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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맨
슈테판 보너.안네 바이스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2월
평점 :
하이퍼리얼리즘, 지독한 현실의 극치!
『베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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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맨』을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골 때린다, 라고 말하고 싶은 동시에 끝내 지독한 현실을 마주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 표지 상단에 '소설인 척 소설이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의 끝판왕'이라는 문장은 이 작품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그래서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고 찾아보니...극사실주의적 표현 예술양식이라고 한다.
** 하이퍼리얼리즘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구성을 추구하는 예술양식. (출처:문학비평용어사전)
** 베타맨
확고한 역할 모델의 부재로 인해 갈피를 못 잡는 현대의 남성을 일컫는 말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하며 당황했던 점 첫 번째는 역시 저자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한 두 주인공이었다. 그럼 이름만 차용해 온 완전한 허구의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다 읽고 난 후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몇몇 인물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수정된 부분이 있다고 하니, 대체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렇게 적나라했고, 읽는 내내 불통 터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게 모두 설명이 된다.
안네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결국 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미래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찰나에 직장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인물, 슈테판을 보며 첫 눈에 자신의 이상형으로 바라봤지만, 이내 여자친구 마야를 소개하는 그를 보며 유감이라며 마음을 접는 안네. 보통의 소설이었다면 이 둘의 관계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얽히고설킨 서사가 진행되는지 약간의 말미라도 주었을 텐데. 단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이 싹을 딱 잘라 시작한다. 왜냐, 이 작품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매와도 같은 사이로 때로는 짜증유발 직장 동료인 두 사람의 각각의 이야기로, 크게 두 갈래의 이야기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형식이다. 모두 스물네 개의 챕터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시점이 바뀐다. 처음엔 산만하고 너무 흩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곧 내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귀결되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재미가 시작되는 건 아무래도 안네와 슈테판 이들의 성격이라든지, 성향을 일부 파악하고서였다.
제목처럼, 슈테판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손에서 자라 자신의 보고 배울 남성성에 대한 갈망을 가지며, 상남자를 꿈꾸는 여린 인간이다. 그런 그에게는 여러 친구들이 있고, 그중에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마르코가 있다. 어느 날 마르코는 자신이 아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이야기만 들어도 아찔한 슈테판에게 마야는 울며 말한다. 이 둔한 인간아, 나 임신했어, 당신도 이제 아이 아빠가 된다고! 라며 갑작스러운 책임감과 남자다움에 대해 강요받게 된다.
그러나 슈테판은 아버지 없이 자라왔고, 늘 강인한 남성성에 대한 열망과 갈증을 가지고 있지만 해소되지 않은 채로 살아온 인물이다.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빠 되기, 남자 되기의 길을 찾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이어진다. 우습게도 본성만 선한 전형적인 찌질남의 선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기에 읽는 내내 울화통이 치민 기분을 간만에 느껴보게 됐다.
한없이 서툴기만 한 슈테판. 그러나 상남자란 무엇이며, 그가 추구하며 되고 싶은 그 남성성의 본질은 무엇인지 오리무중하다. 그것도 잘 하려고 노력할수록 안좋은 방향과 결과로 이어진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고 싶기도 하다. 과하지만 않으면 부족하지 않게 잘 마칠 수 있을 것들도 결국엔 회피성에 불과하며, 실패를 거듭한다. 마치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마야가 언뜻 언뜻 던져주는 기회에 장인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 자리를 갖지만, 독주를 피하기 위한 꼼수, 못질 노동을 피하기 위한 술수는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기회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동시에 더 깎일 점수도 없을 정도로 마이너스 굴을 파 내려 가기 일쑤다. 마야의 태도 역시 슈테판의 서툰 행보에 더 불을 붙이는 격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것들 모두 그의 경쟁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랬지만...글쎄...굳이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기 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비로소 이 인물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부 빌렘을 만나는 과정도 너무 허무하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런 막장 스토리가 다 있나 싶지만, 종국엔 해피엔딩이니 이 또한 괜찮은 삶 아닌가 싶고.
슈테판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건 어느 시대, 어떤 나라건 비슷한 편견과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집안 일은 여자가 하는 게 당연한 거며, 육아는 공동이 아닌 도와준다는 식의 표현, 이에 공감하고 주체적으로 실행하는 건 게이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은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구나, 거기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슈테판이 찌질하기만 한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실패했지만, 그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얻었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전달하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생을 약속했다. 은근 진국인 인물같기도 하고.
