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처 라이프 1
이창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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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이 소설의 최초의 의도는 일본군에 징발되어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전후 서울의 한 빈민가에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정신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자신이 그들의 경험과 진실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어, 2년 동안 쓰던 원고를 폐기하고, 그 원고 속의 한 주변 인물이었던 조선계 일본인 위생 장교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그가 《제스처 라이프》의 주인공인 프랭클린 하타이다.

  그런데 최초의 의도가 좌절된 탓인지,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특정한 주제를 다루었다고 말하기 애매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이것이 무엇에 대한 소설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똬리를 틀었다. 이 소설은 프랭클린 하타라는 한 사람의 삶을 나름의 완결성을 갖고 그려내고 있고, 물론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사회적 조건의 전형을 형상화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의 제재를 가지고 끝까지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미국의 독자들 중에는 베스트 셀러의 목록에 오른 이 책을 보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동원한 “comfort women”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저자의 좌절된 의도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종군위안부에 대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 책은 또한 제국 일본의 소수자로서의 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한 것도 아니며, 뉴욕 교외의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한 현대 미국 사회의 아시아계 소수인종의 삶의 조건을 그린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작품 안에 소재로서 혹은 배경으로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모두 단막적인 에피소드로 처리되어 있으며, 결코 소설의 플롯 전면에 부각되지 않으며 분명히 드러나는 의미가 없다. 때문에 이 소설은 그저 이러저러한 소재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환기하는 어떤 제스처들에 불과한 작품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제목인 “제스처 라이프”가 어떤 방식의 삶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사실 모호한 측면이 있다. 범박하게 대립시키자면, 제스처 라이프는 ‘주위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조화롭게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며 이에 반하는 어떤 진정한 삶, ‘자신의 감정과 내면의 명령에 충실한 삶’이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일본인의 삶의 방식’과 ‘미국인의 삶의 방식’의 대립일까? 혹은 미국 사회에서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서로 다른 방식 사이의 대립일까? 하타가 제스처 라이프를 살게 된 것은 반드시 전쟁기 경험의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그 경험에 의해서 그런 삶의 방식이 더 공고해졌을지 몰라도, 이미 그런 경험이 있기 전에 하타는 군의관인 오노 대위에게서 자신의 삶이 제스처 뿐인 것 같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렇다면 제스처 라이프란 자신의 출신으로부터 한 단계 우월한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도는 다르지만 필연적으로 취해야만 하는 방식일까? 그런 삶의 방식 속에서는 진정한 관계, 연인이나 부부, 혹은 가족이라는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기는 불가능한 것일까? 메리 번즈나 서니가 하타를 이해하지 못하고 몹시 답답해 하고, 결국 결별한 것은 그런 하타의 삶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작품 종결부의 하타의 삶은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와는 다른 색조로, 다른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겠지만, 내가 바란 것은 큰 집단을 이루는 것의 한 부분(비록 백만분의 일이라 해도)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스처들뿐인 삶 이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그 과정을 마치는 것이었다” 라는 하타의 말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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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
리처드 커니 지음, 전예완 외 옮김 / 한나래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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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States of Mind: Dialogues with Contemporary Thinkers이다. 현대 철학의 뛰어난 주석가 중 하나로 꼽히는 리처드 커니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유럽과 북미대륙을 오가며 철학자, 소설가, 정치가 등과 인터뷰한 것을 모은, 일종의 대담집이다. 1998년에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다소 생소하게 들렸거나, 아니면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저서는 번역되지 않은 현대 사상가들에 입문하는 책으로 널리 읽혔다고 하는데, 최근에 이 책을 처음 읽은 나로서는 여전히 생소한 사람들 이름이 많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정치사상가', 2부 '문학사상가', 3부 '철학사상가'이다. 1부와 2부는, 2부에 실제로 작가들이 많이 들어가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편의적인 구분인 것 같다. 1부와 2부에 실린 대담 전반에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는 문제는 유럽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유럽 통합의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유럽과 비유럽 세계와의 상호 이해와 공존이라는 과제와 지난 세기 유럽의 비극적 역사를 청산하는 한편 유럽 세계가 공유하는 긍정적인 유산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종합하는 방식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졌고, 대담자 또한 그런 차원에서 중요한 주장을 한 사람들을 선별한 듯 하다.

