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란 무엇인가
바츨라프 스밀 지음, 윤순진 옮김 / 삼천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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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용하는 건 거대한 에너지 흐름의 극히 일부라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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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란 무엇인가
바츨라프 스밀 지음, 윤순진 옮김 / 삼천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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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모든 것, 모든 것으로서 에너지

[서평]『에너지란 무엇인가』

 

 

어느 나라 이름인지도 짐작인 안 가는 바츨라프 스밀이라는 사람이 쓴 <에너지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검색으로 가장 먼저 찾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내 의문에 가장 부합하는 제목을 가진 책을 딱히 피할 도리는 없었다.

 

최근의 관심사가 바로 에너지인데,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태위기에 대해 부쩍 관심이 일었고, 겨울철 에너지 빈곤 이슈를 가까이 접하면서 특히 에너지 위기와 대안에 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런데 호기심은 많고 아는 건 없으니,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듯 ‘에너지’의 말뜻부터 알아보기 위해 <에너지란 무엇인가>를 사서 출퇴근길에 틈틈이 읽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 읽고 나도 머릿속에 들어간 건 별로 없는 듯하다. 책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내가 모자라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책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먼저는 에너지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할 방대한 내용들을 너무 짤막짤막하게들 다룬 것 같다. 그러니 아는 게 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무엇을 말하든 수긍하거나 더 알아보기 위해 다른 책을 뒤져봐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의 문장이 그렇다.

 

“결과적으로, 미래 에너지 공급의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전환 효율의 향상과 전체적인 에너지 수요의 비율(증가율?) 감소를 결합시키고, 혁신적인 원자로(핵융합?)를 개발하는 동안 원자력을 선택지로 열어 두며 비화석연료원의 기여를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환경적으로 수용 가능할 정도로 빨리 증가시키는 것이다.” (가로 안은 문맥 상 의미... 번역이 매끄러운 편이 아니다.)

 

말인즉, 화석연료에서 비화석연료로 에너지 생산 기반을 이행시키는 동안 원자력 발전을 상당 부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 주장을 논박하는 데 책 여러 권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의 주장과는 다르게 원자력을 일시적이라도 화석연료 감축의 대체수단으로 고려하지 않는 실제 계획도 세워졌다. 독일은 새로운 ‘에너지 콘센트’에서 전체 전력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을 2020년까지 35%, 2050년까지 85%로 늘리고, 대신 원자력은 2030년까지 17% 정도를 유지하다 2050년이면 완전 폐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는 반대로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비중을 40%대로 늘리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바츨라프 스밀이 제안하는 길을 걷는 셈인데, 저자가 이와 관련한 몇 페이지의 짧은 글 가운데서 내세우는 핵심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에너지 불평등이 존재하고 사회하층이나 발전이 필요한 국가에서의 수요 증가 등으로 에너지 총소비량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②화석에너지의 가격 상승과 기후문제로 인해 대체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다.

③현재 기술수준에서 풍력이나 태양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은 날씨로 인한 변동성으로 기저발전에는 부적합한 면이 있는 등 화석에너지를 충분히 대체할 수는 없다.

④근래 원자력의 안전성이 많이 제고됐다.

⑤결론적으로, 대중이 수용만 한다면 원자력은 대체 가능한 유력한 에너지이다.

 

그런데 ④에 대해서 탈핵 환경단체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술적 개량으로도 근본적인 위험성을 줄일 수 없다는 게 바로 원자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③과 관련해서는 두 세대 안에 신재생에너지로 화석에너지를 대체하겠다는 독일의 에너지계획이 반박하고 있다. 한편, ①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에너지 불평등, 에너지 빈곤이나 저발전의 문제를 에너지 총투입을 계속 증가시켜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구조 가운데서 에너지 투입 증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반대로 평등한 사회는 에너지 불평등의 해결과 에너지 소비 감소를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원자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섣부르게 주장할 수는 없다. 이는 번역자도 후기에서 역시 지적하는 책의 문제이다.

 

책의 가장 앞장에 쓰인 저자의 이력이라면 보다 전문적인 견지에서 자기 주장을 풀어나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책에서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교양서적이라는 책의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방대한 내용을 통째로 다룬 게 장점도 있다. 에너지의 수많은 다양한 형태들을 조금씩이더라도 한 책에서 보고 배울 있다는 건 좋은 점이다. 특히 지구에서부터 인류의 역사, 현대문명, 일상생활로 옮겨가며 각 차원에 해당하는 에너지 형태와 전환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서술구조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고도의 추상적 개념인 에너지에 대해 핵심적인 뭔가를 알려주는 듯하다. 그래서 에너지란 무엇일까?

