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시간,의 역사 그리고, 그

아주 오랜 시간,의 역사의 시작점에 있는 것들은 무겁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 무겁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그 거대한 역사의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은 <비하인드>로 다뤄지고
꽤나 무겁지 않고 되려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역사의 뒷면, 에 있는 무거움 속, 가벼움을 다루는 책,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28가지가 무엇인지, 
그 색대로 매혹적인 세계사를 거닐 수 있었으면 합니다. 
(31가지는 아니군요.....)


<이미지출처:네이버카페리딩투데이와 사람과 나무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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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

인류 역사상, 고독과 절망은 죽음과 가장 가까웠다. 그 생의, 삶의 독. 

<어리석은 자의 독>은,그런 생과 삶의 반대편에 서 있는 "독"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빈곤, 굶주림 그보다 더 무서운 죽음의 그림자인 "절망"에 관하여, 

일본의 미스터리 여제라 불리는 우사미 마코토가 전해주는 이야기 속, 인간을 내면은 어떤 것일지


그들을 보며 나의 또다른 면을 보기에 눈 감을 지,

그들을 보며, 그렇기에 공범이 돼 버릴 지 혹은, 그들을 재단하게 될지 궁금해지는, 소설, 

<어리석은 자의 독>



<이미지출처:리딩투데이, 블루홀식스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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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이름과 얼굴이 둘입니다. 사토 에리, 그리고 가와사키 사키코. 물론,

새 인생을 살기 위해서 성형을 하고, 이름도 개명할 순 있지만 자신의 삶 자체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보통은 새 인생을 살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으나 다들 더 나은 삶을 위해서지 "복수", 그것도 증오할만큼 미워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면서까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절망의 끝에서 사키코는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같이 서 있던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 절망이란 벼랑에서 왜 죄없는 남편이 죽고, 내가 죽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살인범은 뻔뻔하게 웃으면서 아무런 죄도 받지 않고 잘 사는데 말입니다.


* 약스포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 지옥이라면,또다른 삶인 불지옥을 선택했습니다. 남편의 복수인지 혹은 내 복수이고, 세상을 향한 복수인지 모를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순순히 내 편이 아닌 것도 그리고 가끔은, 그 남편 혹은 복수의 대상인 히데오의 말처럼인 것이 또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파편은 생각지도 모산 곳까지 날아간단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게 할 때가 있어. 위험천만하지. " 11p. 히데오.


증오란 파편이 가져다 주는 건, 의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감정 없이가 아닌 그 뼈가 시리도록인 감정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증오의 파편은 아슬아슬하게도 그 마음을 베이게도 합니다. 그 지탱해 왔던 마음이 무너져내려가는 순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면서도 또 가장 무뎌지는 것은 잘 모를 때도 많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증오해야 하는 상대를 곁에 두고 충동을 억느르며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다.

결코 저물 리 없는 증오라는 태양에 온몸이 타들어 갔고 절망의 사막에 맨발이 달구어졌으며 분노의 화염이 몸속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열하는 지옥 속에서 악착같이 나아갔다. 본문 149, 사키코.


복수의 순간, 가장 기다려온 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이제 지옥불 속에서 더 떨어질리 없는 나락에서 그냥 불타 죽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는 사키코.입니다.






이야기는, 상당히 가독성을 띱니다. 정말, 2시간짜리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아쉬웠습니다. 제 경우는, - 사키코의 감정의 섬세함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그 남편이 다다토키를 그렇게까지 사랑했던가? 그녀가 성형을 하면서까지, 이름과 삶을 바꾸면서까지일까? 싶으니 갸우뚱해지는 구석인 것입니다. 다다토키와 사키코는 어려울 때 만났고, 서로 사랑했고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말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키코는 그래서 살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아무 것도 남겨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전남편과 살아갔던 그 시기가 행복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이 그렇게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들어가야만 했냐면 아마도 그녀는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필이면 그 방법이 복수였을 뿐, 인 것이었죠.





