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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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이트를 켜고 야간 운전을 하는 사람처럼, 불빛이 닿지 않는 시야 밖 상황이나 관계를 종종 까맣게 읽어버리기도 하는. 그리고 그게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서운하게 만드는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 253p. <호텔 니약 따> 중에서


이제는 훨씬 더 잘, 김애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누군가 한국 문단에서의 모범생으로 김애란을 들며 이야기했던 생각이 나는데-아니, 그건 김연수였나? 하지만 초창기 김연수 소설과는 별개로 김애란의 소설이 범생이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김연수 소설에 대해서는 몇번이고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다음에 내키면 다시-문창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내가 보기에도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안정적이고 재미있지만 설정 그 뿐인. 매주 읽어야 하는 서너 편의 습작들과 비교했을 때 뚜렸하게 큰 감동을 주진 못했다. <성탄전야>같은 작품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만큼은 아니잖아. 김애란의 참신함을 세대 감각으로 이미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익숙하고 반갑지만 조금은 만만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경우에도 설정이 앞선 듯해 마뜩치 않았다.


간만에 읽은  김애란의 소설집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훨씬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단순히 소재나 설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편편마다의 서술 방법. 다양한 캐릭터를 구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피상적인 사건이나 행동을 드러내는 대신 내면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느새 귀 기울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과연 내가 아는 이야기, 내가 지나쳤던 이야기,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겠지. 마냥 스무살인 것처럼 굴다가 솔직하게 스스로의 나이를, 시간을, 경험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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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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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카밀라 포트만의 이야기 속에는 지은과 희재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쓰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말하고 있는 이야기. 그런데 너무 길지 않아? 아무래도 산만한 것 같아(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숨겨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동원된 장치들이 너무 거추장스럽다. 줄곧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숨겨진 이야기가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면 2010년 문학동네 계간지 봄호에 실려있는 이기호의 단편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이 있다. 차와 사랑에 빠진 삼촌의 이야기, 하지만 삼촌도 삼촌의 사랑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화자에게는 삼촌이 사랑했던 후진이 안 되는 고물단지 차와 차계부가 있을 뿐이지만 나중에 씌여지지 않은 그 이야기를 내가 떠올릴 때의 남다른 감동이 각별했던 소설.

 

김연수의 전작 [내가 누구든 얼마든 외롭든]에도 있었지 그런 거. 진술이 아니라 묘사라면, 그 묘사가 만들어내는 것이 대상이 아니라 공간이라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비워야하는 부분이 있을테고, 비워진 공간을 매력적인 곳,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능하는지.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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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김유진 소설집
김유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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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희미한 형태들이 주는 모호한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감정을 가진 형태를 풍경이라 부릅니다." 77p

한없이 조용하고 느리고 투명한 채로 어쩐지 슬프다. 그녀는 단호한 미문으로 모호한 정서를 실어나른다 -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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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아크로폴리스
세계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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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소설을 모으고 있는데 초창기 작품 중에서는 [베티를 만나러 가다]가 가장 좋은 듯. 나머지 책들은 워낙 귀해서 도서관에서도 좀체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사만 원이라니. 한 십 년 뒤에는 얼마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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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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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재와 빨강, 이후의 편혜영 단편들에서 작가의 소설 세계의 변화의 기미를 읽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강연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일방적인 강연이 아니라 창작의 여러 고민들에 대해서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묘사로써 구축할 수 있는 소설적 세계가 이미 일단락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에는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던데요. 묘사 이외의 진술의 영역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한국 현대 소설의 에세이화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다른 기회가 있겠죠. 

 

소설에서의 잉여, 여백에 대해서도 작가가 현재의 구성, 작법, 문장 각각의 부분을 실제 작품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주어서.

 범박하게 강연회의 내용을 옮겨둡니다. 나중에 더 구체화할 수 있을까요?


