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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노트 ㅣ 움직씨 퀴어 문학선 1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19년 5월
평점 :

악어는 자신의 性을 모른 채 알로 있다가 그 알이 부화하는 그 순간의 물의 온도에 따라서 그제서야 암수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어라 자신을 칭하는 작가는 처음부터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다"(본문 36p)라고 숨김없이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숨김없었냐면,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 함께했던 후배들인 지유와 탄탄에게 숨겨서 미안하단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악어, 라 스스로를 칭한, 라즈는 아주 많은 고민과 번뇌,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너무 어려운 일이야. 애써 한 조각을 깨트리고 나면 양쪽 모두 상처를 받게 되지. 그러면 보상이라도 하듯 다시 그들이 구상한 방법을 따라 새로운 한 조각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야. 늘 자기모순에 빠져들곤 해. 본문 115p, 라즈, 탄탄과 지유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이 책은 책보단 작가 구묘진(이하 라즈)의 아주 사적인 글쓰기며 일기이며 사랑의 일기일 뿐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없듯, 그렇게 그저 그리 분 바람에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겐 "그저 바람"이 아니라,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은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후배, 지유와 탄탄에게는 그랬습니다. 비가 왔고 무지개가 떴지만 라즈에겐 가혹하게도 비가 내린 채로, 그대로 혼자 빗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우산 없이 말입니다. 영재학교를 거쳐, 대만의 국립대학을 진학할 만큼의 총명했고 반짝이던 그녀였습니다. 그녀 역시 지나가던 바람이길 바랐을까요? - 아니오, 어쩌면 보는 순간, 그녀의 말처럼 가슴이 뛰는데 진정시킬 수 없는 사랑을 봤고 지나칠 수 없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은 비를 몰고 왔고, 홀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혼자 감내해야 하는 지독한 고독이고 그 이름이 사랑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오픈돼 있다 한들, 아직도 여전히 동성을 사랑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같은 색의 그들 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라즈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의 일기를 여기에 담아냈습니다. 그 시기는 더더욱 사람들은 다른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라즈는 그래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았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속에서 더더욱 아프고 절망했는지도요.
책은, 1인칭 시점인 그녀의 소설이며 일기입니다. 책의 내용은 아프되, 그 문장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절망, 슬픔, 고독 등을 써 내려갔음에도 저릿한 가운데서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책은, 라즈와 같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생이, 고작 스물여섯 스스로 칼로 마감한 아픔 속에서도 이렇게 악어노트로 남겨진 것처럼요

노트는, 혐오와 이분법보단, 자본주의를 꿰뚫는 그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그녀의 시점과, 청춘의 대화들 그리고 사랑에 오롯이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탓을 했더라면 고통은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있었고, 그 청춘들의 대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만의 방식은 분명 있었습니다. 몽생이 그러했으며, 초광과 소범과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까지 사랑한 수령까지 말입니다.
사랑에는 결코 어떤 종말도 없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하고,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하지 말면 되는, 이 과정 자체가 궁극적 의미이다. 본문 310p, 1989년 12월 28일 라즈의 일기 中
결론은 바로 이거야. 사랑하자. 나는 항상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를 의심해 왔지.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누구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어. 본문 339p, 초광이 라즈에게
결국, 사랑이다. 그것의 색깔이 다르다 할지라도, 의심한단 할지라도 근원적인 것은 그냥 단지, 사랑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