 쉬게 될 거야>는 제목이 어쩌면 그렇게나 결말과 맞아떨어질까, 하면서 그 미묘한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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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안테나
요시다 류타 지음, 하진수 옮김 / 경향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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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으로 시작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만, 우리는 어느새 상자 속에 갇혀 있다,라고 저는 믿습니다. 분명, 지구는 둥글다는데 왜 스마트폰은 또 네모나지? 하는 순간, 애플은 말하죠. 당신의 폰은 정말 네모입니까?라고도 말입니다. 그러나, 애플사의 그 "사과"가 뉴턴의 사과인지 혹은 앨런 튜링의 사과인지는 그들이 노코멘트합니다. 왜일까요? 바로, 스마트폰 자체가 "물음표" 바로, 호기심에서 시작한 "상상의 산물"로 그쳤을 지도 모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갇힌 세상에 살고 있다,라고 하지만 시간을 조금 낸다면 아주 짧은 시간 우리는 많은 여백에 무한한 선을 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가끔은 그러죠. 그것은 그저 "쓸데없는 소모"라고도 말입니다. 그럴까요? 이 책은, - 어서 와, 상상의 세계는 어때?라고 묻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상상의 안테나는 우리의 삶을 분명 풍부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안테나가 채워질 때가 있으니, 그건 아마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꿈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도 분명 재미있는 꿈을 꿨습니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데 무척이나 웃으면서 말이죠.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꿈들을 구전하고 그런 것들을 또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어느 나라에나 하나쯤 있는 동화 신데렐라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상상은 너무나 뻔해서 응? 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포인트는 "유리구두" 가 아니긴 하죠. 신데렐라가 행운을 바란다,라는 것이 상상인가? 싶었습니다. 원래 신데렐라의 신발이 유리구두다,라는 건 사람들의 상상일 겁니다. 어떻게 유리를 신고 뛰었을까?는 금방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의심치 않더군요. 저는, 왜 유리구두여야만 하지? 하고 찾아봤더니 "원래 유리구두가 아니었다"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어쨌거나, 저렇게 던지면 깨어지는 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란 것이죠...

강아지와 달라서 고양이는 인간이 집사(...)인 줄 안다,라고 하는데 그럴까요? 하지만 그도 집사를 찾으려면 도도하긴 해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선택된 고양이는 공주님이 발을 핥으라고 해도 도도히 굴면서도 여전히 선택받는다는 이야기는 이어진 상상 같았습니다.

아, 남자들이 이해 못 하는 것 한 가지!

 


이거 보고 전 "상상보다 현실"이라서 웃었습니다.

사실, 도대체가 두세 시간을 이야기한 뒤에 "그럼 자세한 이야긴 만나서 해"의 다른 버전이랄까요? 여자들의 말은 굉장한 상상입니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그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전 여자들의 상상력은 대단하다고 봅니다. 물론, 저도 여동생과 카톡으로 이야기한 뒤, 자세한 건 만나서_ 가 되더군요.

여기서는,

서서 이야기하자니 그렇다,면서 아예 거리에서 앉는 것이죠. 근데 이게 이상하긴 한데 유리 없는 스타벅스일 뿐,이라고 속으로 쿡쿡거렸습니다. (근데 남자들도 수다 대단하지 않나요? 이거 이해 못 하나요? 남동생의 뜨악한 얼굴을 보면 그런가 싶고...)

-오, 그래서 어쩌면 카페가 생긴 건 순전히 여자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하하.. (썰렁)

피노키오의 거짓말, 은 아마도 여러분은 이 뒤를 짐작하실 겁니다. 네, 저렇게 해서 구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만약?! 하면서 눈을 반짝였으나 조금이 아니라 너무나 평이한 느낌이라 이건 상상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책의 중간중간 쿡쿡 이런 생각도 했네,라는 느낌과 시작이 좋았으나 갈수록 상상이 아닌 ......현실...인데..?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 첫 느낌이 조금씩 퇴색되는 느낌이고, 책의 제목의 "기발한 상상의 세계"라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짧고 짧은 트위터 sns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느낌이기도 했으나 또 여기에 그만큼의 사람들이 웃었다는 건 우리의 사회가 상상을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아서는 아쉬웠습니다. 이 책의 뒤편 부록이 바로 책의 1/3 이상이 "당신의 상상 다이어리를 채워보세요"라는 것이 단적인 예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무심코 넘어가는 것들, 회사에서 아주 자주 보는 커피자판기나 음표 자판기의 "쿨"과 "핫"의 온도 차이 같은 것은 잘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 이 정도는 상상보다는 조금 싱거운 느낌이지 않나?