 

책을 읽고 나서 나름대로 내린 답은, “에너지란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 에너지는 만물에 편재하고 만물을 생성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는 만물 속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 속에 살고 있는 셈이고, 이 에너지 흐름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전환시킬 줄 아는 게 바로 문명이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축적이 문명의 단계를 나눈다.

 

현재 중요한 건 우리 화석연료 문명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길어봐야 두 세대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그 끝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생태적으로 올바르고 합리적인 대안을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책은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한다. 저자가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과 기술이 마법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설령 과학과 기술에 마법같은 힘이 생기더라도, 누가 지팡이를 휘두르는지가 결정적이지 않을까? 사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집단이 통제되지 않는 지식으로 환경과 지구, 미래를 망치는 과학소설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서사이다. 문제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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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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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끼가 있는 반란

 

 

1.

  스스로는 읽지 않았을 책인데 읽게 되었다. 역시 첫 느낌은 실망스러웠다. 1장에 “가난뱅이 생활 기술”이라고 몇 가지 써났던데, 형편없는 자취생활을 해본 적이 있어, “이게 뭐시라고...”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읽어 내려갔다. 나도 길바닥에서 자봤단 말이야!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이 책이 그저 그런 ‘탈노동운동적 저항담론’ 중의 하나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가난뱅이의 역습』이 출간된 2009년에 누군가 쓴 소개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비호감을 형성했다. 책을 끝까지 읽어 보니, 그 소개글이 딱히 잘못 전달한 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읽고 나서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었다. 2장 이후부터 저자인 마쓰모토 하지메가 본격적으로 말하는 “연대”와 “반란”이 틀린 말이 아니고, 유쾌해 보이고, 무엇보다 끼가 넘쳐 보여, 내가 하고 싶은 운동과는 차이는 있지만 감탄했다.

 

 

2.

  “말하자면…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해서 이제는 ‘우등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안된 애기지만, 자네도 이미 각 잡힌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진짜 ‘우등반’이란 말이지, 잠깐 일을 쉬거나 몇 년쯤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들이라구. 이런 놈들은 무지무지 노력하고 무지무지 재수가 좋아야 해. 그리고 남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릴 용기가 있어야 한단 말이지.” (11p)

 

  마쓰모토에게 부자란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이고, 가난뱅이란 그 나머지이다. 가난뱅이도 다 같은 가난뱅이는 아니다. 스스로를 우등반이라고 착각하며 시스템의 부품으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다. 물론 마쓰모토는 “강제노동 수용소”를 탈출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며 사는 가난뱅이가 되자고 한다. 다만 문제는 시스템 밖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3.

  1장에서는 다소 궁상스럽게 보이는, 이끼고 살아가는 노하우들을 적어 놓았는데, 정말 들어줄만한 건 2장부터이다. 마쓰모토가 제안하는 자활의 방법들을 압축해보면 ‘자율’과 ‘협력’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는 부자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밖에서 살아가야 하니, 무에서 유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것을 자기 힘으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이 말이 농촌에서의 자급자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요는 기업과 정부가 구축해놓은 타율적 영역을 벗어나 물자가 보다 자유로운 원칙에 따라 흐를 수 있도록, 자율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마쓰모토가 생각해낸 건 재활용 가게였다.

 

  “신품은 돈이 남아서 쩔쩔매는 부자들이나 사라고 해. 그런 놈은 헤헤 속아서 정신없이 새것을 사고 헌것을 버리니까, 우리는 그런 바가지 씌우는 경제 시스템에서 밀려난 것, 즉 중고품을 모아서 가난뱅이의 재산으로 돌고 돌게 하면 된다구.” (75p)

 

  물자가 돌고 돌기 시작하면 경제문제들이 해결되기도 하지만, 또한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들,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트고 맺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끈끈한 협력도 가능해진다. 서로 부족한 게 보이면 채워주고, 서로 의지하고, 함께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형성되면 그만큼 자율의 공간도 넓어진다. 그러면서 자율의 가치는 이제 공동체 자치와 참여로 확장된다. 2장이 끝날 때까지, 마쓰모토는 재활용 가게를 시작한 것에서부터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고, 함께 축제를 벌이고, 공방이나 인쇄소, 극장 같은 공동체 공간도 멋대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신나게 떠든다.

