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노예와 노예상인 : 인류 최초의 인종차별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2
장 메이메 지음, 지현 옮김 / 시공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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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시공디스커버리 총서를 처음 본 셈이다. 개인적으로 '총서' 내지는 '전집'류를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인종차별과 노예무역, 그리고 '유럽의 자기형성'과 같은 관련된 주제의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총서는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총서이긴 하지만, 여하튼 이렇게 매력적인 책을 번역하여 국내에 출간해 준 시공사에도 감사하다.

프랑스의 역사학자가 쓴 이 책은, 노예의 발생에서부터 노예무역, 노예의 착취와 노예의 반란, 그리고 해방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물론 비슷한 주제를 상세하게 다룬 책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노예 무역이 성행하던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많은 그림과 판화들이 끼워져 있다는 것이다. 책을 주욱 넘기다 보면 일종의 그림책 같기도 하다. 덕분에 재밌게, 또 짧은 시간동안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한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것은, 책 후반부에 저자가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을 위대한 노예해방론자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부분의 역사서들이 링컨을 노예제에 대한 타협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데(그는 남북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 노예 해방령을 내전이 발발하고 한참 지나서야 발표했다),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하튼, 여러 모로 생각할 것이 많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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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정옥자 / 일지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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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에 유학자들이 주자성리학을 도입한후, 조선은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개창한 왕조인데, 조선 초기에는 주자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지 않았으며 건국 초기의 사정으로 인해 성리학을 주전공으로 한 계층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였다. 이 단계의 사상을 주자성리학이라 할 것이다. 성리학을 주전공으로 하는 계층인 사림이 정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범국가적으로 성리학적 규범이 관철되기에 이른 시기는 바로 인조반정(1623) 이후이다.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명나라는 청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조선지식인들은 명나라가 없는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주나라를 존숭하는 중화문화의 담지자로 인식하여 청에 대한 복수를 서두름과 동시에 자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찬란한 진경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이 단계의 사상이 곧 조선성리학이다.

이책에서는 조선성리학 이후에 '실학'이라는 단계를 설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영조와 정조의 시대에 이르면 강남문사들을 두루 등용해 문화적 역량을 과시했던 청나라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북벌론과 존주론을 구시대의 과제로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을 지적한다. 조선사회가 농경사회에서 근대산업사회로의 변모를 감지한 지식인들은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함을 자각하고 청을 통해 서양의 발전된 기술문명을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다. 이들을 북학파라 하는데, 집권층인 노론의 신진 재사들과 정조대 규장각 각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외에 주변적이었던 남인 일파들에 의해 가학(家學)으로서 양명학이 연구되고 기독교가 수용되고, 이들에 의해 원시유학에 기반한 사회 개혁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사상의 흐름을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저자의 입장에 공감한다. 그래야만이 우리 사상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서구나 일본의 역사발전단계 도식을 우리나라 역사에 기계적으로 도입하는 데서 생겨나는 오류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일단 조선 후기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너무 상층부에 편향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의 전공이 조선시대의 지성사이므로 스스로 자신있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책을 보면 과히 중앙정치를 축으로, 또 정치사상의 변화를 축으로 조선의 역사가 결판난 것 같은 인상을 받기 십상이다. 물론 사상사가 정치사를 특징짓는 것이 조선 사회의 특수한 성격 중의 하나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후기조선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라든가 지배층의 규범을 전유하는 민의 동향을 살펴본다면, 역사에 대한 좀 더 너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가 조선 후기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충분히' 발전적인 입장을 취하는가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문이 생겼다. 이 책은 갑신정변에 대한 평가까지 아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전반의 60년 역사를 공백으로 처리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영,정조가 왕조의 찬란한 르네상스의 시대였다면, 정조가 서거한 후 6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그저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쇠퇴일로에 있었다고 할 것인가? 이렇게 간단히 처리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과연 조선에 있어서 사상적 변혁의 시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때는 청나라의 융성함을 충분히 경험하였고, 역시 청나라의 경험을 통해 서구 열강의 힘 또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때까지는 청나라나 서구의 신문물을 배우는 것이 아직 외적으로 강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시대 사상가들이 감행했던 지적 모험들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영·정조 시대가 전성기라면 그 이후 쇠퇴해 간 과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쇠퇴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개창하려 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그 시기에 『기학』이 성립하고 『東經大典』이 성립하였는지 충분히 밝혀져야만 역사의 연구가 역사 그 자체를 넘어서서 미래를 모색하는 초석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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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 세계각국사 1, 완전개정판
이주영 지음 / 대한교과서(단행)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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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개설서로서, 이 책이 미국 역사의 중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그리고 말마따나 '개설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는, 미국사에 대해 '개설적인' 지식밖에 지니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개설서를 한국인이 썼으며, 참고문헌도 한국의 미국학 전공학자들이 쓴 논문을 중심으로 해서 쓰여졌다는 것은 다소 놀랍다. 이 놀라운 사실과 필연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나, 이 책의 장점이라 할 것이 있다면 얼핏 보면 딱딱한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글이 상당히 쉽게 읽히고 내용도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는 것이다. 미국사 개설서를 표방하고 나온 책에 내용의 충실성을 차치한다면 어찌 이 이상의 것을 바라겠는가.