라고 폄하하기엔 누군가의 생각들이 들어가 있는 이 일러스트 안의 그 많은 상상들을 제가 어찌 다 읽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기대는 보면 빵빵 터지는 그런 "상상 안테나"를 기대했습니다만, 알고 보면 상상이란 것은 혼자서만 소위 터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소위 말하는 코드의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그 코드도 "상상"의 문제, 아닐까 싶지만 말입니다. 현실과 상상, 그 사이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면 그리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쩌면에게, 할 수도, 조금 더 상상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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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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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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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람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물론, 저는 두부가 부서진다는 아닙니다. 그 두부가 흔히 추리소설에서 보듯 흉기로 사용될 수 있.. 하는데 여기서 잠깐!이라고 하더군요 그럴 수는 없다고요 왜냐고요? 그건 책에서 확인하시길요. 어쨌든, 평범한 답은 두부가 으깨진다,입니다만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가능할까요? 자, 이런 이상한 사건들의 이 책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세상엔,

정말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일어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고 또한 정당한 일이 있는가 하면 아니, 이런 부조리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_ 글쎄요, 어떨까요?

 

 

 

여섯 개의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ABC 살인사건>은 호오.. 하다가, 아니 이런 낭패가! 라지만, 기묘하게 웃겼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래서 어떻게 전개될까? 싶은 그 지점에서 자, 다음은 상상해주세요,라는 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내연애>도 마찬가지였고요. 여섯 개의 단편은 그 길이는 조금씩 다르지만, 무언가 정상적이지는 않은데 또 그게 정상적인데? 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끝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연극의 엉뚱하면서도 작은 소동극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하지만, 묘한 것도 있었습니다. 분명 웃음이 나는데 끝 맛이 묘합니다. <ABC 살인사건>의 경우까지, 그리고 <사내연애>까지 웃었다면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은 그 이상한 현장인 것입니다. 딱 하나 "대파" 가 걸린 그 현장. 웃긴 현장임에도 뭐지? 싶었는데 말이죠 왜였을까요?

 

 

 

 

위적인 꽃꽂이일까, 아니면 기묘한 퍼포먼스일까. 시신의 입에 꽂힌 파 한 대는 아무리 봐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하기도 하거니와 영문도 모르겠다. 기분 나쁘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고 해야 할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지, 여하튼 전혀 알 수가 없다. 기묘한 것은 분명하지만 무슨 의도로 저런 짓을 한 걸까.

본문 84P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마치, 이 소설과 같았습니다 분명 사건들마다 엉뚱합니다. 소위 말하는 "B급 유머" 가 가득하고 거기에 "병맛"까지 말이죠. 앞에서 말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끝나는 그것, 그것이 바로 부조리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살인 사건의 경우 어쩌면 확답은 하지 못할지언정, 그 답이 맞겠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지점이 바로 이 소설이라서 마냥 웃을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표제인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때는 현재가 아닌, 전시 상황 즉, 태평양 전쟁 중입니다. 그곳에서 웃음이 있을까 싶으면 "특별한 훈련소"라면서 저런 곳에서 자전거를 돌리면서 쳇바퀴 돌리듯 그것을 돌리는 것이 주인공의 임무였습니다. 물론, 교대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 즉 동료인 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흉기는 없고 분명 두부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로 시작합니다.

