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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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을 하나 하자면,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2005년 6월이면 만화 『헬싱』을 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되는 때였고, '뱀파이어 소설의 전설'이라던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제목의 '나'는 뱀파이어이겠거니 생각해버린 것이죠.

이야기를 재밌게 듣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사전 지식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듣기'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눈 깜빡이는 것 손가락 까딱이는 것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즐거워하는 성격이라, 사전지식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면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다음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야기의 플롯도 장르도 모른 채로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볼 때는 사전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봤다고 할 수 있겠네요. 소재를 '잘못' 알고 있었고, 장르도 흔히 접하는 '뱀파이어 소설'의 공포가 아니었고, 작품의 길이도 책 두께만큼의 장편이 아닌 '중편'이었으니까요. (이 책에는 표제작인 중편 「나는 전설이다」 외에도 10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아직 보지 않았어도 이제 (책이 나온 지 10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여기저기의 홍보/감상글을 접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혹시나 모르실 분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3차 대전이 끝난 후, 환경의 파괴와 함께 알 수 없는 질병이 지구를 덮치게 됩니다. 이 질병에 걸리면 죽어도 부패하지 않고 낮에는 자다가 밤에 깨어나며 엄청난 파괴력과 치유력을 가진 존재, 즉 흡혈귀가 되어버립니다. 운 좋게도 의도하지 않은 예방주사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밤마다 공격해 오는 흡혈귀들과 싸우며, 이미 죽어 흡혈귀가 되어버렸을 가족들의 기억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낮에는 간밤의 전투의 뒤처리를 하고, 집 안팎을 정리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자고 있는 흡혈귀를 죽이고,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에 떨면서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어딘가 좀비 호러 액션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이 『레지던트 이블』이니 『새벽의 저주』니 하는 좀비 호러 액션물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라고 하긴 하지만요.) 하지만 위에 나열한 사건들은 문장 마지막에 말했듯이 주인공의 '일상'일 뿐입니다.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내용이 설마 '아침 몇 시에 일어나서 뭘 먹고 몇 시에는 어디를 갔다가 몇 시에 뭘 먹고 몇 시에 잤답니다'의 나열은 아닐 테지요.

글 앞부분에서 주인공의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일상으로 흥미를 자아낸 후에는 그 일상을 어긋냄으로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세상에 인간은 오직 나 하나뿐인가 하는 절망감에 젖고 그 절망감에마저 익숙해진 주인공에게 살아있는 개가 한 마리 등장하는 거죠.

이야기를 흥미 있게 만드는 하나의 축이 저 '독특한 일상과 그 일상의 파괴'라면 또 다른 축은 '흡혈귀의 전설에 대한 과학적 탐구'입니다. 흡혈귀는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난다. 흡혈귀는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된다. 흡혈귀에게 일반인이 피를 빨리면 그 사람도 흡혈귀가 된다. 흡혈귀는 흐르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흡혈귀는 마늘과 십자가를 싫어한다. 흡혈귀는 박쥐로 변신할 수 있다. 주인공은 (또는 작가는) 이런 수많은 속설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합니다.


사실 나는 「나는 전설이다」를 거의 끝까지 읽도록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헐리웃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참 재미있지만 공포소설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이야기는 갑자기 끝나버렸고, 저는 한참을 허탈해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끝낼 수가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뒤의 단편을 읽던 중 우연히 책장이 맨 뒤로 넘어갔고, 역자 후기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정확히는 역자가 인용한 「나는 전설이다」의 한 문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놀라서 후다닥 앞으로 넘겼지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아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책을 헐리웃 영화 보듯 읽다 보니 마지막 몇 페이지에 숨어 있던 절대적인 공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거죠. 스포일러가 될 테니 허연 글씨로 가리자면,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양눈박이가 병신이라.


뒤에 붙어 있는(이라고 표현하기엔 이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단편들은 작가의 색깔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일부 작품은 헐리웃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흥미진진하고, 일부 작품은 뒷장을 넘기기가 싫어질 정도로 무서우며, 일부 작품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미적지근합니다. (미적지근한 것들은 아마도 스티븐 킹을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사냥꾼」(영화 『사탄의 인형』을 연상시킨다)과 「매드 하우스」, 「전화벨 소리」를 가장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장례식」과 「전화벨 소리」는 그 소재의 재기발랄함이 넘쳐 흐르더군요.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루피 댄스」와 「엄마의 방」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싶기도 하고. 나머지는 그냥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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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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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경, 국립중앙박물관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볼거리가 어찌나 많던지, 한 번 휙 둘러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렸습니다. 오전 열 시 경에 들어가서 오후 다섯 시 경에 나왔지요. 중간에 밥 먹은 시간을 제외해도 여덟 시간 가량은 돌아다녔던 듯합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가장 오랫동안 보았던 곳은 구석기부터 신라까지의 여러 가지 유물들이었습니다. 같이 간 선배와 둘이서 하나 하나를 보며 저건 뭐에 쓰는 물건일까, 저건 저기에 홈이 왜 파여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떠들썩하게 감상했지요.

