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가벼운' 심리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도 페북에서 투표할 때 사실 반대했었다. 이 책의 제목,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으면 드는 생각은 두 가지이다. 첫째, 겉껍질만 어른이고 속은 애라는 걸 이제 인정해?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도 도통 어른이 아닌 사람이 부지기수인 걸 이제사 인정하나? 두 번째, 괜찮다는 건 남이 괜찮다는 말을 백 번 해줘서 괜찮은 게 아니고, 남이 쓴 괜찮다를 백 번을 읽어 괜찮은 게 절대 아닌데, 뭘 자꾸 괜찮다는 제목의 책을 만들지...뭐 이런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제목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반응한다니, 그냥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건 내용이니까.
처음에 우울증 얘기나 나올 땐, 책을 읽지 말까 싶었다. 하아....또 우울증 얘기가 싶었다. 우울증 이야기라면 우울증 상담 내용을 환자 입장에서 책으로 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부터 시작해 창궐하지 않는가 싶어서.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 책의 내용은 묵직해지고 깊어졌다. 역시 전문가들의 지식 + 경험이 우러나오며 포스가 느껴진다.
읽은 내용 중 니 책이 의미심장한 통찰을 보여준 부분을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 감정은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감정을 마구 쏟아내며 그게 해소한다고 많이들 착각하는데, 감정의 기본 속성은 '소통'이므로 표현되어야 하지, 쏟아내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쏟아내면 외려 그 감정이 강화/ 악화된다.
-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기에 있어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가 있다.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인 것은 맞으나, 여기서 사람들은 과거의 불행에 대해 많이들 오해한다. 그 불행을 다시 불러내어 다시 괴로워지며 불행과 싸우는 것이 해결방법이 아니다. '그래, 난 과거에 그랬지' '그래, 난 과거에 어리석었지.' 이걸 담담하게 인정하고 그레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난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는 방법이라고 저자들은 적고 있다.
- 거짓 자아?
김혜남 선생님이 이 거짓 자아 부분, 부모가 사회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와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통찰을 보여주신다. 그렇게 남에게 맞춰 만들어진 자아, 거짓 자아를 버리고 극복하고 싸워야 하는 게 아니라고. 본인이 원하지 않고 괴로워 했을지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모두 '내'가 살아온 삶이라고. 거짓 자아도 내 일부라는 것을 거리를 두고 본 후, 자아에 통합시키는 것이 해결책이지, 버리고 싸우고 새로운 자아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내게 유미의했던 부분은, 몇 가지가 있다. 내가 어디까지 왔고, 어떤 부분을 이미 언어로 - 내가 깊이 들여다 보고 만들어낸 내 언어로 -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 자아의 중심추를 드리우는 지각까지 왔고, 감정을 더 풀어내는 자유를 찾을 필요가 있겠다는 인식까지 왔다. 결핍으로 글을 써서 호흡 가쁘고 에너지 넘치던 글쓰기를 지나, 이젠 무엇을 위해, 왜 써야 하지?를 다시 골라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학으로 다시 돌아가 있기도 하다 - 은유의 글타래, 그 안온한 비유와 상징의 거울을 다시 들여다 보며 날 고르고 있다.
본문 중에 여성들의 화병에 대해 말하며 이를 '신체화 장애'라고 일컫으며 저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체화 장애는 언어표현이 억압되어 있는 문화권에 많이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언어 표현이 억압되어 있는 문화권"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말이 끓어넘치는 이유 중 하나도 아마, 비로소 목소리를 찾은, 그러나 길잃은 목소리들이 많아서라는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같은 책은, 이제서야 목소리를 내려는 많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길을 은 목소리들에게, '단어'를 들려준다. 자, 이게 당신을 표현하는 말이에요!'하고. 이름을 얻은 인식은 그제서야 자기 길을 찾는다. 당신 길의 등불이 된다. 당신 속에서 꿈틀거리나 그 단어를 찾지 못해 꺼집어 내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에 그 감정, 그 인식을 불러줄 말, 그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