표제인 이 단편은 일본의 침략 시대를 교묘하게 뒤돌아 보게 했습니다. 작가는 거기에 대해서 다른 작가들처럼 정당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되려, 정말 우리는 강한가?라며 물음표를 던지는 형식을 취하게 했습니다. 네, 일본의 장래에 대해 주인공의 마지막 서술은 이제껏 이거 뭘까? 하던 웃음을 그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전쟁의 소재가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또 작가의 입장에서도 패전국으로서의 그 불편했던 전쟁의 소재를 웃다가 마지막에, 두부면서 두부가 아닌 느낌으로 그 소설의 주인공인 양 혹은 작가인 양 그렇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편은 솔직히 그걸 걸? 하면서 뭔가 바보들의 행진 같았습니다 아니, 쉬운데? 왜 이리.. 하는 네코마루 선배의 웃음에 저도 웃을 순 있었습니다. 사실, 이 편은 아주 평이하다면 평이한데 뭔가 그래서 쿡, 하고 찌르는 것은 있었습니다. 저는 <지나가는 녹색바람>이란 소설에서 이 작가를 만났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앗, 이건..! 했었다면 이 소설은 쿡쿡거리면서 웃었고, 그러다 그 웃음의 맛이 묘해지는 것도 느꼈지만, 전반적으로 매력적인 병맛을 맛보고 싶으시다면, 권해 드리고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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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죽였을까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7
하마오 시로.기기 다카타로 지음, 조찬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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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또 지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그냥 아무렇게나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 암묵 간의 약속, 그것을 "법"이라는 체계로 만들었으며 사람의 생명과 그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는 "의학"의 이야기면서 결국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지금의 결국은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인 것들입니다.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기록으로 남겨진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가 하마오 시로는 그 이야기들의 각색을 아주 멋지게 해냈습니다. 그리하여, 고전의 이야기에 또 다른 고전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처음이며 이 책의 표제인 "그 남자가 죽였을까"의 진상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분명, 치정에 얽힌 것은 맞는데 미묘하게 안 맞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남자"인 아름다운 청년 "고데라 이치로"의 편지로 진상은 밝혀집니다. 이런, 사랑도 있습니다. 그 사랑의 칼끝에서 죽어가던 남자가 기어이, 복수로 그 칼끝에 찔립니다. 어찌, 그런 처참한 복수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스스로를 망치는 데 말입니다.





그 후, <무고하게 죽은 덴이치보>의 이야기는 현명한 부교의 이야깁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재판관의 위치일까요? 그 현명함은,


"부교님은 자신의 지혜에 관한 자신감은 잃었지만, 그 대신 자신의 힘에 관한 자신감을 새롭게 가지셨습니다. "본문 100p


자신이 현명하다고 믿었던 사람, 하지만 그의 모든 판단이 바를 순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는, 괴로워했지만 대신 "권력"을 알았습니다. 자신있음이 아니라, 힘을 얻는 부교의 판단이 불러온 참사들 중 덴이치보의 경우는 그의 자괴감이 깊어지게 할 뿐이었으니까요.


이 두편을 읽으면서, 고전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솔로몬의 심판><예수그리스도>가 떠올랐습니다.아하, 라고 할까요? 물론 다릅니다. 그런데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가 죽였을까>의 경우는 그 안에서 그 작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는 이 부교는 솔로몬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진짜 엄마는 누구인가?와 함께요. 그런가하면 "덴이치보"는 그 높고 높으신 분의 서자.. 라는데, 서자라 할 지라도 신분은 상당한 것입니다. 읽을 땐 몰랐으나, 솔로몬과 본디오 빌라도의 고뇌가 적절히 섞여선 그것들을 녹여내고 있었습니다. 고전, 그러니까 성경의 인물까지..?! 라고 할 정도로요,

마지막 단편,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의 편에선, 묘하게 <오셀로>가 연상됐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 질투, 죽음 그리고 아주 교활할 정도로 영리한 그 누군가의 나열만 본다면 말입니다.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각색했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하지만, 또 원작이 생각이 나도록 말입니다. 아주, 영리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고전에 또 다른 고전을 색다르게 입혔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의 가면은 쓰고 있습니다.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이든 간에 말입니다. 내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게 다 조금씩의 가면을 쓴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아주 어려서부터 혹은 아주 깊은 무의식 속의 가면은 처음엔 견고하다가도 어느 순간 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아주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방어기제로서의 가면도 있지만 공격성향의 가면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기기 다카타로는 바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무의식의 세계, 혹은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가 만들어내는 사건들을요. 바로 "안락탐정"의 등장이 여기서 시작되는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오로코치라는 정신과 의사를 내세운 단편들은 인간의 무의식, 혹은 그들의 욕망의 파악이라면 <잠자는 인형>의 경우는, 어쩌면 많이 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편지는 <그 남자가 죽였을까>와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것, 그러니까 사랑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은 그 감정, 집착 혹은 도취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또 인간의 고전, 사랑의 본성인지도요. 그것을 그는, 하마오 시로와는 달리 의학적인 문제 특히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그 자신들의 자기애, 자아, 허무, 이런 것들에 예전부터 있어왔던 고전을 또 다르게 윤색했습니다. 사랑만큼, 고전은 또 없을테니까요.






