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유영난 옮김 / 들녘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리딩' 유니버시티 가 아니라 '레딩' 유니버시티 라고 읽습니다.

영문학이건 영어교육학이건 전공하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원어민들이 발음하는 대로 적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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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확실히 있다
토마스 주 남 지음, 조용기 옮김 / 서울말씀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로 쓰여진 책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천국은 존재하고, 이 세상이 천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준 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연하게나마 구원받았고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뵐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아니라 실존하는 천국을 확인 받을 수 있었고, 내 가족 그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절실한 동기 부여를 준 책이었다.

중간에 겹치는 부분이 많고 늘어지는 구성이 있으며, 저자의 묘사가 실제 보고 싶은 것을 많이 보고 온 바,가 있으나, 세상에서 잘난 자가 아니라 평범한 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방식으로 볼 때에 외려 저자의 평범성이 진실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이따금 영적인 체험을 한다. 이 육신 이외에 눈을 뜨고 돌아보는 다른 몸이 있다는 것을 안다. 주로 나는 훼방하는 악의 영들을 본다. 기도하고 열심을 낼 때에 극렬하게 훼방하고 형상으로 위협하고 겁을 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내 속에 뜨거운 불길로 타올라 역사하시는 내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한다. 아직 믿음이 작은 자라 파도처럼 일렁이는 성령님의 움직임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온통 내 속에서 일렁이며 꿈틀 거리며 마음을 치는 성령님의 역사를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말이다. 가위에 눌리고 악한 영들의 형상을 볼 때마다 두려워 벌벌 떨지만,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š에, '예수'라는 단어만을 듣자마자 우당탕당 도망치는 것을 보았고, 그 이름의 권세를 실감한다.

이 책을 읽고 박스터 여사의 지옥은 있다, 도 읽었다. 영원히 불타는 지옥 역시 실존한다. '불지옥'이라는 게 유치하다, 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따금 기도 할 때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내 부정함이 너무도 절절하게 마음을 찔러 통곡하고 울 수 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섰던 자들이 감히 부정한 자로 주님을 보았다고 엎드려 졌던 것 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죄된 속성을 가지고 주님의 심판 앞에 서면 온통 그 부정함을 감당을 못해 정말 활활 영혼까지 타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옥은 있다, 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주님의 영적인 역사가 이땅의 크리스천들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이었다. 사탄의 역사 역시 내가 틈을 주고 방심할 때에 문을 열고 들어오며 (정말 문과 창문으로 들어온다. 이 존재들은. 내 영적인 주거를 표상하는 물질적인 집의 형태를 문을 통해, 창문을 통해 걸어들어온다.), 하나님의 역사 역시 이 미천한 자의 겨자씨만도 못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받으셔서 불길같이 역사하심이다. 크리스천들의 기도가 적어서 영적인 전투에서 힘겹다는 천사의 호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어디까지가 인간의 의지이고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개입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유한한 3차원 존재의 유한한 기도가 수십차원을 넘어서는 무한한 하나님의 차원으로 열리는 통로임을 안다. 시간을 앞서가시고 온 우주의 지식을 앞서가시는 존재가 단 하루 24시간내내도 하나님을 담고 있지 못하는 이 존재가 드리는 1분, 5분, 10분, 30분의 기도를 통해 어마어마한 차원의 문을 열고 내게 달려 오심은 황홀한 경험이다.

기도 중에 하나님은 온 우주를 지은 내가 너를 위하여, 너 하나를 위하여 온 우주를 버렸다, 는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구원에 합당하지 못한 죄인이나, 조금이라도 그 사랑에 감당하는 길을 이제는 걷고 싶다. 질기도록 변하기 힘들없고, 질기도록 돌이키기 힘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는 사는 크리스챤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걸 요구하냐고 못 변하겠다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대들고 울부짖었었다. 그러나, 이제....고난의 풀무에서 나를 택하셨다는 주님의 말씀의 지극한 주님의 사랑임을 안다.

악한 영들을 보거나 느껴서 두렵고 무섭고 시험들 때, 이 육체를 찢어서라도 내 영혼만은 주님께 드린다, 고 처절히 투쟁해야 하지만, (아...아직도 무섭다) 이것이 시작임을 이제 나는 이 3차원의 세상에 살되 수십차원의 scheme대로 움직이는 존재로 변했음을 알기에 가슴은 뛴다.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체험한다는 비밀이 이 것임을 감히 고백한다. 중상과 모략과 경쟁이 넘치는 직장서 이전에 나는 조그만 악의에도 내 마음하나 지키지 못하고 금세 무너지고 악의를 악의로 갚고자 분분하는 세상의 인간이었으나, 어떤 중상과 악의와 모략이 나를 둘러싸도 그 3차원의 계략을 넘어서는 수십차원 높은 세계의 행로에 내 발걸음이 있음을 알 때, 그 세상의 방식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음을 믿는다.

