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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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




『영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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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과 같다지만, 흔히 일상 속에서 죽음을 떠올리진 않는다. 모두가 앞날에 대한 많은 걱정을 하지만, 아직 닥쳐오지 않을 법한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매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틈새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데는 소중한 사람의 빈 자리 혹은 그 사람의 본질적 성향에 기인한 게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일면식도 없지만 존경하거나 동경하던 사람의 죽음까지. 결만 다를 뿐 비슷하지 않을까. 천희란 작가님은 왜 첫 소설집을 온통 '죽음'으로 채운 것일까 궁금하여 인터뷰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셨었다. 


  “죽음에 관해 쓴다고 말할 순 있지만 죽음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으니, 죽음 주변을 배회하면서 삶에 관해 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경향신문 인터뷰 중) 


내가 생각하기로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삶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배회하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 역시 처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판단을 하려 했을 때,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후 였다.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 주체적은 삶, 선택,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 물론 정답을 잘 찾진 못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실존이랄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으니, 나의 삶의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확실하다. 그 전에는 그야말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기에. 문학의 역할에 대해 말하기엔 나는 아주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문학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킴으로써,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것. 그로 인해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빗대어 겪어보기도 하며, 더 잘 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개체 혹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었지만. 


아직도 인정할 수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많기에. 하루의 한 순간은 꼭 죽음을 떠올려본 적이 있기에. 긴장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영의 기원』을 펼쳐보는 일은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위로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때문에 다시금 무기력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잘 먹고 잘 살기도 한다.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모두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대개 남겨질 자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선택하는 죽음이 다수 등장했던 것 같다. 여러 죽음의 형태와 위치에 나를 대입해보며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부터 읽기 버거운 느낌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막연히 떠오르는 죽음과 관련된 생각들과 기억 때문에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버렸기에. 제자리걸음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 이야기 속에 갇힌 기분이 드는 상황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역시 표제작인 <영의 기원>이 제일 인상 깊고 좋았다. 익숙한 이름과 연관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삶의 끝에 서 있던 '영'이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나'의 자리에서 '영'을 안아주며 공감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 죽음에 관해 계속해서 던지는 '나'의 질문들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처음 천희란 작가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게 '2017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이었는데, 그때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전개되는 작품 형식 속 서사가 탄탄하게 진행되면서도, 서로 맞물려가며 밝혀지는 이면의 진실이 흥미로웠다. 여기 실린 작품 중에 가장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라 대체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상성과 종교적인 색채 혹은 모호한 분위기가 감도는 게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안개처럼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이 묵직한 작품을 부족한 소양으로 다 헤아리지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로 생각해볼 거리가 참 많았다.이건 좀더 시간날 때 다시 한번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다짐한 작품들이 많지만, 이번 여름 휴가때는 반드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남겨놔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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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무영의 정원>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 나는 동시에 나의 이름을 곱씹는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서로에게 각인할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자의 이름 앞에서 산 자의 이름이 무용해진다. 10쪽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경련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 침대는 그녀의 절박함을 반증했다. 절대로 살아남지 않겠다는 완강한 결의가 육체가 지닌 삶의 의지를 이긴 것이다. 

18쪽 


원인도 모를 갑작스러운 죽음이 곳곳이 스며들 때. 나는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며 자살한 여동생의 휴대전화에서 의문스러운 모임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이상한 죽음이 창궐한 뒤에 만들어진 이 모임은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곳이었고, 동생에게 최근까지 메시지를 보낸 B는 JJ라는 닉네임으로 두 차례 자살 예고를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동생의 가족임을 밝히지 않고 이 자살자들의 모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름 대신 이니셜로 서로를 호칭하고, 각자가 준비한 방식으로 죽음을 결정하는 여행. 일행 모두가 자신의 방식대로 떠났지만, 나는 우연히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곁에 남아 있던 C마저도 잠이 들고, 나는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태양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린다.  


장면 장면이 현재를 그리면서도 중간중간 과거의 서사가 밀려들어 오고, 나중엔 경계 없이 한데 뒤섞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B의 시체를 옮기는 장면으로 등장하니, 무슨 스릴러인가 싶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간혹 이런 죽음을 바라곤 했었다. 아무런 고통없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히 잠드는... 원인 모를 죽음.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로 등장하니 이걸 반갑다고 해야 할지. 


결국 홀로 남겨지게 된 '나'는 휴식이 필요하다 했지만, 그건 생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을 바라지만 죽는 게 두렵기도 한 인간적이면서도 솔직한 태도. 피곤한 와중에도 '나'의 손엔 총이 쥐어져 있고, 누구에게 발견되면 오해받을까 걱정하는데서 그렇게 느껴졌다. 그 총으로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될 일이다.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그러한 선택들의 비밀스러운 모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는 우연히도 살아 남았다. 그리고 완전히 종결될 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지 않을까. 평범함 사람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예언가들> 


(…), 그가 원할 때면 언제든 창을 열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것이 한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였으므로, 그는 이제 아무런 구속도 없이 주어진 드넓은 영토에서도 더는 새로운 자유의 감각을 획득하지 못한다. 

38쪽 


사라진 E 음계를 상상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연약하고 구슬프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E 음계가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단 한 번이라도 독립적인 E 음계의 인상을 그토록 구체적인 언어로 떠올린 적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 그것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곳에서만 더 깊고 애잔하게 울려 퍼진다. 40쪽 


여자는 음악을 구원이라 여겼다. 여자에게 연주는 인류의 역사를 기리는 행위였고, 동시에 안식과 평화에 다다르는 길이었다. (…)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 없는 헌신을 순교자적인 것으로 여겼고, 음악은 예정된 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리라 믿었다. 42쪽 



종말의 시대, 공표된 날짜는 생각보다 너무 멀리 있고, 종말에 관한 다양한 계층의 예측과 전언. 결국 희망과 다짐보다 기다리는 일에 더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람들. 사형당했지만 기적처럼 다시 부활한 남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시체안치소 직원에 의해 종말을 앞두고 일어난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원치 않는 부활이었고 기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마지막에 간절히 남기려 했던 말은 무엇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지만, 정말 기적이 존재한다면 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일까. 

