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인, <내가 만든 여자들>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후 수학교사로 일하다 돌연 퇴직하고 무급의 복싱선수가 된 설재인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독특한 작가의 이력만큼 특별한 12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스타일로 그려낸 단편들에서 자유로운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정식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작가의 이력과 설정이 겹치는 단편들을 읽으면서는 자유로움이 진실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각각의 인물과 각각의 이야기가 가진 진실. 허구로서의 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진실. 소설에서 드러난 인물과 시간의 단면들에 귀를 기울이고 진짜구나 하고 믿게 만드는, 이전까지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점에 대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 태도에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서점친구들 올해의 발견으로 설재인 작가의 <내가 만든 여자들>을 추천합니다.
민지형 장편소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작가답게 동시대의 첨예한 문제의식과 디테일을 통해 영리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2, 30대 젠더 갈등이 최고조로 달한 지금 ‘메갈년’, ‘한남충’으로 부르며 서로를 혐오하는 남녀 사이에 연애는, 그리고 사랑은 가능한가?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페미니스트가 된 첫사랑과의 재회와 연애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도 출판사도 낯설지만 의외의 발견이랄까요? 무릎을 치다가도 가슴이 철렁하는 장면들에서 소설이 가진 재미와 힘을 함께 읽습니다. ‘미친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연상하게 되는데요. 매력적이고 똑부러지는 여자친구는 왜 ‘메갈’이 되었을까? 평범한 한국 남자인 화자는 ‘미친’ 한국사회에서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동시대 연애지침서이자 한국사회보고서로 손색없는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를 추천합니다.
2016년 한겨레 학상 수상작인 <누운 배>에서 조선소를 배경으로 회사 내의 디테일한 권력 관계를 그렸던 이혁진 작가가 이번에는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사내 연애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상수는 수영을 좋아하고 수영은 종현을 좋아하고 미경은 상수를 좋아하는, 연애관계에서 영원한 딜레마인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해주는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밀당의 순간과 들뜨고 가라앉는 마음을 적확한 표현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연애소설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마음을 들킨 것처럼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전형이란 말처럼 연애를 둘러싼 이해 속에서 자격지심, 자존심, 질투 등을 만들어내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직장 내 위계질서 등 사회적 요소를 확인할 때 연애 소설은 적나라한 세태소설로 다시 읽히기도 합니다.무엇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 때문에 인물의 관계나 심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좋았어요.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각각의 인물과 목소리를 상상하며 읽어 보세요. 이혁진 작가의 <사랑의 이해>를 추천합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다. 해언이 등장하는 장면과 만우가 다림질을 하는 장면. 이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만으로도 이 소설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나 인물의 감정이 아니라 묘사만으로도 주제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건 작가의 힘이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 드러나는 것들이 이미 암시되었던 것들이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 역시 도식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생략된 것들, 내가 지나친 것들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네. 기대한 작가, 기대한 작품이었고 보기좋게 빗나갔지만 또 그래서 새롭고 낯설다.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라는 말을 가장 우아하고 치열하게 돌려 말하고 있는 책” @alllookto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