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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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꿀벌 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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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작가의 이름을 들어도 봤고, 그의 책 제목으로 글도 써본 적은 있지만, 막상 책을 읽은 적은 많지 않았다. 어떤 작품을 쓴다고 정의 내리기도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저 친한친구가 꾸준히 읽어온 작가라는 것과 그와 반대로 내게는 잘 안 읽혔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작품집은 또 있었다. 『도서실의 바다』라는 단편소설집. 그때의 나의 감성과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어서. 온다 리쿠를 처음 접한 작품이어서 이 다음도 이어가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 늘 영화<러브레터>가 떠올랐다.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아련한 기억 속 어느 순간들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 코끝에 맴도는 그리운 향수가 떠오르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반기 기대작으로 등장한 『꿀벌과 천둥』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온 연재, 성실히 행했던 취재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악보들처럼, 클래식의 넓고 깊은 세계를 한껏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올해 서점대상1위와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한 저력을 보여준다. 충분히 기대작으로 불릴만 하고, 무엇보다 분량이 참 만만치 않다.


처음 가제본을 받아 읽어보게 되었을 때, 분량에 압도당한 게 사실이었고, 이런 분량이면 과연 흡입력은 잘 잡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어나가는 순간, 바로 이 낯선 세계로의 걸음이 즐겁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니. 대단한 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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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일본의 요시가에 콩쿠르 무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2009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했던 '하마마츠 콩쿠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변인물들은 주요 인물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등장한다. 주요인물이라면 이 네 사람이다. 가지마 진, 에이덴 아야,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다카시마 아카시. 연령도, 자라온 환경도, 특징도 각기 다른 개성의 인물들이 한데 모여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생생한 묘사를 통해 말하는 인물의 시점을 전환이 자유자재로 이뤄지고 있고, 콩쿠르의 절차나 과정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만큼 세밀하게 표현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지만 직접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보고 듣는 영상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책의 내용대로 완벽한 싱크를 연주하고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각설하고, 네 명의 주요인물들에 대해 간략히 말하자면, 


가지마 진, 양봉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동하며 피아노를 연주했던 소년, 천진무구한 얼굴과 순수함으로 무장한, 음악의 신의 가호를 받는 듯한 이 소년의 별명은 '꿀벌왕자', 아직은 때묻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상태에 있고, 전설적인 인물 유지 폰 호프만에게 사사 받고, 그 추천서를 통해 널리 널리 알려진 아이. 소년의 연주에 따른 반응은 '기프트'와 '재앙'으로 극과 극을 오간다.


에이덴 아야. 천채소녀. 음악을 사랑하게 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무대에서 멀어져버렸던 소녀. 음악은 늘 가까이 두었기에 자신을 돌봐주고 챙겨주었던 분의 기대에 따라 오랜만에 참가하게 된 콩쿠르에서 제대로 된 부활을 선보인다. 아직은 세간의 관심과 평이 두렵지만, 그녀에겐 역시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일본계 3세 페루인. 짙은 라틴계 얼굴로 이미 스타성을 가진 인기인이자 타고난 실력자. 그 역시 천재라는 소릴 듣는다. 하이브리드 차일드. 자신의 혈통의 좋은 점은 모두 물려받았지만, 일본사회의 차별과 적대심을 이겨내지 못했던 소년이 멋지게 성장하여 돌아왔다. 


