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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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인가보다. 또 그만큼 인기있기도 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하루키 책을 빌려볼라 치면, 장서는 수십 권이 있는데 사람들이 빌려가지 않고 서가에 남아있는 책은 매번 달랑 몇 권 뿐이었다. 그렇게 달랑 몇 권 남아있던 책들 중에 한 권이 이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선이었으며, 그래서 나는 이 책으로써 무라카미 하루키와 첫 만남을 가진 셈이다.

막상 읽어보니, 무라카미가 엄청난 예술혼을 지닌 작가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굉장히 마음에 든 것은 사실이다. 고전같은 맛은 없으면서도 그 경쾌한 문체, 그 속에 배어있는 우울함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런 매력에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다. 결코 과장하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러나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여겨왔던 일상적 사건, 삶의 방식들이 다시 새로이 이야기되는 느낌이다. 앞으로 하루키의 장편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어내려보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문제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이라고 했을 때, 무라카미의 단편을 가려 뽑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다소 어색한 서로다른 몇 가지 경향의 부류로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무라카미하루키를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혼란스러울 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어떤 소설은 굉장히, 꿈에서나 있을 법한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되어 있고, 또 다른 소설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겨 적은 것, 또 한 부류는 죽음을 테마로 담담하고 쓸쓸한 느낌의 것들이다. 일본에서 이 각각의 부류들은 서로 다른 소설집으로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다른 출판사에 의해 그 편집의도를 살린 번역본들이 나온 것으로 안다. 이 책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아, 끝부분의 해설 같은 경우 굉장히 종잡을 수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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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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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인류학 입문서가 나왔다. 일조각 출판사에서는 계속해서 문화인류학 관련 교과서를 펴내는데, 그런 책들을 읽어보면 언제나 저자 서문이 자못 절절하다. 문화인류학 교과서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들을 밟아나가며 간행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굉장히 상세하게 써 놓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일일이 다 알게 된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으면서 이따금 느끼게 되는 모종의 신비감 내지는 경외감을 제거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한국문화인류학회가 기획하여 한국의 중진/소장 인류학자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분야 주제에 대해 집필한 것이다. 다루어지는 주제는 인류학적 현지조사, 인간의 진화, 젠더문제, 혼인과 가족, 종족정체성/경계성 문제, 문화경제학, 정치인류학, 몸과 문화, 아름다움의 인류학, 역사인류학 등이다. 주제로 보면 3-4년 전 쯤에, 역시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듯 한 책,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와 별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함한희 선생이 쓴 '타문화로서의 과거'는 최근에 주목받는 역사인류학, 혹은 신문화사를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다룬 것인데, 상당히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된다. 문화인류학 개론서로서 역사인류학에 한 챕터를 부여해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역사인류학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저작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것이 채택하는 문화인류학의 시각이 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글도 아주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그래서 여러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에 있어서 문화인류학의 개념·이론을 나열하기보다는 사례를 광범하게 들어가며 인류학적 '시각'을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아직도(?) 그야말로 '교과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차세대 문화인류학 교과서를 만드려는 의도로 이 책을 펴냈을 것이며, 또 당장에 대학의 문화인류학 개론 수업에서 활용될 수 있는 멋진 책이기는 한데, 저 산뜻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읽다보면 뭔가 답답한 것이 있다.

좀 더 발랄할 수는 없을까, 좀 더 독창적인 입문서가 나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떠오른다. 컬러 도판이 들어가고, 어미를 존대말로 바꾸고, 독자에게 가끔 농담도 건네는 식으로, 여유와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그런 식의 입문서를 바라는 건 그저 실없는 몽상일지? 한국에 문화인류학자 층이 두터워져서 그 중에서 재기발랄한 사람들이 나와 자신있게 새로운 책을 써 봤으면, 그런 상황이 오면 좋겠다. '한국문화인류학자 총출동 교과서'는 이번으로 끝이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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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 개정4판 동녘선서 1
조성오 지음, 이우일 그림 / 동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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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개정3판이 나왔으리라고는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내가 읽은 <철학에세이>는 1989년에 나온 개정판이며, 이 책의 초판은 1983년에 나왔다. 이 두 판본에는 저자가 조성오로 되어있지 않고, 도서출판 동녘 편집부로 되어 있다. 저자가 조성오일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역시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80년대에, 이 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기만 한 철학을 질타하며, 현실과 맞아떨어지고 구체적 생활에 보탬이 되는 철학을 지향하며 나왔다. 그러나 이미 한 시대는 저 멀리 지나간 듯 하고, 더 이상 '대중들'은 이 책을 보지 않을 성 싶다. 이 책은 단적으로 말해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쓴 책으로, 일반 철학 개설서로 볼 때 그 아우르는 범위가 상당히 협소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변증법 자체가 세계의 온갖 현상과 그 본질을 설명하려는 광막한 사유의 틀이기는 하나, 현재로서는 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에 대한 역사적 관점은 결여하고 있다.

