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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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빈트 부크홀츠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밀란 쿤데라도 좋아하고...  
그의 그림 하나하나에 그려진 책들은 부크홀츠 자신의 숙제가 되고 
부크홀츠의 숙제들은 글쓰기의 대가들에게 또다른 숙제가 된다.  

프로젝트런웨이란 TV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빠지지 않는 미션이
도시의 건물에서 받은 인상으로 의상을 디자인하라....인데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달까?
생각이 고여 흐른 흔적보다는 취향과는 거리가 먼... 
혹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그림 하나에 매달려 생각을 짜내야 한다는
고통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론 그런 고통은 읽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될 수 밖에 없었고
뭐 프로 작가가 그 정도를 어려워해서 되겠느냐고 한다면
말을 바꾸어도 상관없을 듯하다.
글을 읽고 그렇게 느낀 내가 아마추어였을 뿐이다.
이 아마추어의 책그림책 읽기는 그렇게 다소의 고통을 동반한 것이었다.

부크홀츠라는 가방 속에 
밀란쿤데라, 미셀 투르니에, 요슈타인 가아더, 헤르타뮐러, 마르틴발저, 수전손탁...
들이 작은 포장으로 들어앉은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기쁨과 함께 한 고통이어서
그 느낌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초콜릿, 쿠키, 사탕 들을 섞어 먹어 그저 단 맛 밖에는 느낄 수 없었던
종합선물의 뒤끝이 안타까울 뿐인 것이고,
종합선물을 위해 소포장으로 감질나게 구성된 원래 맛나는 과자들이 아까웠을 따름인 것이다.

다행히  
생각과 그림이 콜라쥬처럼 조화를 이뤄서 새로운 경지를 느끼게 해 준 '아모스 오즈' 
립반윙클의 책 이야기를 만들어버린 '파울뷔어' 
카프카에 대한 오마쥬 '리하르트 바이에' 
책 없이 책 이야기를 하고, 구두로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알도 부치'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찾은 대가들이다... 

안토니오 타부키-나는 이 작가의 이름을 안토니오 스몰러라 쓸 뻔 했다.-의 풍자는
내 체질에 딱 맞았다고나 할까?
그 외에도 낱낱의 느낌들이 남아있는 꼭지들이 제법 있었지만
역시...밀란 쿤데라....그의 통렬함이 가장 개운했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랄까?
상황에 대한 가장 솔직한 일갈이랄까?
역시 쿤데라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그 페이지를 들추게 했다. 

하지만...숙제를 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가들의 진땀, 아니 짜증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글쓰기라면 내로라하는 이들이어선지...글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건 싫어하는 스타일이건 그들은 대가들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좀 길게 잡고
내가 이 숙제를 한 번 해 볼까하는 생각을
글을 읽는 내내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책'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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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리뷰하다가 문득 든 생각...
삽화가로서의 부크홀츠,  
그는 분명 이 그림들을 그리며 이 그림이 삽화로 들어가게 될 글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갑자기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편집이란 것이 의도 없이 이루어질리는 만무하지만)
마지막 꼭지가 '페터회'의 크빈트 부크홀츠의 책이야기로부터
'프리트마르 아펠'의 남은 자의 노래로 이어진다....그리고 끝이다....
부크홀츠는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그를 찾게하고, 그의 생각을 알리려 하기보다는 
사람들 안에서 자신을 그림으로 남기고 사라지려는 화가로서의 이상을 추구하려 했던 것일까?
아펠의 남은자와 사공의 대화에 그 답은 있는 듯하다 
책, 그림을 간직하라는 남은자와
사물의 가치에 대한 회의, 없이 지낸다는 것의 의미를 역설하는 사공 

결국 이 책은 자신을 없애려하면서
대가들이 부여한 의미들로 묘비명을 새겨
독자에게 그림으로 남으려는 부크홀츠의 역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미리 상상해 두었던 이야기들은 영원히 저편으로 사라져야 맞는 것인데
나는 또 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다.
아직은 없이 지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의 심장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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