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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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리뷰를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덮은 뒤
인터넷 뉴스 하나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뒤틀려 충동 리뷰를 해보기로 한다.

오은선 대장의 경쟁자 파사반(이라고했나?)이라는 등반가가
오대장의 여성 최초 등정 기록은 허위라고 주장했다고 한다는 기사였다.
오대장의 사진 속에 눈이 덮히지 않은 바위가 보였단다. 우습다....
최초의 등정이니...기록이니...경쟁이니...
하는 것들이 소위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르는 숭고(?)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일이
마땅찮았는데...
오늘 그 정점을 보고 말았다...
이미 스폰서와 매스컴이라는 괴물들과 결합된 그 숭고한 등정의 의미는
그것들이 결합하는 순간, '등반가'라는 이름의 직업(?)이 생기는 순간
퇴색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국가대표 산악스포츠인이
전세계 산악올림픽에서 무한경쟁 끝에 금메달을 따려고 애썼고,  
그렇게 해서 금메달을 따낸 기쁨과 영광이라는 것에 박수 무한한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이가, 인간을 거부하는 자연에 맞서, 순수한 도전 정신을 드높이고
인간의 한계를 좀더 높은 단계에까지 끌어올리는 숭고한 업적이라 여기는 데에서는
선뜻 박수가 나가지 않는다.
이미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난 등반전문가들에게 등반은 위험 부담이 다른 종목보다 높은
올림픽이며, 그 성공은 그들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훈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평생 직업이 되기도 한다.

굴라쉬 브런치와 히말라야 등반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냐고?
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방법, 혹은 세상을 느끼는 방법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이 책속의 여행은 그냥 여행이고, 거기에는 어떤 근사한 목적도 깨달음도 없다.
무게를 싣지 않고 맨발로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이다.

제주 올레를 취재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어느 50대 초반의 여성에게 소감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되물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가(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이 반문은 '나는 그것을 이 길을 걸으며 깨달았노라'라는 으스댐이었다.
토하고 싶어졌다...(물론 그런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우쭐거림이란...)
저런 거였나?...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 여성의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으로 느껴져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다음 취재 대상은 20대의 한 남학생(휴학중이라고 했던 것 같다)이었는데 
그는 길가 풀밭에 드러누워 이렇게 이야기한다.
글쎄요. 지금 이 길을 이렇게 걷는다는 것이 그냥 좋습니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제 인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떨지는 아직은 모르겠구요...
제법 지난 일이라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는 이 말로 남아있다.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저건데...
왜 나도 그렇고, 나이가 좀 들었다 하는 이들은 그 무게를 강박적으로 드러내려하는지...

이 책을 읽다가 나는 그때 그 젊은이의 이야기가 생각 났다.
사실, 나는 목적지향적인 인간이다. 누군가는 철저한 기능주의자라고 나를 평하기도 한다.
일에 있어서는...그래 적어도 프로가 되어야 하는 일에 있어서는 목적지향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삶에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목적을 벗어둘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 목적이 없는 일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그런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적어도 여행에 있어서는 치열한 프로보다는 헐렁한 아마추어가 좋다.
(동의를 구하려하는 것은 아니고, 전적으로 내 생각인 거다)

굴라쉬 브런치,,,육개장 같기도한 체코의 국물요리 굴라쉬,
앞의 어느분이 달아놓으신 대로 브런치가 뉴요커들의 전유물이라면
굴라쉬브런치는 '노마드'다.
경계, 그것이 뭐란 말이냐고....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소리로 들린다. 좋다...
여행이란 게, 독서란 게, 영화란 게, 음악이란 게 그런 굴라쉬 브런치와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중간중간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 보인다. 그냥 입말의 느낌을 살린 때문이라 여기기로 한다.
**입말로 들려주는 여행담...그래서 더 빨리 흡수되는 느낌이다.
**여행 체험과 연관지은 책의 구절들, 노래의 가사들...여기저기 링크시켜놓은 명저, 명화, 명곡들...아는 척, 있는 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백과사전적인 느낌도 들었으나, 이 책의 의도가 그러하므로 오히려 의도 충족...내 스타일이 그렇다.
**다소 거슬리거나 과하다 싶은 수식어들은 '다이어리를 꾸미는 요즘 여성들'의 취향 그대로이므로 이 또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진이 없거나, 톤다운 된 것이 오히려 독서여행기라는 이름과 어울려 마음에 들었다.
**폴 오스터의 뉴욕삼부작을 읽으면서 갑갑하다고 느꼈던 위,옆 여백 없는 인쇄는 큰 글씨, 여유있는 줄,자간 간격, 주석을 위한 풍부한 아래 여백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감이 있었으나, 안 그랬으면 어쩔거냐로 되물었을 때는 이쪽에 더 나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 또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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