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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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오지 탐험 프로그램을 본다. 제대로 된 길도, 집도, 물도 없다. 기후조차 인간이 제대로 연명해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곳의 삶을 보면 막막하고 두렵고 생경하지만 막상 그곳 주민들을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웃고, 울고, 욕심내고, 미래를 준비하고... 말이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어떤 생각도 이런 오지의 삶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닿아있지 않을까? 이 작은 땅에서 걸어간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그런 거리에 있는 북한 주민과 우리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을 아프리카 오지의 삶보다 더 모르고 더 이해하지 못한다.

 

[평양프로젝트]는 작가 오영진이 경수로 건설 사업과 관련하여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1년 반 동안 머물렀던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설정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므로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어디부터가 허구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남녀노소 평양 시민들의 생각과 말, 생활 모습은 대부분 그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쓴 것일 테니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평양 사람들의 실제 모습이라면 그들은 참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물론 평양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있겠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느끼던 폐쇄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더 많이 갖고 싶어하고, 더 놀고 싶어하고, 더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휘어잡는 짱도 있고, 왕따도 있었다. 시부모와의 갈등도 있었으며 더 나은 학교와 더 나은 직장, 더 마음에 드는 아내, 더 능력있는 남편을 만나겠다는 욕망, 노인과 젊은이의 세대차이와 갈등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사이의 갈등과 감정과 문제들이 거의 다 있었다. 물론 정도와 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통일은 점점 그 당위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아이들, 젊은이들...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통일을 하면 독일처럼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될까 걱정을 먼저 한다. 이런 생각의 한 켠에는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있지 않을까. 어떤 외국보다 더 먼, 갈 수 없는 나라이자 알 수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책의 미덕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며 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 나아가서 같은 조상에서 나온 한민족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한다. 굳이 웅변하지 않고도 그들의 일상을 소소하게 풀어 그것을 알게 만들어 준다.

 

물론 이것은 과장된 북한의 모습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더이상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없을 만큼 흔한 것이 북한의 극악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으니까. 작가의 북한 경험이란 것도 어차피 북쪽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본 것일 테고, 작가 자신이 북한 주민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삶을 위협받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아닌, 특혜를 받으며 그나마 사람답게 살고 있는 실제 평양 주민들도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보다 더 우리를 경계하고 거부할지도 모르고, 이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거나 들킬만큼 여유로운 모습이 아닐지도 모르고,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겨를이 없을만큼 생존을 위협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단, 국제경기 응원단, 국제경기에서의 북측 선수 등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생각이 그저 편견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 삶의 근본적인 모습이 책에서 보여주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찌하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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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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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지끈거린다. 방금 눈 앞에서 머리채를 쥐고 목청을 찢어대는 싸움판이 있었던가. 그렇게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는 시끄럽고 어지럽고 위압적이다. 여기에는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자기를 토해내지 못해 안달인 인물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바통터치에 여념이 없다. 누군가의 애인이자 아들이며 딸이고, 아버지이며 어머니인 이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이야기에 급급하다.
 
스물 아홉에 실연을 한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연의 상처 때문인가 그녀는 으르렁 거리며 주변에 걸리는 누구라도 좋으니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무섭다.

 

잠시 후, 그녀를 무참하게 차준 남자의 아버지가 수도꼭지를 들고 들이닥치더니 아들 대신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는 자기 세계에 빠져 푸념을 늘어놓고 아들의 짐을 함께 옮기자며 신경질을 부린다. 그리고는 그녀를 위로하는 척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미앙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내가 그 애의 늙어빠진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더라면 너를 선택했을 거다. 이제 자리가 났으니 그 무엇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그러니까 사랑을 나누는 걸 막지 못할 거야. 그 애를 잃은 널 위로하기 위해 당장 섹스를 하는 걸 말이다."

 

어느새 예고도, 그 어떤 조짐도 없이 무대 위의 주인공은 남자의 어머니로 바뀌어 있다. 그녀는 자신 혹은 자신의 집안에 어울리는 품위있는 방식의 결별을 위해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고자 한다. 스물 아홉의 그녀가 다시 다미앙을 향한 희망의 불을 지필 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럴싸하게 그녀에게 다시 결별을 선언해야만 한다.

 

유통기한이 기입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슬라이스 햄 같은 아버지와 유리병에 담긴 채 요구르트와 함께 냉장식품 곁에 놓인 내장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무심하고 무기력하게 마치, 접시 가장자리에 따로 놓였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생리대와 과일 씨, 계란껍질과 뒤섞인 채 불결한 휴가를 보내는 비계 같은 아들인 나, 다미앙까지. 