음악을 구원이라 믿는 여자. 끊어진 현이 도착하길 바라며,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여자. 특별히 뛰어난 연주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음악을 구원의 양식으로 믿으며, 도착하지 않은 네 번째 현을 기다리고 있다. 린치, 낯선 이들의 만남, 고요한 세계, 들리지 않는 음악. 자전거를 타고 온 사내. 사내가 전해준 작은 상자. 마치 희곡의 한 장면처럼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 속 남자의 죄는 무엇이며, 자전거 탄 사내가 전해준 작은 상자 안에 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영의 기원> 


시계는 계속해서 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데 왜 0일까. 마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측량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81쪽 


영이 나를 찾아온 것이니 묻지 않아도 언젠가는 입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과 함께 침묵했다. 아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83쪽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한 장의 잎도 떨구지 않지만 서서히 빛깔을 잃어버린다. 꽃의 사라진 빛깔은 어디에 보존되는 것일까. 시들지 않는 꽃은 아름다운가. 잎을 떨구지 않는 꽃은 저주인가. 영은 꽃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았고, 꽃은 여전히 단 한 장의 꽃잎도 떨구지 않는다. 88쪽 


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죽을 용기와 살 용기, 그것은 과연 같은 종류의 용기일까. 나는 맑스와 마르크스, 그리스인과 희랍인, 자정과 0시, 두 번의 침묵, 분명 같은데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 영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결코 알 수 없다. (…) 빈 편지지와 잉크가 가득 찬 볼펜은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것. 영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는 것. 그렇다. 그것 뿐이다. 97쪽 


희랍의 시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고 이미 태어났다면 될 수 있는 한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지. 그러니까 꼭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건 남은 사람들의 몫에 불과할지도 몰라.  (…) 때로 자살은 자신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영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을 묻는 거라면, 나는 그게 사고가 아니었을 것 같구나. 98-99쪽 


영을 생각하면, 영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109쪽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술에 취한 영이 말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얼어붙은 그 손엔 편의점 비닐 봉투가 걸려 있었고, 그속엔 텅빈 편지지와 볼펜이 들어있었다. 영이 주고간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빛깔만 사그라들 뿐, 시들지 않는 꽃이다. 다음날 영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고, 장례식장을 찾은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과 더불어 영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언젠가부터 반복되는 꿈, 밝고 맑고 투명함을 뜻하는 이름의 '영'. 영이 다가오는 것 같다. 만질 수 없는, 투명한 영, 씁쓸한 미소 짓는 영을 그려본다.  


무엇이 선행되었는가? 본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매일 동전을 던지고 있다. 앞면과 뒷면. 0과 1. 그리고 영은 왜 죽은 것일까, 왜 나를 찾아온 것일까.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빈 편지지에 남기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시들지 않는 꽃처럼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한 영의 이미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깔을 바랠지라도, '영'은 영원히 살아있게 되는 거라 믿고 싶다. 나의 마음 속에 그렇게 '영'을 담아두고 싶다. 

한 편의 시같은 소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곧 결혼을 앞둔 '나(효주)'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자, 나의 후견인이 되어준 선생님에게 드디어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에 묻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한 편씩 주고 받으며, 점차 더해가는 이야기 속엔 한 사람의 씁쓸하면서도 진솔한 마음과 애증이 드러나게 된다. 예술가이자 성소수자였던 선생님의 마음,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대신 죄책감과 미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또다른 애정 속에서 길러냈던 효주. 그렇게 그리움의 편지를 쓴다. 새하얀 설원 위에 떠오로는 이미지가 아름다운 소설이다.

잔잔하면서도 시린 도입으로부터 차근차근 서사가 쌓여나갈수록 그 정교함과 세밀한 묘사 덕분에 더 잘 그려지는 것 같다.


<신앙의 계보> 


믿음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으면 강바닥의 흙처럼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실되었다. 계속해서 흙을 퍼 나르고 땅을 다지는 것이 사제의 일이었다. 

156쪽 


P는 도쿄에 있는 한인 성당의 주임신부이다. 천주교 박해와 원폭 피해의 상흔이 남아 있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신의 속마음)성당을 방문하며, 어머니 덕에 자연스럽게 생긴 신앙, 자신이 품고 있던 신의 뜻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한다. 그런 P앞에 우연히 나타난 마른 체구의 소년은 연신 기도하면 천국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아이를 보며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던 P. 불면증을 앓고 있던 그가 깊은 잠을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아이와 함께 사라진 수면제 약병에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비열하다 느낄만한 선택을 하고, 다시 찾은 아이의 눈 앞에 자신의 신앙을 파괴됐음을 깨닫는다.  



<경멸> 


그렇게 보입니까. 꺼져가는 촛불도, 시들어가는 꽃도, 앙상한 해골이나 화려한 보석 같은 것이 없어도, 당신이 그리는 그림은 어쩔 수 없이 모두 일종의 바니타스화가 아니겠습니까. 삶이 헛되다는 것을, 가까이 가면 볼 수 없고, 멀리에서는 실감할 수 없는 그 허망함을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209쪽 


그에게 예술은 짧았고 인생은 무한에 가까웠다. 그가 만든 무엇도 그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터. 그는 언제나 현재에 속했고, 그의 작품들은 늘 과거에 남겨졌다.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사라진 것으로서. 209쪽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서술해가는 형식이 독특한 소설이다. 미술기자인 ‘당신’이 겪은 화가 ‘그’는 자신이 불멸의 인간이라고 주장하며 기자의 눈앞에서 자살을 해 보인다. 그런 화가를 두고 '당신'은 황급히 현장에서 도망을 치지만 기자의 눈앞에 정말로 화가가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된다.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는 현실인가, 아님 '당신'의 상상이나 망상인가.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과 '그'를 지칭한다. 당신이라고 지칭되는 인물의 자리에 읽는 이로 하여금, 독자가 그 위치에 서서 이야기 속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로 느껴진다.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상상이 현실을 능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형인은 믿는다. 우리가 아는 현실이란 지극히 선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럽고 추악한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고개를 들 때, 상상은 전복된다. 상상이 전복되고 나타나는 현실은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다.  227쪽 


설령 다르지 않다 해도, 그것이 형인의 실패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 형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형인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는 날을 기다려온 것이다. (…) 공포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눈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형인의 계획이었다. 255쪽 


이 무시무시한 지루함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니 이 지루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아야 해요. 집으로 돌아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요. 257쪽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라도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사이렌이 곧 사건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결코 이해하지 않는다. 258쪽 


유학 전문 업체에서 일하는 ‘형인’은 미국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는 특별 관리 학생인 ‘수진’의 입학시험 접수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이로 인해 사장과 ‘수진’의 부모로부터 부당한 요구에 시달린다. 모멸감을 느끼며 공항으로 ‘수진’을 마중 나가게 된 ‘형인’은 안개주의보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사방으로 깊어지는 농무를 헤치며 공항으로 향하고, 수진을 만나게 된다. 형인의 예상과 달리 수진은 진솔한 아이였고, 부모님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형인을 언니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는 수진과 달리 형인은 자신이 당한 모욕을 되갚을 때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안전한 위험'이란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일까.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이 폭발하면 어찌될지 대체로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를 드러내보이는 방식이 더 거칠고 과감하다. 여러 변수에 의해 혹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성과 주저함으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을지언정, 또다른 적의와 허무, 이내 곧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광활한 우주는 한 인간을 그 자신의 심연으로 내동댕이치고, 외롭지 않은 인간조차 외로움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곳에서 마음이 허약한 자는 어둠에 마음을 빼앗인다. 아내에게도 우주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294쪽 


우주선의 깊은 밤에 들려오던 것과 같은 소리들. 그 자신의 맥박과 호흡이 어둠 속에서 진동한다. 외부의 적막이 그의 신체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소음이 공간의 적막을 뒤덮는다. 어둠은 그림자를 삼키지 않고 그림자가 몸을 부풀려 빛을 삼킨다. 297쪽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삭제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나는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 다만, 이제 불을 끌 시간이다. 303쪽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아이가 이사해 나간 방에서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화성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세상. 화성 여행자들의 겪게 되는 그림자 분실.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되고, 고립된 느낌, 공포와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했던 사람들. 아내는 화성을 다녀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는 '그'와 그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이 떠났다는 아이. ‘그’는 중간중간 찢겨 나간 일기장의 내용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채워 넣으면서, 아내의 자살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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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2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점차 스팩타클해지는 사건 속 해미시는, 과연?!



