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남자가 죽였을까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7
하마오 시로.기기 다카타로 지음, 조찬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또 지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그냥 아무렇게나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 암묵 간의 약속, 그것을 "법"이라는 체계로 만들었으며 사람의 생명과 그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는 "의학"의 이야기면서 결국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지금의 결국은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인 것들입니다.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기록으로 남겨진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가 하마오 시로는 그 이야기들의 각색을 아주 멋지게 해냈습니다. 그리하여, 고전의 이야기에 또 다른 고전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처음이며 이 책의 표제인 "그 남자가 죽였을까"의 진상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분명, 치정에 얽힌 것은 맞는데 미묘하게 안 맞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남자"인 아름다운 청년 "고데라 이치로"의 편지로 진상은 밝혀집니다. 이런, 사랑도 있습니다. 그 사랑의 칼끝에서 죽어가던 남자가 기어이, 복수로 그 칼끝에 찔립니다. 어찌, 그런 처참한 복수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스스로를 망치는 데 말입니다.

그 후, <무고하게 죽은 덴이치보>의 이야기는 현명한 부교의 이야깁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재판관의 위치일까요? 그 현명함은,
"부교님은 자신의 지혜에 관한 자신감은 잃었지만, 그 대신 자신의 힘에 관한 자신감을 새롭게 가지셨습니다. "본문 100p
자신이 현명하다고 믿었던 사람, 하지만 그의 모든 판단이 바를 순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는, 괴로워했지만 대신 "권력"을 알았습니다. 자신있음이 아니라, 힘을 얻는 부교의 판단이 불러온 참사들 중 덴이치보의 경우는 그의 자괴감이 깊어지게 할 뿐이었으니까요.
이 두편을 읽으면서, 고전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솔로몬의 심판><예수그리스도>가 떠올랐습니다.아하, 라고 할까요? 물론 다릅니다. 그런데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가 죽였을까>의 경우는 그 안에서 그 작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는 이 부교는 솔로몬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진짜 엄마는 누구인가?와 함께요. 그런가하면 "덴이치보"는 그 높고 높으신 분의 서자.. 라는데, 서자라 할 지라도 신분은 상당한 것입니다. 읽을 땐 몰랐으나, 솔로몬과 본디오 빌라도의 고뇌가 적절히 섞여선 그것들을 녹여내고 있었습니다. 고전, 그러니까 성경의 인물까지..?! 라고 할 정도로요,
마지막 단편,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의 편에선, 묘하게 <오셀로>가 연상됐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 질투, 죽음 그리고 아주 교활할 정도로 영리한 그 누군가의 나열만 본다면 말입니다.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각색했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하지만, 또 원작이 생각이 나도록 말입니다. 아주, 영리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고전에 또 다른 고전을 색다르게 입혔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의 가면은 쓰고 있습니다.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이든 간에 말입니다. 내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게 다 조금씩의 가면을 쓴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아주 어려서부터 혹은 아주 깊은 무의식 속의 가면은 처음엔 견고하다가도 어느 순간 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아주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방어기제로서의 가면도 있지만 공격성향의 가면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기기 다카타로는 바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무의식의 세계, 혹은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가 만들어내는 사건들을요. 바로 "안락탐정"의 등장이 여기서 시작되는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오로코치라는 정신과 의사를 내세운 단편들은 인간의 무의식, 혹은 그들의 욕망의 파악이라면 <잠자는 인형>의 경우는, 어쩌면 많이 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편지는 <그 남자가 죽였을까>와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것, 그러니까 사랑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은 그 감정, 집착 혹은 도취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또 인간의 고전, 사랑의 본성인지도요. 그것을 그는, 하마오 시로와는 달리 의학적인 문제 특히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그 자신들의 자기애, 자아, 허무, 이런 것들에 예전부터 있어왔던 고전을 또 다르게 윤색했습니다. 사랑만큼, 고전은 또 없을테니까요.

하마오 시로, 그리고 기기 다카타로는 원래의 직업이 있습니다. 앞의 내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하마오 시로의 경우가 "법정 미스테리", 기기 다카타로가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한 추리소설을 쓴 것은 각각 변호사로서, 그리고 대뇌 생리학자로서의 바탕을 그들의 작품 속에 녹여낸 것입니다. 특히나, 하마오 시로의 경우 저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가 엮고 또 써낸 것들은 물론 법정 미스테리일 수도 있지만, 고전 속에 또 다른 고전을 찾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모르죠, 그는 그런 의도는 없었는지도 말입니다. 또한, 의학적 지식으로 전문적인 용어도 꽤나 있지만 실상 몰라도 대충 이해가 되면서 안락탐정인 오코로치의 추리는 오,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 안에서 찾아내는 그 "의도" 즉, 그들의 "무의식의 세계 속, 숨어져 있는 것"을 읽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특이한 이력의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특이함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작품성까지 겸비한 그들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그렇게 문단에 데뷔했을 때도 또 하나의 혁명 아니었을까요? 지금의 디지털 혁명과는 다르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