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이상순 베란다 프로젝트 - Day Off
베란다 프로젝트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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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려한 이력으로도,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으로도,  
그리고 수많은 팬들과 동료들의 지지라는 인력으로도
내게 김동률은 항상 아쉬운 2%였다. 

그 아쉬움의 정체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좋구나...하며 지낸 시간들 
김동률은 좋은 싱어송라이터야...라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평가에
나 스스로를 세뇌하려고 애써보기도 했었고
워낙 유명한 김동률의 노래에서 그만의 싱어로서의 포인트를 찾아보려고 애쓰기도 하면서
나의 막연한 그 2%를, 막연하므로 없는 것이라 위장하고 있었던 터에 

그 막연한 2%를 퍼뜩 깨어나게 한 음반이 나왔던 것이다. 

김동률의 보사노바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앨범에서
아쉬운 2%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나는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스타일은 아닌데
가끔, 음악을 듣다보면 그들이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공간에 함께 있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니까 완성된 음악이 주는 진지한 의미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의 느낌이 더 진하게 와 닿을 때가 있다는 것인데
이번 앨범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참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음반에 속한다. 

그렇게 재미있군을 따라가던 나의 귀에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것이 
스탄 게츠...
오옷...이것은 게츠/질베르토의 그 보사노바 아닌가...
한때 푹 빠져있었던 그 나른하지만 발을 땅에 붙일 수 없게 하는 보컬과 보사노바..
아아...김동률의 목소리, 그의 아쉬운 2%가 바로 저것이었구나하는 생각
그리고 그 2%가 사라진 감동을 출근길 차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것이 아니어서 아직은 흉내일 수밖에 없는 그 보사노바
사실 아무리 멋지게 연주를 잘 하는 음악가라도 그 뿌리가 다른 문화를 노래하려면
어딘지 어색하고 따라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사노바도 늘 그 뿌리 언저리 흙냄새만 맡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츠/질베르토의 삼바풍 보사노바는 아니었어도
김동률에게서 아쉬웠던 2%를 채워준 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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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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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리뷰를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덮은 뒤
인터넷 뉴스 하나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뒤틀려 충동 리뷰를 해보기로 한다.

오은선 대장의 경쟁자 파사반(이라고했나?)이라는 등반가가
오대장의 여성 최초 등정 기록은 허위라고 주장했다고 한다는 기사였다.
오대장의 사진 속에 눈이 덮히지 않은 바위가 보였단다. 우습다....
최초의 등정이니...기록이니...경쟁이니...
하는 것들이 소위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르는 숭고(?)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일이
마땅찮았는데...
오늘 그 정점을 보고 말았다...
이미 스폰서와 매스컴이라는 괴물들과 결합된 그 숭고한 등정의 의미는
그것들이 결합하는 순간, '등반가'라는 이름의 직업(?)이 생기는 순간
퇴색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국가대표 산악스포츠인이
전세계 산악올림픽에서 무한경쟁 끝에 금메달을 따려고 애썼고,  
그렇게 해서 금메달을 따낸 기쁨과 영광이라는 것에 박수 무한한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이가, 인간을 거부하는 자연에 맞서, 순수한 도전 정신을 드높이고
인간의 한계를 좀더 높은 단계에까지 끌어올리는 숭고한 업적이라 여기는 데에서는
선뜻 박수가 나가지 않는다.
이미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난 등반전문가들에게 등반은 위험 부담이 다른 종목보다 높은
올림픽이며, 그 성공은 그들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훈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평생 직업이 되기도 한다.

굴라쉬 브런치와 히말라야 등반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냐고?
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방법, 혹은 세상을 느끼는 방법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이 책속의 여행은 그냥 여행이고, 거기에는 어떤 근사한 목적도 깨달음도 없다.
무게를 싣지 않고 맨발로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이다.

제주 올레를 취재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어느 50대 초반의 여성에게 소감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되물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가(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이 반문은 '나는 그것을 이 길을 걸으며 깨달았노라'라는 으스댐이었다.
토하고 싶어졌다...(물론 그런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우쭐거림이란...)
저런 거였나?...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 여성의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으로 느껴져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다음 취재 대상은 20대의 한 남학생(휴학중이라고 했던 것 같다)이었는데 
그는 길가 풀밭에 드러누워 이렇게 이야기한다.
글쎄요. 지금 이 길을 이렇게 걷는다는 것이 그냥 좋습니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제 인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떨지는 아직은 모르겠구요...
제법 지난 일이라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는 이 말로 남아있다.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저건데...
왜 나도 그렇고, 나이가 좀 들었다 하는 이들은 그 무게를 강박적으로 드러내려하는지...

