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파 - 2018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박해울 지음 / 허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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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들을 읽어보면 이 작품이 왜 대상인지는 알 수 있다. 치우치거나 모자란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이 수상작은 만들 수 있으나 재미와 뛰어남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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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뒤바뀐 사랑의 운명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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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이 왜 러시아 국민 작가인지를 알고싶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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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뒤바뀐 사랑의 운명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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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십대 시절 집에 세계단편선집이 있었다. 녹색광선의 <눈보라>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중 네 편은 그때 읽었다는 걸 다시 읽으며 알았다. 푸쉬킨 작품을 읽었었다는 기억도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재발견을 하는 경험을 했다. 😁

다시 읽어본 푸쉬킨의 단편에서 강력한 배경으로 역참이 등장한다. “눈보라”와 “역참지기”에선 빠지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된다. 드넓은 러시아 땅에선 마구간으로 연결해 지친 말을 묶어놓고 새로운 말을 받아가는 시스템인 역참이 없었다면 19세기말까지 사람과 물자와 통신의 이동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남자들은 말을 타고 역참에서 말을 바꿔가며 여자의 삶에 등장한다. 물론 이 남자들은 러시아 청년들답게 키크고 슬림한데다 달라붙는 군복을 입고 등장해야 한다. 😃 이들이 말을 타고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여기에 러시아 적인, 지극히 러시아 적인 정서들이 버무려진다. 모욕을 받으면 참지말고 결투를 그것도 한발씩 번갈아 쏘는 러시아 식 결투를 벌여야하고, 전쟁에서 속절없이 죽어버린 젊은이는 잊혀지고 훈장을 달고 돌아온 군인들이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트로피로 쟁취될)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은 적당히 피지배계급 여자들과 재미를 보아도 되고, 불멸의 사랑은 귀족 아가씨와만 (주로) 한다. (귀족 아가씨가 아닌 경우, 출신 집안을 숨기고 연을 끊어야 한다.) 물론 전쟁 영웅에 대한 칭송과 흠모는 다른 문화에서도 비슷하나 푸쉬킨의 단편 속 러시아에선 이게 더 극적이다.

전형적인 로맨스 역할극의 세팅을 두고 푸쉬킨은 게임을 벌이듯 글을 엮어낸다. 운명이 장난을 치고 (눈보라), 깜찍한 여자가 장난을 친다 (농노 아가씨), 장난처럼 한 행동과 말은 몇 년 후 (한 발의 총성) 혹은 악몽(장의사)으로 돌아와 그 댓가를 청구하며, 장난처럼 여자를 낚아채 간다 (역참지기). 삶이 마치 거대한 게임판처럼 보인다. 놀라운 점운, 인간은 희화화되지 않는데 인간의 역할은 희화화 된다. 사랑하는 영웅 남자 역할, 사랑받기 위해 아리따워야하는 아가씨의 역할, 사회가 배정한 역할에 너무 진지한 장의사 등은 희화화된다. 가벼우나 뜨끔하다.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장기판의 말이 되는 것 같지않은가 하는 뜨끔함이 있다.

물론 이성애 로맨스에는 역할극이 언제나 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두고, 개개인들은 자신을 판 돈 삼아 놀아야 한다. 이걸 진지하게 비판한다면 역할에 자산을 맞추느라 분열하는 개인들의 고통을 말할테지만, 푸쉬킨은 다른 방법을 택한다 - 그거 다 게임이고 장난이야. 그런데 그 게임과 장난을 거하게 하다보면 인생이 끝나더라? 그렇게.

흑인의 피가 섞였다는 자신의 소수성을 가지고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 (심지어 짜르도 탐을 내는 미녀)라는 트로피를 쟁취하는 게임을 하느라, 푸쉬킨도 자못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게임판과 역할극을 꿰뚫어보는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남자다움을 사수하느라, 혹은 궁정 귀족들의 정치 게임판에서 조작된 것같은 루머로 ‘남자다움’역할 놀이에 밀려 그 역할을 거부못하고 결투하다 죽은 푸쉬킨의 삶은, 자기 작품 속 역참지기 같기도 하다. 즐거운 게임판에서 개인은 비극적이다.

#눈보라. #푸쉬킨. #녹색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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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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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부터 늪지에서 홀로 자란 여자 카야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세팅은 아름답다. 자연 속에 홀로 사는 야성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주제 하나로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달까.

그러나, 자연 =여성이라는 등식을 전제로 깔고 있어 불편하다. 자연은 아름답다. 자연이 아름다운 건 인간의 투사일 뿐이다. 원시의 미몽에서 벗어나 문명을 건설하고 자연을 정복한 인간들은, 자연 속에 생존을 두고 공포에 발발 떨던 과거를 편리하게도 잊고 그 무시무시했던 자연을 아름다운 것으로 환원시켜버렸다. (영어로 '환원시키다'가 reduce인거 정말 마음에 든다. ) 자연 속의 여자가 아름다운 것도 사실 환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두 가지 힘으로 여자의 세계에 침탈해 온다. 하나는 글자를 가르치는 이성의 힘, 또 하나는 온전히 마초스러운 남자의 힘.

재미있긴 하다. 이성 = 남자라는 등식이 통용되는 문화 내에서 여자가 이성의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이 어떤 건지, 공부하는 여자의 딜레마가 무엇인지, 여자의 이성이 유독 돋보이는 건, '와, 여자인데 똑똑해'이건 '혼자 자연 속에서 독학했는데 똑똑해'이건, 이런 새삼스러운 반응들만큼,얄궂지 않나.