『허풍선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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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해미시의 본거지답게 로흐두는 더이상 평화롭기만한 마을이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 속 주인공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사건이 발생되어야 하기 때문에, 로흐두는 어떠한 스펙타클함이 전제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부 아치나 목청 크신 웰링턴 부인 등 마을 주민들이 익숙하게 느껴져 사이사이 시트콤 같은 케미에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어쨌거나 전 편에서 해미시는 관계의 상실을 비롯하여 소중한 가족 타우저를 잃었으며, 해결한 사건의 결말도 씁쓸하기만 했다. 로흐두 밖은 위험하다는 해미시에게 로흐두가 더 위험한 곳이 되는 건 또 다른 전복이라 흥미롭긴 하지만, 그래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건 역시 프리실라와의 관계이다. 불편하지만 또 서로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닌, 마치 연인이 되기전 친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의 관계. 그러나 그 둘이 연인이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그저 약혼을 했다고 말했을 뿐. 친구사이로 애매한 썸의 기류만 흐를 때가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기도. 서로에게 미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향한 미련과 새로운 데이트 상대에 대한 질투, 관심이 너무 보인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미시에게는 일종의 조력자같은 인물이 없다. 마을 주민이야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일 뿐이고, 좀더 가까운 일대일 관계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앞서 막히는 구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사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되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애정전선의 상대로 등장하는 프리실라뿐이다. 그러니 사실상 이 두 사람을 완전히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여러 편을 걸쳐 그런 관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설이 길었던 건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쯤에서 마치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자.  

자신을 모험가이자 도전 정신이 투철한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 주장하는 랜디 두건의 별명은 자칭 마초맨이다.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 짧은 몸통, 곳곳에 새긴 문신, 좁은 이마와 떡이 진 곱슬머리와 가죽재킷, 가로 줄이 있는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서 밝은 색 모자까지 쓰고 다닌다는 게 이 마초맨의 외관에 대한 묘사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새로운 인물이 주는 신선함, 화려한 무용담에 적극 호응한다. 시리즈 내내 말해왔던 고지 사람들의 특성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워낙에 느긋한 성향 탓일지도 모르고, 그들 자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짓말쟁이일 뿐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는 실력도 출중한 까닭, 또는 누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특히 그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도 허점 같은 걸 찾아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까닭이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고지 사람들은 랜디 두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6쪽


그러나 흔히 그렇듯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랜디의 목청만 큰, MSG만 있는 무용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 할 기회가 박탈당하기 시작하자 슬슬 질려하기 시작한다. 안 취한 날이 없을 정도로 그의 강력한 추종자와 같았던 어부 아치 매클래인은 새로운 주민인 조르디 영감이 랜디로부터 망신을 당하자 빈정이 상하게 된다. 때마침 마주친 해미시는 그들에게 청중이 사라져야 좀 사그라들 것이라며 당분간 마을 술집이 아닌 토멜성 호텔 바를 이용하라고 하고, 이로 인해 해미시와 마주치기 불편해하던 프리실라는 결국 그와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금 마을 주민들이 단골술집으로 모여들게끔 했지만, 그건 랜디 두건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의 허풍을 지적하는 조르디에게 폭력을 쓰려 했던 랜디를 저지하자, 그 상대가 되어버린 해미시는 얼결에 결투신청을 하게 되고, 곧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하며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관중은 늘어나고, 비웃음과 조롱만 앞두고 있던 해미시에게 전해져온 소식은 다름 아닌 결투의 날 사망한 채로 발견된 마초맨의 소식이었다.  


여기서 다시금 되짚어 보자. 해미시는 야망은 없지만 정의감은 있는 인물이다. 정이 많고, 심술궂지만 다정하기도 하다. 의도된 건지 모르겠지만 미남계가 썩 잘 먹혀들기에 일말의 바람기마저 의심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직자답지 않게 규정은 밥 말아먹듯 어기지만,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해미시는 마초맨의 죽음에 한 편으론 안도하면서 한 편으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한 순간의 호기로 인한 결투신청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조롱과 비웃음은 안 당해도 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터전 로흐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는 블레어 경감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해미시에게는 사교계에 영향력 있는 프리실라가 있으며, 해미시 역시 뛰어난 거짓말쟁이로 결투가 아닌 경고를 하려 했을 것뿐이라는 해명을 하고 일단 해고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공식적으로는 수사에서 제외된 해미시지만,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씩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또다른 이주민인 로맨스 소설 작가 로지 드랄리였고, 그녀와 일종의 삼각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 어부 아치과 산림 인부 앤디를 통해 로지가 랜디로부터 모욕을 받았다는 상황을 전해듣게 된다. 직접 로지와 마주하게 된 해미시는 그녀의 경계심은 일단 해소시켰지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알아내진 못한다. 


헤미시는 블레어 경감 부하 앤더슨으로부터 능숙하게 수사 경과를 전해듣는 중에 블레어에게 시달리고 있는 가여운 여인 애니 퍼거슨을 도와달라는 웰링턴 목사 부인의 청을 듣게 된다. 이미 전해들은 수사에 대한 내용으로 마을 내 독실한 신자인 애니 퍼거슨이 랜디와 내연관계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은 터였다. 애니를 만나 얘기를 듣고 마을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미시.  


애니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그는 놀랍고 경이로운 심정으로 그녀를 찬찬히 바라봤다. 누군가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사람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코르셋으로 몸을 단단히 여미고 잿빛 머리를 뽀글거리게 파마한 애니 퍼거슨이 두건처럼 거친 사람에게 격정적인 감정을 꼈다고 하면 대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98쪽 


한편 프리실라는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일단 데이트 중이던 존 글로버라는 글래스고 은행장에게 베티라는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해미시 역시 질투에 눈이 멀어 베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지, 각자 마음이 있는 상대를 두고 일부러 다른 데에 눈을 돌리다니. 이런 관계의 엇갈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의 큰 오해의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해미시는 부검 결과 수면제를 먹고 잠든 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통해 범인은 랜디보다 힘이 약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추리를 해본다. 마음에 걸리는 궁금증이 있으면 반드시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해미시는 자신의 작전에 꼭 프리실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럴 만한 인물 (대범하면서도 센스있는)이 프리실라 뿐이기도 하지만.  