 

 

4.

  하지만, 자율과 협력, 공동체 자치가 방해받지 않고 지낼 수만은 없다. 기업과 정부는 자신들의 질서를 구석구석에까지 구축해놓고, 가난뱅이들이 조용히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숨 막혀 싫다는 불온한 기운이 ‘아마추어의 반란’(마쓰모토의 재활용 가게) 같은 곳에서 거리로 뿜어져 나온다 싶으면 바로 경찰이 가로막는다. 그렇지만 여기에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마쓰모토는 자신이 일으킨 갖가지 반란들을 들려준다. 드디어 가난뱅이의 반란이다!

 

  이쯤에서 감탄한 건 데모의 컨셉이다. 비장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재미와 난장이다. 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마쓰모토가 메시지 없이 난리만 피우는 건 결코 아니다. 메시지는 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새로운 감성을 입히지 않으면 요즘 가난뱅이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건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고 그들의 눈과 귀가 데모대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판을 벌이는 것이다. 마쓰모토가 벌인 난장을 읽고 있으니, 이 사람은 정말 끼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이런 난장이라면 나도 맘껏 즐길 수 있겠다~

 

 

5.

  한국에도 마쓰모토 같은 가난뱅이가 천명, 만명은 있으면 좋겠다. 거리에 나가면 데모인지, 축제인지 같은 것들이 매일 벌어질 것이다. 또 동네마다 주민들이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채워주고, 함께 결정해가는 공동체가 자라날 것이다. 아마도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부족한 게 이런 것들이 아닐까? 아마도 현재 한국 운동권에 가장 부족한 게 ‘끼’가 아닐까? 자, 우리도 이제 끼가 있는 반란을 저질러보자. 자율과 협력, 공동체, 자치의 가치들을 앞세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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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안내서
존 벨라미 포스터 & 프레드 맥도프 지음, 황정규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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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구의 파괴를 막기 위한 평등의 길

[서평]『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파멸을 말하는 생태학’

 

생태학의 기본 아이디어는 생물과 생물, 그리고 생물과 환경은 분리될 수 없이 서로 의존하고 함께 진화하는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의 결과는 상보적일 수도 있고 균형을 파괴할 수도 있다. 지금 생태학은 파멸을 경고하고 있다. 바로 인류 자신에 의한 인류의, 지구의 파멸을.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저자 : 존 벨라미 포스터, 프레드 맥도프)은 만약 세계경제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 성장할 경우, 그리고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이윤과 경제성장을 최우선시하는 체제를 앞으로도 유지할 경우 머지않은 시기에 맞이하게 될 말 그대로의 “행성파괴”에 대한 경고로부터 시작한다. 기후변화는 잘 알려진, 인간이 초래한 심각한 생태위기들 중 하나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해 얼음이 1970년대 후반보다 40퍼센트가 감소했다. 극지방 얼음의 감소가 현재 추세대로라면 21세기에 해수면이 1.5미터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저지대 지방에 사는 수억 명의 터전을 삼킬 것이다. 또 이대로라면 가뭄이 수십 년 내에 육지의 70퍼센트로 확대될 것이라고도 한다. 이는 평균기온의 상승으로 감소하고 있는 곡물생산, 그리고 이미 심각한 물 부족 문제에 치명적일 것이다. 이외의 기후변화의 악영향 및 생태위기의 충격적이고 기다란 목록은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저자들은 지구환경이 인류 생존을 위협하게 변화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바로 ‘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인간 입장에서 환경을 수도꼭지와 싱크대에 비유하자면, 수도꼭지로서의 환경은 자원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능력이고, 싱크대로서의 환경은 폐기물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제는 싱크대 용량을 지나치게 초과해 수도꼭지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넘치는 오수, 즉 탄소 및 오염물질, 쓰레기 등의 과다한 배출이 온난화를 일으키고 태평양에 한반도 몇 배의 쓰레기섬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수에 빠져 죽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할 일은 수도꼭지를 서둘러 잠그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다수 사람에게는 수도꼭지를 잠글 권리가 없다. 자원과 에너지를 빨아들여 재화를 만드는 생산설비의 가동과 확장을 결정하는 이들은 자본의 소유자들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게 거의 유일한 목적인 자본이 수도꼭지를 알아서 잠그는 일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생태사회 = 평등사회

