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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머리가 지끈거린다. 방금 눈 앞에서 머리채를 쥐고 목청을 찢어대는 싸움판이 있었던가. 그렇게 [스물 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는 시끄럽고 어지럽고 위압적이다. 여기에는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자기를 토해내지 못해 안달인 인물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바통터치에 여념이 없다. 누군가의 애인이자 아들이며 딸이고, 아버지이며 어머니인 이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이야기에 급급하다.
스물 아홉에 실연을 한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연의 상처 때문인가 그녀는 으르렁 거리며 주변에 걸리는 누구라도 좋으니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무섭다.
잠시 후, 그녀를 무참하게 차준 남자의 아버지가 수도꼭지를 들고 들이닥치더니 아들 대신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는 자기 세계에 빠져 푸념을 늘어놓고 아들의 짐을 함께 옮기자며 신경질을 부린다. 그리고는 그녀를 위로하는 척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미앙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내가 그 애의 늙어빠진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더라면 너를 선택했을 거다. 이제 자리가 났으니 그 무엇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그러니까 사랑을 나누는 걸 막지 못할 거야. 그 애를 잃은 널 위로하기 위해 당장 섹스를 하는 걸 말이다."
어느새 예고도, 그 어떤 조짐도 없이 무대 위의 주인공은 남자의 어머니로 바뀌어 있다. 그녀는 자신 혹은 자신의 집안에 어울리는 품위있는 방식의 결별을 위해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고자 한다. 스물 아홉의 그녀가 다시 다미앙을 향한 희망의 불을 지필 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럴싸하게 그녀에게 다시 결별을 선언해야만 한다.
유통기한이 기입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슬라이스 햄 같은 아버지와 유리병에 담긴 채 요구르트와 함께 냉장식품 곁에 놓인 내장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무심하고 무기력하게 마치, 접시 가장자리에 따로 놓였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생리대와 과일 씨, 계란껍질과 뒤섞인 채 불결한 휴가를 보내는 비계 같은 아들인 나, 다미앙까지.
이들은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처럼 질서 정연한 뭔가도 없어 무시로 등장해 금방이라도 나를 물어뜯을 듯 지껄여댄다. 장터에서 벌어졌을 법한 이 시끄러운 혀의 활극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감정으로 엮인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가 실은 이런 잔혹한 관계다. 나는 나를 위한, 나만을 보는 나일 뿐이다. 부모도 연인도 언제든 서로를 할퀼 수 있는, 쥐어뜯어 상처를 줄 수 있는 관계다. 사랑은 위선이다. 사상누각이다. 한 번의 파도에 그 흔적을 쉬이 내려놓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 이야기만큼 이상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가정은 정신병동이다. ...환자들이 모여서 재잘거리며 휴식을 취하고, 특히나 터무니없는 말들을 고래고래 외치며 나누고, 부어오른 고통스런 기억을 대면함으로써 자신들의 광기를 유지하는 커다란 거실을 갖춘 그 집... 그들은 긴장이 풀어진 정신질환자들의 엄청난 힘으로 서로 치고받으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다시 개봉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달아났다. 나의 부모를 찾아갈 때면 그들과 뒤섞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들이 불안을 함께 나누는, 현실의 네거티브 필름으로 여기는 환각을 교환하면서 정성껏 자신들의 정신이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그 수용소에 나는 손가락 끝도 담그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뒤틀리고 야유하고 때때로 어두컴컴한 슬픔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나면, '그렇지, 이게 현실이지.'하며 긍정하게 되었다. 여기 부모와 연인의 사랑을 발가벗기고 손가락질하며 슬퍼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 결국 사랑도 이런 거야.'하며 긍정하게 된다, 당장은. 그러나 힘겨운 한 걸음을 내딛어 좀더 깊은 곳을 마주하게 되면 저 신경질적인 감정들은 그저 단상일 뿐이며 사랑이나 우리 현실의 본질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더 강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독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