야곱이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하늘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봤다는 구절이 실질적으로 존재함을 믿지만, 하늘이 열리고 보다 높은 차원의 행로의 일부가 되었음을 통해 이 구절이 또한 내게 이루어짐을 믿는다. 나는 그 믿음으로 차원의 한계를 뛰어 넘어 이미 하늘의 길을 걷는 자이다.

시간을 뛰어넘으셔서 내 결국을 아시는 주님께 그래서 기도한다.

주님. 제게 두신 주님의 소망이 이미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수고와 주님의 역사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그 시간에서 이미 이루어졌음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정녕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이루신 그 소망을 보고,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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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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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양 문화의 상징과 코드, 그 안에 담긴 생명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까지 원한다면 움베리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추를 볼지니, 그 발끝에도 못미치는 어설픈 지식을 뒤범벅한 책이 왜 그리 인기란 말인가. 물론 단 한가지 장점이 있지. 에코의 책보다 쉽다는 것.

그래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대략 다빈치의 그림에 대한 해석 뿐이란 말인가.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옆에 그린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해석 하나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근 2천년 다져온 종교를 뒤엎을 만한 근거나 된단 말인가. 성당기사단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허구인거고, 서구 문학에서 그리도 오래 울거먹은 성배찾기 (Quest for Holy Grail)이 단지 막달라 마리아와 교합의 상징이었단 말인가. 움푹 들어간 용기나 잔이 '여성 상징'이라는 건 이미 수천년 수만년 인간 의식, 무의식에서 지속된 바, 남녀의 교합이 그리도 축복받을 성당기사단의 비밀이었단 말인가 말이지.

아주 기독교 문명의 심오한 상징을 깡그리 하향 평준화 시키는 구나.

이집트 신화를 짜집기하고 재 창조한 게 기독교가 아니라, 단지 선사 시대 이전부터  인간 문화에 공통적인 상징을 공통 분모로 가지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좋지만, 일개 야만족에 불과한 게르만 족을 세계 최강의 문명으로 부흥 시킨 기독교의 코드를 그렇게 폄하 시키지는 말란 말이다.

포퓰리즘의 결정체. 딱, 대중이 이해할 만큼의 얄팍한 지식으로 포장한 상업주의의 승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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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가 내가 가장 매료되는 씬 중 하나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고 자신의 머리칼로 그 발을 닦아주는 부분이다.

난 이 장면이 왜 그리도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걸까. -__-; (에잇 불손한지고)

그리고, 늘 상상을 했다.

내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꼭 발을 씻어주고, 머리를 감겨주리라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가장 큰 성적인 환타지는

좋아하는 선배의 헝클어진 머리를 감겨주는 상상을 몰래 몰래 하는 거였다.

(하필 그 선배가 머리가 곱슬기가 있어 더 잘 헝클어졌다.)

어린 시절은 혼돈의 시절.

여성이라는 피해의식이 온갖 분노로 폭발하고,

굳센 자의식을 세워보고자 기를 박박 쓰면서도,

좋아하는 남학생들 앞에서는 어쩔줄 몰라 발끝을 감추고 동동거리면서,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내 속에 나 스스로 칼리가 있음을, 이시스가 있음을, 가이아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 강한 어머니 여신들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환심을 사고 싶은 남자 앞에서 우물쭈물 페로세포네의 모습 하나만 보이도록

내 스스로 내 모습에 재갈을 물리는 꼬락서니란.

내 첫 사랑들은 주로,

엎드려 발이라도 씻어주고 머리칼로 부비대며 닦아주고픈 지극한 굴종의 미학에서

매조키스트적 쾌락을 취하다가

내 이성의 몰매를 맞고 스스로 우왕좌왕하다

쌓여가는 갈등과 혼돈에 쩍쩍 균열하다가

스스로 사랑하는 그 남자(들) 앞에서 자폭하는 결말로 끝나버렸다.

내 속의 칼리의 얼굴을 본 남자들은 하나같이 도망가더라.

 

내속의 칼리는 내 꿈속 커다란 블랙위도우 거미의 형상으로 나타나

거미줄 아래 분열된 내 자아들을 하나씩 낚아올려 잡아먹으며 내게

'난 절대 여기서 안 나가!'하고 음흉하게 속삭여주더라.

지금도 바비 인형을 보면 너무 사고 싶은데,

걸 사들이면 또 내속에서 살육극이 벌어질 것 같아 참는다.

그 어떤 분노가, 피해의식이 내 속에 이토록 깊게 도사려

생전 나 자신을

그 어떤 남자 앞에도 제대로 서는 것을 막는지는 나도 통탄할 노릇이다.