애니 퍼거슨의 집을 탐색한 결과 그녀는 결코 명예를 훼손당한 게 아니고 랜디와의 관계도 자발적인 동시에 적극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뭔가 수상한 로맨스 작가 로지의 집을 탐색해보려 꾀를 쓰는 해미시와 그에게 동조한 프리실라는 또다른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되고만다. 


뜻밖의 위기로 인해 일명 동지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프리실라는 살인사건을 목격한 마음을 추스리며, 해미시에게 아침을 가져다 주러 간 그의 숙소에서 그와 나란히 누워있는 베티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해미시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웰링턴 부인과 커리 자매와 함께 말이다. 해미시는 피곤함을 핑계로 잠든 자신을 탓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해를 풀고 싶지만, 해명하는 일도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성인이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부도덕한 행실을 보인 것으로 마을은 금방 해미시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잊기 위해 더욱더 수사에 몰두하는 해미시. 


뛰어난 직관력과 집념, 그리고 뻔뻔하고도 자연스러운 거짓말쟁이 해미시는 로지 드랄리 살인사건에 범인을 훌륭히 밝혀내지만(이로 인해 그의 과오는 모두 잊혀진 듯 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 앞에서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마을 사람들에게 랜디 사건의 범인은 또 따로 있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해미시의 얼굴에서 평소의 게으른 표정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제가 스트래스베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마을의 사소한 범죄에는 설렁설렁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살인 사건은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하는 범죄예요. 그리고 정의는 편리하게 자백을 해 버리는 사람에겐 절대 찾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전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칠 겁니다. 어르신, 진범을 찾을 때까지요. 진범은 누구라도 될 수 있어요." 225-226쪽


 서로를 의심하며 힘들어했던 부부 윌리와 루차 뿐 아니라, 여러 인물들에게 아직 범인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해미시는 부족한 수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노선에서 열리는 언덕 달리기에 참여해 1천 파운드의 상금을 얻기 위한 도전을 한다. 로흐두 사람들은 또 이런 구경거리에는 빠질 수 없기에 유력 우승후보와 해미시를 두고 내기를 한다. 창피를 당할까봐 걱정이었던 해미시는 뜻밖에도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총알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런 절박함으로 목표를 달성했지만, 증거도 범인도 찾지 못한 채 강제휴가를 받고 글래스고로 향한다.  


해미시는 로지 드랄리의 전남편을 만나고 난 후 일이 더 꼬이기 시작하는데, 무심코 기자인 그 사람에게 사건을 대하는 자신의 현재 심경을 그대로 이야기 해버렸기 때문이다. 해미시가 살해위협을 받았던 사건을 무시했던 블레어 경감은 일간지에 실린 기사 때문에 현재 심리중인 사건에 대해 알려지는 것에 대해 당황한 데이비엇 총경의 명대로 해미시를 긴급수배하기에 이른다. 실종상태가 된 해미시. 경찰에 잡히기 전에 꼭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변장을 하고, 대담하게 경찰서 내부로 들어가 자료를 살펴보기까지 하며 결국 진실에 다다르게 된다. 


한편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진범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 프리실라는 곧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를 감지한 해미시는 다급하게 프리실라를 구하기 위해 내달리고, 마침내 그 위기에서 무사히 그녀를 구출해낸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같이 겪었다해도 실제로 목숨이 위협박은 적이 처음이었던 프리실라는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지만, 해미시를 보고 안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건 해미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해결하고 프리실라도 무사히 구해냈지만,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지친 발걸음으로 프리실라를 만나고, 둘은 같은 위험을 겪어냄으로써 다시금 애정을 느끼는 듯 했다.


그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경찰이 나한테 아예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급도 원치 않고 여행도 싫어하는 걸 보면 난 어디가 굉장히 잘못된 사람이 아닐까요?" 

 프리실라는 갑작스럽게 애정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봤다. "아, 해미시, 지금까지 난 당신이 제발 빈둥거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뭐라도 해 보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 왔어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우리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뭔가를 가졌는지도 몰라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자라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죠?"  331쪽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흐두 마을 풍경 묘사


또 하루가 밝은 태양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서리가 살짝 끼어 있는 맑은 날이었다. 산등성이의 고사리는 황금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마가목은 주홍색 열매로 무거웠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마가목이 한 그루씩 서 있었다. 귀신을 쫓아 준다고 알려진 나무였는데, 다들 귀신 같은 건 안 믿는다고 큰 소리를 펑펑 쳐 댔지만, 속으로는 혹시 모르니 만약에 대비해서 집 밖에 마가목 한 그루가 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337-338쪽



**


하지만 그건 여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애정인듯 애정아닌 관심 덕분에 해고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또 다시 엇갈린 타이밍으로 두 사람은 어긋나버린다. 이건 꼭 작가님의 농간 같다. 반드시 두 사람이 이루어질 것처럼, 특별한 관계성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이어주지 않는. 한 편 한 편 지날수록 사건은 점차 커져가고 긴장감이 한층 더해지는 것 같아 미스터리 작품으로서의 기능은 아주 충실히 해내는 것 같아 정말 이건 꼭 소장하여 두고두고 읽을 시리즈라고 단언하고 싶다. 특히 프리실라가 범인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해미시가 그녀를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은 영상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잘 그려졌기 때문이다.  


올해 해미시 맥베스의 출간예정인 작품 수는 두 편이 더 남아 있다니 너무 설레고 기쁜 마음이다. 다음 편은 아마 '치과의사의 죽음'이 될까, 이건 또 로흐두마을에서일까, 아님 해미시의 독단적이고, 야망은 없지만 사건 해결의 의지는 강력한 능력을 깊이 산 다른 지역으로의 발령에서 비롯될까. 상상하는 기다림도 좋다. 하지만 이제 좀 한 사람한테만 잘하면 좋겠다는 소소한 기대를 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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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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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죽은 자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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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새로운 '핀' 시리즈는 해당 출판사 문예잡지의 기획으로부터 시작된 듯 하다. 시와 소설 분야 모두 라인업이 워낙 짱짱하니 이건 작가이름만 보고도 당연히 읽어봐야 할 것으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 다음 이미지 출처 : 현대문학 블로그 )





그리하여 핀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 작품의 주인공은 편혜영 작가이다. 예전에 선배로부터 여러 책을 물려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편혜영 작가의 『아오이 가든』도 함께 있었다. 좋은 선배를 두었지만, 게으른 후배인지라 관심 있는 시집은 다 읽었지만 소설은 잘 찾지 않았다. 이제야 인연이 닿아 편혜영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너무 늦게 안 게 한탄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핀 시리즈의 판형도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라 좋다. 무엇보다 새 책, 그 종이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그게 묘하게도 이번 작품의 성질과도 잘 어울리는 듯 했다. 뭐든 안 어울릴까 싶지만, 그렇게 의미부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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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불미스런 일로 인해 이인시 선도병원으로 내려오게 된다.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비슷한 업무를 해온 이석은 병원 내 평판이 좋은 편이지만, 뒷말이 많은 직원이다. 무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전임자인 이름으로 부르는 송에게 무시당하는 듯해 기분이 상하지만(물론 송이 예의 없는 방식으로 무주를 대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다), 이석의 여러가지 도움 덕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조선업의 발달로 성장해나가던 이인시는 조선업의 몰락과 함께 점점 황량한 도시로 변해가고, 이에 병원은 존폐 위기에 닥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자 프로젝트 팀을 꾸리게 되고, 이석의 추천 등으로 새 팀에 투입된 무주는 생각지 못한 데서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이석에게는  아픈 아이가 있고, 기계에 의존하여 겨우 생명을 연장하는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석을 보며 무주는 갈등하게 된다. 



