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하다가 빼놓은 김에 술술 읽었다. 종광이 형은 내리시절에 출강을 하기도 했는데 수업 시간보다 술자리에서 더 자주 만났다. 형이 서명해서 선물한 책. 이문구 선생의 해학과 위트를 계승하는 작가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박한 기록문학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대 내리 생활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묘사 때문이다. 별칭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실제 모델이 된 선배들이며 한우리 같은 단골집, 문연자니 밭들이니 건지리 그런 장소와 지명. 그 시기의 내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충실하게 그리고 있다. 선배들의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술술 읽었다. 후기에 있는 작가의 말을 다시 읽으며 특정 시대와 세대를, 인물을 그려내는 일--그것도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소재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봤다. 오히려 지나치고 잊혀질 이야기들을 굳이 붙들어 기록하는 의미를.

내친 김에 사계절 1318 청소년 문고로 출간된 연작 소설집 [처음 연애]도 함께 읽었다. 해방 후부터 2002년 월드컵까지를 배경으로 청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간다. 연애의 변화상을 충실히 기록하는 작품. 역시 각각의 에피소드의 매력이나 구체성보다는 전체 맥락을 읽게 된다. 오히려 지금은 드문 한국문학의 스타일이라 고개를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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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시선 411
신용목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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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진주문고에서 사서 통영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읽고 밤에 하이시드니 갔다가 귀뚜라미 소리, 사나운 바람 소리 들으면서 소리 내어 읽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더 읽고 잠들기 전 다시 또 읽었다.

풍경에 대한 시집이면서 슬픔에 대한 시집이고 계절에 대한 시집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었는데 모두 시간에 대한 일이구나. 시집 속의 시간과 내 시간을 겹쳐 읽는 동안 중복되는 문장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린다고 말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는 소리만 내리고 있다는 걸 아는 마음으로. ‘슬픔이 새‘가 될 수 있고 ‘낙엽‘인 동시에 ‘가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날아오르는 것과 떨어져내리는 것이 꼭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에서 에셔의 판화와 같은 기시감을 느끼며. ‘나의 밤을 네가 가져갔던 시간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 될 때까지의 ‘저녁(들)을‘, ‘새벽(들)을‘ 포개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받아 쓴 문장을 소리내어 읽는 동안 신기하게 다시 떠오르는 풍경.

시집의 뒷표지에 실린˝읽는 동안 나는 이 시집이 씌어지던 시인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는 허수경 시인의 추천이 무색하지 않구나. 그 시간-풍경들이 만들어내는 ‘우리‘의 감각.

덧,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엔 남자 중견 시인들의 시집들이 풍성하다.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와 심보선 시인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도 즐겨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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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삶, 여성의 삶, 식물의 삶을 직조해나가며 개인과 지구의 역사를 통찰해나가는 책. 곳곳에 넘치는 위트와 적확한 통찰, 글쓰기로 삶을 마주하는 자세가 인상 싶었다. 책에 씌여진 것 너머의 내용을 읽히게 하는 책.

비슷한 독서로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떠올렸다. 비유의 힘, 상징의 효과.

책의 마지막에 나무를 심으라는 당부에 이어 책 속에 인용된 연구의 출처를 밝히는 지점에 이르면 역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과학에세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진지한 기록으로 읽었는데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저자의 근본이랄까. ㅋ 즐거운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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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습 Idea Ink
우치누마 신타로 지음, 문희언 옮김 / 하루(haru)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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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문화와 책방에 대한 고민을 짧게 풀어낸 책. 가볍게 술술 읽히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책도 책방도 하나의 매체--미디어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능성과 시도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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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서점
가쿠타 미츠요.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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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탐방을 소재로 한 위트있는 책. 책에서 책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와 헌책방 베테랑 점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미뤄두었던 책인데 의외라고나할까.

˝그렇다. 가게 안을 걷다보면 누군가의 일상을 접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수많은 책을 소유했던 각각의 사람들의, 책을 읽는 풍요로운 시간의 조각이 여기저기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다.˝

˝친구 집에 가면 그 집의 책장에는 그 친구를 연상케 하는 책이 꽂혀 있다. 친구는 그 책을 전부 읽었을테고, 그러므로 그와 그녀는 그답게, 그녀답게 자랐다. 책장과 그, 책장과 그녀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책은 소비되고, 잊히고, 사라지는 무기물이 아닌 체온이 있는 생명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 이번에 방문한 어느 헌책방이나 그에 지지않는 체온이 있다. 어디서나 책은 생기가 넘치고, 읽는 이를 조그만 목소리로 끊임없이 부른다.˝

책을 읽고 내가 기억하는 책장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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