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John White_ an idle moment
 

'명연명음'을 통해 바흐의 브란델부르크 협주곡 5번 d장조를 듣고 있었다. 

음 하나 하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나는 그 전에 모종의 결심을 했고, 내 뺨을 한 번 세게 후려쳤다.  

그 비수처럼 날아와 새겨지던 음들의 명철함과 투명함을 기억하리라.   

어쩌면 원래 그렇게 투명하고 직선적인 것인데,  

내 스스로 애써, 덮어 씌우고 시야를 흐리고 온갖 덮개로 가려왔던 것이라는 걸,  

이미 수천번 경험했던 그 절감을 이젠 인정하고 싶어졌다.    

 

   
 

Winterreise

겨울나그네

von Wilhelm Mueller

정만섭 역

1.안녕히


나는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

5월은 수많은 꽃다발로

나를 맞아 주었지

소녀는 사랑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결혼까지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온 세상은 음울하고

길은 눈으로 덮여있네


가야할 길조차도

내 자신이 선택할 수 없으나

그래도 이 어둠 속에서

나는 길을 가야만 하네

달 그림자가 길동무로 함께 하고

하얀 풀밭위로

나는 들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네


사람들이 나를 내쫓을 때까지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을까?

길 잃은 개들아

마음대로 짖어보렴

사랑은 방랑을 좋아해

여기저기 정처 없이 헤매도록

신께서 예비하셨지

아름다운 아가씨여, 이제 안녕히


그대의 꿈을 방해하지 않으리

그대의 안식을 해하지 않으리

발걸음 소리 들리지 않도록

살며시 다가가

그대 방문을 닫고


'안녕히'라고 적어놓은 다음

그대로 떠나리라

그러면 그대는 알게 되겠지

내가 그대를 생각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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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서현의 음악 수첩 : C장조 음악 *

1. Rossini// 현악 사중주를 위한 소나타 3번 C장조 1. Allegro//
Roel Dieltiens (지), Ensemble Explorations
4:06


<C장조로 표현한 어린이의 순수>

2. Mozart// ‘아 어머님께 말씀드리죠’에 의한 변주곡 K.265//
Christoph Eschenbach (Pf)
8:06


3. Prokofiev// 피터와 늑대 중 ‘피터와 작은새’//
조수미 (Narr.), Kent Nagano (지), 리옹 오페라 오케스트라
1:00


4. Prokofiev// 피터와 늑대 중 ‘승리의 행진’//
조수미 (Narr.), Kent Nagano (지), 리옹 오페라 오케스트라
4:50


<C장조의 종교적인 경건함>

5. Schubert// 6개의 라틴 미사 중 4번 C장조 D.452에서 1. Kyrie, 4. Sanctus, 5. Benedictus//
S. Eva Csapo, A. Sylvia Anderson, T. Alejandro Ramirez, B. Gerhard Faulstich,
Cappella Vocale Hamburg, Martin Behrmann (지), Bach Collegium Berlin
3:17 1:36 3:08


6. Haydn//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 서주//
T. Anthony Rolfe Johnson, Br. Benjamin Luxon, Klus Tennstedt (지),
London Phil 합창단 & Orch
9:31


7. Mozart// 미사 C장조 ‘대관식’ K.317 중 Gloria//
S. Magda Kalmar, cA. Jutta Bokor, T. Attila Fueloep, B. Kolos Kovats,
Janos Ferencsik (지), Slovak Philharmonic 합창단 & Orch
4:35


8. J.S. Bach// 모테트 ‘주를 찬양하라 모든 이방인이여’ BWV 230//
Nikolaus Harnoncourt (지), Stockholm Bach 합창단, Concentus Musicus Wien
5:45


<C장조의 고전성>

9. Beethoven// 교향곡 1번 C장조 op.21 1. Adagio molto - Allegro con brio//
Christoph von Dohnanyi (지), Cleveland Orch
9:03


10. Stravinsky// 교향곡 C장조 1. Moderato alla breve//
Georg Solti (지), Chicago Sym Orch
9:40


<C장조의 정치성>

11. Shostakovich//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op.60 1. Allegretto//
Kurt Masur (지), 프랑스 국립 Orch
27:07


12. Dohnanyi// 현악 삼중주를 위한 세레나데 C장조 op.10 5. Rondo//
Lisa Batiashvili (Vn), Lawrence Power (Va), Sebastian Klinger (Vc)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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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와 커피도 한 잔 할 겸, 나만의 1월1일 새해맞이 루틴인, "구할 수 있는 일간지들  다 사서 기사 타이틀과 기획들 주마간산 훑어보고, 신춘문예 당선자의 당선소감과 심사평 읽기"를 하러 나갔다 왔다.  

