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 

서점만 가면 널리고 널린게 여행기지만, 유재현의 여행기는 분명 그 중 빛나는 군계일학 중 하나다. 낯선 풍경이나 신기한 유물, 에피소드에 매몰되지 않고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를 조밀하게 읽어내는 작가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그만의 색깔은 일정한 독자층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유재현 온더로드"라는 이름의 시리즈물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시리즈의 네번째 결과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쿠바를 담은 <느린 희망>에 이어 두번째 읽는 그의 책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정작 그 자신은 길 위에서 길을 잃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네팔, 그리고 티벳, 홍콩까지. 그가 둘러본 아시아의 오늘은 여전히 참담하다. 독재 정권의 폭압이나 자본의 전횡, 아니면 전제 군주의 전근대적 폭력까지, 아시아의 민중들이 응당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는 저들 기득권층의 폭정 아래 질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짚어내는 저자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다. 이 날선 목소리가 10여년간 뒷걸음질 친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목도하면서 그가 느끼는 절망과 아픔 때문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하지만.

난 도대체 이 여행의 목적을 모르겠다. 부제로 "민주화 속의 난민화, 그 현장을 가다"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책 속에선 "현장"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그 나라에 도착했다라는 간략한 서술 이후, 이내 정치적 상황이라던가 역사적 배경과 같은 설명으로 건너뛰어 버린다. 이 설명들이 유용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들은 책상머리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지식들 아닌가. 저자가 그 나라까지 굳이 찾아가서 생색내며 쓸 필요는 없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여행기라는 틀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감", 말 그대로 "현장"의 당사자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어떤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는지 아닐까.

물론 현장의 이야기도 일부 실리긴 한다. 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는 다분히 고압적, 심지어 독선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빈민운동을 하는 말레이지아의 청년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언급하자 "당신, 공산당이야?"(말로 한 건 아니지만 생각으로) 라며 선을 긋는가 하면, 미얀마 정부가 싸이클론 피해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장 활동가를 외세에나 의존하려고 하는 무력한 세력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요컨데, 저자에겐 현장의 움직임보다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는 이도 저도 못마땅한 현실을 뛰어넘는 희망으로 그 실체조차 모호한, 그래서 편리한, "민중"이라는 이름을 호명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정부의 도움을 바라거나 기다리지 않았어요. (...) 전신주의 전선은 언제 가설될지 몰랐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쓰러진 전신주를 세웠어요. 뭐랄까. 그건 마치 코뮌을 보는 것과 같았단 말이지요."
그는 그 현장에서 민중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했다. (...) 그러나 늦지 않게 그가 느꼈던 그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싸이클론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속에서 미얀마의 민중들이 홀로 분투하는 까닭은 코뮌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미얀마의 군사정부가 복구에 힘을 쏟기는 커녕, 국제사회의 원조마저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저자는 양비론을 들고 나선다. 군사정부도 나쁘지만, 원조를 시발점으로 개방을 강요하는 서방 국가들의 과거 전례가 군사정부가 문을 닫아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 자체는 맞는 얘기다. 하지만 당장 생사의 기로에 선 민중들에게 구호물자가 더 시급한지, 서방의 원죄를 묻는 것이 더 시급한지는 분명한 일 아닌가. 원론이나 읊다가 생뚱맞은 민중예찬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무책임함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자가, 그리고 우리가 제 아무리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바란다고 해도, 우리가 그 민주주의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사회의 진보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만이 담보할 수 있고, 담보해야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 어깨를 걸고 연대하는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이해하는게 우선이 아닐까. 의견이 다르고 전망이 다른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역설적으로 저자가 처음 방문했다는 네팔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유익했는데, 그것은 저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혹 저자는 그동안 보아 온 다른 국가들의 사정을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쿠바에서의 낯설음과 놀라움이, 그리고 그 경험 앞에서 저자가 보였던 깊은 사색이 그립다.

ps. 좋았던 책보다 나빴던 책 리뷰 쓰는게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성격이 나빠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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