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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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보통의 삶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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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도서관 예약순위, 대출순위가 아직까지 1위인 데가 많고, 베스트셀러 코너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82년생 김지영』을 이제야 읽어보았다. 어느새부턴가 조용히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그 열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의 영역은 함부로 발을 들여놓기 어렵고 낯선 구석이 있다. 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숱한 차별을 겪었음에도 그게 차별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의문도 갖지 않은 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삶의 부분부분에서 아주 익숙하게도. 


문학에서조차 여성의 언어를 가지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의 언어는 늘 모성성, 여성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히거나 정의되고 말았다. 여성성에 대한 정의 역시 아직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왜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환원되는 것일까, 어머니는 누구의 밥상만 차려주는 사람인가, 열려 있다는 시인들의 시 속에서도 종종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표현으로 대부분 그런 것들이 묘사되어 있다. 물론 시대가 그러했다. 오랜 시간동안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사회 속에 살았고, 이전의 어머니들의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하기에 다음 세대에 이어지기까지 변화를 꾀하지도 못했고, 자신의 신념처럼 된 차별을 그대로 이어갔다. 왜 딸이라는 이유로 지워져야 했는가, 어떻게 변화를 꾀해야 했을까,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평론의 일부분은 자신이 지칭한 비평어를 쓰기 위한 도구로 여성성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성이 무엇인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너무 자연스럽게 여성스럽다는 표현을 쓰고 있었고, 여성스러운 것은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며, 자신의 감정표현을 솔직히 말하기 보다 조심스럽게 수용만 해야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겪었던 모든 것들에 내재된 성차별에 대해 이제 의문을 품게 되고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 역시도 직장 생활 내내 성추행과 희롱을 겪어야 했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털어놓아 봐도 같은 여성이 아니고서야 모두 내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피해를 겪은 내가 책망을 들어야 하는가, 왜 대한민국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더 중요시하고, 대한민국의 법은 그토록 가해자에게만 한없이 너그러운 것인가, 가진 자들, 소위 지배계층의 논리로 가득한 법은 그 실효성이 얼마나 될 것인가. 왜 피해자가 범죄에 대한 예방을 해야 하고, 그 원인 역시 피해자에게서 찾는 것일까.


매일같이 발생되는 사건, 사고에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혹은 약자인 경우 대비해 봤을때, 가해자들의 형량은 그들이 행한 죄에 비해 너무나도 가볍다. 피해자들의 겪은 고통은 앞으로의 삶 속에서 계속 지속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제 그런 기사들을 보는 게 두렵기도 하다. 주변의 사람을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언론은 이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객관적인 사실보도 보다는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제목을 내걸고, 피해자를 앞세워 기사를 쓴다. 그 피해자가 여자일 경우 특히 언제 어디서나 ~녀를 붙여 표현한다. 


세상은 어느샌가 남과 여를 갈라세우고, 서로에게 화살을 향하게 하며, 책임을 묻도록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약자에게 치우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불평등을 겪을수록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공격을 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조리를 말할 때, 지배계층이라 말하는, 누리는 자들에게 향하는 게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불행했으니, 남들도 함께 불행해져야 한다는 심리는 무엇인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함께 같이 노력해나가야 하는 것인데, 왜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보다 더 못한 처지의 사람에게 불행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인가, 그렇게 의문에 의문이 이어졌다.


『82년생 김지영』은 김지영 씨가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이상행동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종종 주변 여자들로 빙의된 듯 말하는 지영 씨는 결국 시댁에서 큰 실수를 한 게 되고, 이후 과거로 돌아가 지영 씨의 삶을 연도별로 하나씩 서술해나가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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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는 1982년 4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어머니는 주부였다김지영 씨 위로는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었고, 5년 후엔 남동생이 태어났다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나 그때 역시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한 시대였고언니와 지영 씨는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홀대를 받았다그런 할머니 역시 고된 시집살이와 아들을 낳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그러했고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에 살아온 세월로 인해 신념으로 굳힐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에김지영 씨 어머니 역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겪었고그나마 막내는 아들을 낳았기에, 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김지영 씨 어머니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당연히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풍토 때문에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쉬지도먹지도 못한 채 일만 해야 했다그렇게 그 노력과 공이 고대로 되돌아왔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의대를 나와 출세를 하든경찰서장이 되었든모두 그들의 성공이었을 뿐이지김지영 씨 어머니 오미숙 씨의 성공이 아니었다남자 형제와는 연락도 모두 끊어지고 나서야 그때의 노력과 시절이 아쉽기만 했다.


