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절히 원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꿀벌 천둥』


















**





온다 리쿠. 작가의 이름을 들어도 봤고, 그의 책 제목으로 글도 써본 적은 있지만, 막상 책을 읽은 적은 많지 않았다. 어떤 작품을 쓴다고 정의 내리기도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저 친한친구가 꾸준히 읽어온 작가라는 것과 그와 반대로 내게는 잘 안 읽혔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작품집은 또 있었다. 『도서실의 바다』라는 단편소설집. 그때의 나의 감성과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어서. 온다 리쿠를 처음 접한 작품이어서 이 다음도 이어가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 늘 영화<러브레터>가 떠올랐다.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아련한 기억 속 어느 순간들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 코끝에 맴도는 그리운 향수가 떠오르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반기 기대작으로 등장한 『꿀벌과 천둥』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온 연재, 성실히 행했던 취재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악보들처럼, 클래식의 넓고 깊은 세계를 한껏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올해 서점대상1위와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한 저력을 보여준다. 충분히 기대작으로 불릴만 하고, 무엇보다 분량이 참 만만치 않다.


처음 가제본을 받아 읽어보게 되었을 때, 분량에 압도당한 게 사실이었고, 이런 분량이면 과연 흡입력은 잘 잡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어나가는 순간, 바로 이 낯선 세계로의 걸음이 즐겁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니. 대단한 내공이다. 



**



이야기는 일본의 요시가에 콩쿠르 무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2009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했던 '하마마츠 콩쿠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변인물들은 주요 인물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등장한다. 주요인물이라면 이 네 사람이다. 가지마 진, 에이덴 아야,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다카시마 아카시. 연령도, 자라온 환경도, 특징도 각기 다른 개성의 인물들이 한데 모여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생생한 묘사를 통해 말하는 인물의 시점을 전환이 자유자재로 이뤄지고 있고, 콩쿠르의 절차나 과정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만큼 세밀하게 표현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지만 직접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보고 듣는 영상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책의 내용대로 완벽한 싱크를 연주하고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각설하고, 네 명의 주요인물들에 대해 간략히 말하자면, 


가지마 진, 양봉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동하며 피아노를 연주했던 소년, 천진무구한 얼굴과 순수함으로 무장한, 음악의 신의 가호를 받는 듯한 이 소년의 별명은 '꿀벌왕자', 아직은 때묻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상태에 있고, 전설적인 인물 유지 폰 호프만에게 사사 받고, 그 추천서를 통해 널리 널리 알려진 아이. 소년의 연주에 따른 반응은 '기프트'와 '재앙'으로 극과 극을 오간다.


에이덴 아야. 천채소녀. 음악을 사랑하게 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무대에서 멀어져버렸던 소녀. 음악은 늘 가까이 두었기에 자신을 돌봐주고 챙겨주었던 분의 기대에 따라 오랜만에 참가하게 된 콩쿠르에서 제대로 된 부활을 선보인다. 아직은 세간의 관심과 평이 두렵지만, 그녀에겐 역시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일본계 3세 페루인. 짙은 라틴계 얼굴로 이미 스타성을 가진 인기인이자 타고난 실력자. 그 역시 천재라는 소릴 듣는다. 하이브리드 차일드. 자신의 혈통의 좋은 점은 모두 물려받았지만, 일본사회의 차별과 적대심을 이겨내지 못했던 소년이 멋지게 성장하여 돌아왔다. 