이 소설에서 유일한 로맨스가 나오는데 또 한 몫 해주고 있다. 마아군과 아짱. 귀여운 추억과 관계성이 또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다카시마 아카시, 콩쿠르 참가자 중 최고 연령대에 있는 스물여덟의 가장. 자식에게 언젠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자 마지막 심기일전하여 도전한다. 이 중 제일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인물일수도. 그러나 사실 전혀 평범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종종 예선, 본선에 등장하는 음악을 검색하여 들으며, 상상하며 읽어보았다. 가장 궁금한 건 에이덴 아야의 연주이고, 응원하고 싶은 건 다카시마 아카시였다. 예술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유독 조금이라도 어릴 때 발휘되는 천재성, 예술성에 대해 전혀 무관한 범인들이 보기에는 뭔가 선망과 동시에 질투가 찾아오며, 곧이어 회의와 허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묵묵히 고요한 듯 휘몰아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무게중심을 지키며 나가는 인물이. 괜히 동일시하며 읽게 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참가 등록할 때의 이야기에는 평이하게 읽어나갔다면, 1차 예선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현장에 있지 않았는데도 긴장을 하며 읽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심사위원들과 콩쿠르 스태프들의 고충이나 고심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움직여주고 있기 때문에 무사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음악적 지식이 없어 작곡가별 특징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묘사 덕에 인물들의 특징과 성향에 맞게 본선 곡을 골랐구나 싶었다. 본선은 무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기 때문에 그곳에 내가 있지 지 않다는 게 좀 섭섭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하게 다가왔다.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막연히 떠올렸다 지워버린 생각을 온다 리쿠는 차분히 잘 해낸 것 같다. 음표 하나하나 그로 인해 그려지는 이미지들,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바뀌는 세계관, 표현력 모두 심혈을 기울여 들려주었다. 잠깐의 휴식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 마사루, 아야, 진, 가나데까지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코믹스러웠다가, 바닷가의 풍경 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꺼내 보일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아야는 역시 천재성을 뛰어 넘은 성장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자유분방한 연주를 보인 가지마 진을 통해서 이끌어지기도 했다. 진은 그런 아야를 알아보고 같이 갇혀있는 음악을 바깥으로 꺼내보자고 했다. 인연이란 실로 대단한 게 아닌가. 순서도 나란히 이어졌던 그들은 이전의 연주자가 포악스러운 세계를 표현했다면, 다음 연주자가 따스하게 끌어안는 연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묘한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다. 콩쿠르의 결과는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잠재성과 자라온 환경에서부터 겪었던 일들을 통해 형성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통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클래식 음악은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좋은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과 울컥하며 차오르는 전율은 막귀인 내게도 전달되지 않았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풍부한 클래식의 세계를 이제 막 조금 맛만 본 기분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게 된 순간 아쉬움이 남았다.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답게 세계를 그리는 방법도 있었구나, 새삼 반성하게 됐다. 섬세한 문장들에 다시 반하게 되었다. 한편 가지마 진을 그리는 방식에서 다소 상투적이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란, 이전에도 이런 자유분방형 천재 캐릭터(노다메나, 피아노의 숲의 소년 등)가 종종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꿀벌과 천둥』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인 듯하다. 


한 세계에서 단독자로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여기 등장하는 네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더 잘 해나가지 않을까.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음악을 좀더 자유롭게 맘껏, 표출하고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가 생겼다. 


각 인물을 그리는 데 입체적이면서 생동감 있게 잘 표현되니, 읽는 독자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더위가 조금 식는 어느 날, 본래는 여름밤이 제격인 좋은 소설인데, 지나친 더위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은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소개된 음악과 함께 좋은 연주 속 세계를 여행하는 일은 그야말로 '휴식' 그 자체가 되어줄 것 같다. 치유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꿀벌과 천둥』이 새로운 일의 시작으로 정신 없던 내게 정말 감사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부디 다른 분들에게 '즐거운 휴식'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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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지마 진을 선사하겠다.
글자 그대로 그는 ‘기프트‘이다.
아마도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지만 착각해선 안 된다.
시험받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이자 여러분이다.
그를 ‘체험‘하면 알겠지만, 그는 결코 달콤한 은총이 아니다.
그는 극약이다.
개중에는 그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거부하는 이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진실이며, 그를 ‘체험‘하는 이의 안에 있는
진실이다.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는 여러분, 아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유지 폰 호프만

참가등록 p 37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 버리기 때문이지.

제2차 예선 p302

세상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에너지의 조각, 반짝반짝 빛나는 빛의 조각을 들이쉬는 이미지.
그렇다. 지금 나는 세상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음악의 조각을 그러모아 내 몸속에서 결정을 빚어내고 있다. 내 안의 음악이 가득 차올라, 나라는 필터를 통해 이제 나의 음악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매개로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세상에 들려줄 뿐이다.

본선 p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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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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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으로 시작해 소름 돋는 반전으로, 




무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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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이미지들로 꾸며진 표지를 보건대,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길래 이렇게 균열적인 그림으로 배치가 되어 있는 것일까란 생각이 이 책을 처음 받아보게 된 후, 들었던 생각이다.