김지영 씨는 3학년이 되면서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서 급식을 먹게 되었는데담임 선생님은 남학생부터 1번순으로 밥을 먹게 했고그나마도 늦게 먹으면 그렇게 혼을 내며 재촉을 해댔다생일이 늦은 여자아이들은 마지막에서야 밥을 먹게 되었고늦게 먹는다고 혼나는 것도 대부분 여학생들이었다한 아이가 용기 내어 급식순서를 바꾸자고 제안하기 전까지 잘못된 점이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랐던 김지영 씨는 그때 조금씩 남녀차별을 인지하게 되었다항상 남자가 먼저인 게 당연했고주민등록번호도 남자는 1,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에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김지영 씨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몇 년 사이 여중과 남중은 대부분 남녀공학이 되었고복장 규정이 무척 까다로웠다특히 여자아이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엄격하다 못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했는데같은 부분을 비교해보더라도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에게 그 기준은 대체로 약화되었다하루는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던 여학생이 벌을 받으며 복장규칙의 부당함을 알리자 그 이후는 기준이 조금 완화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지영 씨는 월경을 시작하게 됐다지영 씨의 초경은 언니와 같았다체형과 식성도 비슷하니 미리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으나붓고 뻐근하며 뒤틀리는 듯한 생리통은 견디기 힘들었다진통제는 너무 독했고핫팩은 휴대용이 아니라 불편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영 씨는 여학교로 배정되었고세상엔 많은 변태가 있음을 실제로 겪게 되었다무릇 학교 밖뿐만 아니라 교실 내에서 선생이라는 작자부터 빈번하게 학생들에게 추행을 했다학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는 모르는 남학생에게 겁을 먹게 된 일이 있었으며우연히 버스에서 있던 여자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겪게 되었을지 무서웠다데리러 온 아빠는 지영 씨의 처신 문제를 논했고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다시 연락하게 된 여자는 지영 씨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세상엔 좋은 남자가 더 많다며 위로를 해주었기에 그나마 그 공포를 떨쳐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직장 역시 IMF의 영향을 비껴갈 순 없었고어머니의 경제력과 판단 덕에 투자사기를 당하지 않고무사히 가게를 열어 운영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사히 가고자 한 학과를 들어가게 된 지영 씨의 당찬 각오와는 다르게 좋은 성적을 얻긴 힘들었지만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던 친구에 비해선 윤택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지영 씨 역시 취업 문턱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간신히 서류 전형을 통과한 뒤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몰상식하고 무례한 질문들 속 회사의 입맛에 맞는 답을 해야만 했고아니면 탈락이었다.

 

한 홍보대행사에 취직을 하게 된 김지영 씨는 일도 재밌고 동료들도 좋았다클라이언트와 갑질은 난감하고 불편한 사항이 많았고당시에 유행하듯 번지는 여성비하적 표현으로 ~녀가 퍼졌었다회식자리에서는 성희롱과 추행을 겪어야 했다.

 

회사 내 기획팀이 꾸려질 때는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 여자사원들은 끼지도 못했다당연히 여자들이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겪게 될 결혼과 육아라는 장벽 때문이었다.