과히 성급하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견고함과 확실성이 사라진 시대, 이성의 발현을 통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를 더더욱 진보시키리라는 믿음이 사그라든 시대, 좋은 사회를 만드려는 거시적이고 집단적인 기획이 봉쇄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대중들에게 이런 철학 교과서는 철지나 초라한 맹꽁이 울음 소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현시점에서 팔리고 또 읽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맹랑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이 책은 우리 80년대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80년대는 2000년대에도 다시금 상기하고 재현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처럼, 그 시대에 나온 말 한마디가 아무리 억지스럽더라도, 또 그때의 익명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기성세대가 되어 그 실명을 드러내며 우리 앞에 설지라도 말이다. 그 지향이 무엇이었든간에, 이 책이 나왔던 시대의 변혁의 뜨거운 공기는 그저 잊혀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며, 그것이 우리 삶을 젊음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때 위험했던, 익명의 저자가 쓴 책 한 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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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코드, 록 Art@Culture(북하우스) 3
임진모 지음 / 북하우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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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서적이나 문학 분야의 책만 읽어오다가, 오랜만에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대중음악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다. 클래식은 고사하고 록 음악에 대해서도 거의 문외한이다시피 한 나에게도 이 글은 굉장히 재미있었고, 또 읽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내용상의 측면에서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비틀즈, 포크,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얼터너티브, 하드코어까지 록의 발전사를 개관하면서, 저자가 록이라는 대중음악에 대해 사회사적 지식을 동원해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는 점, 그리고 구미의 음악사를 다루면서 한국에서 록음악을 수용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는 사실은 이 책의 저자 임진모 씨가 어렸을 때부터 록 음악에 열광하고 심취하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 분야에 대해 쓰는 책은 읽는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은 디지털 문화예술 아카데미에서 기획하는 사이버 강좌의 하나였던 임진모 씨의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을 기술하는 방식이 상당히 친절하고, 각 챕터마다 매듭이 맺어져 머릿속에서 그때그때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판형도 작고 분량도 2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라서, 3-4시간 앉아서 죽 읽어내려갈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다. 나는 책에서 소개되는 노래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감상해 보며 읽었기 때문에 훨씬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말이다. 또 비록 컬러는 아니지만 뮤지션들의 사진이 많이 실린 것도 책 읽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이래저래 재미있고 간편해서, 이 강연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고, 임진모씨가 쓴 다른 음악 관련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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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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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략 1999년 상반기동안 진이 '한겨레21'에 '엑스리브리스'라는 이름의 고정 코너를 열어 연재한 장편(掌編)들이 주종이고, 몇몇 글들은 다른 곳에 기고한 글들인 것 같다. 책으로 묶으면서 새로 12개로 장을 나누어 각 글을 주제별로 묶었다. 글의 형식은 대개 철학적 저서나 자신이 논박할 저자의 문구에서 한 구절을 문두에 인용해 놓고 풀어내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내용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당대 한국사회의 현실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이 인용되는 책의 첫 부분에서, 철학적 사유로 시작해서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 전투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뒤로 갈수록 그 신선함이 자꾸 떨어져 간다. 뒷부분으로 가면 각 장을 통할한답시고 붙여놓은 주제가 걸맞지 않은 경우도 있고, 그가 특정 인물에 논쟁을 걸고 비아냥거리는 데에는 다소 지겹기도 하다.

사실 그의 입장에는 딱히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대부분에 수긍한다. 나는 1999년 전후의 사건과 이슈들, 논쟁들을 다시 살펴본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진중권이 제시하는 입장에 대부분 수긍하며 읽었다. 안티조선 운동, 여기에 대해 이문열의 '홍위병' 운운한 일, 여기에 극우언론들이 가세한 것 하며, 운동권 열사문화의 변태성, 복거일의 대책없는 자유주의, 최장집 임동원 등에 대한 언론의 공세, 당대비평의 일상적 파시즘론을 조선일보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 등등, 당시에 자못 심각했던 일들, 또 그때 주목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일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경험이었다.

그의 입장은 요약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합리성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자유지상주의와 극우보수주의가 자유주의인 양 오인되는 상황과 얼치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상황은 타개되어야 한다듣 것일 게다. 그러나, 글쎄, 시종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읽기는 했지만, 그의 글쓰기 '행태'는 뭔가 걸리적거린다. 이런 뭔가 켕기는 느낌은 내가 지적엄숙주의에 빠져있다는 징후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가 정작 제일-다소 강박적으로-좋아하는 것은 논쟁, 다시 말하면 말싸움 같다. 웃음을 자아내는 레토릭을, 또 어떤 때는 욕지거리를 굉장히 빈번하게 구사하긴 하지만 그건 매번 비웃음이다. 웃기기는 한데,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깔끔(?)하지가 않다.

서문에서 발터 벤야민을 인용해 말한다. 인식적 전환이 있을 때마다 서술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철학적 글쓰기의 본질을 이룬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특정한 문제의식, 특정한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글을 어떤 스타일로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스스로의 글쓰기를 광대적 글쓰기, '조커'식의 글쓰기라 명명하는 진중권은 자신만의 스타일의 존재 근거를 여기에서 찾는다. 모든 것이 고상하고 근엄해서 역겨운 시대에 자신은 광대가 되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런 설명 자체가 멋있기는 하지만 너무 거창하지는 않은가.

나는 그의 글쓰기가 '광대'같은 글쓰기라고, 별로 인정해 주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더러 그를 재기발랄하다고 하지만, 난 거기에 조금 뜨악하다. 그가 매번 강조하는 유물론에 의거해 설명하자면, 그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구사하는 스타일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매체가 만들어낸 매우 물질적인 것이다. 굳이 이름붙이러면 시정잡배적 글쓰기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인터넷 상의 논쟁에서 이용되는 어법과 욕설이 구사되는 바로 그 문체에 지나지 않는다.

난 차라리 광대적 글쓰기나 욕의 미학에 대해서라면 70년대 김지하가 譚詩에서 쓴 것이나 김용옥이 80년대와 90년대 초에 분에 겨워 썼던 글들을 높이 사겠다. 스타일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서, 진중권이 따라잡을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진중권 같이 저력있고 전투적 글쓰기를 하는 논객의 존재가치를 어찌 부정하랴만은,나는 이따금 그의 행간에서 세상에 대한 진정성이 안개에 싸인 것을 본다. 고독으로부터 나오는 도저함에서 배울 것도 있을진대, 그는 그것을 너무 간단히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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