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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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인류학 입문서가 나왔다. 일조각 출판사에서는 계속해서 문화인류학 관련 교과서를 펴내는데, 그런 책들을 읽어보면 언제나 저자 서문이 자못 절절하다. 문화인류학 교과서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들을 밟아나가며 간행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굉장히 상세하게 써 놓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일일이 다 알게 된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으면서 이따금 느끼게 되는 모종의 신비감 내지는 경외감을 제거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한국문화인류학회가 기획하여 한국의 중진/소장 인류학자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분야 주제에 대해 집필한 것이다. 다루어지는 주제는 인류학적 현지조사, 인간의 진화, 젠더문제, 혼인과 가족, 종족정체성/경계성 문제, 문화경제학, 정치인류학, 몸과 문화, 아름다움의 인류학, 역사인류학 등이다. 주제로 보면 3-4년 전 쯤에, 역시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듯 한 책,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와 별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함한희 선생이 쓴 '타문화로서의 과거'는 최근에 주목받는 역사인류학, 혹은 신문화사를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다룬 것인데, 상당히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된다. 문화인류학 개론서로서 역사인류학에 한 챕터를 부여해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역사인류학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저작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것이 채택하는 문화인류학의 시각이 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글도 아주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그래서 여러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에 있어서 문화인류학의 개념·이론을 나열하기보다는 사례를 광범하게 들어가며 인류학적 '시각'을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아직도(?) 그야말로 '교과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차세대 문화인류학 교과서를 만드려는 의도로 이 책을 펴냈을 것이며, 또 당장에 대학의 문화인류학 개론 수업에서 활용될 수 있는 멋진 책이기는 한데, 저 산뜻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읽다보면 뭔가 답답한 것이 있다.

좀 더 발랄할 수는 없을까, 좀 더 독창적인 입문서가 나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떠오른다. 컬러 도판이 들어가고, 어미를 존대말로 바꾸고, 독자에게 가끔 농담도 건네는 식으로, 여유와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그런 식의 입문서를 바라는 건 그저 실없는 몽상일지? 한국에 문화인류학자 층이 두터워져서 그 중에서 재기발랄한 사람들이 나와 자신있게 새로운 책을 써 봤으면, 그런 상황이 오면 좋겠다. '한국문화인류학자 총출동 교과서'는 이번으로 끝이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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