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2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점차 스팩타클해지는 사건 속 해미시는, 과연?!



『허풍선이의 죽음』









**



우리의 주인공 해미시의 본거지답게 로흐두는 더이상 평화롭기만한 마을이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 속 주인공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사건이 발생되어야 하기 때문에, 로흐두는 어떠한 스펙타클함이 전제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부 아치나 목청 크신 웰링턴 부인 등 마을 주민들이 익숙하게 느껴져 사이사이 시트콤 같은 케미에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어쨌거나 전 편에서 해미시는 관계의 상실을 비롯하여 소중한 가족 타우저를 잃었으며, 해결한 사건의 결말도 씁쓸하기만 했다. 로흐두 밖은 위험하다는 해미시에게 로흐두가 더 위험한 곳이 되는 건 또 다른 전복이라 흥미롭긴 하지만, 그래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건 역시 프리실라와의 관계이다. 불편하지만 또 서로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닌, 마치 연인이 되기전 친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의 관계. 그러나 그 둘이 연인이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그저 약혼을 했다고 말했을 뿐. 친구사이로 애매한 썸의 기류만 흐를 때가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기도. 서로에게 미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향한 미련과 새로운 데이트 상대에 대한 질투, 관심이 너무 보인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미시에게는 일종의 조력자같은 인물이 없다. 마을 주민이야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일 뿐이고, 좀더 가까운 일대일 관계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앞서 막히는 구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사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되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애정전선의 상대로 등장하는 프리실라뿐이다. 그러니 사실상 이 두 사람을 완전히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여러 편을 걸쳐 그런 관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설이 길었던 건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쯤에서 마치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자.  

자신을 모험가이자 도전 정신이 투철한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 주장하는 랜디 두건의 별명은 자칭 마초맨이다.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 짧은 몸통, 곳곳에 새긴 문신, 좁은 이마와 떡이 진 곱슬머리와 가죽재킷, 가로 줄이 있는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서 밝은 색 모자까지 쓰고 다닌다는 게 이 마초맨의 외관에 대한 묘사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새로운 인물이 주는 신선함, 화려한 무용담에 적극 호응한다. 시리즈 내내 말해왔던 고지 사람들의 특성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워낙에 느긋한 성향 탓일지도 모르고, 그들 자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짓말쟁이일 뿐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는 실력도 출중한 까닭, 또는 누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특히 그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도 허점 같은 걸 찾아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까닭이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고지 사람들은 랜디 두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6쪽


그러나 흔히 그렇듯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랜디의 목청만 큰, MSG만 있는 무용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 할 기회가 박탈당하기 시작하자 슬슬 질려하기 시작한다. 안 취한 날이 없을 정도로 그의 강력한 추종자와 같았던 어부 아치 매클래인은 새로운 주민인 조르디 영감이 랜디로부터 망신을 당하자 빈정이 상하게 된다. 때마침 마주친 해미시는 그들에게 청중이 사라져야 좀 사그라들 것이라며 당분간 마을 술집이 아닌 토멜성 호텔 바를 이용하라고 하고, 이로 인해 해미시와 마주치기 불편해하던 프리실라는 결국 그와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금 마을 주민들이 단골술집으로 모여들게끔 했지만, 그건 랜디 두건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의 허풍을 지적하는 조르디에게 폭력을 쓰려 했던 랜디를 저지하자, 그 상대가 되어버린 해미시는 얼결에 결투신청을 하게 되고, 곧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하며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관중은 늘어나고, 비웃음과 조롱만 앞두고 있던 해미시에게 전해져온 소식은 다름 아닌 결투의 날 사망한 채로 발견된 마초맨의 소식이었다.  


