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에세이 - 개정4판 동녘선서 1
조성오 지음, 이우일 그림 / 동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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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개정3판이 나왔으리라고는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내가 읽은 <철학에세이>는 1989년에 나온 개정판이며, 이 책의 초판은 1983년에 나왔다. 이 두 판본에는 저자가 조성오로 되어있지 않고, 도서출판 동녘 편집부로 되어 있다. 저자가 조성오일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역시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80년대에, 이 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기만 한 철학을 질타하며, 현실과 맞아떨어지고 구체적 생활에 보탬이 되는 철학을 지향하며 나왔다. 그러나 이미 한 시대는 저 멀리 지나간 듯 하고, 더 이상 '대중들'은 이 책을 보지 않을 성 싶다. 이 책은 단적으로 말해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쓴 책으로, 일반 철학 개설서로 볼 때 그 아우르는 범위가 상당히 협소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변증법 자체가 세계의 온갖 현상과 그 본질을 설명하려는 광막한 사유의 틀이기는 하나, 현재로서는 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에 대한 역사적 관점은 결여하고 있다.

과히 성급하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견고함과 확실성이 사라진 시대, 이성의 발현을 통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를 더더욱 진보시키리라는 믿음이 사그라든 시대, 좋은 사회를 만드려는 거시적이고 집단적인 기획이 봉쇄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대중들에게 이런 철학 교과서는 철지나 초라한 맹꽁이 울음 소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현시점에서 팔리고 또 읽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맹랑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이 책은 우리 80년대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80년대는 2000년대에도 다시금 상기하고 재현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처럼, 그 시대에 나온 말 한마디가 아무리 억지스럽더라도, 또 그때의 익명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기성세대가 되어 그 실명을 드러내며 우리 앞에 설지라도 말이다. 그 지향이 무엇이었든간에, 이 책이 나왔던 시대의 변혁의 뜨거운 공기는 그저 잊혀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며, 그것이 우리 삶을 젊음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때 위험했던, 익명의 저자가 쓴 책 한 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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