작가, 아키요시 리카코는 <성모>로 이름을 알렸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절대정의>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맛있는 고구마가 계속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에리가 사키코임을 밝히면서 변해가는 그 심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랬듯 그 하나 허전한 그 무엇, 이라고 생각할 쯤의 그것은, 저는 조금은 반칙성이지 않나, 싶었습니다만 통쾌함보다, 기묘한 쓸쓸함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굳이 작가는 제가 느낀 그 아쉬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 이런 여자의 삶, 이해가 안 가더라도 또 그렇게 살아가는 여자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굳이 독자들의 이해보단 그녀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어쩌면 그리도 가독성이 좋게 읽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작열하는 태양은 옷을 벗깁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그 따뜻한 태양이 어찌 변할 지 혹은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그녀가 다 가렸다고 생각하지만, 차마 가리지 못한 입에서 나오는 그 입김은 어떨지 말입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작열

#아키요시리카코

#마시멜로

#문화충전200

#문화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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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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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날이 깨지는 것은 바로 그 "어느 날"입니다. 건축사 아오세의 날도 그랬습니다. 그 전화를 받기 전의 어느 날까지는 말입니다. 아니, 그런 날들은 참 많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댐의 일 때문에 잦은 전학의 날들이 그랬으며 결국은 그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까지 그리고, 이혼하고 딸을 만나는 날들까지 말입니다. 그런 날들도 특별할 수 있지만 그날의 전화는 그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돌아다니지 않기 위해선지 집을 설계하는 일을 하면서 받았던 날 중 가장 이상하고 그의 삶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집을 맡겼던 부부. 그리고, 그가 그 부부의 말이 묘하기도 했지만, "아오세 선생님이 살고 싶은 집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의뢰는 그만큼 그 집을 <200선>이란 잡지에 실릴 정도로 잘 만들게 한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내가 만약, 산다면.. 그렇다면,으로 지어 의뢰인 부부에게도 그리고 그걸 계기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제보로 간 집엔, 의자만 덩그러니 있을 뿐,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그들은 그곳에 거액이라면 거액인 돈을 들여 집을 지어달라고 하고, 그렇게까지 기뻐했는데 어째서, 그 집은 의자만 있는가..?



아오세가, 그랬듯 어쩌면

우리들도, 읽으면서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또 우리는 아오세와 함께, 그 부부의 자취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것들은 의외로 전혀 뜻밖인 듯 또 뜻밖인 아닌 것들이었습니다. 바로, 그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타우트의 의자" 이방인으로, 이곳 일본에 와서 활동했던 예술가를 만난 것입니다. 그 의자가 진품인지 혹은 가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오세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놓지 못했을까요?



아오세는,

그 부부의 뒤를 여전히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오세는 의뢰했던 요시노에게서 자신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불편한 진실일 수도,

그리고 또 호기심일 수도, 혹은 어릴 때 하던 탐정놀이에서 눈에 튀는 주인공이 아닌 왓슨이 돼, 여러 가지를 알아보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만 포기해도 되는데 그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 그의 말처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일지도 모릅니다.



무대 뒤, 배우는

독백이든 혹은 혼자만의 모노드라마든 무대를 나오기 위해서 대기실의 통로 안에 있습니다. 아주 작은 빛에 의존하면서요. 물론, 끝난 뒤의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연기와 연극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전까진 함께면서 오롯이 혼자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족과도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지만 또 내 온 마음을 보여줄 수 없는가 하면 또 누군가의 말처럼 쓰레기통에 넣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내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가족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은 당연하게도 "자기 혼자 사는 집"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집과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85p






