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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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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마다 편차가 좀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평타는 친다고 하더라. 이건 그 `최소한의 평타`인 듯. 사형제도와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얄팍하다. 애초에 별 기대 없이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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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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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마저 연애하는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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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책사 - 고려시대 편
신연우.신영란 지음 / 생각하는백성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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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몇 번이나 보고 지나치던 책이었습니다. 재미있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왠지 사서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란 말이죠. 그러던 중 형이 회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회사에 도서관도 다 있고, 좋은 곳이지요.) 『제왕들의 책사』라는 제목이 일단 눈길을 끕니다. 책사라. 관중이나 제갈공명 같은 사람들도 우리네 역사에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단 말이지. 삼국지연의를 좋아해서 수십 번을 다시 보고, 제갈공명의 이야기를 보며 가슴뛰었던 나로서는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나 이건 그런 소설은 아니더군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설을 쓴 게 아닌 이상 제갈공명의 이야기처럼 환상적이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당연히 국왕이 있으면 신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신하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지요. 드라마 『태조 왕건』이나 그 이후의 KBS 고려 연작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을 열심히 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만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최응이니 유금필, 정중부나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등의 인물들 말입니다. 『제국의 아침』은 제가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 쌍기가 나오겠지요.


아쉬운 부분 몇 가지를 거론하자면, 우선 역사서임에 틀림없는데 역사 관련 오기(誤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신라 경순왕을 당당히 55대 왕이라고 기록한 것부터 해서, 왕명을 잘못 적어 놓았다든지 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저자와 편집부가 꼼꼼히 뒤지지 않은 것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또 하나는 앞뒤를 자르고 너무 많이 뛰어넘은 부분들입니다. 책 앞부분은 모든 왕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서술하는데, 무인시대 앞뒤를 너무 많이 잘라냈어요.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이라든지 고려의 대몽항쟁 관련 이야기도 할 게 많을 것 같은데 말이죠. 마지막에 신돈의 이야기도 너무 뜬금없이 살짝 튀어나와요. 신돈을 설명하려면 그가 왜 요승이라고 불리는지도 살짝 설명해주면 좋으련만. 사실 요즘의 드라마 『신돈』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신돈을 정치가보다는 요승으로 인식하지 않았던가요?

책 자체는 참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빌려온 형은 이 책을 보면서 "역사 교과서가 이렇게 재미있게 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말하더군요. 물론 반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역사 공부를 했다간 큰일날 겁니다. 흥미를 유발하는 데엔 아주 좋겠지만요.


혹여나 『제왕들의 책사』라는 제목에는 혹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고려시대는 왕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어느 시대라고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고려시대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왕과 신하를 중심으로 풀어나갔을 뿐, 제갈공명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저 신하 중에는 무신도 있고 반역을 꾀한 사람도 있으며 왕을 부려먹은 사람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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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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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을 하나 하자면,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2005년 6월이면 만화 『헬싱』을 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되는 때였고, '뱀파이어 소설의 전설'이라던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제목의 '나'는 뱀파이어이겠거니 생각해버린 것이죠.

이야기를 재밌게 듣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사전 지식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듣기'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눈 깜빡이는 것 손가락 까딱이는 것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즐거워하는 성격이라, 사전지식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면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다음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야기의 플롯도 장르도 모른 채로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볼 때는 사전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봤다고 할 수 있겠네요. 소재를 '잘못' 알고 있었고, 장르도 흔히 접하는 '뱀파이어 소설'의 공포가 아니었고, 작품의 길이도 책 두께만큼의 장편이 아닌 '중편'이었으니까요. (이 책에는 표제작인 중편 「나는 전설이다」 외에도 10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아직 보지 않았어도 이제 (책이 나온 지 10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여기저기의 홍보/감상글을 접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혹시나 모르실 분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3차 대전이 끝난 후, 환경의 파괴와 함께 알 수 없는 질병이 지구를 덮치게 됩니다. 이 질병에 걸리면 죽어도 부패하지 않고 낮에는 자다가 밤에 깨어나며 엄청난 파괴력과 치유력을 가진 존재, 즉 흡혈귀가 되어버립니다. 운 좋게도 의도하지 않은 예방주사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밤마다 공격해 오는 흡혈귀들과 싸우며, 이미 죽어 흡혈귀가 되어버렸을 가족들의 기억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낮에는 간밤의 전투의 뒤처리를 하고, 집 안팎을 정리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자고 있는 흡혈귀를 죽이고,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에 떨면서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어딘가 좀비 호러 액션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이 『레지던트 이블』이니 『새벽의 저주』니 하는 좀비 호러 액션물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라고 하긴 하지만요.) 하지만 위에 나열한 사건들은 문장 마지막에 말했듯이 주인공의 '일상'일 뿐입니다.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내용이 설마 '아침 몇 시에 일어나서 뭘 먹고 몇 시에는 어디를 갔다가 몇 시에 뭘 먹고 몇 시에 잤답니다'의 나열은 아닐 테지요.