 

김은실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았고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여자 동료와 후배들이 회사를 나갈 때마다 혼란스러웠고요즘은 미안하다고 했다회식은 사실 대부분 불필요한 자리였고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출장은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 문제였다출산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관리직급이 된 후로 가장 먼저 불필요한 회식이나 야유회워크숍 등의 행사를 없앴고남녀 불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보장했다. - 113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 123

 

호주제 폐지가 되면서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게 됐으나막상 그런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 132

 

넌지시 어서 아이를 갖으라는 시부모님 눈치에늦어진 이유를 지영 씨의 건강상태에 있다고 여기는 시댁의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었다아이를 갖을 시기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아이를 갖고 얻을 기쁨만큼이나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나 공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임신을 하고 난 후에도 직장을 다니는데 출퇴근 시간과 병원을 가야할 시간에도 눈치를 봐야 했고배가 불러오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눈치를 봐야 했다왜 그런 것일까작은 양보 하나에도 각박한 마음들에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일까.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져 오면서 회사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육아휴직을 할 것인가, 퇴사를 할 것인가.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살림도 돕겠다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이 집 오빠집 아니야오빨 살림 아니야애는 오빠 애 아니야그리고 내가 일하면그 돈 나만 써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144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145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어느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149

 

김지영 씨는 결국 회사를 퇴사하고 출산의 고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 자연분만를 권하며 출산에 대해 아름답다위대하는 말로 고통을 감내하라는 식의 표현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고, 2시간마다 하는 수유에, 집안일에 몸이 성할 데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방문한 직장동료 강혜수가 알려준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는데직장 앞 여자화장실에 몰카가 있었고범인은 새로 교체한 보안업체 직원이었다는 것이다밝혀지게 된 과정도 어이가 없었고같이 사진을 돌려본 남직원들도 경찰조사를 받고 있으며강혜수 씨는 트라우마와 불안 때문에 정신과를 다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다른 여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몇은 퇴사를 했고, 몇몇은 수면제를 복용하여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피해자가 된 여직원들은 나의 사진을 누가 봤을까, 두려워졌고, 누가 웃는 게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워진 것이다.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156

 

어느 순간부터 ~충이라고 덧붙이게 되었을까.

 

그 커피 1500원이었어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오빠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원이라도 그래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내 생활도일도꿈도내 인생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그랬더니 벌레가 됐어난 아제 어떻게 해야 돼?” - 165

 

그후 김지영 씨는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모두 여자였고장난을 치거나 속이는 게 아니었다정말 완벽하게 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김지영 씨가 상담받고 있는 정신과 남자의사의 독백으로 마무리되는데자신의 아내의 사정을 보고 김지영 씨를 이해하고또 그만두게 된 직원의 사정도 이해하면서 다음은 미혼의 직원을 뽑겠다는 현실에 입각한 말로 씁쓸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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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방송작가로 오랜 경력을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쓰기는 보다 객관적 성질을 띤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서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공감한 만큼 한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실존성을 높혔으며, 통계자료나 관련 자료 인용하여 묘사했기에 객관적이며 사실성을 더했다. 

(또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해 아주 칼같이 지키려 했다는 게 여실히 보인다. 그부분도 아주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김지영 씨는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이 안정된 직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직장생활 역시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보통의 기준에서 괜찮은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정에서의 여자의 삶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걸 따져 무엇하나 싶지만, 요즘 세상은 평범하면서도 보통적으로 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저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만을 꿈꾸는 데도 그것조차 쉽지 않게 됐다. 


페미니즘을 그저 여자들을 위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살만해졌으니 자신들의 이익을 찾겠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에 대해 반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도 페미니즘에 아직 발도 못 들여놓고 있다. 이건 '차별'에 대한 운동인 것이다. 이를 어쭙잖게 여자들의 이기심으로 포장하고 이를 비판하는 도구로, 그 개념도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서히, 조금씩, 그 참된 의미를 알아갈 거라고 바라본다. 그렇기에 이를 설명하기에 좋은 예시로 나온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이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자의 보통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게 한 사람의 삶을 총괄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한 번쯤 읽어보았음 좋겠다. 나 아닌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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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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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옛날이야기 모음,




『신이 없는 달_환색에 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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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문학으로 분류하기엔 그 속성이 조금 애매한 미미여사의 에도시리즈 신작,『신이 없는 달_환색에 도력』. 꼭 따뜻한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께 듣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단편집이다. 매 달이 지나 달력을 넘기듯 이어지는 이야기, 매우 단편적이다. 이야기마다 계절감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여운이 남기도 하고 조금 아쉽게 끝이 나기도 한다.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듯이 서술한 이야기들도 있다. 