무주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맞는 세계, 균형이 잡힌 세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은 비뚤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애초 구球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 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40-41쪽

  

아이는 엄마와 함께 규칙적이고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파도나 바람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전적인 생의 의지로 뛰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꽤나 믿음직한 속도와 간격이었다. 뭉클했다. 가냘프지만 끈질기게 아내와 더불어 숨 쉬는 아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랬다. 50쪽

  

아이를 둘러싼 불안정한 물결의 흔들림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미래에 아이가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면 이석의 일을 모른 체했을 것이다. 이석의 아이를 떠올리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57쪽

  

장부를 보자마자 무주는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로부터 온 목소리였다. 무주는 그 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였고,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리라 쉽게 단정했다. 짐작이 맞았을 때는 자못 통쾌했다. 거의 모든 구매 건에서 리베이트를 찾아내어 몹시 흥분했다. 잘못된 것을 적시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신만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84-85쪽

  

그러나 이내 이석의 비리가 아이가 아프기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과, 무주에게도 기적처럼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 앞에 결심하게 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무주는 '정의'라는 선택으로, 내부고발을 하게 된다.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길 때쯤, 죄책감에 시달리는 무주에게 더 큰 시련이 다가오게 된다. 


갑작스럽게 그만 둔 이석은, 전날 원장과 큰 다툼을 했으며, 무엇보다 무주가 작성했던 이석에 대한 글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석의 뒤에서 좋지 않은 말을 내뱉던 직원들은 어느새 그 화살을 무주에게 돌리며, 이석의 갑작스러운 사직의 이유를 무주의 배신으로 비롯된 것이라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게 된 무주는 자신이 맡았던 일에서도 밀려나게 되고, 복잡한 심경으로 힘들어하는 무주에게 차마 유산 소식을 알리지 못한 아내 역시 무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무주는 그 모든 가능성을 지닌 아이를 잃었다. 질서와 명분을 잃었다. 선하고 바르려는 의지를 잃었다. 이석도 아이를 잃었다. 삶을 다 바쳐 살리려던 아이를 잃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병원은 차라리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가족을 잃게 되리라는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사무장 말이 맞았다. 병원에서는 누군가 죽기 마련이었다. 93쪽


그때쯤 병원에는 의문의 의료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때마침 이석의 아이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과 함께 무주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거세지자, 무주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터뜨리면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경고를 하며, 점점 더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고립되어 간다.  



몸은 힘들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무주보다 상황이 나쁜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유령 같은 도시를 배회하느니 아픈 사람이 가득 들어찬 병원 창구에 앉아 있는 게 나았다. 적어도 병원은 바깥 거리처럼 황량하거나 적막하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 가책을 느끼거나 외로운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책은 아무리 심해도 육체적 통증을 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기도 했다. 117-118쪽


무주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알아서 나가라는 병원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야간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석에게 향했던 감정 또한 처음엔 당혹스러움, 그다음엔 미안함과 죄책감이었으나, 이내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자 이석의 비리를 알고 있다면 자신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석의 아이를 생각하면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고통스러웠지만, 이석의 사직 이후, 무주에게 벌어진 일들로 인해 원망만 쌓이게 된다.  


야간 근무를 서며 가까워진 보안 직원 효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시금 겪게 되는 무주. 자살 시도한 아들을 병원에 데려올 때 차비를 아끼고자 버스를 타고 온 검소한 노부부부터, 자신의 부모이지만 다 죽어가는 노인을 왜 살려냈냐며 치료비를 낼 수 없다는 자식들 등. 씁쓸하고 아픈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근무 시간대가 바뀌자 아내와의 대화가 더 어려워진 무주는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 주저하게 되고, 지친 아내는 친정을 가는 일이 잦아지다, 서울로 직장을 잡고 이사를 하여 무주와는 떨어져 살기 시작한다. 



울음을 삼키려고 말없이 뜨거운 국물을 입에 넣는데 돌연 그런 감정이 자연스러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항상 어리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계속 미안해하고 용서받은 걸 감사해야 하는 관계 말이다. 133쪽

  

“(…)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140쪽


이때쯤 병원 원장은 비리 등으로 퇴출 당하고, 새로운 원장과 더불어 이석의 복직이 결정된다. 기존의 직책보다 더 높은 위치로. 그러나 다시 돌아온 이석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한 무주. 병원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처럼, 무주는 야간근무에서 본래 근무시간대로 돌아오게 되지만, 이번엔 미납 병원비 추징의 업무를 맡게 된다.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같이 터뜨리자는 박 앞에서 아무말 할 수 없던 무주는 미납 병원비를 받기 위해 다소 강압적인 태도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게 된다.


이석 또한 무주에게 알고 있는 것을 알려 달라고 하지만, 무주는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무주는 또다른 진실의 이면을 알게 된다. 이석의 그만두게 된 사유도 자신이 짐작하고 죄책감을 가졌던 일과 전혀 다르다는 것, 그 이면에는 이석과 효와의 관계성과 이석 또한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는 것과 더불어 다른 직원들을 몰아붙이기 일쑤였던 사무장의 이기적인 속내 또한 알게 된다. 무주는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자, 자신을 언제고 다시 부르겠다는 옛 직장 상사를 만나러 간다. 별 소득 없는 말만 계속 늘어놓다, 전화를 핑계로 뒤돌아서 가는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뒤따르던 무주는 이내 우뚝 멈춰선다. 무심결에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 만나게 되었지만, 역시나 전하고 싶은 마음은 잘 전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된다. 