글 앞부분에서 주인공의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일상으로 흥미를 자아낸 후에는 그 일상을 어긋냄으로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세상에 인간은 오직 나 하나뿐인가 하는 절망감에 젖고 그 절망감에마저 익숙해진 주인공에게 살아있는 개가 한 마리 등장하는 거죠.

이야기를 흥미 있게 만드는 하나의 축이 저 '독특한 일상과 그 일상의 파괴'라면 또 다른 축은 '흡혈귀의 전설에 대한 과학적 탐구'입니다. 흡혈귀는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난다. 흡혈귀는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된다. 흡혈귀에게 일반인이 피를 빨리면 그 사람도 흡혈귀가 된다. 흡혈귀는 흐르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흡혈귀는 마늘과 십자가를 싫어한다. 흡혈귀는 박쥐로 변신할 수 있다. 주인공은 (또는 작가는) 이런 수많은 속설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합니다.


사실 나는 「나는 전설이다」를 거의 끝까지 읽도록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헐리웃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참 재미있지만 공포소설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이야기는 갑자기 끝나버렸고, 저는 한참을 허탈해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끝낼 수가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뒤의 단편을 읽던 중 우연히 책장이 맨 뒤로 넘어갔고, 역자 후기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정확히는 역자가 인용한 「나는 전설이다」의 한 문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놀라서 후다닥 앞으로 넘겼지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아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책을 헐리웃 영화 보듯 읽다 보니 마지막 몇 페이지에 숨어 있던 절대적인 공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거죠. 스포일러가 될 테니 허연 글씨로 가리자면,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양눈박이가 병신이라.


뒤에 붙어 있는(이라고 표현하기엔 이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단편들은 작가의 색깔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일부 작품은 헐리웃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흥미진진하고, 일부 작품은 뒷장을 넘기기가 싫어질 정도로 무서우며, 일부 작품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미적지근합니다. (미적지근한 것들은 아마도 스티븐 킹을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사냥꾼」(영화 『사탄의 인형』을 연상시킨다)과 「매드 하우스」, 「전화벨 소리」를 가장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장례식」과 「전화벨 소리」는 그 소재의 재기발랄함이 넘쳐 흐르더군요.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루피 댄스」와 「엄마의 방」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싶기도 하고. 나머지는 그냥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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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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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경, 국립중앙박물관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볼거리가 어찌나 많던지, 한 번 휙 둘러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렸습니다. 오전 열 시 경에 들어가서 오후 다섯 시 경에 나왔지요. 중간에 밥 먹은 시간을 제외해도 여덟 시간 가량은 돌아다녔던 듯합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가장 오랫동안 보았던 곳은 구석기부터 신라까지의 여러 가지 유물들이었습니다. 같이 간 선배와 둘이서 하나 하나를 보며 저건 뭐에 쓰는 물건일까, 저건 저기에 홈이 왜 파여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떠들썩하게 감상했지요.

그러나 서화가 전시된 곳에서는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도무지 뭐가 멋있는 것인지, 이런 걸 보면서는 뭘 보고 감탄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구요. 딱 하나 감탄한 거라면,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미술책에서 본 것과는 달리 무지막지하게 길다는 것. 원래 그림 왼쪽에 그림보다 몇 배는 더 넓은 공간에 수많은 글이 쓰여 있다는 것. 그 외에는 그림을 보면서도 그냥 저냥 시큰둥했습니다. 가끔 미술책에서 본 듯한 그림이 나올 때만 살짝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죠.