그러나 서화가 전시된 곳에서는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도무지 뭐가 멋있는 것인지, 이런 걸 보면서는 뭘 보고 감탄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구요. 딱 하나 감탄한 거라면,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미술책에서 본 것과는 달리 무지막지하게 길다는 것. 원래 그림 왼쪽에 그림보다 몇 배는 더 넓은 공간에 수많은 글이 쓰여 있다는 것. 그 외에는 그림을 보면서도 그냥 저냥 시큰둥했습니다. 가끔 미술책에서 본 듯한 그림이 나올 때만 살짝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죠.




며칠 전에 형이 회사에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책 표지가 너무 예쁘더군요. 제목도 예쁘게 찍혀 있고, 왠지 어딘가 알 수 없는 매력이 폴폴 풍겨나오는 책이었습니다. 마침 보고 있던 『제왕들의 책사』만 끝내면 바로 저 책을 보리라 결심했지요.

책 첫머리에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한자로 된 문장이라 외우지는 못하지만 문구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그런 말입니다. 공자가 말하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국민학교를 다닐 때엔 미술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이 가난해 물감을 살 돈도 없어, 오래되어 말라비틀어진 물감을 누나와 형과 함께 돌려 쓰면서도, 미술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하얀 화선지 위에 먹으로 글씨를 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 것도 글씨를 잘 쓴 것도 아니지만, 그 시간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미술 시간은 꽤나 즐겼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석고상으로 주먹을 만들어 본다고 한 달간 석고상에만 매달린 적도 있고, 부조를 만든다고 하다가 자료사진을 워낙 어려운 놈으로 고르는 바람에 두 달간 조각칼을 잡고 매달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 시험은 무지하게 싫었습니다. 누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누구 그림이 웅혼하고 누구 그림이 화려하며 누구 그림이 차분한지, 어떤 색이 가깝고 어떤 색이 차가우며 어떤 색이 어떤 색과 어울린다는 것을 왜 외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미술을 직접 할 때는 즐긴 적도 좋아한 적도 있었지만 시험을 위해서는 '아는 것' 이상은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술을 직접 하지 않은 이후부터는 이를 즐기지도 좋아하지도 못했던 겁니다. 물론 지식도 없으니 아는 것도 불가능. 미술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겁니다.


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신문사 기자를 하고 큐레이터도 한 후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작가는, 그 모든 경험과 재능을 이 책에 한데 모은 것 같습니다. 교수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에, 큐레이터로서의 풍부한 이야기거리, 기자로서의 글솜씨. 거기에 '그림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라는 것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미술에는 지식이 전무합니다. 사실 책을 펼치면서도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해당 그림의 작가, 작가의 친구, 그림의 대상, 그 시대를 살던 사람이 되어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어느 정도는 딱딱한 전공 지식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그림 읽기에 무지한 (나와 같은) 대중들이 쉽게 그림에 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책이라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단순히 몇 개 그림을 소개하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옛 그림이라는 것은 어떤 특징을 지녔고 어떻게 읽는 것인지도 간단히 알려줍니다. 예를 들면, 서양화는 마치 알파벳 X를 쓰듯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이동합니다. 그런 후에야 혹시나 놓친 점이 있을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훑어보는 거죠. 하지만 동양화는 마치 乂(벨 예)를 쓰듯이 먼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시선을 이동하고, 그런 후에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이동합니다.

이는 서양과 동양의 글씨 쓰는 법과 상통합니다. 서양은 종이의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글씨를 썼지만 동양에서는 종이의 오른쪽 위에서부터 왼쪽 아래 방향으로 글씨를 썼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시선을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래서 그림도 그런 식으로 감상하도록 그려져 있답니다.