여기서 다시금 되짚어 보자. 해미시는 야망은 없지만 정의감은 있는 인물이다. 정이 많고, 심술궂지만 다정하기도 하다. 의도된 건지 모르겠지만 미남계가 썩 잘 먹혀들기에 일말의 바람기마저 의심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직자답지 않게 규정은 밥 말아먹듯 어기지만,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해미시는 마초맨의 죽음에 한 편으론 안도하면서 한 편으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한 순간의 호기로 인한 결투신청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조롱과 비웃음은 안 당해도 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터전 로흐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는 블레어 경감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해미시에게는 사교계에 영향력 있는 프리실라가 있으며, 해미시 역시 뛰어난 거짓말쟁이로 결투가 아닌 경고를 하려 했을 것뿐이라는 해명을 하고 일단 해고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공식적으로는 수사에서 제외된 해미시지만,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씩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또다른 이주민인 로맨스 소설 작가 로지 드랄리였고, 그녀와 일종의 삼각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 어부 아치과 산림 인부 앤디를 통해 로지가 랜디로부터 모욕을 받았다는 상황을 전해듣게 된다. 직접 로지와 마주하게 된 해미시는 그녀의 경계심은 일단 해소시켰지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알아내진 못한다. 


헤미시는 블레어 경감 부하 앤더슨으로부터 능숙하게 수사 경과를 전해듣는 중에 블레어에게 시달리고 있는 가여운 여인 애니 퍼거슨을 도와달라는 웰링턴 목사 부인의 청을 듣게 된다. 이미 전해들은 수사에 대한 내용으로 마을 내 독실한 신자인 애니 퍼거슨이 랜디와 내연관계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은 터였다. 애니를 만나 얘기를 듣고 마을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미시.  


애니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그는 놀랍고 경이로운 심정으로 그녀를 찬찬히 바라봤다. 누군가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사람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코르셋으로 몸을 단단히 여미고 잿빛 머리를 뽀글거리게 파마한 애니 퍼거슨이 두건처럼 거친 사람에게 격정적인 감정을 꼈다고 하면 대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98쪽 


한편 프리실라는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일단 데이트 중이던 존 글로버라는 글래스고 은행장에게 베티라는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해미시 역시 질투에 눈이 멀어 베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지, 각자 마음이 있는 상대를 두고 일부러 다른 데에 눈을 돌리다니. 이런 관계의 엇갈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의 큰 오해의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해미시는 부검 결과 수면제를 먹고 잠든 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통해 범인은 랜디보다 힘이 약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추리를 해본다. 마음에 걸리는 궁금증이 있으면 반드시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해미시는 자신의 작전에 꼭 프리실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럴 만한 인물 (대범하면서도 센스있는)이 프리실라 뿐이기도 하지만.  


애니 퍼거슨의 집을 탐색한 결과 그녀는 결코 명예를 훼손당한 게 아니고 랜디와의 관계도 자발적인 동시에 적극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뭔가 수상한 로맨스 작가 로지의 집을 탐색해보려 꾀를 쓰는 해미시와 그에게 동조한 프리실라는 또다른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되고만다. 


뜻밖의 위기로 인해 일명 동지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프리실라는 살인사건을 목격한 마음을 추스리며, 해미시에게 아침을 가져다 주러 간 그의 숙소에서 그와 나란히 누워있는 베티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해미시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웰링턴 부인과 커리 자매와 함께 말이다. 해미시는 피곤함을 핑계로 잠든 자신을 탓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해를 풀고 싶지만, 해명하는 일도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성인이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부도덕한 행실을 보인 것으로 마을은 금방 해미시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잊기 위해 더욱더 수사에 몰두하는 해미시. 


뛰어난 직관력과 집념, 그리고 뻔뻔하고도 자연스러운 거짓말쟁이 해미시는 로지 드랄리 살인사건에 범인을 훌륭히 밝혀내지만(이로 인해 그의 과오는 모두 잊혀진 듯 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 앞에서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마을 사람들에게 랜디 사건의 범인은 또 따로 있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해미시의 얼굴에서 평소의 게으른 표정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제가 스트래스베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마을의 사소한 범죄에는 설렁설렁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살인 사건은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하는 범죄예요. 그리고 정의는 편리하게 자백을 해 버리는 사람에겐 절대 찾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전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칠 겁니다. 어르신, 진범을 찾을 때까지요. 진범은 누구라도 될 수 있어요." 225-226쪽


 서로를 의심하며 힘들어했던 부부 윌리와 루차 뿐 아니라, 여러 인물들에게 아직 범인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해미시는 부족한 수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노선에서 열리는 언덕 달리기에 참여해 1천 파운드의 상금을 얻기 위한 도전을 한다. 로흐두 사람들은 또 이런 구경거리에는 빠질 수 없기에 유력 우승후보와 해미시를 두고 내기를 한다. 창피를 당할까봐 걱정이었던 해미시는 뜻밖에도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총알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런 절박함으로 목표를 달성했지만, 증거도 범인도 찾지 못한 채 강제휴가를 받고 글래스고로 향한다.  