며칠 전에 형이 회사에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책 표지가 너무 예쁘더군요. 제목도 예쁘게 찍혀 있고, 왠지 어딘가 알 수 없는 매력이 폴폴 풍겨나오는 책이었습니다. 마침 보고 있던 『제왕들의 책사』만 끝내면 바로 저 책을 보리라 결심했지요.

책 첫머리에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한자로 된 문장이라 외우지는 못하지만 문구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그런 말입니다. 공자가 말하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국민학교를 다닐 때엔 미술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이 가난해 물감을 살 돈도 없어, 오래되어 말라비틀어진 물감을 누나와 형과 함께 돌려 쓰면서도, 미술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하얀 화선지 위에 먹으로 글씨를 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 것도 글씨를 잘 쓴 것도 아니지만, 그 시간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미술 시간은 꽤나 즐겼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석고상으로 주먹을 만들어 본다고 한 달간 석고상에만 매달린 적도 있고, 부조를 만든다고 하다가 자료사진을 워낙 어려운 놈으로 고르는 바람에 두 달간 조각칼을 잡고 매달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 시험은 무지하게 싫었습니다. 누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누구 그림이 웅혼하고 누구 그림이 화려하며 누구 그림이 차분한지, 어떤 색이 가깝고 어떤 색이 차가우며 어떤 색이 어떤 색과 어울린다는 것을 왜 외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미술을 직접 할 때는 즐긴 적도 좋아한 적도 있었지만 시험을 위해서는 '아는 것' 이상은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술을 직접 하지 않은 이후부터는 이를 즐기지도 좋아하지도 못했던 겁니다. 물론 지식도 없으니 아는 것도 불가능. 미술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겁니다.


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신문사 기자를 하고 큐레이터도 한 후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작가는, 그 모든 경험과 재능을 이 책에 한데 모은 것 같습니다. 교수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에, 큐레이터로서의 풍부한 이야기거리, 기자로서의 글솜씨. 거기에 '그림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라는 것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미술에는 지식이 전무합니다. 사실 책을 펼치면서도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해당 그림의 작가, 작가의 친구, 그림의 대상, 그 시대를 살던 사람이 되어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어느 정도는 딱딱한 전공 지식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그림 읽기에 무지한 (나와 같은) 대중들이 쉽게 그림에 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책이라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단순히 몇 개 그림을 소개하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옛 그림이라는 것은 어떤 특징을 지녔고 어떻게 읽는 것인지도 간단히 알려줍니다. 예를 들면, 서양화는 마치 알파벳 X를 쓰듯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이동합니다. 그런 후에야 혹시나 놓친 점이 있을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훑어보는 거죠. 하지만 동양화는 마치 乂(벨 예)를 쓰듯이 먼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시선을 이동하고, 그런 후에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이동합니다.

이는 서양과 동양의 글씨 쓰는 법과 상통합니다. 서양은 종이의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글씨를 썼지만 동양에서는 종이의 오른쪽 위에서부터 왼쪽 아래 방향으로 글씨를 썼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시선을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래서 그림도 그런 식으로 감상하도록 그려져 있답니다.

때문에 전시회에서 구할 수 있는 동양화 도록은 지금의 좌철 방식이 아닌 우철 방식이 되어야 적합할 것이고, 전시관에서의 동선도 시계방향이 아니라 반시계방향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림을 읽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을 꼼꼼히 보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김홍도의 『씨름』을 보면서 그 구경꾼 하나하나의 얼굴, 어깨, 발을 살펴보면 그들이 뭘 하려 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자기 쪽으로 넘어질까봐 겁을 내고, 어떤 사람은 다음 선수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우왁스런 장면에 겁이 나 다른 사람 뒤에 숨어 있습니다. 이런 것 하나 하나를 발견하고 나면 이 그림은 단지 두 사람의 씨름이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십수 명 각각의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엄청난 배경지식 없이 그림을 즐기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평소에 쉽게 보아 넘기던 그림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아직은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다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림 읽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 많이 알게 되면 나중에는 그림 읽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그림 읽기를 즐거워하게 되겠지요.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공자가 말하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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