 편혜영 초청 강연회(일시 : 2011 05 26. 장소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연회 내용

 

등단 초기의 일화 :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이슬털기라는 작품. 출생과 죽음의 단계를 이슬털기라 부르는 것에 착안. 씻김굿의 과정을 따라가며 소설 진행. 두 편의 습작을 가지고 등단. 3년간의 청탁이 없었음. 주변의 소재가 모두 소설로 보이는 시기. 등단하고 1여년 만에 청탁을 받고 소설을 씀. 소설가가 되고 나서 오히려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는 시기가 있었음. 문학 수업에 의해 기승전결과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소설을 쓰다가 오랜만의 청탁을 받고 기존의 전통적 소설쓰기의 방법을 잃어버림. 그 때 인상적인 이미지. 장국영의 죽음. 사스 유행과 흰 마스크.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부각시켜 기존의 소설과 다른 소설을 완성. 2003아오이 가든. 이후 쓰고 싶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소설을 중점적으로 쓰게 됨. 등단 초기에 소설 청탁이 없는 상황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를 가짐. 2005년 첫 소설집.

 

이 세상에는 소설이 너무 많다. 우리가 쓰는 소설이 반드시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함. 작가마다 테마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름. 작가마다 브랜드가 있는 것. 계속 소설을 쓴다면, 그 소설이 살아남는다는 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 나만의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함.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음. 습작기에는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소설을 쓸 때도 있지만 오로지 쓰는 과정을 통해서만 스타일이 드러나게 됨.

쓰면서 드러나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게 유효한 방법. 쓰면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즐거운 지점을 찾아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함.

 

습작기는 작품의 편수를 늘려가는 시기가 아니라 내성을 키워가는 시기. 문단에서는 작품의 반응과 평가가 빠르게 이루어짐. 습작기 동안 그 평가에 대한 내성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 실패에 대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 습작기와는 다른 혹독한 과정.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소설의 소재가 어떻게 오는가?)

 

신문의 사건 사고의 영향 :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PD수첩)

모티프를 실제 사건에서 가지고 오지만 그대로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님.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질문하면 할수록 소설이 완성도가 높아짐.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만들어야 함. 만약 ~라면 ~했을까? 소설을 쓰면서 각각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구. 그럴 때 소설의 응집력이 높아지게 됨.

 

퍼레이드(놀이공원에서 코끼리들이 탈출하는 사건. 코끼리 식당.)

훈련된 코끼리가 일탈한다는 것이 매력적. 일단 코끼리를 산으로 보냄. 코끼리가 사라짐.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 여의도 벙커 발견 사건. 전혀 다른 실제 이야기들을 활용하여 소설을 완성.

 

소재는 어디서나 오는 것. 놓치지 않는 게 중요. 초고를 만들 때 가장 즐거움. 우연한 시작을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질의응답

 

* 편혜영 소설의 변화의 계기 :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위치.

작가가 하는 기획은 노동으로써 산출되는 것. 초기 소설의 경우 스스로가 홀려있던 이미지들을 풀어내는 과정. 각각의 작품집마다 차이가 드러나게 됨.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인지할 수가 없음. 기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동력을 가진 하나하나의 소재가 완성되어가는 것.

기존의 작품들은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구성했기 때문에 잉여의 부분이 없었음. 최근엔 잉여의 부분이 늘어나는 것 같음. 잉여가 없이 꽉 짜인 소설은 가리마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데, 현재는 그 가리마를 흩뜨려 놓고 있음.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함.

 

* 장편 창작?

설계도 없이 써내려가는 소설. 사소한 문장이나 이미지가 단편으로 확대되는 편. 써나가면서 시행착오를 겪음. 많은 노동력이 소요됨. 초고를 2~3주 완성. 1달간 퇴고. 10여 편의 버전. 초고 완성 후 객관화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쳐나가는 편.

2007년 장편 창작 의도, 아파트먼트시도 후 실패. 꾸준히 쓰지 않았음. 장편은 꾸준히 써야 함. 소설을 쓸 때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 스스로가 잘하는 스타일을 까먹고 있었음. 즐겁기보다 잘 쓰려고 노력. 실패. 현실과 비현실의 틈이 스스로의 장점. 그런데 현실을 재현하는 노력은 무의미. 2009재와 빨강장편 완성, 스스로가 익숙하고 재미있었던 작품. 2010년 발표.

