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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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으로 시작해 소름 돋는 반전으로, 




무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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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이미지들로 꾸며진 표지를 보건대,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길래 이렇게 균열적인 그림으로 배치가 되어 있는 것일까란 생각이 이 책을 처음 받아보게 된 후, 들었던 생각이다.


띠지에서 나온 그대로, 이야기 속 로버트가 스티브에게 했던 말처럼, 내가 이 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도 그렇고, 지구종말, 시간여행, SF 등등 소개문구로 적혀진 분야 어느 것 하나도 크게 흥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인물소개가 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것만 봐도 등장하는 인물 수만큼 이야기의 세계관 역시 광활하게 펼쳐지겠구나 싶었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짧게 압축해서 정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나, 감히 줄거리 소개랍시고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스티브라는 미국계 한국인에게 신은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길 부탁하고, 이를 기록하는 노트와 만나야 할 인물에게 전달하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다가올 소행성 폭발은 피할 수 없지만(지구의 생명력은 76억 년이 남았다 함), 대신 구원자의 희생이 이러지기 전과 후과 매우 다른 세계로 형성되고 이는 허구로 남을 거라는 것이다. 


프롤로그라고 해야 하나, 놀이공원에 갑자기 홀연히 등장한 소년, 명진 고아원 출신이라는 이 소년의 등장, 낯선 차림과 가지고 있는 소지품도 불가사의한 이 소년이 앞으로의 이야기의 주요한 축의 한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것을, 이야기를 읽고 나가면 자연히 알게 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발을 내딛는 순간, 곧바로 혼란이 찾아온다. 신의 강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신이 사실은 인간의 형상이 아닌 파충류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예고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혼란스러움을 나는 감히 인내라고 표현하며, 그 다음을 넘어서게 되면 흥미진진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혼란스러움의 정체를 앞서 잠깐 말했지만, 이는 화자의 발화 방식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고 본다. 불안정한 심리 표현과 횡설수설로 이어가는 그 방식,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 상 자연스럽게 선택한 방식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게, 단순히 지구 종말의 관한 이야기라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한의 책』은 대단히 복합적인 구성을 지닌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신박한 상상력에 비해 산발적으로 흩어진 느낌이 강했던 이유는 초반의 어수선한 배경 설정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에 주요한 배경이 될 이야기들을 친절히 설명하기 위한 방식이 되레 몰입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세밀한 묘사는 모든 부분에 적용된 것이 아닌 주요 몇 부분만 행해졌으면 어떠할까, 등장한 모든 인물에게 부여된 사연과 환경설정은 그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지게도 하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소 지치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초반부의 흡입력을 기대할 수 없지만,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이야기에 탄력성이 가해져 몰입으로까지 이끈다. 그 다음이 궁금해지기에 책장을 계속해서 넘길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스티브에게는 복잡하고 어두운 가정 환경이 주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특히 시대의 아픈 한 축을 직접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급히 한국을 떠나야 했던 스티브의 가족은 도축공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와 세탁소에서 일하는 어머니, 어린 동생 성호와 주인공 성철로 이뤄졌으나, 내내 불우한 기운이 감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발작을 일으키는 어린 동생.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구 디디, 그를 옭아매는 한 사건과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스티브는 멜름가 1408번지 한국인 가족 몰살사건의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그는 트루데라는 몰락한 도시? 슬럼가?라고 해야 할까, 그 도시의 도축공장에서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는 의지하는 동료도 있고, 언젠가부터 말 붙이고 친하게 지내게 된 전직기자 로버트도 있다. 


로버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T신부의 미발표 원고 <종교와 생물학의 통일장 이론에 관하여>를 읽게 된 스티브가 엮이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 신의 강림과 계시라는 앱,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주고 받게 되고,  과거의 여러 사건들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가며, 진실을 알리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의 사투, 결심과 시간여행, 그리고 미래는 살아감으로써 맞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뜻밖의 반전으로 소름이 돋았고, 소년의 정체를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결말은 새로웠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작동되는 것일까. 결국 살아간다는 것에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무한한 이야기를 끌여들여와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고 자주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느 순간 알아차린 것도 있지만 풀리지 않은 의문도 남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결심하고, 이 미로같은 이야기 속으로 재차 걸음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끔찍했던 모든 것들은 어쩌면 지구 종말 같은 거대한 무게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숨고 싶어질 만큼, 분열은 생존방식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갈래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오로지 읽는 이로 하여금 달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결정하지 못하였다.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인지, 음모 서사인지, 시간여행인지, 한 인물의 아픈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것인지.


그저 처연하기도 했고, 안타까웠던 스티브에게 앞날엔 행복만 남았기를 바라며, 역시 어지러운 이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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