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 오주석 지음 / 솔 출판사 / ★★★★★ 

한국 사회가 "민족"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방식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외형적으로 우리에게 "민족"은 불가침의 성역이다. 특히 역사 문제에 있어 민족의식은 가히 맹목적이라 할 만한데,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단고기] 류의 허황된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조차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은 말 그대로 거의 無관심에 가깝다. 그나마 우리가 우리 역사에서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은 대개 "세계 최초",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들이다. 그 외의 것들은? 모른다. 다른 문화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지 않으면 아예 관심을 가질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한민족에 관한 신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군으로부터 시작해 내려오는 단일 핏줄이라는 혈통주의적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민족"을 한반도라는 공간적 틀을 중심으로 수천년에 걸쳐 이어진 문화적 공동체라고 이해하고 있다. 수백 세대에 걸쳐 삶이 이어지면서 거기서 사회가 형성되고 정치체(政治體)가 만들어지고 예술이 꽃피니, 그것이 우리의 민족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문화는 (다른 어느 문화화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축적해 온 세계관의 산물이다. 각 문화가 저마다의 역사와 세계관을 갖기 마련이거늘, 이런 문화를 서로 비교하여 우열을 가린다는건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

예컨데, 우리가 흔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자랑하는 [직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직지]는 분명 서구의 구텐베르크 활자본보다 "오래되었지만", 사실 우리 문화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일회적 산물일 뿐이다. [직지] 이후에도 우리 문화에서는 대부분 목판인쇄가 사용된 반면, 오히려 구텐베르크 활자본은 서적(특히 성서)을 대량 생산하는 길을 열어 근대 서구 문화의 기초가 되엇다. 이렇듯 문화사적 의의가 전혀 다른 이 두 유물을 비교하며 단지 시기적으로 더 앞섰다는 이유만으로 [직지]를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으로 자랑한다는건, 그만큼 우리가 우리 문화를 스스로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외부와의 비교 우위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는 증거가 된다.

사실 이러한 민족 문화 인식은 민족과 국가를 등치시켜 국민 동원의 기제로 활용했던 개발/군사 독재 시대의 잔재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암송하게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시작했듯이, 당시 독재 정권이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설정하며 국민들을 호명하는 방식은 "민족"이라는 이름을 통해서였다. 전국의 사찰과 옛 건물들이 복원이라는 미명 하에 획일적인 양식으로 틀지워지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잇는 문화 유산들을 선별하여 "세계 최초/최고" 등의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게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를 우리 문화 자체의 맥락에서 그 생명력을 찾기보단, 밖에 내보여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식의 외형적 자긍심을 강조한 문화 정책은 오히려 많은 우리 예술품들의 참 가치를 사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렇게 껍데기만 남은 문화에 누가 진심으로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흐름이 그나마 바뀌기 시작한건 민주화 이후, 아마도 90년대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문에 나왔던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 문화를 외형적 결과물로만 보는게 아니라 그 근본을 알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서 그 참 가치가 드러난다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저자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책들을 내놓으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웹툰 [도자기] 같은 만화도 그 중 하나.

고 오주석 선생님도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써오신 분이다. 이 책은 오주석 선생님의 강연을 책으로 옮겨놓은 것인데, 읽고 있자면 청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이야기를 감칠 맛나게 끌어나가는 능력이 일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혹 언뜻 내비치는 과도한 민족 의식이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 민족 의식이 맹목적인 칭송이 아닌 깊이 잇는 이해에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옛 그림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살펴본건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아무래도 우리 전통 문화(특히 조선 시대)의 근저에 깔린 성리학적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그 세계관을 반영한 작품들 역시 그 지향점에 얼마만큼의 깊이로 다가서냐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의 커다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구의 예술이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철학과 사조들이 충돌해가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문화가 과거의 문화와 섞이는 방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세계관이 급격히 변화할 때 단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시대를 거쳐 미국의 절대적 영향 하에서 비주체적 근대화를 이룬 우리 역사에서 이 단절은 치명적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한 서구의 예술이 그 연속성을 유지하며 현대 예술 속에 녹아 있는 반면, 우리의 문화는 그 본래의 뜻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단절의 간극이 너무 커서 서구화된 오늘날의 문화와 쉽게 조화시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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