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판매학
- 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지음 / 홍혜걸 옮김 / 알마 / ★★★★ 

예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업의 이미지 광고를 보면 그 기업의 부족한 점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삼성이 '인간 경영'을 외친건 삼성이 가장 '비인간적인' 경영을 해 왔다는 뜻이며, 대우가 '탱크정신'을 내걸었던건 가장 내구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만들어 왔다는 뜻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막스 베버가(문득, 길 가다 불심검문에 걸린 친구가 "막스" 베버 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잡혀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생각난다) 자본주의를 놓고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어쩌구 했을 때, 자본주의의 정체는 이미 뽀록났는지도 모르겠다. 근검? 절약? 이제 다 아는 처지에 흰소리 그만하자.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은 절제가 아니라 탐욕 아닌가.

물론 탐욕의 역사는 굳이 자본주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탐욕은 사실상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고, 수많은 '비윤리'적 행위의 직접적 원인이 되어 왔다. 그래서 인류가 만들어낸 많은 종교와 사상들은 탐욕 자체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터부시 함으로써, 탐욕의 결과로 인해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코자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권력과 결합된 탐욕이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져던 적은 없었지만, 윤리적 요구가 최소한 권력의 폭주에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 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최소한 윤리는 더 나은 가치를, 그리고 그러한 윤리가 지켜지지 못하는 현실은 지양해야 할 죄악으로 인식되었으니까. 그렇게, 탐욕에 저항하는 윤리가 있었기에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지속 가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탐욕과 그 탐욕을 억제하는 윤리 사이의 균형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욕망들이 시장을 통해 경쟁함으로써 그 효율성을 획득하는 체제이다. 당연히 이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탐욕이 장려(?)되어야 하는데, 사회의 존속을 위해 탐욕의 억제를 요구하는 윤리와 모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데올로기라는 상부구조가 그 경제적 토대와 상충될 때 선택의 폭은 넓지가 않은 법이다. 토대를 전복하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그러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윤리의 개념이 희석되는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오늘날 윤리는 기껏해야 개인적 차원에서만 통용될 뿐, 사회 전체를 규율하는 원리로서의 역할은 '법'의 역할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법은 윤리를 대체할 수 없다. 그것은 법이 '가치'가 아닌 '행위'를 규정할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풀어놓은 탐욕이라는 괴물이 먹이감을 찾아 끊임없이 법의 경계를 어슬렁 대더라도, 법은 선을 넘은 괴물의 특정한 '행위'만을 제제할 수 있을 뿐 그 괴물의 목에 사슬을 붙들어 매지는 못한다. 이 책에서 폭로하는 제약회사들의 행위들은 바로 그러한 괴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최소한 '합법'의 범위 안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진 질병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이윤의 수단으로 삼는 것, 그리고 심지어 잠재적인 부작용까지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합법적'이라는 이유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제 아무리 '합법적'이라 강변할 지라도, 그 비윤리성, 부도덕함까지 합리화 되는 것은 아니다.

제약회 사의 마케팅 기법으로 포장된 10개의 사례들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이 '비윤리성'의 선봉에 서 있는 지식인들의 모습이다. 제약회사들의 마케팅 기법은 크게 두 가지(첫째, 정상적 삶의 과정와 질병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환자, 즉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거나, 둘째, 질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으로 축소시켜 치료의 방향을 약물치료로만 한정하는 방법)로 분류될 수 있는데, 양쪽 모두 제약회사로부터 스폰서를 받으면서도 독립적인 척 행세하는 지식인들(의사, 교수 등 소위 의약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지식의 권위를 쓰고 담론의 형성과 그 헤게모니 투쟁을 제약회사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들의 행동은 모두 합법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도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슷한 사례들이 2009년의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관찰된다. 비무장의 시민을 곤봉으로 후려치거나 방패로 내려 찍으면서 합법적 진압이었다고 강변하는 경찰. 사생활이 담긴 e-mail을 검열하고 심지어 공개하면서 영장 받았으니 문제될 것 없다는 검찰. 상대를 모욕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의 한쪽 측면만을 강조하면서도 거짓은 아니니 문제될 것 없다는 언론.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권리금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며 사람들을 내쫓고 철거를 강행하는 건물주들. 그렇게, 합법적으로들 살아서 행복한가? 정말로 당신 자식들에게 처벌받지만 않으면 어떻게 살든 상관 없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아니다. 이건 나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거리를 보라. 저기 "아니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과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그저 작은 촛불 하나를 손에 들고, 이 시대에게 윤리의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합법/불법의 딱지로 가려지지 않는, 양심의 소리다. 이 책의 저자들과, 책에서 소개된, 제약회사에 맞서 싸우는 활동가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미국의 사례를 가지고 쓰여진 책이지만, 많은 내용들이 국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질병이 소개되고 재정의되는 과정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주장처럼 독립적인 전문가 집단은 극히 부족한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책들을 통해 양식 있는 의약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역자가 홍혜걸 씨라는게 나를 꽤 황당하게 했다. 의학 전문 기자 출신인 역자는 황우석 사태 때, 국익을 위해서라면 황우석 씨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도 눈감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윤리 따위 찜쪄먹어도 그만이라는 역자의 태도야말로 이 책과 가장 거리가 먼 태도 아닌가. 어쩐지, 잠실 경기 3루측 응원석에 앉은 롯데 팬마냥 어정쩡한 역자 서문이 눈에 걸리더라니. 번역하면서도 꽤 많이 찔렸을 것 같다.

좋은 책이지만 좀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사례는 다양하지만 결국 제약회사가 마케팅을 통해 질병 자체를 만들어낸단다는 같은 구조니까. 거기에 역자를 잘못 고른 죄까지 더해 별점 하나 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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