끝도 없이

무릎 꿇고자 하는 이 간교한 노예근성은 또 뭐란 말이며,

득달같이 달려와

노예 근성을 살육하는 이 분노의 얼굴은 또 뭐란 말인가.

 

내 인생의 문이 닫혀다고 슬피 울던 유학시절 만났던 50대 캐나다 아줌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연하의 애인을 십대 소녀에게 뺏기고 그 총명하고 야무진 아줌마가

칙칙한 영국 겨울 날에 매일매일을 울며 보내더라.

 

엊그제

얼굴서 주름을 발견했다. 심히 뜨악하다.

내 워낙 동안으로 지극한 오해를 받아가며 삶을 만끽하던차,

드디어 이렇게 거울 속에서 주름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구나, 싶다.

 

아이가 이제 좀 손이 덜 가니까

모성에 가려 있던 다른 부분들이 숨통을 틀라고 하나.

하지만, 의식적으로

죽여버리리라, 또 다시 노예짓을 하는 내가 고개만 쳐들어도

그렌델의 에미보다 더 잔인하게 내 속의 노예년은 내 죽여버리리라.

맹세하고 또 맹세하고 하루 하루가 간다.

늙어지면 더 좋으리. 노예년도 포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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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노평자 씨.

촌지 여왕 + 새디스트 (차라리 몽둥이 휘둘러 때리는 새디스트였음 나았을 것같다. 여린 내 어린아이 감성을 모두 짓발겨 놓은 새디스트)

난 1학기 여자 반장이었다. (그땐 투표에 의한 선출이 아니라 담임이 지명하고, 교장선생님이 눈도장 찎는 방식이었다. 반장 부반장 후보들은 교장실로 다섯씩 들어가 인사하고 나온다음,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울 엄마가 안목이 있어서 울 딸 셋 옷 하나만은 튀게 입혀 다녔다. '파카'란 것도 울 국민학교서 제일 먼저 입고 다닐 정도 였으니까... 옷테를 보고 돈 많은 줄 알고 선생이 찍은 거다.

선생님 가장 먼저 시킨 것 - 잘사는 집 아이들 일곱을 줄세워놓고 매일 돌아가며 보온병에 커피 타오기. 울 엄마가 학교에 안오는 날들이 지속되는 어느날 난 내 순서를 까먹고 커피를 안타갔다. 선생이 반 전체 앞에서 노발대발하며, 반장 자격도 없는 거라고 30분을 수업도 안하고 떠들었다.

2학기 남자 반장이 된 양원규는 엄마가 지극정성이었다. 그애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되면 선생은 수업하다 말고 어젯밤 꿈에 니 엄마 봤다, 고 했다. 그러면 그 다음날 원규 엄마가 찾다왔다.

학급문고란 걸 만들어 책을 기증 받은 후 돈을 내고 빌려보게 했다. 한권에 50원. 다른 책은 학급문고 장사(?)에 방해된다고 가져오면 무조건 압수였다. 학기말에 반 전체에 한자루에 150원짜리 볼펜 한자루씩을 학급문고 수익이라고 돌려주었다. 나머지 돈은? 너무도 보고 싶었던 책을 친구한테 빌리다가 들켜서 압수당했다. 책값을 친구한테 물어붰고, 선생은 그책을 학급 문고에 꽂아두고 돈받고 다른 애들한테 빌려주었다.

2학기. 반장과 별도로 학급회장은 투표로 뽑았다. 전체 어린이 회의에 대표로 나가는 자리였다. 1학기 반장들이 주로 출마해서 뽑혔는데, 회장 선거 2틀전인가 난 아파서 결석했다. 선생 - 울 반 전체한테 절대로 날 찍지 말라고 했단다.

2학기 말. 집에 귀가 할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줄반장들 인솔하해 한줄로 가야했다 (우리 반만 그랬다. 줄 반장 직함에 엄마들이 또 꽤 찾아왔을 거다...)  선생은 4충 교실 창문서 내려다보며 마음에 드는 줄을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그 줄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11월 말 겨울. 나는 엄마가 새로 사준 빨간 구두를 처음 학교에 신고 갔고, 구두끈을 매는 거 서툴러서 한참을 친구 두명과 낑낑 거리며 매다가 운동장에 나와보니 줄서있는 애들이 없었다. 먼저들 갔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학교에 와보니 우리 셋 이름이 칠판에 쓰여 있었다. 어제 줄을 안서고 갔다고. 다른 애들은 선생님이 화가 나서 운동장을 뛰어 돌고 있었는데, 우리 셋만 못보고 갔다가 운동장 열바퀴를 돌고 가라고 했다. 눈이 왔다. 첫눈이었는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하교시간 즈음에는 발목까지 눈이 쌓였다. 그렇게 눈이 쌓인 운동장을 열바퀴 돌아야 했다.