반면 안네는 이렇게도 운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남자 복이 없다. 마치 넌 이 세상에 어차피 홀로 와 홀로 떠나는 것임을 명시하며 살라는 운명의 계시라도 새겨진 듯, 만나는 남자마다, 꿈꿔왔던 이성마다 하나같이 안네를 지치게 하고 실망시키기 바쁘다.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지속된 경험이라는 게 더 서글프다. 선망했던 대상으로부터 린치를 당하기도 하며, 좋아하는 일의 연장선에서 직업적으로 만난 상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운명처럼 다시 만난 인물이 염치불구한 부탁을 하거나, 바람이 나거나. 정말 인내심의 경지에 다다라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만 같은 안네이다. 예전 룸메이트 산드라는 자유로운 연애사상을 추구하는 여성으로 여러 만남 끝에 한 사람에게 정착하게 되는데, 그 과정도 뜻밖으로 보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랬는데, 산드라는 그 기적을 행한 셈이다.
소개팅도 실패, 과거의 인연과의 만남도 실패, 소개팅 사이트의 주선 만남도 실패. 이상한 남자들과 엮이는 안네는 지치기만 했는데, 자신을 위기로부터 구해준 인물과 뜻밖의 재회 끝에, 심지어 사랑에 빠져 이제야 행복해지나 싶었는데...역시 지독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안네.
출산하고 아이를 키워나가는 경험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처럼 종용하는 카챠의 말에 흔들리는 안네는 커리어보다 가정이 우선시 될 수도 있음을 감내하려고 하지만, 경력단절은 무슨,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업주부의 삶을 꿈꾼다면서 집안을 개차반으로 어질러 놓고도 도움이라곤 1도 안되는 볼프강의 뒤치닥꺼리까지 해야 했다. 심지어 연봉 협상을 시도하며 승진을 꿈꾸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슈테판과는 다르게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데도 그 중압감과 책임감이 부담스럽다며 복에 겨운 소리를 하시는 볼프강은 진상밉상말세의 끝을 보여준다. 승진의 기회도 그의 바깥으로 보여지는 매력으로 인한 것이었을 뿐. 겉만 번지르르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룸메이트의 진상 짓도 받아들여 줬고, 그동안의 악연도 모두 끊어내고 드디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나 싶었는데 좌절과 더불어 더 큰 상처만 주고 떠난 것도 모자라 다시 질척대는 꼴이라니, 마지막 한방이 없었다면 숨이 막혔을 것 같다. 솔로 라이프를 즐기는 결론으로 안네의 지리멸렬한 연애스토리는 일단 종지부를 맺는 듯 싶지만. 안네의 이상형이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를 꿈꾼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연달아 좌절되는 걸 보면, 그것 또한 환상이 아닌가 싶다. 그래, 현실엔 멋지고 좋은 남자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 남자가 아닐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 준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 안네에게도 좋은 인연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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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무의식에 박힌, 나도 모르게 머릿 속에 새겨진 편견에 대해 다시 한번 심도 있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인 것 같다. 웃픈 현실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래서 대체 남성성이란 무엇이고, 여성성이란 무엇일까. 이것 모두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어떻게 정의하는 게 맞는 걸까. 확실한 답을 하기엔 어려운 논제기 아닌가 싶다. 하지만 늘 염두해두고 생각해 볼 만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그래, 일단 소설. 이 작품에는 두 중심 인물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느끼기에 인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은 마르코오 패티 아버지 요한 두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두 사람을 고르게 되었지만,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서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따뜻한 품을 가진 사람들.
이러한 인물들의 매력을 잘 살려주는 데에는 좋은 번역이 뒷받침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원서를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읽어나갈 때 어려움이 덜 했고, 무엇보다 맛깔난 지방 사투리와 술 취해 혀 꼬인 말투가 잘 전달됐다.
독특한 시작점도 그러하거니와 구성 방식도 한 몫 든든히 했는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기사나 인용구들은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좋은 양념이 되어 주었다. 장수는 부담스러웠지만, 초중반만 잘 넘기면 이 골 때리는 극현실스토리 웃으면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말했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자신이 관심을 기울였던 어떤 일을 했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겠지. 그런 비딱하고 구태의연한 가족 부양자로서의 역할 모델이니, 요즘 남자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며 성별에 국한해 떠드는 헛소리들은 모두 잊어버려라. 너 생긴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 그리고 네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걸 해." 444쪽
우리는 모두 개별체입니다. 이 개개의 '우리'가 빚어내는 차별성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흥미로워지고, 우리의 사회는 다양해지고 생존력을 더하게 됩니다. 진정한 평등과 정의는 삶에 대한 극도로 다양한 생각들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별 문제는 아마도 부차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505쪽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