새 프로젝트의 다른 팀원이었던 권에게서 전화가 오고, 병원에는 재차 큰일이 발생됐는데, 문득 자신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무단결근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병원에 닥친 큰일이란, 사무장의 그동안 저질렀던 수많은 비리와 함께 현재 진행중인 요양시설 투자금을 가지고 달아났다는 것과 이석이 이전 무주가 한 내부고발로 인해 횡령 혐의로 고발됐다는 것, 무단 결근한 자신이 같은 한 패로 엮여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주는 되레 이런 상황들이 무언가 완결되었다 느껴졌고, 완전히 빈손이 된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본다. 자신과 아내에게 소중했던 작고 여린 아이를 지키고자 복부에 손을 포개며 조심히 걷던 아내의 모습, 그 모습을 기대어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무주. 이번만큼은 자신의 할 말이 무엇인지, 뭘 전달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무언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직도 남은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같은 일이 반복될 줄 알면서도 다른 사무장이나 인수자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

무주는 자신에게 남은 것을 애써 생각했다. 태내 아이를 보호하려고 두 손을 복부에 포개고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던 아내가 떠올랐다. 의지가 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기대어 간절히 무슨 말인가 시작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부터 모두 털어놓을 작정이었다.그런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번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225-226쪽



**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속에 많은 사건들과 불편한 진실들이 교차되어 펼쳐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개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에도 처음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치부하다, 결국 그 유혹에 서서히 물들어 가고 익숙해져 간다는 것,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보며 안도한다는 것, 나의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을 보며 위안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은 그렇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큰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되는 것에 반해 소설 속 분위기는 고요하게만 느껴진다. 아마 덤덤한 표현과 문장들로 자연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 싶다. 한때는 발전과 부흥을 이뤘으나, 이제는 황폐함과 생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만 남은 도시에서 병원은 마치 장례식장과 같다는 무주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죽는 곳이기도 하다. 죽는 게 별다른 일이 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병원이라는 공간은 늘 일말의 두려움과 불편함이 함께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내게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가야 할 곳이지만, 가기 두려운 곳, 보고 싶지 않은 죽음을 목도해야만 하는 곳. 새하얗고 시린, 시퍼렇고 서늘한 이미지가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무주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처음 정의를 향한 것이었대도, 결국 또 다른 자신을 찌른 격으로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을 향하게 되는 결과 남기게 된다. 실질적인 죄를 행한 중심인물 즉, 그런 죄를 행한 자들은 번듯이 잘 살아가고 있다. 혼자 끌어안고 가야 할 짐을 떠안은 것은 모두어설픈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 역시 이를 통해 얻은 '권력'이라는 힘에 취하기도 했으니, 그 무거움을 아주 무시해버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돌아간 무주가 아주 실패한 인생이라고만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다시 노력해볼 여지가 있는 관계도 있고 의지도 남아 있다. 차리리 해소되지 못했던 지난 잘못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와 발판이 되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무주가 머물렀고, 잠시간의 기쁨과 고통, 힘든 선택과 죄책감,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의 심신을 지치게 했던 이인시는 황폐한 도시의 전형 같았다. 한때는 빛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모든 게 무너지고 남은 게 없는 황량한 공간.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곳. 이인시는 무주와 이석의 관계성은 물론 여러 인물 군상들 속 내면을 대변해주는 듯한 공간이다. 감추고 싶었으나 드러날 수밖에 없는 치부나 더럽게 여겨지는 욕망, 그러나 진실, 어두움으로 치환되는 내면의 여러 얼굴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가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무용지물의 존재로 그저 떠도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정말이지 난감하기만 하다. 편혜영 작가님의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그러한 어둡고 도망치고 싶은 내면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작품 같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판 첫 작품인 이 소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만은 않다. 그러나 다음이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낯선 충격이, 묘하게 이는 파동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실은 아픈 것이지만 아니 볼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삶은 진창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므로, 그 무거운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조금만 덜 물러서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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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맨
슈테판 보너.안네 바이스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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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리얼리즘, 지독한 현실의 극치!




『베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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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맨』을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골 때린다, 라고 말하고 싶은 동시에 끝내 지독한 현실을 마주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 표지 상단에 '소설인 척 소설이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의 끝판왕'이라는 문장은 이 작품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그래서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고 찾아보니...극사실주의적 표현 예술양식이라고 한다.

 

** 하이퍼리얼리즘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구성을 추구하는 예술양식. (출처:문학비평용어사전) 


** 베타맨 

확고한 역할 모델의 부재로 인해 갈피를 못 잡는 현대의 남성을 일컫는 말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하며 당황했던 점 첫 번째는 역시 저자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한 두 주인공이었다. 그럼 이름만 차용해 온 완전한 허구의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다 읽고 난 후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몇몇 인물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수정된 부분이 있다고 하니, 대체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렇게  적나라했고, 읽는 내내 불통 터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게 모두 설명이 된다. 


안네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결국 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미래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찰나에 직장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인물, 슈테판을 보며 첫 눈에 자신의 이상형으로 바라봤지만, 이내 여자친구 마야를 소개하는 그를 보며 유감이라며 마음을 접는 안네. 보통의 소설이었다면 이 둘의 관계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얽히고설킨 서사가 진행되는지 약간의 말미라도 주었을 텐데. 단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이 싹을 딱 잘라 시작한다. 왜냐, 이 작품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매와도 같은 사이로 때로는 짜증유발 직장 동료인 두 사람의 각각의 이야기로, 크게 두 갈래의 이야기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형식이다. 모두 스물네 개의 챕터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시점이 바뀐다. 처음엔 산만하고 너무 흩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곧 내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귀결되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재미가 시작되는 건 아무래도 안네와 슈테판 이들의 성격이라든지, 성향을 일부 파악하고서였다. 


제목처럼, 슈테판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손에서 자라 자신의 보고 배울 남성성에 대한 갈망을 가지며, 상남자를 꿈꾸는 여린 인간이다. 그런 그에게는 여러 친구들이 있고, 그중에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마르코가 있다. 어느 날 마르코는 자신이 아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이야기만 들어도 아찔한 슈테판에게 마야는 울며 말한다. 이 둔한 인간아, 나 임신했어, 당신도 이제 아이 아빠가 된다고! 라며 갑작스러운 책임감과 남자다움에 대해 강요받게 된다. 


그러나 슈테판은 아버지 없이 자라왔고, 늘 강인한 남성성에 대한 열망과 갈증을 가지고 있지만 해소되지 않은 채로 살아온 인물이다.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빠 되기, 남자 되기의 길을 찾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이어진다. 우습게도 본성만 선한 전형적인 찌질남의 선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기에 읽는 내내 울화통이 치민 기분을 간만에 느껴보게 됐다. 


한없이 서툴기만 한 슈테판. 그러나 상남자란 무엇이며, 그가 추구하며 되고 싶은 그 남성성의 본질은 무엇인지 오리무중하다. 그것도 잘 하려고 노력할수록 안좋은 방향과 결과로 이어진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고 싶기도 하다. 과하지만 않으면 부족하지 않게 잘 마칠 수 있을 것들도 결국엔 회피성에 불과하며, 실패를 거듭한다. 마치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마야가 언뜻 언뜻 던져주는 기회에 장인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 자리를 갖지만, 독주를 피하기 위한 꼼수, 못질 노동을 피하기 위한 술수는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기회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동시에 더 깎일 점수도 없을 정도로 마이너스 굴을 파 내려 가기 일쑤다. 마야의 태도 역시 슈테판의 서툰 행보에 더 불을 붙이는 격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것들 모두 그의 경쟁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랬지만...글쎄...굳이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기 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비로소 이 인물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부 빌렘을 만나는 과정도 너무 허무하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런 막장 스토리가 다 있나 싶지만, 종국엔 해피엔딩이니 이 또한 괜찮은 삶 아닌가 싶고. 