 

그럼에도 좋은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을까? 정부규제나 환경기술, 윤리적 소비 같이.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실업이나 빈곤 같은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을 줄일 정도의 환경규제를 실시할 수가 없다. 반성장적 환경규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즉 경제성장이 아니고도 사회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일자리 나누기나 재분배 정책은 자본의 저항과 명령 때문에 대체로 배제되고, 정부는 성장주의에 스스로를 가둘 수밖에 없다. 환경기술 역시 믿을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유지하면서 자원의 고갈을 막고 폐기물의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환경기술이란 물리법칙의 피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따름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한편, 친환경제품을 쓰고 적게 소비하자는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왜곡한다. 2007년 미국에서는 겨우 400명이 이 나라 하위 50퍼센트인 1억 5,000만 명의 부를 모두 합한 만큼 소유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괜찮은 생활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다.” 엄청난 부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투자에 투자를 더하는, 한계를 모르는 자본축적이 환경파괴의 진정한 원인이다.

 

저자들의 결론은 단호하다. 생산력이 생태위기와 사회불평등을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조절되고, 자본축적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인간적 필요의 충족이 경제의 목적이 되며, 자본을 소유한 소수가 아니라 노동하는 다수가 사회를 운영하는 생태혁명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처럼 환경문제와 계급문제를 동전의 양면으로 파악한다는 데서 책은 빛이 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 관계에 일어나고 있는 균열의 뿌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이다. 다수가 노동으로 일궈낸 부를 소수가 재산으로 도둑질하고, 자연을 소유하고 남용하는 게 이러한 도둑질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착취와 자연착취가 나란히 불가분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파괴를 멈추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착취와 불평등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서도 싸울 줄 알아야 한다. 부는 모두를 위해 쓰이고, 자연은 누구의 것도 되서는 안 된다. 이리하여 부가 더 큰 부를 위해서만 이용되는 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기본적 필요의 충족을 위해 이용되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발전하는 평등사회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열도 치유할 것이다. 경제성장의 강박에서 벗어나 인간성이 만개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사회에서는 인간 생존과 발전을 위협하는 생태위기의 해결을 우선할 것이다. 때문에 평등사회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사회는 서로 다르지 않다.

 

사실 생태위기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근래 유난히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바로 전지국적 기후변화의 일부이며, 에너지 요금 상승이 재생불가능한 자원 고갈의 징후이다.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이런 문제들을 보다 깊이,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돼줄 것이다.

 

 

- 붉은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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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왜 사회주의인가?
앨런 마스 & 하워드 진 지음, 유정.이원웅 옮김 / 책갈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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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

: 대선패배의 힐링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틀 전, 제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진 지지자들은 멘붕 상태에 빠져있다. 이번 대선의 프레임은 ‘보수 대 진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보후보는 왜 패했을까? 그리고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진보후보를 지지했을까? 진보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다. 이 의미를 따르면, 문재인 후보와 그 지지자들은 사회 발전을 원하는 마음으로 서로 연결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책갈피, 2012)는 “투쟁 없이 진보 없다.”고 단언한다. 누군가가 선출되는 것만으로는 어림없다는 말이다. 책의 저자인 앨런 마스(Alan Maass)는 미국의 사회주의 조직 중 하나인 국제사회주의자단체(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의 활동가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 한국정치가 점차 미국과 같이 양당정치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꽤 참고가 될 듯하다. 사실 미국과 같은 양당정치는 서구민주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경우인데, 공화당과 민주당 말고는 전국적 규모의 정당이 부재하고, 또한 같은 말이지만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때문에 미국의 급진주의,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데, 소극적이게는 보수적인 공화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적극적이게는 민주당을 통해서 개혁을 추구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한국에서도 전자의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건재했을 때는 선거 시 사표 논란으로, 후자의 문제는 진보 인사들의 민주당 입당이나 야권연대 논란으로 비슷하게 재현된 바 있다. 이런 선택, 문제들과 관련해 앨런 마스의 입장은 단호하다.

 

“공화당과 그들의 추악한 말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우파를 저지하고자 하는 심정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인 듯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잘못된 방법이다. 사람들은 공화당이 발의한, 희생자를 비난하는 잔인한 법안들이 싫어서 클린턴에게 투표했지만 민주당 대통령은 공화당과 똑같은 조처를 취했다. 사람들은 조지 W 부시가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전쟁에 신물 나서 버락 오바마에게 투표했지만, 똑같은 전쟁 정책을 더 조리 있게 설명하는 말만 듣게 됐을 뿐이다.” (128p)

 

즉,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째서일까?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바로 악을 잉태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진정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이다.