띠지에서 나온 그대로, 이야기 속 로버트가 스티브에게 했던 말처럼, 내가 이 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도 그렇고, 지구종말, 시간여행, SF 등등 소개문구로 적혀진 분야 어느 것 하나도 크게 흥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인물소개가 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것만 봐도 등장하는 인물 수만큼 이야기의 세계관 역시 광활하게 펼쳐지겠구나 싶었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짧게 압축해서 정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나, 감히 줄거리 소개랍시고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스티브라는 미국계 한국인에게 신은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길 부탁하고, 이를 기록하는 노트와 만나야 할 인물에게 전달하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다가올 소행성 폭발은 피할 수 없지만(지구의 생명력은 76억 년이 남았다 함), 대신 구원자의 희생이 이러지기 전과 후과 매우 다른 세계로 형성되고 이는 허구로 남을 거라는 것이다. 


프롤로그라고 해야 하나, 놀이공원에 갑자기 홀연히 등장한 소년, 명진 고아원 출신이라는 이 소년의 등장, 낯선 차림과 가지고 있는 소지품도 불가사의한 이 소년이 앞으로의 이야기의 주요한 축의 한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것을, 이야기를 읽고 나가면 자연히 알게 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발을 내딛는 순간, 곧바로 혼란이 찾아온다. 신의 강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신이 사실은 인간의 형상이 아닌 파충류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예고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혼란스러움을 나는 감히 인내라고 표현하며, 그 다음을 넘어서게 되면 흥미진진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혼란스러움의 정체를 앞서 잠깐 말했지만, 이는 화자의 발화 방식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고 본다. 불안정한 심리 표현과 횡설수설로 이어가는 그 방식,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 상 자연스럽게 선택한 방식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게, 단순히 지구 종말의 관한 이야기라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한의 책』은 대단히 복합적인 구성을 지닌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신박한 상상력에 비해 산발적으로 흩어진 느낌이 강했던 이유는 초반의 어수선한 배경 설정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에 주요한 배경이 될 이야기들을 친절히 설명하기 위한 방식이 되레 몰입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세밀한 묘사는 모든 부분에 적용된 것이 아닌 주요 몇 부분만 행해졌으면 어떠할까, 등장한 모든 인물에게 부여된 사연과 환경설정은 그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지게도 하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소 지치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초반부의 흡입력을 기대할 수 없지만,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이야기에 탄력성이 가해져 몰입으로까지 이끈다. 그 다음이 궁금해지기에 책장을 계속해서 넘길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스티브에게는 복잡하고 어두운 가정 환경이 주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특히 시대의 아픈 한 축을 직접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급히 한국을 떠나야 했던 스티브의 가족은 도축공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와 세탁소에서 일하는 어머니, 어린 동생 성호와 주인공 성철로 이뤄졌으나, 내내 불우한 기운이 감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발작을 일으키는 어린 동생.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구 디디, 그를 옭아매는 한 사건과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스티브는 멜름가 1408번지 한국인 가족 몰살사건의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그는 트루데라는 몰락한 도시? 슬럼가?라고 해야 할까, 그 도시의 도축공장에서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는 의지하는 동료도 있고, 언젠가부터 말 붙이고 친하게 지내게 된 전직기자 로버트도 있다. 


로버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T신부의 미발표 원고 <종교와 생물학의 통일장 이론에 관하여>를 읽게 된 스티브가 엮이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 신의 강림과 계시라는 앱,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주고 받게 되고,  과거의 여러 사건들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가며, 진실을 알리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의 사투, 결심과 시간여행, 그리고 미래는 살아감으로써 맞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뜻밖의 반전으로 소름이 돋았고, 소년의 정체를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결말은 새로웠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작동되는 것일까. 결국 살아간다는 것에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무한한 이야기를 끌여들여와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고 자주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느 순간 알아차린 것도 있지만 풀리지 않은 의문도 남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결심하고, 이 미로같은 이야기 속으로 재차 걸음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끔찍했던 모든 것들은 어쩌면 지구 종말 같은 거대한 무게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숨고 싶어질 만큼, 분열은 생존방식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갈래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오로지 읽는 이로 하여금 달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결정하지 못하였다.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인지, 음모 서사인지, 시간여행인지, 한 인물의 아픈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것인지.