슈테판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건 어느 시대, 어떤 나라건 비슷한 편견과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집안 일은 여자가 하는 게 당연한 거며, 육아는 공동이 아닌 도와준다는 식의 표현, 이에 공감하고 주체적으로 실행하는 건 게이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은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구나, 거기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슈테판이 찌질하기만 한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실패했지만, 그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얻었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전달하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생을 약속했다. 은근 진국인 인물같기도 하고.


반면 안네는 이렇게도 운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남자 복이 없다. 마치 넌 이 세상에 어차피 홀로 와 홀로 떠나는 것임을 명시하며 살라는 운명의 계시라도 새겨진 듯, 만나는 남자마다, 꿈꿔왔던 이성마다 하나같이 안네를 지치게 하고 실망시키기 바쁘다.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지속된 경험이라는 게 더 서글프다. 선망했던 대상으로부터 린치를 당하기도 하며, 좋아하는 일의 연장선에서 직업적으로 만난 상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운명처럼 다시 만난 인물이 염치불구한 부탁을 하거나, 바람이 나거나. 정말 인내심의 경지에 다다라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만 같은 안네이다. 예전 룸메이트 산드라는 자유로운 연애사상을 추구하는 여성으로 여러 만남 끝에 한 사람에게 정착하게 되는데, 그 과정도 뜻밖으로 보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랬는데, 산드라는 그 기적을 행한 셈이다. 


소개팅도 실패, 과거의 인연과의 만남도 실패, 소개팅 사이트의 주선 만남도 실패. 이상한 남자들과 엮이는 안네는 지치기만 했는데, 자신을 위기로부터 구해준 인물과 뜻밖의 재회 끝에, 심지어 사랑에 빠져 이제야 행복해지나 싶었는데...역시 지독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안네. 


출산하고 아이를 키워나가는 경험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처럼 종용하는 카챠의 말에 흔들리는 안네는 커리어보다 가정이 우선시 될 수도 있음을 감내하려고 하지만, 경력단절은 무슨,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업주부의 삶을 꿈꾼다면서 집안을 개차반으로 어질러 놓고도 도움이라곤 1도 안되는 볼프강의 뒤치닥꺼리까지 해야 했다. 심지어 연봉 협상을 시도하며 승진을 꿈꾸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슈테판과는 다르게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데도 그 중압감과 책임감이 부담스럽다며 복에 겨운 소리를 하시는 볼프강은 진상밉상말세의 끝을 보여준다. 승진의 기회도 그의 바깥으로 보여지는 매력으로 인한 것이었을 뿐. 겉만 번지르르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룸메이트의 진상 짓도 받아들여 줬고, 그동안의 악연도 모두 끊어내고 드디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나 싶었는데 좌절과 더불어 더 큰 상처만 주고 떠난 것도 모자라 다시 질척대는 꼴이라니, 마지막 한방이 없었다면 숨이 막혔을 것 같다. 솔로 라이프를 즐기는 결론으로 안네의 지리멸렬한 연애스토리는 일단 종지부를 맺는 듯 싶지만. 안네의 이상형이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를 꿈꾼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연달아 좌절되는 걸 보면, 그것 또한 환상이 아닌가 싶다. 그래, 현실엔 멋지고 좋은 남자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 남자가 아닐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 준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 안네에게도 좋은 인연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성별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무의식에 박힌, 나도 모르게 머릿 속에 새겨진 편견에 대해 다시 한번 심도 있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인 것 같다. 웃픈 현실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래서 대체 남성성이란 무엇이고, 여성성이란 무엇일까. 이것 모두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어떻게 정의하는 게 맞는 걸까. 확실한 답을 하기엔 어려운 논제기 아닌가 싶다. 하지만 늘 염두해두고 생각해 볼 만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그래, 일단 소설. 이 작품에는 두 중심 인물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느끼기에 인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은 마르코오 패티 아버지 요한 두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두 사람을 고르게 되었지만,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서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따뜻한 품을 가진 사람들.


이러한 인물들의 매력을 잘 살려주는 데에는 좋은 번역이 뒷받침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원서를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읽어나갈 때 어려움이 덜 했고, 무엇보다 맛깔난 지방 사투리와 술 취해 혀 꼬인 말투가 잘 전달됐다.


독특한 시작점도 그러하거니와 구성 방식도 한 몫 든든히 했는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기사나 인용구들은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좋은 양념이 되어 주었다. 장수는 부담스러웠지만, 초중반만 잘 넘기면 이 골 때리는 극현실스토리 웃으면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말했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자신이 관심을 기울였던 어떤 일을 했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겠지. 그런 비딱하고 구태의연한 가족 부양자로서의 역할 모델이니, 요즘 남자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며 성별에 국한해 떠드는 헛소리들은 모두 잊어버려라. 너 생긴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 그리고 네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걸 해." 444쪽



우리는 모두 개별체입니다. 이 개개의 '우리'가 빚어내는 차별성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흥미로워지고, 우리의 사회는 다양해지고 생존력을 더하게 됩니다. 진정한 평등과 정의는 삶에 대한 극도로 다양한 생각들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별 문제는 아마도 부차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505쪽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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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모든 퍼즐이 맞춰졌을 때의 희열이란!




『화이트 래빗』









**



이야기는 황당하게도 자칭 유괴 전문 프로 우사기타 다카노리의 인질 농성 사건 한 달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시작한다. 그렇다.  우사기타 디카노리는 수상한  유괴전문 벤처기업에서 인질 매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파트너인 이노다 마사루와 무사히 일을 마치고 사랑하는 아내 와타코를 떠올리던 그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오게 된다. 


바로 "네 아내를 유괴했다"는 전화. 우사기타가 다니는 벤처기업의 젊은 대표 이나바는 공감능력 상실에 타고난 재능을 기이한 폭력성으로 환산하여 돈을 버는 작자로 악질 중의 악질로 등장한다. 여기서 문제란 우사기타의 파트너 이노다가 잠깐 언급했듯이 컨설턴트 '오리오오리오'라는 작자가 회사의 경리 직원에게 접근해 회사 돈을 가로 챘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거래를 위한 송금을 위해선 컨설턴트라는 자를 찾아 돈을 되찾아야 하지만, 본디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뛰는 건 대표의 본질이 맞지 않으니, 절실함을 빌미로 직원인 우시가타를 지목, 그의 소중한 약점이 된 와타코를 유괴해 오리오의 행방을 찾기에 이른다.