같은 반 남학생 중에 진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내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였다. 아침마다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며 그애가 있어서 선생이 아무리 지옥같이 굴어도 기쁘게 학교간다고 되뇌이며 학교에 갔었다. 내 나이 그때 11살. (1년 일찍 들어갔다....학교를)

노평자 선생은 진수를 하교 후에 불러서 내가 10바퀴 운동장을 다 도는지 세라고 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운동장을 도는데, 다른 두명의 친구들이 일곱바퀴를 돌때 난 겨우 4바퀴를 마치고 있었다. 분하고 억울하고 무엇보다도 진수가 지켜보는데 헉헉거리며 운동장을 돌아야 한다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안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는데 진수 앞에서 눈물은 안보이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철없는 진수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그 나이엔 성장이 느리니까...) 지지리도 못달리는 내 달리기를  세다가 지루하고 뻘쯤해져서 저를 기다리던 지 친구들이랑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여덟 바퀴 정도 달리고 있을 때 제딴에는 장난을 친다고 내게 눈볼을 하나 던졌다.

눈볼을 정면으로 맞은 그 순간, 정말 온몸속의 분노가 폭발했다. 난 평생 그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눈이 와서 하얀 세상에, 시야가 온통 하얗게 펑,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애를 팼다.

난 타고난 약골이었다. 늘상 맞고 다니고 질질 울던. 동생한테조차 늘상 맞고 울던 병신같은 약골이었는데, 그날 내 몇달을 목숨걸고 좋아했던 김진수를 신나게 패주었다. 진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던 여름의 그 환희도, 꼭 우리집 앞 도로까지 와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며 날 불러내주던 그 기쁨도....다 한순간에 다 날라갔다.

진수는 타고난 운동체질에 악발이라 누구한테도 싸워서 지는 애가 아니었는데, 그날 내 엄청난 기백에 질렸는지 울면서 패는 내 앞에 웅크리고 서서는 암말도 못하고 내 주먹을 다 받았다.

그리고ㅡ 악이 받쳐서 남은 두 바퀴를 다 돌고, 추운 겨울 신발도 다 젖고, 무릎까지 옷이 젖은 상태로 질퍽질퍽 흙탕이 된 골목길을 울며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난 말썽 한번 안부리는 모범생이었는데 말이다. 더 어린 여섯살적에도 길가다 제때 길 안비킨다고 경운기 몰던 아저씨한테 암팡지게 뺨을 얻어맞고도 엄마한테 절대 말 한적이 없는 나 였는데. 말이다. 학교서 선생한테 맞아도 죽어도 말안하던 내가 울며 집으로 돌아온 건 울 엄마도 아마 처음 봤을 거다.

벌로 눈 쌓인 운동장 열바퀴 돌았다는 것 외엔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냔 말이다.

내...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애 앞에서 벌 받았다고, 그 남자애를 먼지나게 패줘서 이젠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고...내 어린 풋사랑이 그렇게 끝났다고, 아니, 선생이 .... 다 큰 어른이....내가 진수 좋아하는 것 알고 그토록 내 마음을 갈기갈리 찢어놨다고 ....그 긴 얘기를 다 어떻게 엄마한테 할 수 있었냔 말이다.

ㅎㅎ

진수는 그 이후에도 이따금 뻘쭉 얼굴을 내밀고 일부러 툭툭 치고 가거나, 6학년에 되어서 주번 설때 와서 빙빙 돌며 장난치거나...하며...어린 노마 한테 어울리는 어린 짓을 해댔다. 주번인 나는 매몰차게 노마의 이름을 적어내서 (사실은 내가 직접 안적고 옆의 친구한테 적으라고 사주해서) 노마가 지네 담임한테 기합을 엄청 받게 해주었다. 눈물 쏙 뺐을 거다. 그래, 너도 울고 커라, 는 심보였나? -__-;

내 노평자 선생을 필두로 사립 고등학교서 몇몇 저질 선생을 더 만났다. 아,,물론 노평자가 가장 악질이다. 내 이를 갈며 난 절대 선생질은 안한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들어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숱하게들 하는 교직이수 안했다. 선생 절대 안한다고.

그런데....^^; 지금 가르치고 있다. 학원, 기업체, 대학...그래도 절대 정규 중고등학교에서는 교펀을 안잡는다. 스폰지와 같은 애들한테 내가 끼칠 영향에 책임 질 자신이 지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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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9-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과 함께 '예의(사전적 정의 말고 금전적 정의 말입니다)없는 집 자식'으로 찍혀서 개 매도당하고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넌 커서 사회의 독버섯이 될 새끼야'외치던 작자도 매너 5학년때 담임이었는데요. 둘 결혼시키면 뭔 꼴 날라나. 그러고보니 그 개새끼 마누라도 선생이었는데... 혹시? *_*

김삿갓 2009-09-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평자 이름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