그저 처연하기도 했고, 안타까웠던 스티브에게 앞날엔 행복만 남았기를 바라며, 역시 어지러운 이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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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노무현에서 대선후보 노무현이 되기까지,






영화 『노무현입니다







난 사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일 때문이나, 취재 차원에서 잠깐 들여다 봤던 것도 지역 내 사람들의 생활권 관련 문제에 대한 것뿐이었다(그것도 잠깐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직도 전문적이고, 깊게 파고들진 못하지만, 절대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내가 앞날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도 달린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관심가지고 참여해야만 한 것이다.


그래서 새삼 느낀다. 기자정신이란 없는 요즘의 언론은 국민들을 기만하고 엘리트주의에 빠져 선민의식에 적폐세력 못지 않게 청산하고 정화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좀 많이 놀라웠고, 실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이렇게 굴러가고 있었구나, 싶고. 아니 굴러가고 있는 척 했던가.


야당은 어떠한가, 지리멸렬하게 입으로만 떠드는 입진보와 자멸식 발언만 일삼는(공격하는 발언 모두 야당에 해당한다는 사실) 야당은 뭐만 하면 탄압이라 하는데 실은 다 공정하게 이뤄졌어야 할 것들이라는 게 완전 개그 같다. 


매일같이 뉴스를 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된다. 전에는 사는 것에 대한 회의와 어차피 망친 인생 회생불가니 그냥 이렇게 살다 죽어야지 했던 어리석은 마음에서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현 정권에 감사와 지지를 보내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소식들에 눈 감고 귀 닫았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며, 크게 실망했던 5년 전의 결과에 좌절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이런 시궁창같은 상황을 하나씩 치우고 가는 사람에게 하나의 작은 힘 보태고자 관심 갖고 참여하고 지켜주고 싶어졌다.


말이 길었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 몰랐다. 그가 대통령이 됐을 시기엔 나는 아직 어린 학생이었고, 내 꿈에서 대해서도 잘 판단이 안 서는 어리숙한 인간이었다.


그가 변호사에서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4번의 낙선과 당선, 정치적 힘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벗어나 자신을 외면했던 지역구를 다시 찾아갔던 것과 저조한 지지율 속에서 어떻게 노풍을 불러 오게 했고, 대선 후보가 되었으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끔 하는 영화이다.


처음 도입부부터 눈에 확 들어왔던 편집과 음악, 구성 덕분에 '노무현'이란 사람은 참 많은 좌절 속에서도 끝까지 해내고 마는 대담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사람. 그래서 유시민 작가는 그를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던가.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화도 내주는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세력에게까지 정중하게 대화를 요청했던 사람. 자신을 감시하는 직책의 사람까지 매료시키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면서 알게 됐다. 


모두가 외면했던 동서화합을 부르짖으며 노력했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노사모의 열정 또한 감동적이었다. 지금의 문빠라 칭해지는 사람들 또한 노사모와 같이 그냥 보통 사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이에 함께 바꿔 나가자며 같이 발 벗고 나선 보통 사람들이었을 뿐이라는 걸, 지금의 야당과 언론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나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인간 노무현은 정말이지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잘 몰랐어서 더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가장 큰 환호와 기쁨의 길에서 애도와 통한의 길로 접어들 때 더욱 마음이 쓰라렸다. 인터뷰하는 사람들 또한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말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이 작은 땅덩어리,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작은 땅덩어리에 존재했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대단하다. 이런 사람을 잃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길을 걸어가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뒷모습의 여운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잘 부탁드립니다. 노무현입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개구진 웃음을 지을 것만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적폐세력은 어찌나 한결 같은지 우습기도 했다. 똑같은 패턴들. 지역감정 조장, 근거 없이 상대를 비방하고, 사돈의 팔촌까지 엮어 팔아 공격해대는 몰상식한 언사들. 참으로 많기도 하지. 그들 땜에 많이 웃었다. 어이 없어서. 그리고 참 다행이다.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사실 당연한 건데. 당연한 걸 불가능하게 했던 10년의 시간을 지나, 당연하게 보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노풍의 바람결에 흔들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지금이라도 노통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에게는 먼 이야기 같았던 것들이 이제는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부족한 리뷰를 마치려 한다. 