 

제 1장 “자본주의는 왜 고장났는가?”와 2장 “그리 자유롭지 않은 땅”, 3장 “전쟁의 참상”에서 저자는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인 제프 패럴, 애디 포크, 바버라 하비 등과 그리고 이라크의 파라 파드힐 등이 겪은 잔인한 삶을 전하며 어쩔 수 없는 빈곤과 억압,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빈곤과 억압, 전쟁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4장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는 아래의 문장들로 시작하며, 대안을 설득한다.

 

“사회주의의 기본 사상은 간단하다. 사회의 자원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이룩한 엄청난 성과는 소수의 사람들을 부자와 권력자로 만드는 데 쓰일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빈곤과 억압, 폭력에서 벗어나 풍요롭고 보람찬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하는 데 쓰여야 한다.” (95p)

 

그렇다면 체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과 같은 제목의 5장에서 저자는 개혁을 추구하겠다던 오바마의 ‘말 따로 행동 따로’ 행각, 그리고 공화당과 다르지 않은 민주당을 폭로하고, 이어서 선거로 체제를 고쳐 쓸 수 없는 까닭을 밝힌다. 20세기 초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당신이 워싱턴에 가서 정부 관리를 만났다고 치자. 당신 이야기를 공손히 듣고 있는 그 관리가 실제로 받아들이는 조언은 금융계·제조업계·상업계 거물들의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미국 정부의 주인은 미국 자본가와 제조업자 전체다.” (132p)

 

20세기 초의 미국정부와 21세기의 미국정부, 그리고 현재의 한국정부가 얼마나 다를까? 다르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런데 진정 달라진 게 있다면, 이는 “투쟁”에 의해서만 그렇게 됐다. 6장의 제목은 바로 “투쟁 없이 진보 없다”이다.

 

"학교에서는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평화롭고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불의에 대한 반감을 조직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즉, 체제가 작동해서 문제가 해결될 테니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세기 전반기에 미국 남부와 북부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남부 노예제를 가만 놔두더라도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틀렸다. 면화 생산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노예제는 점점 더 강력해졌다. 이 참상을 끝내는 데는 남북전쟁이 필요했다.

미국 역사에서 벌어진 운동들을 보자. 공민권운동, 여성참정권 운동, 8시간 노동제 운동, 반전운동 등 모든 운동은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온건하게 행동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마틴 루서 킹은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랫동안 나는 ‘기다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흑인은 이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입니다. 이 ‘기다려’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결코 안 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너무 오래 지연시키는 것은 정의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저명한 법조인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다리지’ 않기로 작정한 활동가들의 결단력이 공민권운동이 승리한 비결이다.” (144p)

 

마지막 장인 “사회주의와 투쟁 그리고 여러분”에서는 잘못된 세계와 쟁취할 세계 사이에 놓인 길을 말한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분노와 저항 사이의 간극을 이어 줄 지름길은 없다. 기성 체제를 대체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와 광범한 동원 기반을 가진 사회·정치 운동(공민권운동처럼 현재 상태를 정말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운동)은 완전히 성숙한 형태로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역사는 이런 운동이 하나하나 차분히 건설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로자 파크스가 1955년 12월 [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내주기를 거부하다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처럼 투쟁에는 절정의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절정 이전의 순간들도 기억해야 한다. 로자 파크스가 몽고메리에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지부를 만들었을 때, 테네시 주의 하이랜더 포크 스쿨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해서 투쟁의 미래를 토론했을 때, 인종 격리 반대 시위들에 참가했으나 시 전체의 흑인 반란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때 같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이런 순간들이 다가올 절정의 토대를 놓았다.” (175p)

 

우리가 진정으로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바란다면,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일은 모든 빈곤과 억압, 폭력에 반대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기다리지 말고 지금 불의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없어도, 투쟁이 없어도, 기성 제도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약속을 믿는 대신 나의 참여와 행동으로 새로운 세계를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대선에서 정말로 진 걸까? 그것은 정말로 우리의, 우리를 위한 싸움이었나? 지금 우울하다면 힐링의 시작이 될 이 질문에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가 답해줄 것이다.

 

 

- 붉은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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