이 소설에서 유일한 로맨스가 나오는데 또 한 몫 해주고 있다. 마아군과 아짱. 귀여운 추억과 관계성이 또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다카시마 아카시, 콩쿠르 참가자 중 최고 연령대에 있는 스물여덟의 가장. 자식에게 언젠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자 마지막 심기일전하여 도전한다. 이 중 제일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인물일수도. 그러나 사실 전혀 평범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종종 예선, 본선에 등장하는 음악을 검색하여 들으며, 상상하며 읽어보았다. 가장 궁금한 건 에이덴 아야의 연주이고, 응원하고 싶은 건 다카시마 아카시였다. 예술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유독 조금이라도 어릴 때 발휘되는 천재성, 예술성에 대해 전혀 무관한 범인들이 보기에는 뭔가 선망과 동시에 질투가 찾아오며, 곧이어 회의와 허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묵묵히 고요한 듯 휘몰아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무게중심을 지키며 나가는 인물이. 괜히 동일시하며 읽게 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참가 등록할 때의 이야기에는 평이하게 읽어나갔다면, 1차 예선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현장에 있지 않았는데도 긴장을 하며 읽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심사위원들과 콩쿠르 스태프들의 고충이나 고심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움직여주고 있기 때문에 무사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음악적 지식이 없어 작곡가별 특징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묘사 덕에 인물들의 특징과 성향에 맞게 본선 곡을 골랐구나 싶었다. 본선은 무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기 때문에 그곳에 내가 있지 지 않다는 게 좀 섭섭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하게 다가왔다.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막연히 떠올렸다 지워버린 생각을 온다 리쿠는 차분히 잘 해낸 것 같다. 음표 하나하나 그로 인해 그려지는 이미지들,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바뀌는 세계관, 표현력 모두 심혈을 기울여 들려주었다. 잠깐의 휴식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 마사루, 아야, 진, 가나데까지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코믹스러웠다가, 바닷가의 풍경 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꺼내 보일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아야는 역시 천재성을 뛰어 넘은 성장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자유분방한 연주를 보인 가지마 진을 통해서 이끌어지기도 했다. 진은 그런 아야를 알아보고 같이 갇혀있는 음악을 바깥으로 꺼내보자고 했다. 인연이란 실로 대단한 게 아닌가. 순서도 나란히 이어졌던 그들은 이전의 연주자가 포악스러운 세계를 표현했다면, 다음 연주자가 따스하게 끌어안는 연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묘한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다. 콩쿠르의 결과는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잠재성과 자라온 환경에서부터 겪었던 일들을 통해 형성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통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클래식 음악은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좋은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과 울컥하며 차오르는 전율은 막귀인 내게도 전달되지 않았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풍부한 클래식의 세계를 이제 막 조금 맛만 본 기분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게 된 순간 아쉬움이 남았다.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답게 세계를 그리는 방법도 있었구나, 새삼 반성하게 됐다. 섬세한 문장들에 다시 반하게 되었다. 한편 가지마 진을 그리는 방식에서 다소 상투적이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란, 이전에도 이런 자유분방형 천재 캐릭터(노다메나, 피아노의 숲의 소년 등)가 종종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꿀벌과 천둥』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인 듯하다. 


한 세계에서 단독자로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여기 등장하는 네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더 잘 해나가지 않을까.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음악을 좀더 자유롭게 맘껏, 표출하고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가 생겼다. 


각 인물을 그리는 데 입체적이면서 생동감 있게 잘 표현되니, 읽는 독자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더위가 조금 식는 어느 날, 본래는 여름밤이 제격인 좋은 소설인데, 지나친 더위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은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소개된 음악과 함께 좋은 연주 속 세계를 여행하는 일은 그야말로 '휴식' 그 자체가 되어줄 것 같다. 치유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꿀벌과 천둥』이 새로운 일의 시작으로 정신 없던 내게 정말 감사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부디 다른 분들에게 '즐거운 휴식'이 되어주길 바란다.



**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지마 진을 선사하겠다.
글자 그대로 그는 ‘기프트‘이다.
아마도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지만 착각해선 안 된다.
시험받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이자 여러분이다.
그를 ‘체험‘하면 알겠지만, 그는 결코 달콤한 은총이 아니다.
그는 극약이다.
개중에는 그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거부하는 이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진실이며, 그를 ‘체험‘하는 이의 안에 있는
진실이다.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는 여러분, 아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유지 폰 호프만

참가등록 p 37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 버리기 때문이지.

제2차 예선 p302

세상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에너지의 조각, 반짝반짝 빛나는 빛의 조각을 들이쉬는 이미지.
그렇다. 지금 나는 세상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음악의 조각을 그러모아 내 몸속에서 결정을 빚어내고 있다. 내 안의 음악이 가득 차올라, 나라는 필터를 통해 이제 나의 음악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매개로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세상에 들려줄 뿐이다.

본선 p 6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