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와 커피도 한 잔 할 겸, 나만의 1월1일 새해맞이 루틴인, "구할 수 있는 일간지들 다 사서 기사 타이틀과 기획들 주마간산 훑어보고, 신춘문예 당선자의 당선소감과 심사평 읽기"를 하러 나갔다 왔다.
눈뜨고 보고 있기 힘든 타이틀들과 구역질 나는 얼굴들 틈에 건진 건, (신년기획이나 신춘문예와 별 상관 없는) 두 개의 칼럼뿐. (아, 그리고 얼마 전 삼청동 가는 길에 일행과 함께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겁한, 인사동 초입에 떡하니 흉물스럽게 서있던 그 뚱딴지 건물(괴물) 두 마리가 '한국일보 신사옥'이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한국일보는 뭐가 자랑스럽다고 일면 사진으로 그 건물을 광고해대는 건지, 그나마 신년기획 기사가 읽을 게 있는 편이라 참았다.)
하여간 건진 기사 두 개는,
1. 하이든, 그래 난 왠지 모르게 당신이 좋더라.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opinion/201012/h2010123121011781920.htm&ver=v002
요근래 좋아진 작곡가가 하이든이라, 음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하던 차였다.
모짜르트 같은 상쾌함, 하지만 좀 더 단백하며 잔잔한, 섬세한 어른의 느낌.
베토벤 같은 진중함, 하지만 좀 더 유쾌한 의외성, 유머러스하고 여유로운 노인의 느낌.
아, 오랜만에 브렌델의 하이든 협주곡이나 연달아 들어야겠다.
2. 한겨레의 언제나 좋은 '고전 오디세이' 칼럼.
그 어떤 신년 기획 기고나 수필, 시론보다 나에겐 "이걸 읽은 걸로 됐다" 싶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6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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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平和)를 뒤집으면 전쟁이 아니라 화평(和平, concordia)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
‘화평’은 라틴어 concordia를 옮긴 말이다. 원래는 화합(和合)을 뜻하지만, 나는 ‘화평’으로 옮기고자 한다. 왜냐하면 화합이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이 제대로 돌아갈 때”, 그러니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할 때 드러나는 부수적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합의 원인으로서 실천적 행위와 활동을 뜻하려 할 때에는 ‘화평’이 더 나은 옮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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