 

이들은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처럼 질서 정연한 뭔가도 없어 무시로 등장해 금방이라도 나를 물어뜯을 듯 지껄여댄다. 장터에서 벌어졌을 법한 이 시끄러운 혀의 활극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감정으로 엮인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가 실은 이런 잔혹한 관계다. 나는 나를 위한, 나만을 보는 나일 뿐이다. 부모도 연인도 언제든 서로를 할퀼 수 있는, 쥐어뜯어 상처를 줄 수 있는 관계다. 사랑은 위선이다. 사상누각이다. 한 번의 파도에 그 흔적을 쉬이 내려놓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 이야기만큼 이상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가정은 정신병동이다. ...환자들이 모여서 재잘거리며 휴식을 취하고, 특히나 터무니없는 말들을 고래고래 외치며 나누고, 부어오른 고통스런 기억을 대면함으로써 자신들의 광기를 유지하는 커다란 거실을 갖춘 그 집... 그들은 긴장이 풀어진 정신질환자들의 엄청난 힘으로 서로 치고받으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다시 개봉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달아났다. 나의 부모를 찾아갈 때면 그들과 뒤섞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들이 불안을 함께 나누는, 현실의 네거티브 필름으로 여기는 환각을 교환하면서 정성껏 자신들의 정신이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그 수용소에 나는 손가락 끝도 담그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뒤틀리고 야유하고 때때로 어두컴컴한 슬픔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나면, '그렇지, 이게 현실이지.'하며 긍정하게 되었다. 여기 부모와 연인의 사랑을 발가벗기고 손가락질하며 슬퍼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 결국 사랑도 이런 거야.'하며 긍정하게 된다, 당장은. 그러나 힘겨운 한 걸음을 내딛어 좀더 깊은 곳을 마주하게 되면 저 신경질적인 감정들은 그저 단상일 뿐이며 사랑이나 우리 현실의 본질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더 강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독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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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궁의 묘성 - 전4권 세트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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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 능란한 이야기꾼이 엄연한 역사의 한 가닥을 뽑아 자신이 가진 비장의 銀絲와 함께 빛나는 천을 짜냈다고 하면 이 소설에 대한 설명이 되려나. 작가는 작품 안에서 중국에 대한 경애를 감추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중국의, 그것도 마지막 왕조가 무너져 가는 넘쳐나는 드라마 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늘의 기운을 읽는 무녀이면서도 누구보다 인간의 힘을 믿고 있던 백태태의 예언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똥을 주워 매일을 연명하는 이춘운. 가난과 절망이 그의 수호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이 소년에게 백태태는 부와 권위의 별, 세상을 다스리는 별 묘성이 너의 수호성이며 머지않아 中華의 재물을 모두 차지할 것이라는 예언을 준다. 대지주의 서자로 태어나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한 채 허허실실 자신을 가장하고 살아야했던 양문수도 하늘의 해와 달을 움직이는 진사가 되어 황제를 보필하는 재상이 되리라는 예언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이 허구의 주인공들과 서태후, 이홍장, 영록, 강유위, 담사동 등 청조 말기에 실재했던 인물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아귀를 딱딱 맞추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곁다리인지 알 수 없는,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물론이고 중요한 고비에는 언제나 백태태의 황금열쇠 같은 예언이 등장한다. 그러나 [창궁의 묘성]은 거대한 운명 안에서 장기의 말처럼 어쩔 줄 모르는 나약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인간의 이야기다. 춘아의 삶은 운명의 하수인인 무녀의 예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는 눈이 오면 얼어 죽고,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고, 가뭄이 들면 목말라 죽는, 어쩔 수 없다며 눈물 흘리는 벌레일 뿐인 자신의 삶을 운명에 맡기지 않았다. ‘희망’이라는 낯선 단어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운명에 묻혀버리기 전에 스스로 운명을 걷어차고 창궁의 묘성을 찾아 떠난다.
또 다른 주인공 양문수도 지난하나 긍지 높은 황제의 신하로서 살아가리라는 운명을 거슬러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에 들어서서 앞으로 올 세상에서 해야 할, 자신의 의지로 만든 숙명을 기다리게 된다.

작가는 서태후를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애신각라(愛新覺羅)의 어리석은 남자들 탓에 스러지는 중국을 떠받치고, 결국 제 손으로 그 왕조를 무너뜨려야 할 모진 운명의 희생자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알 뿐이지, 그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낸 動因까지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이런 소설에서야 말해 무엇할까마는 좀 뜬금없이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기 그려진 서태후가 진실에 더 가깝다 하더라도.
섬나라 사람이라 그런지 어쩐지 작가가 유난히 대륙의 거대함에 경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과거시험의 과정을 세세히 말하던 부분에서는 나 역시 그 거대함에 숨 막힐 정도였다. 어쨌든 이렇게 중국에 대해서 애정과 선망을 감추지 않지만 자국에 대해서도 고운 시선을 잊지 않았다. 이토히로부미는 잠시 등장하지만 매우 중요한 인물로서 변볍파와 광서제가 우러러 마지않는 개혁의 화신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다지 과장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왠지…….