이제는 당당하게 참여하고 스스로 잘 판단하고 봐야 한다. 잘 몰라도 무관심한 것보단 낫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말인지 방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프레임으로 상황을 현혹시키고 무마하지 않도록 똑바로 바라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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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7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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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 5편에서 내내 묘사되었던 신기할 정도로 긴 속눈썹과 개암나무빛(도대체 무슨 색일까요?) 눈동자, 볼품없이 깡마른 몸에 키만 멀대 같이 큰 우리의 미남자 탐정 해미시 맥베스. 30대 초중반 나이, 7남매의 맏이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있는 착실한 청년이지만, 이 집 저 집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유유자적 순찰을 도는 게 주요 업인 마을 경찰이다. 


스코틀랜드 고지의 악명 높은 장난꾼 앤드루 트렌드는 임종을 앞두고 있다며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막대한 유산에 대한 기대로 앤드루의 집 애럿 하우스에 모인 가족들은 죽어 간다는 소식과 다르게 정정한 모습의 앤드루의 온갖 기상천외한 장난들에 지쳐가며 분노하게 된다. 미치광이의 면모를 보이는 앤드루는 누군가의 방 장롱에 사람 크기만한 인형을 시체인양 숨겨두고 놀래키는 등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만 일삼는다. 이런 혼란스럽고 괴로운 장난들이 이어지던 중, 정말 방 장롱에서 괴이한 모습으로 시체가 튀어 나오고, 신고를 받고 애럿 하우스로 향하는 해미시는 또 장난전화가 아닐까 의심을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증거들은 모두 은폐된 상태. 시체는 정말 발견되었던 것이다. 


앤드루의 말도 안되는 장난들이 이어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되는데, 스트래스베인 경찰 본부에서 온 블레어 경감은 사근사근 제안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해미시를 머저리 취급하기 바쁘다. 간신히 프리실라의 도움으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단독수사를 진행하는 해미시.


애럿하우스에 모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앤드루의 큰딸 앤젤라와 막내딸 베티, 앤드루의 수양아들 찰스, 찰스의 약혼녀 티치 골드, 앤드루의 동생 제프리, 제프리의 후처 잰, 잰의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 폴, 폴의 직장동료 멀리사, 애럿하우스의 하인 엔리코 산토스, 그의 아내 마리아, 애럿 하우스의 사냥터 관리인 짐 개스켈, 그의 아내 메리


평생 일을 해본 적 없이 아버지가 주는 돈으로만 생활한 자매와 수양아들이라면서 천대받는 찰스, 서로에게 남은 거라곤 미움 뿐인 제프리와 잰, 어리숙한 폴과 역시나 해미시에게 잠깐의 호감을 품는 여성 멀리사, 지나치게 착실한 하인 엔리코와 그의 아내 마리아 덕에 증거는 모조리 없어지게 되지만, 어떻게든 수사해 나가는 해미시, 앤드루의 과한 장난으로 소중한 걸 잃을 뻔한 짐. 역시나 한결같이 죽어 마땅한 인물이 피해자가 된다.


이런 와중에도 로맨스는 빠지지 않고 진행된다. 등장인물 간의 로맨스는 제인 오스틴 소설 속 묘한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늘 말했듯이 세세한 심리묘사는 일품이다. 


블레어의 과격한 수사방식으로 약점을 잡게 된 해미시는 지극히 해미시다운 딜을 거는 것도 유쾌했다. 피터 총경의 등장으로 해미시는 정당하게 수사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추리 방식은 늘 직관적이기 때문에 감에 따라가는 게 대부분이다. 위태롭지만 어떻게든 해결하고 마니까. 해결되어야 이야기가 완성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 것도 사실이다. 


별다른 진전이 없는가 싶지만, 그래서 여전히 흥미로운 프리실라와 해미시의 관계. 그래 실컷 썸을 타고, 알콩달콩 연애하는 모습도 꼭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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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5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로흐두 라이프를 원하는 해미시의 바람과 달리 블레어 경감의 계략으로 본부로 이동하게 되고, 지루한 도시생활이 이어진다. 한편 마을의 새로운 주민이 된 부유한 중년 여성 매기 베어드는 관심종자 같은 부류인지라,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아 해미시를 다시 불러오기 위한 가짜 범죄 계획을 짜게 된다. 마을 사람들 역시 적극 동참하여 교실에서 마약을 발견했다, 소를 잃어버렸다, 목걸이를 분실하게 됐다 등등 없는 관광객까지 묘사하며 경찰을 귀찮게 한다. 