이 책을 읽다가 나는 그때 그 젊은이의 이야기가 생각 났다.
사실, 나는 목적지향적인 인간이다. 누군가는 철저한 기능주의자라고 나를 평하기도 한다.
일에 있어서는...그래 적어도 프로가 되어야 하는 일에 있어서는 목적지향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삶에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목적을 벗어둘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 목적이 없는 일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그런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적어도 여행에 있어서는 치열한 프로보다는 헐렁한 아마추어가 좋다.
(동의를 구하려하는 것은 아니고, 전적으로 내 생각인 거다)

굴라쉬 브런치,,,육개장 같기도한 체코의 국물요리 굴라쉬,
앞의 어느분이 달아놓으신 대로 브런치가 뉴요커들의 전유물이라면
굴라쉬브런치는 '노마드'다.
경계, 그것이 뭐란 말이냐고....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소리로 들린다. 좋다...
여행이란 게, 독서란 게, 영화란 게, 음악이란 게 그런 굴라쉬 브런치와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중간중간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 보인다. 그냥 입말의 느낌을 살린 때문이라 여기기로 한다.
**입말로 들려주는 여행담...그래서 더 빨리 흡수되는 느낌이다.
**여행 체험과 연관지은 책의 구절들, 노래의 가사들...여기저기 링크시켜놓은 명저, 명화, 명곡들...아는 척, 있는 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백과사전적인 느낌도 들었으나, 이 책의 의도가 그러하므로 오히려 의도 충족...내 스타일이 그렇다.
**다소 거슬리거나 과하다 싶은 수식어들은 '다이어리를 꾸미는 요즘 여성들'의 취향 그대로이므로 이 또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진이 없거나, 톤다운 된 것이 오히려 독서여행기라는 이름과 어울려 마음에 들었다.
**폴 오스터의 뉴욕삼부작을 읽으면서 갑갑하다고 느꼈던 위,옆 여백 없는 인쇄는 큰 글씨, 여유있는 줄,자간 간격, 주석을 위한 풍부한 아래 여백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감이 있었으나, 안 그랬으면 어쩔거냐로 되물었을 때는 이쪽에 더 나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 또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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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이노센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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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찾아 떠난 작가는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탁월한 상상들을 여행한다.
그 여행에서 작가는 철저하게 수동적 관찰자일 뿐이다. 