하마오 시로, 그리고 기기 다카타로는 원래의 직업이 있습니다. 앞의 내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하마오 시로의 경우가 "법정 미스테리", 기기 다카타로가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한 추리소설을 쓴 것은 각각 변호사로서, 그리고 대뇌 생리학자로서의 바탕을 그들의 작품 속에 녹여낸 것입니다. 특히나, 하마오 시로의 경우 저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가 엮고 또 써낸 것들은 물론 법정 미스테리일 수도 있지만, 고전 속에 또 다른 고전을 찾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모르죠, 그는 그런 의도는 없었는지도 말입니다. 또한, 의학적 지식으로 전문적인 용어도 꽤나 있지만 실상 몰라도 대충 이해가 되면서 안락탐정인 오코로치의 추리는 오,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 안에서 찾아내는 그 "의도" 즉, 그들의 "무의식의 세계 속, 숨어져 있는 것"을 읽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특이한 이력의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특이함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작품성까지 겸비한 그들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그렇게 문단에 데뷔했을 때도 또 하나의 혁명 아니었을까요? 지금의 디지털 혁명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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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노트 움직씨 퀴어 문학선 1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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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는 자신의 性을 모른 채 알로 있다가 그 알이 부화하는 그 순간의 물의 온도에 따라서 그제서야 암수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어라 자신을 칭하는 작가는 처음부터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다"(본문 36p)라고 숨김없이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숨김없었냐면,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 함께했던 후배들인 지유와 탄탄에게 숨겨서 미안하단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악어, 라 스스로를 칭한, 라즈는 아주 많은 고민과 번뇌,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너무 어려운 일이야. 애써 한 조각을 깨트리고 나면 양쪽 모두 상처를 받게 되지. 그러면 보상이라도 하듯 다시 그들이 구상한 방법을 따라 새로운 한 조각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야. 늘 자기모순에 빠져들곤 해. 본문 115p, 라즈, 탄탄과 지유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이 책은 책보단 작가 구묘진(이하 라즈)의 아주 사적인 글쓰기며 일기이며 사랑의 일기일 뿐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없듯, 그렇게 그저 그리 분 바람에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겐 "그저 바람"이 아니라,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은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후배, 지유와 탄탄에게는 그랬습니다. 비가 왔고 무지개가 떴지만 라즈에겐 가혹하게도 비가 내린 채로, 그대로 혼자 빗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우산 없이 말입니다. 영재학교를 거쳐, 대만의 국립대학을 진학할 만큼의 총명했고 반짝이던 그녀였습니다. 그녀 역시 지나가던 바람이길 바랐을까요? - 아니오, 어쩌면 보는 순간, 그녀의 말처럼 가슴이 뛰는데 진정시킬 수 없는 사랑을 봤고 지나칠 수 없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은 비를 몰고 왔고, 홀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혼자 감내해야 하는 지독한 고독이고 그 이름이 사랑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오픈돼 있다 한들, 아직도 여전히 동성을 사랑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같은 색의 그들 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라즈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의 일기를 여기에 담아냈습니다. 그 시기는 더더욱 사람들은 다른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라즈는 그래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았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속에서 더더욱 아프고 절망했는지도요.

책은, 1인칭 시점인 그녀의 소설이며 일기입니다. 책의 내용은 아프되, 그 문장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절망, 슬픔, 고독 등을 써 내려갔음에도 저릿한 가운데서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책은, 라즈와 같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생이, 고작 스물여섯 스스로 칼로 마감한 아픔 속에서도 이렇게 악어노트로 남겨진 것처럼요




노트는, 혐오와 이분법보단, 자본주의를 꿰뚫는 그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그녀의 시점과, 청춘의 대화들 그리고 사랑에 오롯이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탓을 했더라면 고통은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있었고, 그 청춘들의 대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만의 방식은 분명 있었습니다. 몽생이 그러했으며, 초광과 소범과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까지 사랑한 수령까지 말입니다.

사랑에는 결코 어떤 종말도 없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하고,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하지 말면 되는, 이 과정 자체가 궁극적 의미이다. 본문 310p, 1989년 12월 28일 라즈의 일기 中


결론은 바로 이거야. 사랑하자. 나는 항상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를 의심해 왔지.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누구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어. 본문 339p, 초광이 라즈에게


결국, 사랑이다. 그것의 색깔이 다르다 할지라도, 의심한단 할지라도 근원적인 것은 그냥 단지, 사랑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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