글을 가르치는 남자에게 종속되듯 느끼는 의존인지 사랑인지 한 관계가 축을 이룬다면, 공작새같이 수컷의 매력을 잔뜩 내뿜으며 실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여자를 침탈하는 관계가 또 다른 축을 이룬다. 후자의 남자는 사회와 문화가 가르치고 허용하는 관계 외엔 모른다 - 쓰레기라 불리는 늪지에 사는 가난한 백인과 계급의 차이를 좁힐 생각도 의지도 없고, 여자가 같은 인간이고 고유한 매력을 지녔는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예쁘면 된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여자가 최고의 여자이므로, 문명 밖 여자의 아름다움은 ('헌'여자가 아닌) '새' 여자의 아름다움이니까 쫓는다.

카야는 독서의 힘으로 이성을 갈아, 늪지에서 자신을 들어올린다. 남들이 '마시 걸,' 쓰레기같은 늪지 소녀라 붙인 낙안에서 자신을 들어올린다. 남자건 여자건 공히 있는 이성의 힘으로 자신을 들어올리고, 남자건 여자건 공히 있는 욕망의 힘으로 자기 세계를 위협하는 남자에 맞선다. 끝에 반전이 있다.

성장 서사로 시작해, 로맨스 서사를 타다, 법정 심리 서사로 마무리되는 그런 느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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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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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가벼운' 심리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도 페북에서 투표할 때 사실 반대했었다. 이 책의 제목,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으면 드는 생각은 두 가지이다. 첫째, 겉껍질만 어른이고 속은 애라는 걸 이제 인정해?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도 도통 어른이 아닌 사람이 부지기수인 걸 이제사 인정하나? 두 번째, 괜찮다는 건 남이 괜찮다는 말을 백 번 해줘서 괜찮은 게 아니고, 남이 쓴 괜찮다를 백 번을 읽어 괜찮은 게 절대 아닌데, 뭘 자꾸 괜찮다는 제목의 책을 만들지...뭐 이런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제목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반응한다니, 그냥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건 내용이니까.

처음에 우울증 얘기나 나올 땐, 책을 읽지 말까 싶었다. 하아....또 우울증 얘기가 싶었다. 우울증 이야기라면 우울증 상담 내용을 환자 입장에서 책으로 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부터 시작해 창궐하지 않는가 싶어서.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 책의 내용은 묵직해지고 깊어졌다. 역시 전문가들의 지식 + 경험이 우러나오며 포스가 느껴진다.

읽은 내용 중 니 책이 의미심장한 통찰을 보여준 부분을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 감정은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감정을 마구 쏟아내며 그게 해소한다고 많이들 착각하는데, 감정의 기본 속성은 '소통'이므로 표현되어야 하지, 쏟아내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쏟아내면 외려 그 감정이 강화/ 악화된다.

-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기에 있어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가 있다.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인 것은 맞으나, 여기서 사람들은 과거의 불행에 대해 많이들 오해한다. 그 불행을 다시 불러내어 다시 괴로워지며 불행과 싸우는 것이 해결방법이 아니다. '그래, 난 과거에 그랬지' '그래, 난 과거에 어리석었지.' 이걸 담담하게 인정하고 그레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난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과거의 불행을 인정하는 방법이라고 저자들은 적고 있다.

- 거짓 자아? 
김혜남 선생님이 이 거짓 자아 부분, 부모가 사회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와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통찰을 보여주신다. 그렇게 남에게 맞춰 만들어진 자아, 거짓 자아를 버리고 극복하고 싸워야 하는 게 아니라고. 본인이 원하지 않고 괴로워 했을지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모두 '내'가 살아온 삶이라고. 거짓 자아도 내 일부라는 것을 거리를 두고 본 후, 자아에 통합시키는 것이 해결책이지, 버리고 싸우고 새로운 자아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내게 유미의했던 부분은, 몇 가지가 있다. 내가 어디까지 왔고, 어떤 부분을 이미 언어로 - 내가 깊이 들여다 보고 만들어낸 내 언어로 -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 자아의 중심추를 드리우는 지각까지 왔고, 감정을 더 풀어내는 자유를 찾을 필요가 있겠다는 인식까지 왔다. 결핍으로 글을 써서 호흡 가쁘고 에너지 넘치던 글쓰기를 지나, 이젠 무엇을 위해, 왜 써야 하지?를 다시 골라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학으로 다시 돌아가 있기도 하다 - 은유의 글타래, 그 안온한 비유와 상징의 거울을 다시 들여다 보며 날 고르고 있다.

본문 중에 여성들의 화병에 대해 말하며 이를 '신체화 장애'라고 일컫으며 저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체화 장애는 언어표현이 억압되어 있는 문화권에 많이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언어 표현이 억압되어 있는 문화권"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말이 끓어넘치는 이유 중 하나도 아마, 비로소 목소리를 찾은, 그러나 길잃은 목소리들이 많아서라는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같은 책은, 이제서야 목소리를 내려는 많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길을 은 목소리들에게, '단어'를 들려준다. 자, 이게 당신을 표현하는 말이에요!'하고. 이름을 얻은 인식은 그제서야 자기 길을 찾는다. 당신 길의 등불이 된다. 당신 속에서 꿈틀거리나 그 단어를 찾지 못해 꺼집어 내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에 그 감정, 그 인식을 불러줄 말, 그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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