결국 이야기는....
옛날에 어느 산골에 나무꾼이 살았습니다.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과 함께 살면서 두 딸을 낳은 선녀는 대감댁 잔치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나무꾼의 허락은 받았으나, 입고 갈 옷이 없었던 선녀는 나무꾼에게 사정사정하여
밤열두시에는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날개옷을 입고 대감댁 잔치에 가게 됩니다
허겁지겁 쫓아나오느라 선녀는 벗어걸어두었던 날개옷을 잃고 맙니다.
선녀아내는 날개옷을 마련하기 위해 떡장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장에 갔다오던 선녀아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아내를 잃은 나무꾼은 아이들을 위해 계모를 맞아들입니다.
계모는 자기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큰 딸을 내쫓을 계략을 꾸밉니다.
나무꾼 가족은 숲에 나무를 하러 갑니다. 한참 놀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을 숲에 내버려두고 돌아옵니다.
겁에질린 아이들은 아침에 숲으로 들어갈 때 잃어버렸던 예쁜 공깃돌들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계모는 자기보다 예쁜 첫째 딸을 내쫓아버립니다. 
딸을 잃고 상심하던 나무꾼은 열병에 걸려 장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장님이 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둘째 딸은 뱃사람들에게 제물로 팔려갑니다.
물에 빠진 둘째 딸은 용왕의 약을 찾으러 육지로 나가는 거북이를 만나 겨우 육지로 돌아왔으나
낯선 곳이라 허둥대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마침 일을 마치고 지나가던 난장이들에게 구출되어
그들의 오두막으로 함께 오게 되고 그곳에서 언니와 상봉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숲속 맹인 잔치를 열고, 전국의 맹인들을 초대했고, 결국 아버지는 감격에 겨워 눈을 뜨게 되었으나
계모는 잔치판을 뒤엎고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알고보니 계모는 이미 죽었고, 계모의 손톱발톱을 먹은 호랑이가 계모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던 것입니다.
끝까지 두 딸의 뒤를 쫓아온 호랑이를 피하다, 두 딸은 하늘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고, 두 딸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햇님 달님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다...아니면 영화 젠틀맨리그였던가...(내부의 이야기들이 그렇단 말이다)
상상력이 고갈된 작가가 상상력의 사막속에서 만나는 신기루들을 거치면서
이전의 자리가 아닌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 곳을 향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지붕뚫고 하이킥-마지막회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림 이야기, 그 뒤의 다양한 상상들
그리고 드라마에 삽입되었던 그림의 강한 인상 때문에 구입한 그림책이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이거나, 당신들 마음대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결말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재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도구적 기능 이상으로 이책은 나를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상상의 신기루들 하나하나를 내 기억과 맞추어 가는 재미,
거기다, 책그림책이라는 책 속에서 미셀 투르니에의 꼭지에 등장하는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재미있지 않은가? 메구레는 명탐정 코난에서 다시 차용된다^^) 
언제나 내 사춘기 기억 한쪽에 남아 있던 에밀리 디킨슨....
추억이라는 낡은 모자가 아니라 상상이라는 새 신발을 찾으러 떠난 여행이라 했다.
그러나 상상의 사막 속에서 낡은 모자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신기루를 보게 된다. 
그 낡은 모자 또한 과거에는 새 신발이었던 것들이고
낡은 모자를 부정하면 새 신발 또한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이유...그것이 새로운 상상의 바탕이 된다는 것(에 대한  나 나름의 해석)에 대한 깨달음
'마지막 휴양지'는 클래식에 기댄 상상력의 마지막 단계-상상력의 휴식 혹은 준비 단계,
즉, 자 이제 준비는 끝났어 이들처럼 이제부터는 쉴 사이없이 너만의 상상을 펼쳐보라...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르는 너만의 세계로 떠나 보라...라고 등을 떠밀리게 되는
어찌보면 충전의 공간이면서,
어떻게 보면 창작의 고통, 그 바다로 출항하는 배의 다소 무거운 설렘을 그림으로 풀어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재기 넘치는 선과 색들의 그림.... 

책들이 도착했을 때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자 했던 책,
씻으러 들어가다가 잠시 가벼운 마음으로 서서 '보'다가
씻는 것을 잊은 채 식탁에 올려놓고 꿇어 앉아 '읽'기 시작했다.
몰입.... 

한 번, 두 번...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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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이태준 지음, 박진숙 엮음 / 예옥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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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쓰기로 인쇄된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헌책방에서 사들고
이전 주인의 '00년00월 2회 완독...'이라는 갈겨쓴 세련된 필체에
괜히 그 이전 주인을 막연히 동경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이태준은 그런 의미이다. 다소 야들한 사춘기적 감상같은....
그래서 항상 이태준의 글들은 반갑다.
거기다 제목 또한 딱 그런 세밀한 감성 그대로 이지 않은가 .
물을 것도 따질 것도 없이 바로 구입한 것이 지난 해 말...
기억 속의 이태준, 내 마음 속의 이태준을 대하는 자세로
책을 펼치고 50쪽 이상을 읽어나가자
마음이 피로해졌다..... 

과욕이다.....
서로 섞여서 조화를 이루는 꼭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문장강화처럼 무엇을 배울 것이라고, 의무라는 마음으로
숙제하듯이 읽을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영희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당혹감을 다시 느낀 것이다.
사실...수필집을 잘 안 읽는 편이고, 거기다 수필이란 장르 자체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거부감이 있어
이렇게 가끔씩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팬들이 아이돌에 빠지는 것처럼 홀려서 책을 사들곤
늘 중간쯤에서 당혹해한다.

잠언집처럼 읽어야겠다. 하루하루 해야할 묵상의 내용을 기록해 놓은 묵상집처럼
매일 지키고 행해야할 법문들을 나누어 적어놓은 책들처럼
그렇게 읽어나가기로 다시 마음을 먹었다. 

책을 한 번 다 읽었으나 이렇게 읽어서는 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문장강화를 읽은 것이 벌써 25년을 훌쩍 넘긴 시간이니
이태준의 언어에 다시 익숙해지는 것도 한 꼭지씩 읽어나가며 해결해야할 숙제다.

