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여행의 역사 -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 박진희 옮김 / 궁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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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여행의 역사』는 단순히 철도 기술의 발달 과정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닌, 산업혁명의 '상징'으로서 산업혁명의 '체험'으로서의 철도를 이야기한다. 산업혁명기에 일어난 기술의 발달, 새로운 기계의 발명은 ― 지금 산업혁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 서로 다른 시기의 방적기 하나하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 실제로 당대의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19세기 중반에 보편화된 철도 ― 정확히 말해 '철도 여행'은, 역사의 변화를 추상적 경험에서 구체적 실제로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철도를 사람들이 경험하는 방식, 철도로 인해 야기된 지각(知覺)의 변화를 다룬다.

철도 이전의 여행자들은 지면과 일직선을 이루는 수평이동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지면과 가축의 관절 운동에 따라 아래위로도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은 어느 정도 달리면 어느새 기진맥진해 달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기차는 거의 완벽하게 지면과 수평으로 운동하고, 가축처럼 지치는 법이 없었으며, 자기 자신을 위한 '완벽한 길'을 만들기 위해 땅을 사고 커다란 산을 뚫었고 움푹 패인 땅을 돋우었으며 교량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그 이전의 온갖 자연스러움에 대해 혹은 자연의 제약과 폭력에 맞서 대항하며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는 힘으로 비춰진다. 기차가 곧 산업혁명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차는 유럽의 경관을 바꾸어 놓았다. ㄴ자로 깎인 산허리, 구름다리, 이런 정적인 풍경뿐만 아니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가공할 스피드로 벌판을 달리는 기차의 이미지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깊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볼프강 쉬벨부쉬의 문장이 결코 그렇게 쉽게만 읽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도 '서구 교양층'의 독자들에게는 상식(?) 수준일지 모르지만, 기술에서 문학으로, 의학으로, 군사학으로, 미학으로, 건축학으로 종횡무진하며 그것들을 철도 여행과 연관시키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힘이 부치기도 한다. 특히 시·공간의 인식론적 문제나 철도 사고와 충격을 말할 때는 논의가 꽤 추상적이 되거나 생소한 용어가 많이 등장해서 애를 먹인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사' 서적들이 최근에 많이 번역되어 나오는 탓인지, 기술의 발달을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맥락에 놓고 해석하는 방식도 그 참신한 맛으로만 따진다면 예전보다 그 새로움이 조금 덜한 듯 하다. 그래도 산업혁명기의 기술상의 진보를 다루면서 그것을 자기충족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것은 참으로 계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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