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팝니다
- 칼 N. 맥대니얼 외 지음, 이섬민 옮김 / 여름언덕 / ★★★★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꿈꾼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바지만, 이 전지구적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초래한 전지구적 환경 파괴 앞에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는 그 절박함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과거 이념의 세기에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했었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야 제대로 알려진 사회주의의 실상은 자본주의보다 심각하면 심각했지 더 나을 것은 없었다. 친환경 낙원을 선전하던 동독의 영토 구석구석은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고, 무리한 계획 농업의 추진으로 토지의 지력 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자연은 스스로의 재생력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회주의라는 대안 모델이 붕괴하자, 많은 학자들이 다른 대안 모델을 찾기 위해 관심을 돌린 분야가 바로 인류학이다. 우리가 흔히 세계사라 칭하며 배우는 인류의 역사는 사실 서구 문명의 역사일 뿐이다. 같은 시기 지구의 구석구석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문화와 사회가 수천년간 안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서구의 총칼 앞에 자신들의 문화를 강제로 포기해야 했던 이들 사회가 어떻게 수천년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는가를 재조명 함으로써, 인류학은 인간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유지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코자 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의 역사는 지속 가능한 사회의 한 사례이자,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우루는 사실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나우루인들은 생존의 방법을 찾아내었고, 적절한 인구를 유지하며 수천년간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왔다. 하지만 18세기 서구인들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은 바뀌기 시작했다. 서구인들과 함께 들어온 총기류들은 과거 원만히 해결했을 분쟁들을 내전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특히 20세기 초 나우루에 엄청난 양의 양질의 인광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우루는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만다.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그리고 일본이 번갈아 점령한 후 나우루는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유엔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신탁통치를 받는다. 이 기간 동안 나우루인들은 서구 열강에 일방적으로 수탈되어 오던 인광석 자원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서서히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독립과 함께 나우루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나우루는 섬의 유일한 자원인 인광석을 판매하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한 부분으로 남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과거처럼 자급자족의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전자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보장했지만 언젠가 인광석이 고갈되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명백했고, 후자는 경제적 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들이 수천년간 유지했던 안정적인 사회로 돌아가 자신의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미 서구적 물질주의에 익숙해진 나우루인들은 물론 전자를 택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 나우루의 인광석은 드디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광석을 팔아 얻은 수입으로 나우루는 남태평양에서 가장 부유한 섬 중 하나가 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비만율이 높고 당뇨, 고혈압 등의 질병이 만연하며, 수많은 생물종이 사라진, 다시 말해 낙원과는 거리가 먼 섬이 되었다. 이제 인광석이 고갈되어 가는 시점에 섬의 경제는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나우루 정부가 인광석 고갈에 대비해 기금을 마련해두긴 했지만, 아시아발 경제위기(한국의 IMF 사태도 이 중 하나다) 등으로 인해 기금 운용은 실패해버렸다. 게다가 이제 황폐해진 섬의 환경은 예전 같은 자급자족의 시스템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외지인들이 떠난 후 흉물스럽게 버려진 건물들과 황량한 폐광들에 둘러쌓여 서 있는 나우루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우루의 오늘은 인류가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해가며 지구의 자원을 무작정 소진할 때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결과와도 같다. 일차적으로, 나우루의 파국은 유한한 천연자원(특히 화석연료)에 대책 없이 의존하고 있는 현 자본주의 시스템이 조만간 경험하게 될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태양열이나 풍력 등의 지속 가능한 대체 에너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그 양이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다량의 온실가스마저 뿜어내는 화석연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이유는 단 하나, 눈 앞의 이윤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윤 앞에 눈이 멀어버린다. 자원이란 언젠가 고갈되기 마련인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애써 모른채하며 오늘의 돈벌이에 탐닉한다. 하지만 이 이윤이란 결국 미래로부터 가불해 온 것에 불과함을 나우루의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나우루의 경험(그리고 라파누이와 같은 여타 종족들의 경험)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과 그렇지 못한 시스템 사이에 몇 가지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가장 큰 조건은 주변의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구 수를 적절히 조절하여 인간이 소비하는 양이 자연의 재생 속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여 가능한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 대신, 지속 불가능한 사회는 생태계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파괴한다. 파괴당한 생태계는 인간에게 음성 피드백을 보내지만, 인간이 그 위기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속 가능한 사회는 결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적 성과를 버리고 원시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 현명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과학적/기술적 성과들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은 과학 기술이 그 자체로 객관적인 지식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체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지향을 가지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과 같은 다큐멘터리 필름이 기여한 바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기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기후 변화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음성 피드백이다. 만약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몇몇 종족이 걸었던 쇠퇴의 길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재현하게 될 것이다. 기후 변화 협약과 같은 국제적 룰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은 파국을 막는 첫 걸음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가 형성해 온 "지속 불가능한" 문명을 "지속 가능한" 문명으로 바꾸기 위한 근본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나우루의 교훈은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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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3 15: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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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4 0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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