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다. 해언이 등장하는 장면과 만우가 다림질을 하는 장면. 이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만으로도 이 소설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나 인물의 감정이 아니라 묘사만으로도 주제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건 작가의 힘이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 드러나는 것들이 이미 암시되었던 것들이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 역시 도식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생략된 것들, 내가 지나친 것들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네. 기대한 작가, 기대한 작품이었고 보기좋게 빗나갔지만 또 그래서 새롭고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