연극의 무대는, 장마다, 막마다 또 가끔은 막간이 있어서 그때 쉴 수도 있고 또 다른 씬으로 전환하기도 합니다. 아오세에게도 그랬습니다. 이 부부를 찾는 일을 잠시 관둘 그 "다른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작은 건축사 사무소지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알던 퍼즐들인데, 하는 순간 또 다른 진실이 나타나는 그 순간의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루했습니다. 그런데, 뒷부분, 그 뻔하고도 뻔한 이야기에서 되려 살짝 눈시울이 적셔졌습니다. 정말, 뻔했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건 가족의 이야기라서 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이 전달돼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건, 어쩌면, 별 이유는 없는 것인지도 혹은 아주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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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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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_ 스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참 이상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말입니다. 오늘 제가 읽은 이야기도 그런 이야깁니다. 조금, 개방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라사에게 어쩌면 또 조금 힘든 일이 다가왔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라사는 조금은 특이한 색을 지녔다할 지라도 묻혀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이 몰고온 파장은 아주 컷습니다. 그 행복이란 것이, 마치직물조각으로 짜여져 있던 실 한 올이 풀리면서 다 풀어져버린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사라사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모의 집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아직, 그녀는 보호자가 필요할 나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사라사의 말처럼

"이모의 집이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네, 그 또래의 여자 아이가 아주 싫은 경험이 다가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래서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로리콘"이라 불리는 후미의 단 한 마디에 따라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라사는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오래갈 리는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행복이란 것이 마치 사라사를 방해하듯, 그렇게 후미와 헤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후미는, 자신에게 행복을 준 사람이지만 "로리콘, 유괴범"이 돼 있었고 사라사는 "유괴당한 여자 아이"가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도 달라졌습니다. 더이상 사라사는, 행복하게 부모님과 함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후미와 함께 그의 깨끗한 아파트에서 응석이나 부리며 꼼지락거리던 시절과 이별해야만 했습니다. 이별만 했더라면, 다행일 겁니다. 그녀를 보는 눈이 달라진 세상, 사라사는 자신의 색을 저 깊숙히 숨겨버렸습니다. 동정이 아니라 그 이상한 눈들.자신은 행복했는데 바라보는 눈들은 그 "불쌍하고, 몹쓸 짓을 어려서부터 당한 아이" 로 낙인을 찍는 것 같았으니, 색따위는 숨기고 싶었고 다만 미안한 마음을 저 깊숙히 숨기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우연인지 혹은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는 것인지 자신의 유괴범으로 낙인 찍힌 후미를 만났습니다.

씨실이 날실을 만났을 때, 날실이 씨실을 만났을 때, 촘촘해지면서 화려해지기도 합니다. 설령 그게 나중에는 평범하게 될 지라도 말입니다. 사라사가 후미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관계기도 했고, 그녀에게 스톡홀롬 증후군이라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없었습니다. 평범하게 살 수 없지만, 또 그렇게 살아가려던 사라사가 빛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반짝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_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당신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어설픈 이해와 상냥함으로 나를 칭칭 옭아매는 당신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본문 316, 사라사

- 내 방 창 너머로 크게 성장한 물푸레나무가 보인다. 성장이라고는 하지 않는 이상한 물푸레나무 대신, 우리 집에 뿌리를 내리고, 창문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귀마개를 사서 밤에 꽂고 잤다.

본문 335, 사키에 후미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요..?

이 소설, <유랑하는 별>은 재미있다면 믿을만 하다는 서점대상을 받은 책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도 그들을 보는 "배려만 가득한 눈"이 돼, 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각기 누구를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 되려 끄덕인다면 아마 사라사의 말처럼 그저 어설픈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압도적 필력이라곤 했지만, "가독성"은 좋았으나 필력이 좋았다, 라고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마지막 의외의 후미의 이야기는 어설픈 배려따위는 걷더라도 많이 아파왔고 그제서야 사라사도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풀어질 수 있을 지 몰라도 지금은 정말 잘 어울리는 날씨과 씨실, 씨실과 날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듯 하지만 다르지 않은 건 아마도 그들의 상처가 조금 다르게 "부모의 외면"에서 혹은 "어머니의 외면"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포근하던 품은 얼음처럼 변하기도 하니까요. 사라사가 즐겨먹던 그 아이스크림처럼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서점대상이라서 아주 기대를 안고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조금은 덜 맛났다고. 말입니다. 조금 단조로운 구성, 그 안에 많은 빛깔을 담아내려고 해 많은 이들은 맛났는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좀 덜 맛있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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