신의 규칙에는 끝이 있지만 인간의 재주에는 끝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창궁의 묘성,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나도 천장에 있는 그림이 설마 사람이 그린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그건 신들이 만들어낸 하늘보다 더 푸르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푸른 창궁이었으니까 말이우."
"그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창궁 한가운데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었지."
"그건 묘성이었지요. 그런 묘성을 왜 푸른 하늘 한가운데에 그렸을꼬?"
"화가는 단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신이 만들지 않은 것을 어전 한가운데에 그렸을 뿐일 거야. ‘蒼穹의 昴星’,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인간의 재주에는 끝이 없구려."
"그래. 신의 규칙에는 끝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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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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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에 사는 여자가 있다.

지루하고 볼품없는 그곳에 포르투칼의 리스본을 덧입히고 혼자 논다.  집 앞 정류장을 무슨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 정류장으로, 흔하디 흔한 공원들을 무슨 꼬메르시오, 페데르 어쩌구 광장 등으로, 그냥 도시를 가로지르는 무덤덤한 길에 가레트..라던가 하여튼 이름을 또 붙여준다. 중앙역도 있고, 무슨 투우장도 있더라만. 쯧-.-"

나에게 이 여자는 '열등감과 허영심'이다.
이 여자에게는 영화배우 뺨 꽤나 치고다닌다는 남동생 코지가 있다. 그녀 열등감의 시작은 이 '코지'라는 왕자님이었다. 코지를 보며 자라온 그녀는 반짝반짝하는 인간과 자신의 '거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고 그래서 열등감을 긍정하고 인정하게 되어버린다. 또한 반짝반짝들과의 그 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처지이므로 그것들에 대한 허영심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

이런 열등감과 허영심은 이 여자의 현실과 이상 사이 간극을 어찌할 수 없이 만들어버리고, 이 여자에게 묘한 이중성을 갖게 한다. 반짝이는 안도 주임과 반짝이는 사토시 사이에서 바보짓하고 있는 자신은 잊은 채, 반짝거리는 코지의 반짝거리지 않는 애인 메구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부유하던 리스본이 사라졌을 때 나는 그녀가 초밥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도쿄행 기차를 탔다. 연애운 없는 여자였던 메구미의 그 열 가지 자기 분석이 이 여자에게도 힘을 실어주는데... 

반짝거리는 것들에 대한 반짝이지 않는 나의 태도도 이 여자와 마찬가지다. 애처로운 열등감과 수줍은 열망.
평범한 나와 그녀가 빛나는 그들 앞에서 다른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나대로, 아니 우리는 우리대로 살 수밖에 없다.

주인공 그녀처럼   -사토시를 만나는 카페에서 웨이트리스 앞을 지나며 뽐낸다, 코지의 밴드 공연장에서 은근히 어깨를 추켜세우며 목을 세운다, 사토시 아버지의 사륜구동 안에서 이런 사람의 아버지니 그 분도 멋지겠지, 마키의 고백을 받고, 아~ 난 이 정도 여자구나.-  이러고 살 수만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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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042 5 - 완결
코테가와 유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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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우리나라 최초 사형수의 자연사'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사형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지금의 과도기적 상황이 낳은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까 97년 말에 23명의 형을 집행한 이후로 지금껏 형의 집행이 없었던 것이다. 아직 예순 명 이상의 사형수들이 남아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마련할 모양이다. 혹 사형제가 폐지되면 사형을 언도받을 죄수들은 그 대신에 감형도, 가석방도 없는 종신형을 살게 되는 모양이다.

사형수 타지마 료헤이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사전조사 차원에서 뇌에 칩을 넣고 사회에 복귀하는 실험의 실험체가 된다. 그는 "난 죽이고 싶어서 죽였어. 사람 죽이는 거, 재미있었으니까."라고 말하는, 7명을 죽인 살인범이다. 이런 그가 실험 장소인 고등학교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갈등을 겪고 사귀고 이해하게 되어간다는 어찌보면 좀 뻔한 이야기다.

실험이 진행되며 변해가는 그의 모습은 작위적으로 보이는 반면, 지극히 상식적인 변화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것은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삶을 어떻게 결정 짓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타지마 료헤이에게도 즐기며 7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 즉 그를 그렇게 만든 환경이 있었다. 모든 것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얍삽한 소리를 하고 싶진 않지만, 그들과 우리가 '처음부터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형제의 폐지나 존속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범죄자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두려움과 그들의 어눌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와 그들이 서로 조금씩 달라진다면 범죄와 범죄자가 싸그리 사라지진 않더라도 좀 더 나은 세상은 되지 않을까.

"그러니 부디 여러분의 주변을 더 넓게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 뭔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은 다정하게 대해 주십시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쫓겨 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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