눈뜨고 보고 있기 힘든 타이틀들과 구역질 나는 얼굴들 틈에 건진 건, (신년기획이나 신춘문예와 별 상관 없는) 두 개의 칼럼뿐.  (아, 그리고 얼마 전 삼청동 가는 길에 일행과 함께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겁한, 인사동 초입에 떡하니 흉물스럽게 서있던 그 뚱딴지 건물(괴물) 두 마리가 '한국일보 신사옥'이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한국일보는 뭐가 자랑스럽다고 일면 사진으로 그 건물을 광고해대는 건지, 그나마 신년기획 기사가 읽을 게 있는 편이라 참았다.)   

하여간 건진 기사 두 개는,

  

1. 하이든, 그래 난 왠지 모르게 당신이 좋더라.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opinion/201012/h2010123121011781920.htm&ver=v002 

   요근래 좋아진 작곡가가 하이든이라, 음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하던 차였다.  

   모짜르트 같은 상쾌함, 하지만 좀 더 단백하며 잔잔한, 섬세한 어른의 느낌. 

   베토벤 같은 진중함, 하지만 좀 더 유쾌한 의외성, 유머러스하고 여유로운 노인의 느낌.  

   아, 오랜만에 브렌델의 하이든 협주곡이나 연달아 들어야겠다.  

  

2.  한겨레의 언제나 좋은  '고전 오디세이' 칼럼.  

     그 어떤 신년 기획 기고나 수필, 시론보다 나에겐 "이걸 읽은 걸로 됐다" 싶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676.html 

 

   
 

평화(平和)를 뒤집으면 전쟁이 아니라 화평(和平, concordia)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 

 ‘화평’은 라틴어 concordia를 옮긴 말이다. 원래는 화합(和合)을 뜻하지만, 나는 ‘화평’으로 옮기고자 한다. 왜냐하면 화합이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이 제대로 돌아갈 때”, 그러니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할 때 드러나는 부수적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합의 원인으로서 실천적 행위와 활동을 뜻하려 할 때에는 ‘화평’이 더 나은 옮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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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슈나이더는 『죽음을 그리다(Morts imaginaire)』 마지막 장에서 나보꼬프의 죽음을 다루면서, 당시에는 이런저런 입소문과 나보꼬프 자신이 편지에서 언급한 것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던, 나보꼬프의 미완성 유작 '로라'1)의 실체를 보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는 ‘로라’의 내용과 ‘로라’에 대한 나보꼬프의 당시 심정을 나름대로 상상해보는데, 그의 상상은 그 작품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된 현재의 나보꼬프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답에 가깝다. 하지만 나보꼬프의 미완성 유작과 죽음에 대한 그의 ‘오답’은 나보꼬프를 읽는 행위에 대한 ‘정답에 가까운 진실’의 어느 한 축을 정확히 건드린다.  

그가 책 전체에서 작가들의 글과 말, 전설이 된 소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상상’해내는 작가들의 죽음에 대한 ‘정답이 아닌 해답’들이, 호사가적인 에피소드나 역사적 사실의 차원을 초월한 어떤 ‘진실’을 끊임없이 환기하고 증언하듯이.  

   


 


 

슈나이더의 지적대로 나보꼬프에게 죽음 테마에 대한 집착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웠다. 나보꼬프의 최초 영어 소설 『세바스찬 나잇의 참인생』부터 나보꼬프의 마지막 장편소설 『Look at the Harlequins!』까지 그의 거의 모든 소설은 이미 죽은 이들의 사자후, 죽어가는 이들의 유언장, 타인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고투, 예정되고 선고된 죽음을 이해하고 초월하기 위한 투쟁, 타인의 삶과 죽음을 자신의 버전으로 기록하기 위한 술책 등으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주인공들은 사형수거나, 자살 직전의 광인이거나, 이미 시체이거나, 작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실어증 혹은 치매에 걸려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거나, 혹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치는 소인이다.


 

그러나 나보꼬프에게 죽음은 삶이 그런 것처럼 완벽한 진실만을 말하지 않으며,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진실의 무게가 획득되지도 않는다. 

