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의 음악상자
노동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여기에서 '음악'상자의 음악은 우리의 고유한 음악을 말한다. 지금은 국악이라는 아주 좁은 의미로 일컽는. 국악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일제시대 이후라고 하며, 다분히 황'국' 신민들의 음'악'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단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라고 이름 바꾼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 당연히, 당시까지 음악이나 노래 하면 외국의 노래가 없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음악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이 되어 버렸다.

사실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음악을 고집하는 것은 편견으로 보이며,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의 지혜를 골고루 느껴야 할 지금. 그러나 그런 말들 뒤에는, 우리 음악을 깔보는 태도가 숨어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서양의 발성과 화성은 '제도권 음악'을 만들었고, 이 고상함의 축에 들지 못한 음악을 철저히 억누르고 있다. 들으면 신명이 절로 나는 그런 음악들은 아주 특수한 음악이 되어 버렸다. 한국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판소리는 세계적으로 볼 때 미개한 음악인가? 중국산 음식이 우리 몸에 안 맞듯, 우리 음악이 우리의 잠재 의식속에 내려오던 어떻든, 우리에게 꼭 맞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접할 기회조차 없다. 절대로 고리타분한 논쟁이 아니다.

또 우리음악을 살리자는 뜻은 있었지만 엉뚱하게 열심이었던 우리의 무지함을 깨워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 서양식의 악보에 채보되거나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때문에 히트를 치게 된, 이 수많은 아리랑의 일부이며,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비교적 우리의 애환이 들어있다고 이야기하는, 해방 이후의 트로트들은 일본의 엔카에서 온 것이라는 논란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음악들이 정말로 서민들의 어떤 쓸픔이나 한을 푸는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음악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우리 어린 시절에 달고 다니던 학교종이 땡땡땡도 일본의 가락.

글 느낌이 투박하지만 진실하고 호소력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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