**답답한 것은 내 능력이지 이태준과 이 책의 문제가 아니므로 별점은 후하게 드리기로 한다
**고등학교 국어선생의 눈으로 보면 시험문제를 한 번 내볼까 싶은 글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문장강화는 나에게 대출카드에 적힌 아마사와 세에지를 동경하는 시즈크의 추억이므로^^
   (왠 생뚱맞은 일본만화 이야긴가 싶겠지만 '귀를기울이면'을 보는 내내 문장강화의 이전 주인을 떠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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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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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빈트 부크홀츠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밀란 쿤데라도 좋아하고...  
그의 그림 하나하나에 그려진 책들은 부크홀츠 자신의 숙제가 되고 
부크홀츠의 숙제들은 글쓰기의 대가들에게 또다른 숙제가 된다.  

프로젝트런웨이란 TV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빠지지 않는 미션이
도시의 건물에서 받은 인상으로 의상을 디자인하라....인데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달까?
생각이 고여 흐른 흔적보다는 취향과는 거리가 먼... 
혹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그림 하나에 매달려 생각을 짜내야 한다는
고통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론 그런 고통은 읽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될 수 밖에 없었고
뭐 프로 작가가 그 정도를 어려워해서 되겠느냐고 한다면
말을 바꾸어도 상관없을 듯하다.
글을 읽고 그렇게 느낀 내가 아마추어였을 뿐이다.
이 아마추어의 책그림책 읽기는 그렇게 다소의 고통을 동반한 것이었다.

부크홀츠라는 가방 속에 
밀란쿤데라, 미셀 투르니에, 요슈타인 가아더, 헤르타뮐러, 마르틴발저, 수전손탁...
들이 작은 포장으로 들어앉은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기쁨과 함께 한 고통이어서
그 느낌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초콜릿, 쿠키, 사탕 들을 섞어 먹어 그저 단 맛 밖에는 느낄 수 없었던
종합선물의 뒤끝이 안타까울 뿐인 것이고,
종합선물을 위해 소포장으로 감질나게 구성된 원래 맛나는 과자들이 아까웠을 따름인 것이다.

다행히  
생각과 그림이 콜라쥬처럼 조화를 이뤄서 새로운 경지를 느끼게 해 준 '아모스 오즈' 
립반윙클의 책 이야기를 만들어버린 '파울뷔어' 
카프카에 대한 오마쥬 '리하르트 바이에' 
책 없이 책 이야기를 하고, 구두로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알도 부치'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찾은 대가들이다... 

안토니오 타부키-나는 이 작가의 이름을 안토니오 스몰러라 쓸 뻔 했다.-의 풍자는
내 체질에 딱 맞았다고나 할까?
그 외에도 낱낱의 느낌들이 남아있는 꼭지들이 제법 있었지만
역시...밀란 쿤데라....그의 통렬함이 가장 개운했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랄까?
상황에 대한 가장 솔직한 일갈이랄까?
역시 쿤데라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그 페이지를 들추게 했다. 

하지만...숙제를 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가들의 진땀, 아니 짜증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글쓰기라면 내로라하는 이들이어선지...글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건 싫어하는 스타일이건 그들은 대가들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좀 길게 잡고
내가 이 숙제를 한 번 해 볼까하는 생각을
글을 읽는 내내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책'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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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리뷰하다가 문득 든 생각...
삽화가로서의 부크홀츠,  
그는 분명 이 그림들을 그리며 이 그림이 삽화로 들어가게 될 글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갑자기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편집이란 것이 의도 없이 이루어질리는 만무하지만)
마지막 꼭지가 '페터회'의 크빈트 부크홀츠의 책이야기로부터
'프리트마르 아펠'의 남은 자의 노래로 이어진다....그리고 끝이다....
부크홀츠는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그를 찾게하고, 그의 생각을 알리려 하기보다는 
사람들 안에서 자신을 그림으로 남기고 사라지려는 화가로서의 이상을 추구하려 했던 것일까?
아펠의 남은자와 사공의 대화에 그 답은 있는 듯하다 
책, 그림을 간직하라는 남은자와
사물의 가치에 대한 회의, 없이 지낸다는 것의 의미를 역설하는 사공 

결국 이 책은 자신을 없애려하면서
대가들이 부여한 의미들로 묘비명을 새겨
독자에게 그림으로 남으려는 부크홀츠의 역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미리 상상해 두었던 이야기들은 영원히 저편으로 사라져야 맞는 것인데
나는 또 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다.
아직은 없이 지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의 심장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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