해미시는 파트너가 된 메리 그레이엄 순경과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아 갈등을 빚게 되고,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녀를 쓰레기통에 내리 꽂는 순간 사직까지 결심하게 된다. 전화위복으로 마을의 잦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로흐두 마을로 돌아가게 된 해미시는 격환 환영으로 몸둘 바를 모르나, 이후 닥칠 비판을 예상하며 차분하게 현재를 받아들인다. 


해미시를 복귀시키는 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중심에 선 매기는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와 망가진 지금을 돌아보며 새로 변신을 꾀하기 위해 잠시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조카 앨리슨은 폐암을 앓고 나았으나 재발이 두려운, 쇠약해진 상태인 인물. 소심하고 의존적이며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다정했던 이모 매기를 따라 로흐두에 왔으나 이내 변한 매기에게 분노와 미움을 가지게 된다. 매기의 집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된 로흐두 주민 토드 여사도 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해미시의 게으르고 오지랖 기질과 더불어 사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누구의 욕망이든, 감춘 거짓말이든지 그 안에 감춰진 것을 잘도 파헤친다. 그래서 지금껏 해결해온 사건들이 주로 직관에 의지했기 때문에 사실 밝혀지는 과정보다 그 이전에 인물들간의 갈등해소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성형과 건강시스템 덕분에 다시 태어난 듯, 아름다워진 매기는 많은 재산을 미끼로 과거 자신과 연애를 했던 네 명의 남자를 불러들인다. 자동차 매장주 크리스핀 위더링턴, 도박 클럽 운영자 제임스 프레임, 퇴물 대중가수 스틸 아이언사이드, 광고회사 이사 피터 쟁긴스. 우습게도 그들 모두 흥신소로 알아본 결과,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매기의 초대가 퍽 구미가 당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엔 속물근성만 남았지 과거 멋모르고 치기 어렸던 애정은 어느 것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장이 약한 매기가 자동차 시동을 걸자마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고, 모두가 사고사로 보는 가운데 해미시만이 살인사건으로 보고 그 진위를 밝히려 한다. 아부를 잘 하던 블레어 경감이지만, 이번 사건에선 뒤로 밀려 새로 등장한 해미시의 상사는 이탈리아계 고지인 이언 도나티. 


감정적이거나 과격하지도 않은, 블레어와 정반대 타입. 처음의 해미시는 그가 정당하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수사하는 데에 있어서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알고 보니 블레어보다 더한 인물이었기에 나중엔 블레어가 그립기까지 한다. 더 권위적이고, 더 하찮게 보고, 더 대놓고 해미시의 공을 앗아가기 때문에. 이야기 말미에 잠깐 다시 등장한 블레어는 해미시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기 위해 술을 권하는 데 그 모습 역시 참 재밌었다.


이번엔 범인이 뜻밖의 인물 같기도 했지만, 역시 군데 군데 해미시의 통찰력이 발휘되는 순간들이 매력적이었다. 해미시는 본부에서 일할 때에도 그곳 시민들의 애정을 한껏 받았는데, 무조건 체포하려고 든 메리 그레이엄 순경은 그걸 엄청 질투했기에 해미시와 잘 맞지 않았다. 


특유의 말투와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프리실라에게 확실히 마음을 끊었다고 자부하던 해미시는 토멜성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프리실라가 마을에서 아주 머물게 됨을 알게 되자 행복해한다. 프리실라가 이 일에 죄책감과 책임을 느끼게 된 데에는 자신이 만나던 사람 때문에 아버지의 자금의 모두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획기적인 제안을 한 해미시에게 다시 한번 호감을 느끼는 프리실라. 


하지만 이번 편 전체적으로 프리실라는 드디어 해미시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자신의 마음에 대해 각성하는데 비해 해미시는 그녀를 포기하고자 한다. 이미 엇갈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프리실라가 마을에 완전 머물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해미시.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된 프리실라가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가까워지길 바란다. 그게 이 이야기를 읽는 또 다른 큰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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