그런데 이 책의 완전개정판이 나오면서 몇가지 서운한 점이 있다. 원래 1987년에 11개의 장으로 된 이 책의 초판이 나왔고, 10년이 지난 후에 25개 장으로 세분화된 완전개정판이 나왔다. 완전개정판에는 장도 세분하고 여러 부분에서 문장도 바꾸고 한문도 없앴다. 그리고 초판에서 다루지 못한 부시행정부 말기와 클린턴행정부 시기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완전개정판에서는 초판에 첨부되어 있었던 미국 헌법과 역대 대통령 명부, 그리고 미국 주요사건 연표를 제외해버린 게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헌법의 조항을 확인할 수도 있고, 대통령직의 계승을 보며 책을 읽는 도중 잠시 잃어버린 미국사의 흐름을 다시 짚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개정판 서문에 나오는 저자의 견해는 자본주의적 자유방임사상과 노동윤리를 찬미하는 다소 보수주의적인 경향이 역력하다. 몇몇 도서관에 가서야 구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래저래 훨씬 나은 초판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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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 우리시대의 지성 5-011 (구) 문지 스펙트럼 11
주경철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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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책 소개에서나 다른 독자들의 서평에서 충분히 언급했듯이, 이 책은 서양 역사학계에서 최근에 주목받는 연구서적에 대한 소개글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스스로 그러한 두툼하고 무거운 책들의 내용을 알기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지만, 책 서두에 인용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처럼 '지식과 사랑을 다 망쳐놓는'다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한아름 더한, 요약 이상의 요약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경철 선생의 책이 읽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에게 언어를 조탁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은 화려한 수식어나 아슬아슬한 기교로써 독자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어조 속에서도 자연스런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고 논리 전개의 거침없는 물결침이 느껴져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따금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평자들이 말하듯이 서양 역사학의 고전적 저작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과 서양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있겠지만, 역사책(혹은 역사책 소개서)이 이렇게 부담없고도 재미있게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경이로움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이 책이 말하는 원저들에 대해 무엇인가 알았다고 자만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 책 속에 있는 글들은 저자가 굵직굵직한 책들을 직접 읽고 스스로 소화해낸 바를 쉽게 설명한 것이다. 독자들은 주경철 선생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와 '죽음의 역사'를 소화해 낸 바를 읽었을 뿐, 그 책들에 대해서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그러한 책들을 직접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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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여행의 역사 -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 박진희 옮김 / 궁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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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여행의 역사』는 단순히 철도 기술의 발달 과정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닌, 산업혁명의 '상징'으로서 산업혁명의 '체험'으로서의 철도를 이야기한다. 산업혁명기에 일어난 기술의 발달, 새로운 기계의 발명은 ― 지금 산업혁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 서로 다른 시기의 방적기 하나하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 실제로 당대의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19세기 중반에 보편화된 철도 ― 정확히 말해 '철도 여행'은, 역사의 변화를 추상적 경험에서 구체적 실제로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철도를 사람들이 경험하는 방식, 철도로 인해 야기된 지각(知覺)의 변화를 다룬다.

철도 이전의 여행자들은 지면과 일직선을 이루는 수평이동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지면과 가축의 관절 운동에 따라 아래위로도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은 어느 정도 달리면 어느새 기진맥진해 달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기차는 거의 완벽하게 지면과 수평으로 운동하고, 가축처럼 지치는 법이 없었으며, 자기 자신을 위한 '완벽한 길'을 만들기 위해 땅을 사고 커다란 산을 뚫었고 움푹 패인 땅을 돋우었으며 교량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그 이전의 온갖 자연스러움에 대해 혹은 자연의 제약과 폭력에 맞서 대항하며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는 힘으로 비춰진다. 기차가 곧 산업혁명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차는 유럽의 경관을 바꾸어 놓았다. ㄴ자로 깎인 산허리, 구름다리, 이런 정적인 풍경뿐만 아니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가공할 스피드로 벌판을 달리는 기차의 이미지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깊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볼프강 쉬벨부쉬의 문장이 결코 그렇게 쉽게만 읽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도 '서구 교양층'의 독자들에게는 상식(?) 수준일지 모르지만, 기술에서 문학으로, 의학으로, 군사학으로, 미학으로, 건축학으로 종횡무진하며 그것들을 철도 여행과 연관시키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힘이 부치기도 한다. 특히 시·공간의 인식론적 문제나 철도 사고와 충격을 말할 때는 논의가 꽤 추상적이 되거나 생소한 용어가 많이 등장해서 애를 먹인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사' 서적들이 최근에 많이 번역되어 나오는 탓인지, 기술의 발달을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맥락에 놓고 해석하는 방식도 그 참신한 맛으로만 따진다면 예전보다 그 새로움이 조금 덜한 듯 하다. 그래도 산업혁명기의 기술상의 진보를 다루면서 그것을 자기충족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것은 참으로 계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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