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세계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 / 권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건 대학 때 [언론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교수님은 한국 언론이 전하는 외신 보도가 몇몇 소수의 통신사에 지나치고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균형감 있는 국제 감각을 원한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문판을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거라고 추천하셨다. 물론 언론학 전공도 아닌 이공계 학생이 매달 일정액을 내면서까지 굳이 구독을 했을리는 만무했으니(-_-;), 교수님의 추천은 그저 추천으로만 남았을 뿐이었다. 대신, 그 기억 덕에 지금이라도 이렇게 이 책을 구해 보았으니, 교수님의 추천도 그냥 헛수고는 아니셨다고 마음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세계는 넓다. 그리고 넓은 세계만큼이나, 다양한 이슈들이 지구촌 여기저기에 산적해 있다. 재밌는 것은, 한중일과 서유럽, 미국과 연관된 이슈들은 대개 익숙한 반면, 그 외의 지역 문제들은 대부분 생소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교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접하는 외신의 출처가 한정된 탓이다. 꼭 어떤 "주장"만이 서구 중심주의인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세계를 보는 창 자체가 이미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창에 비친 풍경이 제 아무리 진보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더라도, 한정된 주제와 한정된 지식만으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한 때 식물에서 뽑아내는 바이오 디젤이 화석 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이오 디젤 생산이 옥수수 등의 가격을 상승시켜 제3세계의 기아를 유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것이 다른 관점에서는 부당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이슈들을 폭넓게 접하고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일방적 소스만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눈 양쪽에 차단막을 세워 한 곳만을 보고 뛰게 만든 경주마처럼, 우리도 부지불식간에 서구 중심적 시각과 사고를 체득하며 살 뿐이다.
프랑스 <르몽드> 지의 국제문제 전문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펴 낸 이 책은, 다른 시각에서 세계의 구석구석을 한번씩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물론 이들 역시 또 다른 서구 언론 중 하나일 뿐이지만, 적어도 미국의 시각에서 벗어나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각각의 이슈를 길게 다루지는 않지만, 주간지답게 요점을 꼭꼭 짚어내기 때문에 전반적인 개요로는 손색이 없다. 넉넉한 판형 속에 담긴 자료도 충실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잘 도표화해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수업 등에서 참고 자료로 써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읽다보면 한국에 소개된 시점이 너무 늦은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최대 2006년까지의 상황을 담고 있는데, 책이 국내 출간된 것은 2009년이니 어떤 이슈들은 이미 과거의 사안이 되어 시의성을 잃은 경우도 많다. 현재 진행형의 이슈들도 2006년 이후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전혀 힌트가 없어 일일히 찾아봐야만 한다. 번역하면서 출판사에서 간략히라도 정리해 줬으면 어땠을까. 물론 독자에게 남겨진 숙제라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같이 게으른 독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별점 한 개를 깍는건 순전히 그 때문이다. 게으른 독자의 월권행위라면 할 말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