주식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법안을 통과시킨다. 법률을 위반한다. 법률을 엄수한다. 수술을 하지 않는다. 수술을 한다. 사고를 일으킨다. 물건을 훔친다. 예술가를 후원한다. 예술가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인질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그런 일을 부탁한다. 15쪽 


이에 우시기타는 다급히 오리오오리오 가방에 넣어둔 GPS로 위치를 확인한 후, 그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센다이시의 어느 단독주택으로 침입한다.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이 집엔 젊은 청년과 그의 어머니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감추듯 한 수상한 분위기와 2층에 숨어 있어 잡히게 된 아버지라는 사람을 낯설어 하는 이들에게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 그리고 인질교환, 교섭을 위한 달려온 경찰들에게 방송을 통해 오리오오리오를 찾아내라며 농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 잠깐 생뚱맞게 등장하는 빈집털이 삼인방이 등장하는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구로사와, 갖가지 제복을 수집하는 나카무라, 그의 부하 많이 엉뚱한 이마무라가 있다. 이들의 범행 수칙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대화법이 진짜 독특했다.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핑퐁처럼 톡톡 튀는 대화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사기타는 아내를 탈환하기 위한 농성을 벌이게 되지만 일은 이미 그가 오리오오리오의 GPS를 따라 한 가정집에 침입한 순간부터 모든 게 꼬이게 된다. 그래서 일은 무사히 해결되냐,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맞다. 다행히 권선징악의 법칙은 무사히 수행되고, 일이 해결되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짐작한 것들이 하나씩 맞아 떨어질 때의 재미도 있었지만, 저 사람 대체 왜 저런 걸까, 했던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에서는 정말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름이 돋았다.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 날아가는 듯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서문에 스스로를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정의하며, 깜짝 놀랄만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목표에는 아주 성공적으로 도달한 듯 싶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초반에는 진입 장벽이 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서사가 진행되며 서술하는 방식이 낯설게도 작가가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작가의 개입을,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중요한 순간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있기도 했다. 마치 그 극 속에 우리를 끌어들여 놓고는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해 보시죠, 하고... 유인할 땐 언제고 유유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지만, 너무 헤매지는 말라는 듯 사건 개요에 대해 친절하게 이것 저것 떡밥과 배경 설명을 해줬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소설 초반을 읽어나가는 독자는 이리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놈의 오리온자리, 지긋지긋한 오리온자리, 레 미제라블 같으니, 하고.

그래서 흰 토끼 사건이란 뭔데? 하고.

(우사기타의 이름에써 따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리온자리와 토끼 이야기는 또다른 유머포인트일까?! 흰 토끼 사건이라 불리는 데의 배경은 이야기 속의 깜짝 포인트처럼 등장한다.)


중간중간 샛길로 새는 구성 방식이 조금 산만하게 느껴져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이후의 전개에서 하나씩 차근히 밝혀지는 진실이, 그저 짐작하고 예상한 것들이 맞아 떨어지기도, 또는 완전히 다른 진실로 드러나게 되니 말이다. 

하나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하면, 모든 사건이 하나씩 착착 해결되어간다. 초반에 열심히 꼬아놓고, 반복하며 설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사건 해결은 물론 이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교섭을 하는 경찰 중에는 사고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모두 잃고 빈 껍데기로 살아가는 나쓰노메 수사과장이 있다. 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철저히 주변 인물을 이용하는데, 바로 그의 직속 부하인 가스카베의 시선으로 그를 설명하는 점이 그러했다. 그가 어떤 이면으로 살아가고 있건, 일단은 정의로운 경찰이었기에 그리고 빈 껍데기로 살아 기고 있었기에 일이 잘 풀리기도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괜찮은 척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기에 의심을 하였고, 의심을 해결하기에 이르렀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 해소되지 못한 자신 안의 매듭을 살짝 풀어내고 다시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쓰노메 과장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그와 관련해서 좋은 문장과 표현들로 인해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쓰노메 과장의 내면은 그때 공백으로 변했다. 내가 상상하기에는 그렇다.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심정과 감정을 전부 버린 것 아닐까. 최악의 사태로 떡칠이 된 마음이라는 캔버스를 깎아 내어 억지로 흰색 바탕으로 되돌렸다. 

그 후로 나쓰노메 과장에게 감정이란 하얀 캔버스에 물로 그리는 그림과 다를 바 없다. 과장은 언제나 척을 한다. 즐거운 척, 슬픈 척, 살아 있는 척, 옛날의 자신인 척을. 60쪽 


그 순간 나는 주변의 주택이 싹 사라지고 온통 풀로 뒤덮인 구릉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하늘이 너무나 넓고 검어서 거대한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작은 별을 손가락으로 이어 나가는 데 푹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저 별들을 연결해서 사냥꾼 오리온이라고 하자. 그럼 이게 오리온의 목숨을 빼앗은 전갈이다. 그런 말을 주고받는 순간, 새카만 하늘에 선으로만 그린 그림이 입체감을 지닌 실체가 되어 떠오른다.  181쪽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다. 그 말마따나 나쓰노메는 날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과 크고 작은 다양한 잡일에 힘쓰며, 지금은 이렇게 딸과 함께 걷고 있다. 우주를 기준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할 시간을 슬로모션처럼 늘려서 자신들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건 그것대로 득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쓰노메 아이카는 얼마 안 되나마 주어진 '찰나'의 시간조차 제대로 다 사용하지 못하고 죽었다.  186쪽


"일은" 하고 나쓰노메 과장은 독백하듯이 말을 흘렸다. "인생의 대부분을 먹어 치우는 괴물 같아." 

"일이 없으면 인생을 계속 영위할 수 없겠죠." 

"괴물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셈인가." 208쪽 


나쓰노메는 뭉게뭉게 퍼져 나가는 붉은 연기에 감싸이며 내면의 불결함이 빨려 나가는 듯한, 부스럼 딱지 같은 정신의 갑옷이 벗겨지는 듯한 감각을 맛보았다. 

 마치 발치에서 꽃이 피어오르고, 천장에는 딸처럼 생긴 별자리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302쪽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탐정'이고, 이 탐정의 역할을 한 '구로사와' 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가 던진 한 마디로 인해 한 가정이, 고통 받던 시간들을 끝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움츠리고 피하기만 했던 현실의 벽에 거세게 부딪힌 결과가 희망적이라 다행스러웠다. 


"정상이 아니야. 그딴 집에 살면 하루하루가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기분일걸. 한없이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터널 말이야. 인생이 끝날 때나 돼서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겠지. 그럴 바에는 좀 난폭하게 터널 벽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편이 나아. 오본과 설날을 계기로."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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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삼 느끼게 된 건 역시 '이사카 고타로'의 여러 정체성 중에 작가 스스로 주장하듯 미스터리 소설 작가가 맞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발칙하게도 뻔뻔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되돌아보니 그의 작품은 몇 편 읽어 본 기억이 있고, 그것도 꽤 좋아했었다는 게 떠올랐다. 접한 작품들도 하나 같이 독특했고, 참신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웃기게도 도둑 주제에 낭만적 연설을 늘어놓는 '명랑한 갱' 시리즈도 그렇고, '사신 치바'도 그러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도 같다. 유해한 존재들이 무해하게 느껴지다니. 굉장한 장점이다.



드라마의 화면 전환하는 구성 방식, 편집점을 만들어 놓은 듯 뚝뚝 끊어 전개했기 때문에 이건 영상화로 만들어내기도 좋은 작품이다. 언젠가는 TV화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그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한 몫 든든히 했으니, 작가가 읽은 어느 작품의 소개처럼.

'누워서 읽다가 어느 부분에 다다르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킨다.'를 경험해보고픈 독자들은 기꺼이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을 집어 들기를!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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