때문에 전시회에서 구할 수 있는 동양화 도록은 지금의 좌철 방식이 아닌 우철 방식이 되어야 적합할 것이고, 전시관에서의 동선도 시계방향이 아니라 반시계방향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림을 읽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을 꼼꼼히 보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김홍도의 『씨름』을 보면서 그 구경꾼 하나하나의 얼굴, 어깨, 발을 살펴보면 그들이 뭘 하려 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자기 쪽으로 넘어질까봐 겁을 내고, 어떤 사람은 다음 선수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우왁스런 장면에 겁이 나 다른 사람 뒤에 숨어 있습니다. 이런 것 하나 하나를 발견하고 나면 이 그림은 단지 두 사람의 씨름이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십수 명 각각의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엄청난 배경지식 없이 그림을 즐기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평소에 쉽게 보아 넘기던 그림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아직은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다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림 읽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 많이 알게 되면 나중에는 그림 읽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그림 읽기를 즐거워하게 되겠지요.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공자가 말하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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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가 너무 많다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2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9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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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작년 여름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셰르부르의 저주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1』에 이은 작품입니다. 1권의 내용이 2권에 간단하게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1권을 먼저 읽어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독특한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읽어두시는 게 좋습니다. 그게 번거롭다면, 이 배경을 (도리어 원 책보다도 더) 상세히 설명해 놓은 요아킴 님의 블로그를 가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이쯤 해서, 이미 1권을 읽어보신 분들이나 저 블로그에 가 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그것도 귀찮아 안 가보신 분들을 위해 말주변 없는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 드리자면, 이 작품은 일종의 '대체역사소설'입니다. 지금의 역사와는 어찌 다른지 간단하게 살펴보지요.

12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에 있던 전쟁에서 원래 (역사에서는) 죽기로 되어 있는 왕이 죽질 않습니다. 이 왕이 잘 살아나서는 바보 아들 대신에 조카에게 왕위를 이양하는 겁니다. 이후로 영국은 승승장구, 프랑스를 합병해버립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남미를 뉴프랑스, 북미를 뉴잉글랜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말 그래도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이름하야 영불제국(英佛帝國)!

또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과학과는 다른 과학, '마술'을 사용하는 '평행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주인공 다아시 경은 노르망디 대공의 주임 수사관이고, 숀 오 로클란은 노르망디 대공의 주임 법정 마술사입니다. 다아시 경이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면, 숀 오 로클란은 마스터급 마술사로서의 능력으로 현장을 검증하고 단서의 진위를 파악합니다.

이 마술이라는 게 흔히 환타지에서 보이는 마술과는 달리, '극도로 과학화한' 마술입니다. 예를 들어 '투명' 마술은 인비저블Invisible이 아닌, 탄헬름Tarnhelm이라는 효과를 말합니다. 어떤 물체가 실제로 투명해지는 게 인비저블이라면, 탄헬름은 그 물체가 실제로 투명해지는 게 아니라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상자가 그 물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물체를 직시하지 못하거나, 시야 가장자리에서 보여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탄헬름이라는 말은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투명 투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목에 쓴 대로 CSI 마술 수사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말이 입에 맴돌아서 바로 제목에 쓰긴 했는데, 쓰고 나니 요아킴 님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군요.) 마술이 사용됨으로써 현실의 규칙을 깨뜨리고 추리를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누군가가 마술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마술로 이를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화약이나 총이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총으로 다른 사람을 쏘아 죽였다면 그것은 '추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겠지만, 지금 세상에서 누군가가 총으로 다른 사람을 쏘아 죽인다면 여러 가지 과학적인 수사 방법이 도입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1권 『셰르부르의 저주』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이 책은 장편 하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60여 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양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탄탄합니다. 환타지나 SF 독자뿐 아니라 추리 독자들도 굉장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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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1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는 사실 그리 좋아하는 장르는 아닌데 -사실 그렇게 말할 처지도 못됩니다. 뭐 본게 몇 개 안되니...- 이 책은 관심은 가던데 좀 어떨까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님의 리뷰가 많이 도움이 되네요. 재밌을 것 같아요. ^^
 
Happy SF - 과학소설 전문무크 창간호 1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
행복한책읽기 편집부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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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조금씩 SF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나우누리의 SF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하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번역 SF 단편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SF라는 것에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컴퓨터 하드에 SF 소설을 몇 백 메가씩 모아놓기도 했지요.

아이작 아시모프에 한참 매료되어 있을 때쯤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보니 형이 실수로 하드를 포맷했더군요. Orz... 그야말로 좌절이었습니다. 다시 소설을 구하려 했지만 이전에 비해 오히려 인터넷 사이트는 줄어들었더군요. 그러던 중 행복한책읽기라는 출판사에서 SF 총서를 간행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를 만나면서 저의 SF 읽기는 다시 시작된 거지요.

