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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자본주의
베르너 좀바르트 / 문예출판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단순한 명제의 형태로 환언하여 생각해 보면, 그것이 동시대의 또 다른 학자의 견해와는 명백하게 모순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또 다른 학자는 좀바르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태어나서 비록 그보다 훨씬 단명했지만 현대 사회과학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막스 베버이다. 좀바르트가 제시하는 명제와 베버가 제시하는 명제는 명백히 상충된다. 한쪽은 사치가 자본주의의 원인이라 하고, 다른 한쪽은 노동윤리와 검약이 자본주의 초기의 특성임을 주장한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주장이 전적으로 모순되고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베버가 훨씬 섬세한 논의를 이끌어가고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 가며 독단적이지 않은 다원주의적 설명의 수준에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둘은 근대 초 자본주의의 형성인(形成因)으로서 서로 다른 영역, 서로 상이한 집단―좀바르트는 궁정·귀족·졸부, 베버는 종교개혁 이후의 종교적 소수집단―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둘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상충되는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바르트는 1912년에 『사치와 자본주의』를 발표함으로써 베버와 논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여기서 하나 질문해 볼만한 것은, 왜 이들이 동시대에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개념을 다룰 수밖에 없었는가, 그들의 학문에 있어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찌 보면 베버와 좀바르트는 공통점이 더 많다. 두 사람 다 프로이센의 유력한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그래서 김나지움 교육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탄탄한 문헌학(philology)적 수련을 받을 수 있었고, 경제적인 곤란에 무감한 채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잡지』를 간행하기도 했고,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독일의 대학 교수였으며, 경제·사회학자였고,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독일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다른 어떤 공통점보다 두 사람을 하나로 묶고 있었던 것은, 이들이 칼 마르크스의 시대 이후에 태어났다는 것, 그래서 그의 압도적인 영향 하에서 학문을 해야 했으며, 더군다나 경제사회학을 한다고 할 경우 마르크스에 대한 답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베버의 학문은 여러 측면에서 '마르크스의 유령과 나누는 대화'라는 말로 비유된다.
특히,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마르크시즘의 사적 유물론에 대한 반증으로서, 즉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것이 '토대'의 발전을 촉진시킨 반례로서 제시되었고 또 그렇게 해석되는 것이다. 이러한 틀에서 보면, 좀바르트도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베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 그는 책 속에서 '조악하게 이해된 '유물사관'으로 사치현상과 같은 미묘한 문제에 간섭하려고 하는 얼간이들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말도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마르크스에 대해 만들어낸 자신들의 자리는, 이렇게 '미묘한' 문제들,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것들에 천착하는 자리였으며, 이들의 고민은 마르크시즘 내에서의 사적유물론·경제결정론에 대한 반성과는 별개로, '문화'를 연구하는 현대의 학자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