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가 너무 많다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2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9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재작년 여름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셰르부르의 저주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1』에 이은 작품입니다. 1권의 내용이 2권에 간단하게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1권을 먼저 읽어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독특한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읽어두시는 게 좋습니다. 그게 번거롭다면, 이 배경을 (도리어 원 책보다도 더) 상세히 설명해 놓은 요아킴 님의 블로그를 가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이쯤 해서, 이미 1권을 읽어보신 분들이나 저 블로그에 가 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그것도 귀찮아 안 가보신 분들을 위해 말주변 없는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 드리자면, 이 작품은 일종의 '대체역사소설'입니다. 지금의 역사와는 어찌 다른지 간단하게 살펴보지요.

12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에 있던 전쟁에서 원래 (역사에서는) 죽기로 되어 있는 왕이 죽질 않습니다. 이 왕이 잘 살아나서는 바보 아들 대신에 조카에게 왕위를 이양하는 겁니다. 이후로 영국은 승승장구, 프랑스를 합병해버립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남미를 뉴프랑스, 북미를 뉴잉글랜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말 그래도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이름하야 영불제국(英佛帝國)!

또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과학과는 다른 과학, '마술'을 사용하는 '평행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주인공 다아시 경은 노르망디 대공의 주임 수사관이고, 숀 오 로클란은 노르망디 대공의 주임 법정 마술사입니다. 다아시 경이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면, 숀 오 로클란은 마스터급 마술사로서의 능력으로 현장을 검증하고 단서의 진위를 파악합니다.

이 마술이라는 게 흔히 환타지에서 보이는 마술과는 달리, '극도로 과학화한' 마술입니다. 예를 들어 '투명' 마술은 인비저블Invisible이 아닌, 탄헬름Tarnhelm이라는 효과를 말합니다. 어떤 물체가 실제로 투명해지는 게 인비저블이라면, 탄헬름은 그 물체가 실제로 투명해지는 게 아니라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상자가 그 물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물체를 직시하지 못하거나, 시야 가장자리에서 보여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탄헬름이라는 말은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투명 투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목에 쓴 대로 CSI 마술 수사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말이 입에 맴돌아서 바로 제목에 쓰긴 했는데, 쓰고 나니 요아킴 님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군요.) 마술이 사용됨으로써 현실의 규칙을 깨뜨리고 추리를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누군가가 마술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마술로 이를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화약이나 총이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총으로 다른 사람을 쏘아 죽였다면 그것은 '추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겠지만, 지금 세상에서 누군가가 총으로 다른 사람을 쏘아 죽인다면 여러 가지 과학적인 수사 방법이 도입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1권 『셰르부르의 저주』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이 책은 장편 하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60여 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양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탄탄합니다. 환타지나 SF 독자뿐 아니라 추리 독자들도 굉장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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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1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는 사실 그리 좋아하는 장르는 아닌데 -사실 그렇게 말할 처지도 못됩니다. 뭐 본게 몇 개 안되니...- 이 책은 관심은 가던데 좀 어떨까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님의 리뷰가 많이 도움이 되네요. 재밌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