그러나 여전히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SF 시장은 극히 협소했고, SF 독자층은 극히 이분화되어 있더군요. 아주 오래 전부터 SF를 (전문적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될 정도로) 읽은 독자층이 있고, 아니면 저처럼 얼마 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층이 있더군요. SF라는 장르의 특성상 ‘고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번에 행복한책읽기에서 나온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는 이런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해결해줄 만한 책이라 할 만합니다. 현재 SF의 위상이라든지 국내 SF 출판의 현황 등을 비롯해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SF 작가인 테드 창의 대표작과 평, 인터뷰 등을 담기도 했구요, SF 영화에 대한 설명이나 창작 SF 등 여러 가지 유용한 내용이 빽빽이 채워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깊었던 부분은, 지난 1년간 SF 커뮤니티에서 죽어라 들었던 테드 창의 작품세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테드 창이 어떤 작가이기에 그 모든 ‘고수’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것일까. 그런데 번역자의 평과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니, 그 모든 ‘찬양’이 이해가 되더군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많아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탑을 올라가는 과정, 탑의 모습과 탑에서의 생활 등의 묘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장 유용하게 사용해야겠다 싶은 부분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들어있는 「초/중/고급자를 위한 SF 가이드 - 국내 출판 SF 추천목록」이었습니다. 아직 어떤 책이 유명한지, 어떤 책이 읽을 만 한지를 잘 모르는 초보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꼭지였습니다.

거의 접할 길이 없었던 창작 SF도 즐거웠습니다. 이전에 여러 작품으로 접한 적이 있는 듀나의 「어른들이 왔다」는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내용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구요, 구광본 님의「별로 변한 것 없어요」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 취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 나름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신인작가라는 강병융 님의 「beHEADing」이라는 작품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목이 두 개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신선하다고 할 만한 설정도 없었거니와, 여기저기에 배치된 소품들(SONY, SAMSUNG이라든지 하단의 주석 등)은 신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산만하고 조금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표지를 보니 〈과학소설 전문무크 창간호〉라고 되어 있네요. 그렇다면 다음에 계속 이어져 나온다는 뜻인가 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온 과학소설 전문잡지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이번의 부족했던 부분은 다음에 더 많이 채울 수 있겠지요(라고 판에 박힌 이야기를 해봅니다만, 사실 부족한 부분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을 기화로, 앞으로 국내 SF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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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이즈 40 - 완결
YUZO TAKADA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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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zo Takada의 장편 '3x3 Eyes'(총 40권)를 보았다. 작가 후기를 보니 무려 15년간이나 걸려 완성한 대작이란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한 건 아마도 1992년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당시에 '주간 소년챔프'가 창간되었던 것 같다. '주간 아이큐점프'가 <드래곤 볼>로 엄청난 선전을 하는 것을 보고 '소년챔프'에서도 일본만화를 연재하기로 했을 것이다.

처음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연재하기로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3x3 Eyes>로 바뀌어 버렸다. 그 때만 해도 둘 다 잘 모르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으로썬 정말로 감사, 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멋진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다니.

아쉽게도 단행본 2권 분량만을 연재하고 나서 한국에서의 연재는 중단이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뭐 이리 모르는 게 많은지) 그 당시의 한국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폭력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자주 여자의 나신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전혀 야하지 않지만, 높은 사람들은 그런 걸 외설적으로 잘도 받아들인다)

그 후 '소년챔프'에서는 <슬램덩크>라는 엄청난 작품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인기몰이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니 나중에 하기로 하고. 아무튼 처음에 그런 인연으로 <3x3 Eyes>를 만나게 되었다.

엄청난 영향을 준 이 작품을 잊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고교 때 순전히 만화라는 것 하나 때문에 알게 된 친구녀석 하나가 이 작품의 매니아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되면서, 2권에서 끝났던 기억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녀석을 만나기 전에, 해적판이 나오긴 했다. 지금 집에도 그 책이 듬성듬성 있다. 조악한 인쇄품질과 번역은 실망스러웠지만, 정식판에 비하면 그림 수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정식판만큼의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역시 해적판은 해적판. 왠지 성이 차지 않을 무렵 그 녀석을 만난 것이다. 그 녀석은 나보다 훨씬 이 작품에 몰입해 있었고, 이 세계관을 훨씬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 방대하고도 복잡한 스토리를 잘 이해하고 외우고 있었다. 녀석의 집에서 정식판으로 다시 읽기 시작한 <3x3 Eyes>는, 새로운 기억을 덮어씌워 주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23권 정도까지 번역되어 나오고 있었던 듯하다. 그 쯤까지 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녀석과 연락이 두절되면서 <3x3 Eyes>와의 기억도 다시 멀어졌다. 다시 이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바로 일주일 전이니까. 우연히 <3x3 Eyes>가 완결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 40권. 왠지 잃어버린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 있는 동안은 계속 이것만 본 것 같다. 아무튼 몇 시간 전에 드디어 40권 완결을 보고야 말았다. 그 방대한 스토리를 일주일 만에 독파를 하고 나니, 그 복잡함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그 화려한 캐릭터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 40권이라는 긴 내용이 전혀 늘어지거나 처지지 않는 놀라운 진행. 좋아하는 작품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하게 되어 기쁘다.

200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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