3부는 사실 별개의 책이다. 3부가 책 분량의 절반인데, 1,2부와 비교했을 때 각각의 대담의 길이도 다르고 질문들도 다르다. 현실정세에 대한 진단과 비평이 많은 1부와 2부에 비해,  주로 현상학적 경향을 띤 사상가들을 포함시킨 3부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의 사상의 중요한 논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어 3부 부분은 '입문서' 내지는 '개괄서'로 읽기에 족하다. 뒤로 갈수록 약간 소화불량이 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데리나, 레비나스, 마르쿠제와의 대담 내용은 배경 지식 유무에 상관 없이 명쾌하게 읽힌다.

그런데 보통 한국어로 대담을 할 때는 존대말을 쓸텐데, 이 책에서는 번역을 몽땅 반말로 해 놓았다(여기 실린 대담은 원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체코어로 이루어진 것이고, 이를 모두 영어로 번역해서 출간한 것이다).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가끔 연극 대본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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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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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18쪽에서 고미숙은 자신과 다른 종류의 담론들을 함정으로 몰아넣은 뒤,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진리성을 증명하는 방식을, 근대적 사유가 자신을 정립하는 아주 어처구니없고도 일반적인 방식이라 말한다. 그러나 "인문학 산책"이라는 분류를 무색케 하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인내심을 갖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독자라면 바로 그 방식이 고미숙의 책 전체에 일반화된 방식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꼼꼼한 각주가 학술서 같은 인상을 줄지 모르나, 문장을 읽다보면 이 책이 근대라는 한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몽매한 독서대중의 깊은 잠을 깨치고자 하는 계몽적 의도로 넘쳐난다는 것 또한 알아내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계몽적 의도, 고급지식담론에 대한 물타기의 의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근대적 "배치"나 사유형태가 어떠한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어떠한 우연적 계기들의 연속으로 발생했는가, 근대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현재 삶의 어떤 측면을 작동케 하는 원리인가에 대한 중요하다 싶은 질문은 좀처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저 몇 가지 발상의 전환만으로 탈근대라는 새로운 천년왕국이 도래할 수 있다는 순박한 기대와 오로지 담화적 차원에서만 세계의 변화를 다루는 지적 태만, 그리고 광범한 레퍼런스의 비유기적 결합, '차이를 포함하며' 발작적으로 반복되는 영탄구로 독자들을 오도하는 것이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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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 개정증보판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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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문화인류학 맛보기'이다. 어떤 책의 부제가 '○○학 맛보기'라고 되어 있을 때, 대개 사람들은 그 책의 깊이라든가 내용이라든가가 해당하는 학문의 연구 영역과 성과를 피상적인 수준에서 일별한 정도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맛보기에 '그친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또한 '맛보기'이지만, 이것은 감히 맛보기에 '그친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지금까지 인류학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이나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에게 인류학이 친숙하고 매력적인 학문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개론서가 부족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류학의 연구 분야와 성과를 조리있게 정리해 놓은 책은 있을지 몰라도, 그런 책들은 대개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 독자들에게 인류학의 '맛'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읽고서야, 비로소 인류학의 그 끌어당기는 힘을 느낀다. 2001년 여름에 이 책은 언제나 인류학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이 책은 특징은, 인류학 전공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외국에서 발표된 인류학의 민족지관련 논문 20편 가량을 번역하고 편집해서 실은 것이다. 번역된 논문들은 거의가 에세이 형식으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고, 각 논문은 한 사람의 필자가 쓴 완결된 글이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단편적인 정보에 집착하기보다는 글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문화인류학의 기본적 관점인 문화상대주의를 소개하고 있는「티브족, 셰익스피어를 만나다」는 특히 흥미로웠다. 