단편의 경우 시행착오가 유효. 하지만 장편의 경우 어느 정도 설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재와 빨강의 경우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었음. 초고 완성 후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수정.

단편에서는 실패가 없음. 유효했던 이미지들은 든든한 자산이 되는 것.

 

2010년 두 번째 장편을 연재. 소설쓰기는 끊임없이 트랙을 옮겨가며 100M 달리기를 하는 일. 트랙의 길이가 짧아지거나 하진 않음.

 

* 세련된 소설?

201012저녁의 구애완성. 문장의 감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낌. 재와 빨강을 쓰면서 그 경험을 함. 그 전의 소설들은 인물들이 중요하지 않았음. 공간과 이미지가 중요한 소설. 하지만 그 인물의 고독을 생각하면서 그 톤이 달라지게 됨. 문장의 온도가 올라가는 지점을 느끼게 됨. 유리벽에 갇혀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 안의 인물. 인물과 겹쳐지는 경험. 작중인물이랑 거리를 가지는 소설을 쓰다가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계기.

 

그 당시 읽었던 소설들이 인물의 내면을 유효하게 다루는 소설이었음. 필립 로스의 소설.

 

* 소설을 쓰게 된 계기?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무라카미 하루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야구구장에서 공을 바라봤던 일. 스스로의 삶에서 유효한 장면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함.

 

* 소설에서의 거리, 시점.

자기가 편한 소설의 거리, 시점이 필요함. 소재마다 달라지는 것. 1인칭을 쓰지 않는 건 소설적 전략이기도 함. 인물을 2M 정도 떨어져서 바라보는 기분. 이야기에 어울리는, 등장인물을 컨트롤 하는 편한 거리감이 있음. 습작기의 고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훈련으로 가능함.

 

객관적인 거리를 가지고 쓰는 방법은 단편에서 유효. 장편에서는 어려움.

 

* 거리감, 시점, 드라마틱.

묘사 중심의 소설은 시효가 만료된 느낌이 있음.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묘사에 걸맞은 진술이 드러나는 작품. 진술에 욕심을 내다보면 습작기의 작품을 망치게 됨. 진술 자체가 진부해지게 되는 경우가 그러함.

 

김경욱, ‘묘사 없는 내면은 맹목적이고 내면 없는 묘사는 공허하다

 

잘 된 진술. 필립 로스. 인생의 어떤 시기를 거쳐 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쉽진 않은 것.

 

* 이미지가 주제화 되는 과정?

작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 주제를 먼저 떠올리고 쓰는 것은 아님.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만들어가는 경우는 있음. 오히려 이미지에 대한 구도, 주제를 강화했을 때 도식화되는 문제점이 드러날 때도 있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뉘앙스를 가지고 쓰다가 보면 구체화 되는 지점.

 

작가의 전개도가 소설에 드러나는 순간 소설이 시시해진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편. 소설에서의 잉여를 드러내는 것은 긴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행착오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 자신의 체질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것. 습작기. 등단 이후에는 그 체질을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

 

* 전업 작가 이후 달라진 점.

소설 보다는 생활이 더 즐거웠음. 소설은 내가 즐거워하는 일 중의 하나. 규칙적 생활. 퇴근 후 단편을 창작하는 속도감은 무리가 없었음. 장편 착수 이후 무리가 발생. 소설에 투신한 시간은 스스로에게 그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음. 소설에만 매진할 경우 그 배신감을 감당할 수가 없음.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경험. 쉽게 전업 작가를 선택.

 

전업을 하면서 소설 쓰는 시간이 늘어난 게 아니라 잉여의 시간이 늘어남.

 

회사를 다니면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음. 유일한 징크스. 벽을 보고 소설을 쓸 수 없음.

 

* 매체에 대한 고민

 

청탁에 대해 선착순으로 글을 발표하는 편. 매체에 걸맞은 글의 성격은 고민한 적이 있음.

 

강연회를 마치며

 

같이 글 쓰는 동료로서 고민을 공유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 즐거웠음. 언젠가 동료로 만날 수 있기를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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