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독서
- 사이토 미나코 지음 /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

이 책을 구입한건 책의 부제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 때문이었다. 음, 좋아. 이런 유형의 부제는 "훗, 너는 이미 다 간파되었다. 뻔한 녀석 같으니라고"를 강하게 암시하지 않는가. 라는게 내 생각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어째서 저 문장을 그렇게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베스트셀러에 대해 갖고 있는 냉소가 선입견으로 작용했을거다.

막상 주문한 책을 받고 나니, 내가 잘못 짚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번역출판한 곳 이름이 좀 수상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라니. 책날개에 적힌 역자서문(들어가며) 발췌는 더욱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책을 만드는 사람 처지에서는...(중략) 이럴 때 누군가가 좀 알려줬으면 싶기도 하다. 여기에 매우 맞춤한 책이 있다."

라니. 오 마이 갓. 혹시 이거 베스트셀러 만들기 교본 같은 책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를 현혹시킨 부제는 원본에는 없고, 번역출판사에서 넣은 것이다. 이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혼란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지 아니면 황당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자의 의도와 이렇게 어긋나는 책은 처음 본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 사이토 미나코가 잡지에 연재했던 "백만인의 독서"라는 칼럼을 모은 것이다. 칼럼의 기획 의도를 간단히 정리하면, "어떤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상당수는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건네들은 정보로 하는 말들이다. 그렇다고 뒷담화나 하려고 책을 일부러 사서 보라고 하기 뭐하니, 내가 대신 읽어보고 소감을 말해주겠다." 정도가 되겠다. 베스트셀러들을 유형별로 분류한 것은 단행본으로 묶으면서 편의상(?) 분류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대충 글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대해 맘 먹고 달려들어 분석한 글이 아니라, 대상이 베스트셀러들로 제한된 주관적인 서평집일 뿐이다. 책을 읽다보면 (몇 권의 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보여주지만) 대개의 경우는 "도대체 왜 이런 책이 잘 팔리는거야?"라는 비명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그리고나서 "이래서 팔린게 아닐까?"라는 자문자답을 하는데, 그 답을 유형별로 분류한게 6가지가 나온거다. 때문에 이 유형 분류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이해해줘야지"라는 비아냥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책은 상당히 재밌다. 너무나도 일본어스러운 문체와, 저자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한 말투를 보고 있으면 계속 낄낄거리게 된다. 특정 책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꼭 균형잡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날카로운 관점들은 그녀가 결코 가볍게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녀의 시각 역시 하나의 입장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읽으면 상당히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 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일본 베스트셀러 중에는 한국에서도 히트친 책들이 여러 권 있으니, 한국적 상황과 접목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결론은? 재밌는 책이다. 번역출판사가 전혀 다른 의도로 붙인 부제 덕에 이 책을 사게 됐으니 고맙다고 해야할까. 역자 양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본 나고야에서 생활하고 있"다는데, 어째 월급 받으며 살려다보니 대충 아전인수격으로 책 의미를 뒤틀어 번역한게 아닐까도 싶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이런 요소들을 잘 버무린 책을 만들면 베스트셀러가 되겠군!" 이라고 외치는 출판 기획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런 얼빠진 기획자가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며 말리고 싶다. 이 책은 그냥 한 권의 만담집에 가깝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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