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영이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성범죄에 대한 양형이 훨씬 무거워야 된다고 생각하며, 재범 방지를 위한 조치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실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사건 자체에 대해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분노와 대책(?)들에는 대체적으로 나도 공감하고 같은 의견을 가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편하다. 이 사건이 소비되는 방식이. 불편하고, 심지어 역겹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온갖 곳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다. 작정하고 쓴 블로그 글도 있고, 포털 등에 댓글로 사건 내역을 올려놓은 경우도 많다. 정의감이 충천하셔서 그런 방식으로 널리 사건을 알리려는 분들, 나와는 그저 기질이 다른 분들이려니 하고 좋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넘어갔다. 근데, 이번엔 도저히 못 참겠더라. 너무 참혹한 내용이라서. 너무 디테일해서. 속이 울렁거린다. 묻자. 꼭 그렇게 하나하나 써내려가야 당신은 분노 게이지가 제대로 충전되나?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일요신문" 등으로 불리는 타블로이드 주간지들. 거기 보면 꼭 "XX 기자의 사건 X 파일" 이러며. 강간 사건 등을 뒷이야기 식으로 적어 놓는다. 내용을 읽어보면 아주 구체적이다. 마치 눈 앞에서 본 것인양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피해자가 어떻게 저항했는지, 가해자가 어떻게 피해자를 유인하고 쾌락(?)을 얻었는지를 XXX 해서 YYY 하고 ZZZ 했다는 식으로 구구절절 적어놓는다. 물론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기자의 사명의식으로 써내려간 기사란다. 헐. 우리는 이런 글을 그냥 '포르노'라고 부른다. 

다시 원래의 사건으로 돌아와서, 과연 그런 디테일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통의 디테일이 아니다. 더욱이 육체적 상해의 처절함이 사건의 경중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아니다.(아니면, 그냥 강간 정도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건가?) 그저 작은 한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공격당해 몸과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그 앞에 펼쳐진 긴 삶의 시간 내내 그 고통을 계속 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눈물나게 가슴이 아픈 일 아닌가. 그렇게 상처 부위를 들추어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그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선정성과 가학성. 그건 포르노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속에서 제 아무리 정의를 외친다고 해도 포르노는 포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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