나이지리아 티브족 사회로 현지조사를 떠난 인류학자 로라 보하난은 어느날 티브족 장로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햄릿』에 나오는 많은 말들을 티브족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영미인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생소한 단어를 골라 써야 할 뿐더러, 티브족들은 그 이야기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해서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비장한 미감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했던 『햄릿』이 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고 보하난은 문화의 '다름'을 실감하게 된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부시맨의 크리스마스」또한 인류학자의 현지조사 경험담으로서, 생계경제에 사는 부시맨들의 소박한 심성과 지혜를 볼 수 있는 글이다. 이렇게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전혀 다른 상식의 세계에 들어가 봄으로써, 비로소 내가 어떠한 것들을 자명하다 여기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심에 휩싸인다. 문화상대주의라는 것은 '나'를 만나는 방편이라기보다 문화적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약자의 '약함'에 슬퍼해야 한다면, 나는 상대방의 문화를 무시하고 짓밟는 강자의 잔혹함이 아니라 로라 보하난이 해주는 햄릿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티브족의 모습에 슬퍼해야 할 것이다. 강대국의 인류학자는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할 수 있는 반면에, 왜 티브족은 로라 보하난처럼 관대하게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가?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을 택하는 이유는 그 문화를 이해해야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회를 관통하는 내적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적 논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논리를 타고 들어가 그 사회를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명징함의 세계는 때로 위험하다. 『낯선 곳...』 덕분에 내가 하게 된 고민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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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인류학자들 - 영국 사회인류학의 전통과 발전 호모사피엔스
애덤 쿠퍼 지음, 박자영.박순영 옮김 / 한길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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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한 인류학자 애덤 쿠퍼의 역시 유명한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1973년에 영국에서 초판이 나와서 지금까지 두 번 판갈이(?)를 했다. 원서가 워낙 정평이 나 있는데다가 제인 구달의 번역으로 알려져 있는 박순영 교수의 번역 또한 신뢰할 만 하다. 그래서 일단 별 네 개는 준다. 그렇지만 역자도 쓰고 있듯이, 인류학을 컴팩트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문외한이 이 책에서 커다란 앎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부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인류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성립한 이래 그 이름으로 답파된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는 책(그런 책이 있다면 초인적으로 글을 조직해 내는 능력을 가진 저자를 만나지 않는 한 십중팔구 정말 따분할 것이다)이 아니라,  영국 인류학의 역사에 국한하여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애덤 쿠퍼의 문장이 재치있는 편이고, 전기적인 자료를 풍부하게 끌어오고 있어, 정말 읽을 '만'하다. 결론적으로 번역서가 나와서 기쁘다.

하지만 한길사의 기획력을 별 숫자로 평가하자면 두 개 이상은 주고 싶지 않다. 한길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책을 낸 것이 이것으로 네 권 째인데, 물론 시리즈가 완결된 것은 아니겠지만 제2권 <금기의 수수께끼>를 제외하고는 세 권 모두가 이런 부류의 인류학사 개설서의 번역이다. 순수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세 권 중에 제일 좋은 것 한 권만 골라서 번역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세 권이 '시리즈'라는 기획에 걸맞게 모두 다 인류학사 개설서로 일관되게 묶일 수는 있지만, 너무 비엔나 소시지(?)같이 변별점이 없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인류학사 개설서가 아닌 <금기의 수수께끼>가 괜히 뚱금없이 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부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책들이 나와서 고맙겠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른바 인류학의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들의 번역일 것이다. 또한 독서 대중과 교양인들에게는 '학사'책 보다 좀 더 톡 쏘는 매력이 있는 인류학 책을 발굴 번역하여 소개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호모 사피엔스, 이런 방향으로는 그만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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