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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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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서사와 수다스러운 인물들에 익숙해 있던 요즈음이었다.
'화성의 공주'를 덮고 이젠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직후에
한숨에 읽었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 여기저기 책소개에 실린 것처럼 - 건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건조하지 않은 글.

지레 멈추었다가 쉬었다가를 몇번씩 반복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마지막장까지 갔다.
(그럼에도 하루 저녁에 다 읽을 만큼의 분량이다. 적어도 양적으로는 그렇다.)

스물이 되기 전에 남자를 낳은 어머니는, 창녀이며 거지이며 도둑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어미가 창녀가 된 이유가 무엇이든, 그 사이에 전쟁이 있었건 말건, 그가 누구를 사랑했건 말건, 누구를 기다렸건 말건,
모든 것은 거기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남자가 이십년 (십오년? 언제나 이게 문제. 이름, 시간, 따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독서 습관) 내내 기다린 것이,
그의 사랑이었는지,
그의 가족이었는지,
혹은 고향이었는지.

어찌되었건, 결국 그것은 남자에게 오지 않았고, 남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는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앞장을 읽고, 다시 그 장을 읽고.

읽는 동안은 몰랐던 서늘함이 한 순간 마음을 흔들어서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뒤적였다.

충격요법이라도 받은 것처럼
잠재웠던 기억들이 하나씩 다 걸어나왔고,
그립고 안타깝운 마음이 자꾸만 더하고 또 더해져서,

결국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남자의 모습만 떠올리려고 애쓰면서 마음을 달랬다.

소설쓰기의 작법을 알지 못하는 나는,
이런 이야기도 작가의 설계나 짜임에 의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적잖이 실망스럽겠지만 (계산이나 의도없이 그저 써내려간 것이면 싶은 마음에) 그래도,
이런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인생이 궁금하고 두렵고 그렇다.
자꾸 Bjork 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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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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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지막 숨결'은 책 표지에 있던 소개글에서 처럼,
아쉬움에 붙잡을 수 밖에 없으면서 동시에 주저하게 되는 책이었다. 배송을 받고도 며칠을 책꽂이에 잠재워둔채.
처녀작 혹은 미발표작, 미완성작 같은 이름이 붙어 나오는 것들을 선택할 때는 조심스럽다.
내 소설읽기가 굳이 한 사람의 작가를 뚫어보는 안목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재미있는 소설을 즐기는 데에 만족하는 수준이라, 누군가 선물처럼 내놓은 이야기 한편이면 족한 것을, '누구'라는 명함에 끌려 이전의 만족감을 괜히 상처내고 싶지 않아서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폴 오스터라는.)

나는 어떤 쪽인고 하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너무 저릿저릿해서 다른 누구에게도 권하지 못하는 쪽이다.
'자기 앞의 생'이라면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마지막 숨결'에서는 에밀 아자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제대로 읽었느냐고 물어온다면 당연히 자신없지만, 여튼 그랬다.
어떤 작품들은 거칠고 강하고 너무 가학적이었고, 어떤 작품들은 너무 자전적이어서 불편했다.
작가가 품고 있던 습작노트를 훔쳐본 기분이다.
마냥 좋지만은 않다.('마지막 숨결'한편을 빼고는.)

흠, 그러니까,
이전에 로맹 가리의 사진을 보았을 때는 고집스럽지만 쓸쓸하고 예민해서 안쓰러운, 그런 기분을 느꼈는데, 이 작품집을 읽고 찾아본 사진들에는 괴팍하고 강압적이고 시니컬한 노인이 있었다.
작가에 관한 평론이나 자서전을 읽은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작가의 다른 모습이 보여 당황스러운 기분.

그래도 역시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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