 “암시, 주저함, 시작, 삭제. 그 어느 죽음도 특별한 것은 없다. 모든 건 그저 사본, 번역본, 가필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슈나이더, 321쪽)  
     
슈나이더의 표현대로 나보꼬프의 소설에서 죽은 자와 산 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거나, 이름을 잃어버린 같은 사람”일 뿐이고, 삶의 기록은 죽음의 기록으로 어느 순간 전환되고, 죽음은 언제나 극중극 속의 가짜(pseudo) 죽음, 무대 위의 죽음, 광대극의 크랜베리 쥬스처럼, 장난처럼, 유희처럼 재현되고 반복된다.  

 

(나보꼬프가 공공연히 혐오를 표했던) 프로이트라면 아마, 나보꼬프가 소설을 통해, 마치 부조리 희극 같은 사건이었던 자기 아버지의 죽음1)을 반복 재현(working through)하고, 자신의 다가올 죽음을 끊임없이 미리 시연했다고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이트적인 해석은 오히려 ‘죽음’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나보꼬프의 작품을 관통하는 아킬레스건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태를 읽는 행위, 언어 행위의 사태와 겹쳐놓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읽는 행위는 의사(pseudo)죽음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동안 삶은 죽고 우리는 가죽음 상태에, 일종의 코마 상태에 놓인다. 우리가 읽은 페이지는 한순간 빛이 비춰졌다 영원히 명멸해버리는 삶-죽음 사태의 끝없는 반복이다. 우리는 고인이 된 작가들이 남긴 사자후를 읽고, 아무 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 그 유령들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토로를 종종 하는데,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죽음과도 같은 삶을 피하기 위해 읽는다'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 역시 죽음[과도 같은 고통]임은 작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다. [나는 이따위로 날로 먹는 글을 쓰면서도 “차라리 죽고 싶다”란 생각을 벌써 여러 번 했다. 입 안팎을 맴도는 생각나지 않는 표현, 단어의 맛은 죽음의 맛과 흡사할 것이다.] 



슈나이더는 나보꼬프를 읽는 독서 행위에 수반되는 쾌감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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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엇인지 너무도 절절히 잘 아는 나보꼬프의 독자[내가 보기엔 그는 나보꼬필리아 수준이다]이기에, 나보꼬프가 부유한 나라[스위스]에서 사고사로 죽은 게 아니라, “책 때문에 죽었기를 정말 바란다”고 썼을 것이다. 그가 『사형장으로의 초대』의 주인공 친친나트의 마지막 소원인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을 끝내는 것”이 나보꼬프의 마지막 소원이었을거라고 믿는 이유는, 쓰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말, 말, 말”일 뿐이라 믿는 지독한 ‘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죽는 것은 생각보다 일찍 책을 읽지 못하게 되는 일”(338)이고 문학은 ‘살아 돌아온 것’(340)임에 다름 없기에.  

 

   
   

츠바이크의 방에 있는 의자 위에 놓인 포장된 원고더미, 사후의 수기를 담고 있는 흰 나무로 된 커다란 상자, 라신의 검은 사장, 발터 벤야민이 비공개 걸작을 숨겨놓은 작은 가죽 가방, 하드커버 표지에 숫자가 뚜렷이 적혀 있고 펜으로 연도가 적혀 있는 두꺼운 공책들이 가득한 디노 부자티의 가방(방에 있었다), 나보코프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미완성 소설, 푸슈킨의 책상 위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시, 윗도리 속에 꿰매져 있던 파스칼의 자필 수기 (에필로그, 337쪽)

 
   

  

                                         
 

‘죽음’에 대한 탐구로 시작한 그의 책이 결국 글, 독서, 책, 문학, 그가 죽은 뒤에 남겨질 책들[“난 책을 바라볼 때면 책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아니라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괴로워할 존재처럼 느껴진다.”(349)]에 대한 명상으로 끝나는 것, 그리고 그 탐구와 명상의 마지막 대상이 나보꼬프의 죽음과 그의 미완성 유작이었던 것은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ps. 미셸 슈나이더가 2009년 ‘로라’의 공개된 실체를 보고, 읽고 어떻게 자신의 ‘오답’을 보완[정정이 아니라]할 지 무척 궁금해진다.





1)   슈나이더 책의 한국어 번역자는 이 저작의 제목을 “괴짜 로라 :죽음은 유희다”라고 옮기고 있는데, 그야말로 괴이한 제목이다. 슈나이더의 원본에는 이 제목이 불어로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이 작품은 2009년 나보꼬프의 아들 드미뜨리에 의해 그 원본이 공개되고, The Original of Laura—Dying Is Fu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2)   그의 아버지는  단상 위에서 연설중인 자신의 정적으로 오인받아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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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모델은 영화배우 출빤 하마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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