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 이정익 지음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

이 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조금은 부담스러운 저 제목을 지나쳐 바로 부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만화로/보는/한국/현대/인권사... 라니. 만화라는건 알겠는데, 한국 현대사라는건 알겠는데, 마지막 "인권사"라는 단어가 쉽게 혀에 감기지가 않는다. 그냥 현대사도 아닌 현대 인권사.

기본적으로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이지만, 그 기록이 결코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기록은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 더 이상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같은 사실도 그것이 어떠한 맥락 속에 놓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진리값을 가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역사는 그것을 기록한 이의 사관에 많은 부분을 기댈 수 밖에 없다. 불행히도,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역사는 학문의 영역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정치의 영역, 권력 투쟁의 장으로 이끌려오게 된다. 어느 쪽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학문의 논리가 아닌 헤게모니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인식에 반기를 든 학파가 실증주의다. 실증주의는 객관적 사실에 최대한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맥락을 죽이고, 실제 벌어진 일들 자체를 기록하라는 주문.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복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이러한 현실에 접근할 경우, 대개 우리는 건조한 팩트들 속에 매몰되어 길을 잃고 만다.

예컨데,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고 수탈한 것도 하나의 팩트고, 그들이 조선 땅에 철도를 놓고 공장을 세운 것 역시 동등한 진리치를 지닌 팩트가 된다. 이 팩트들만 놓고 보면 일제가 우리를 강점하여 수탈했다는 주장과 그들이 조선을 근대화했다는 주장 모두 각자 나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마찬가지의 논리 구조는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는 주장과 박정희가 산업화를 이루었다는 주장이 모두 옳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실증주의는 역사의 모든 교훈을 무화시킨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아니 정확히는 옳고 그른 것은 없고 그저 모두 팩트만이 남을 뿐이라는 이 역사관은 역사적 책임을 묻고 그 죄과를 가리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을 희석시키고 만다.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실증주의가 현실 속에서는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특히 멀지 않은 가까운 과거,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말이다. 실증주의적 역사인식을 가장 강조하는 집단이 조선일보를 위시한 극우세력과 그들을 보위하는 지식인들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때문에, "인권사"는 길을 잃은 현대사 논란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한 시도가 될 수 있다. 그건 우리가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럭거리며 부서지는 팩트들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건 인간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역사이다. 이 책이 "인권사"라는 부제를 달고 말하려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리라. 유신정권의 칼날이, 인혁당 사건의 억울한 외침이, 그리고 80년 광주의 총성이 결코 다른 사실들(경제 발전? 안정?)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없는건 바로 인간의 피가 홍건히 베어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정공법이다. 가해자는 침묵하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화해를 구걸하고, 그들 중 일부가 마치 대표인 양 용서를 선언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에 날리는 따끔한 일침이다. 만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애니메이션 전공의 작가가 그려내는 그로테스크한 화면은 그 무게를 적절히 담아낸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꽉 짜이지 못한 듯한 느낌도 주지만, 모든 것이 가벼운 이 시대에 78년생이라는 어린(?) 작가가 그려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Epilogue를 읽고 나서, 앞서 지나친 제목으로 다시 눈을 돌린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라는 제목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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