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

우연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그 쪽을 향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부쩍 환경과 생태에 대한 책들이 손에 자주 잡히는 편이다. 사실 이 책을 집어든건 수채화풍의 삽화가 맘에 들어서였는데, 뜻하지 않게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담긴 책이라서 놀랐다. 가볍게 읽으면서도 부드럽고 깊이 있는 울림. 동화는 이래서 좋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책은 학문적 호기심으로 가득찬 주인공이 거인족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하지만, 세상에 거인족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고원에서 살아가는 거인족들은 피부로 자연과 공명하며 이야기를 하고, 밤이면 별을 보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에 반해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경배하기는 커녕, 이익을 위해 그것을 파괴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주인공은 명예욕에 취해 거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남은 평생을 어부로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뻔한 얘기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이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 스스로의 터전을 망칠 것이라는 뻔한 이야기. 요즘은 툭하면 신문지상에서 환경 오염이 심각해서 조만간 심각한 위기가 닥칠 거라는 류의 기사를 볼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닥치는 대재앙을 다룬 스펙터클한 헐리웃 영화도 수많은 사람들이 봤다고 한다. 사람마다 심각하게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아마도 모두들 어렴풋하게나마 뭔가가 문제라는걸 알고 있을거다. 근데 왜 계속 이 모양일까?

물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함으로써만 기능할 수 있는 체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윤은 그 자체로 물신화된 욕망이기도 하지만, 이윤을 형성하는 방식 자체가 끊임없이 타인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체제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어떤 체제이건,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인간이 지구의 진정한 재앙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현경 교수는 "아름다움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거"라고 말했다. 그 분이 어떤 뜻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사실 정확히 모르지만, 그 말 자체는 내게는 상당히 역설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내게 있어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움의 반대에 있는, 즉 추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데 있다고 본다. 아마 이 책의 저자가 정성들여 묘사하는 거인의 아름다움은,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인간의 추함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일 것이다. 여전히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생명의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의 추함을 깨달을 때,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 반성할 때, 어쩌면 아름다움은 진정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른다.

ps. 책은 예쁜데, 사실 좀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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