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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카밀라 포트만의 이야기 속에는 지은과 희재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쓰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말하고 있는 이야기. 그런데 너무 길지 않아? 아무래도 산만한 것 같아(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숨겨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동원된 장치들이 너무 거추장스럽다. 줄곧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숨겨진 이야기가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면 2010년 문학동네 계간지 봄호에 실려있는 이기호의 단편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이 있다. 차와 사랑에 빠진 삼촌의 이야기, 하지만 삼촌도 삼촌의 사랑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화자에게는 삼촌이 사랑했던 후진이 안 되는 고물단지 차와 차계부가 있을 뿐이지만 나중에 씌여지지 않은 그 이야기를 내가 떠올릴 때의 남다른 감동이 각별했던 소설.
김연수의 전작 [내가 누구든 얼마든 외롭든]에도 있었지 그런 거. 진술이 아니라 묘사라면, 그 묘사가 만들어내는 것이 대상이 아니라 공간이라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비워야하는 부분이 있을테고, 비워진 공간을 매력적인 곳,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능하는지.
곰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