해미시는 로지 드랄리의 전남편을 만나고 난 후 일이 더 꼬이기 시작하는데, 무심코 기자인 그 사람에게 사건을 대하는 자신의 현재 심경을 그대로 이야기 해버렸기 때문이다. 해미시가 살해위협을 받았던 사건을 무시했던 블레어 경감은 일간지에 실린 기사 때문에 현재 심리중인 사건에 대해 알려지는 것에 대해 당황한 데이비엇 총경의 명대로 해미시를 긴급수배하기에 이른다. 실종상태가 된 해미시. 경찰에 잡히기 전에 꼭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변장을 하고, 대담하게 경찰서 내부로 들어가 자료를 살펴보기까지 하며 결국 진실에 다다르게 된다. 


한편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진범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 프리실라는 곧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를 감지한 해미시는 다급하게 프리실라를 구하기 위해 내달리고, 마침내 그 위기에서 무사히 그녀를 구출해낸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같이 겪었다해도 실제로 목숨이 위협박은 적이 처음이었던 프리실라는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지만, 해미시를 보고 안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건 해미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해결하고 프리실라도 무사히 구해냈지만,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지친 발걸음으로 프리실라를 만나고, 둘은 같은 위험을 겪어냄으로써 다시금 애정을 느끼는 듯 했다.


그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경찰이 나한테 아예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급도 원치 않고 여행도 싫어하는 걸 보면 난 어디가 굉장히 잘못된 사람이 아닐까요?" 

 프리실라는 갑작스럽게 애정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봤다. "아, 해미시, 지금까지 난 당신이 제발 빈둥거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뭐라도 해 보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 왔어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우리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뭔가를 가졌는지도 몰라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자라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죠?"  331쪽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흐두 마을 풍경 묘사


또 하루가 밝은 태양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서리가 살짝 끼어 있는 맑은 날이었다. 산등성이의 고사리는 황금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마가목은 주홍색 열매로 무거웠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마가목이 한 그루씩 서 있었다. 귀신을 쫓아 준다고 알려진 나무였는데, 다들 귀신 같은 건 안 믿는다고 큰 소리를 펑펑 쳐 댔지만, 속으로는 혹시 모르니 만약에 대비해서 집 밖에 마가목 한 그루가 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337-338쪽



**


하지만 그건 여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애정인듯 애정아닌 관심 덕분에 해고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또 다시 엇갈린 타이밍으로 두 사람은 어긋나버린다. 이건 꼭 작가님의 농간 같다. 반드시 두 사람이 이루어질 것처럼, 특별한 관계성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이어주지 않는. 한 편 한 편 지날수록 사건은 점차 커져가고 긴장감이 한층 더해지는 것 같아 미스터리 작품으로서의 기능은 아주 충실히 해내는 것 같아 정말 이건 꼭 소장하여 두고두고 읽을 시리즈라고 단언하고 싶다. 특히 프리실라가 범인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해미시가 그녀를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은 영상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잘 그려졌기 때문이다.  


올해 해미시 맥베스의 출간예정인 작품 수는 두 편이 더 남아 있다니 너무 설레고 기쁜 마음이다. 다음 편은 아마 '치과의사의 죽음'이 될까, 이건 또 로흐두마을에서일까, 아님 해미시의 독단적이고, 야망은 없지만 사건 해결의 의지는 강력한 능력을 깊이 산 다른 지역으로의 발령에서 비롯될까. 상상하는 기다림도 좋다. 하지만 이제 좀 한 사람한테만 잘하면 좋겠다는 소소한 기대를 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