에도시리즈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가난한 서민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가난하기에 서로의 사정을 더 이해하고 그들만의 주거형태에서 나올 수 있는, 이웃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나, 영력이나 음식 혹은 큰 괴수를 상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고, 두툼한 양에 압도당하면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게 그 특징이다. 


이번에 나온 에도시리즈 신작은 이전에 비해 다소 가볍다. 상대적으로 얇다해서 담긴 내용이 얕은 건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뭔가 감질맛 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열 두달 모두 다른 이야기로 흥미롭지만, 그쯤에서 그쳐버리기 때문이다. 에도 시리즈 중에서도 이전의 고정적으로 등장했던 인물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다음이 더 기다려진다. 


달력을 한 장씩 넘기듯 읽어나가면 될 듯하다.






<귀자모화>

이타미야 상점에 불이 난 사연, 돌림병으로 죽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신단의 금줄에 숨겨놓았던 아이 이야기


<붉은 구슬>

사치를 금한 시대에 아픈 아내와 힘든 살림을 두고 들어온 일감을 거절할 수 없어 직인으로써 최선을 다한 한 사내와 그후 이야기


<춘화추등>

한 고물상에 사방등을 찾는 손님에게 사연있는 사방등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장 이야기


<얼굴바라기>

거구의 박색의 열여덟 처자가 저주 걸린 집안으로 시집간 이야기


<쇼스케의 이불옷>

이나리야라는 주점에서 일하는 직원 쇼스케가 얻게 된 이불옷과 유령 이야기


<미아방지 목걸이>

백중절 미아가 된 아이의 사연


<다루마 고양이>

소방수를 꿈꾸는 겁 많은 소년과 신기한 고양이문양 두건 이야기


<고소데의 손>

헐값에 나온 기모노와 외로운 노인 이야기


<목 맨 본존님>

가난한 집 맏이로 포목상에서 일하게 된 스테마쓰의 고단한 마음에 위로가 되어준 큰 주인님의 이야기


<신이 없는 달>

신이 자리를 비우는 시월달에만 도둑질을 하는 사내이야기


<와비스케 동백꽃>

간판쟁이 요스케의 사소한 거짓말에 가짜 딸이 등장하게 된 이야기


<종이눈보라>

폐병으로 돌아간 남편 빚을 갚기 위해 홀로 고생한 어머니의 복수를 한 한 소녀의 이야기



표제작인 <신이 없는 달>은 시월에만 도둑질을 하는 한 사내이야기다.

매년 음력 시월에 일본의 팔백만 신이 인간의 혼인과 운명을 결정짓는 회의를 위해 이즈모 신사에 모이기 때문에 일본전역에서 신들이 자취를 감춘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즈모에서는 시월을 신이 없는 달이라고 표현한다. 신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먼저 떠나버린 아내와 남겨진 아픈 아이를 위해 그 달에만 도둑질하는 한 사내 이야기가 안타까웠다. 


마지막 이야기인 종이눈보라 역시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야기라서 소녀의 사연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야기들의 속성 대부분이 미신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밝고 희망찬 이야기보단 살기 퍽퍽한 시대에 고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분 차별도 분명하다는 것도 확연히 느껴진다. 그러나 모두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 속 모든 등장인물은 단 한 명도 허투루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오늘날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바 없고, 구분도 없는 내일이 딱히 기다려지지 않는, 지금의 내가 몹시 부끄러워진다. 현재, 매일을 감사하며 살아가고자 다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회의를 다시금 묻어두며, 씩씩하게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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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9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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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난과 역경을 너머, 기적같은 행복이?!





『여행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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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로운 로흐두 마을, 순찰을 도는 해미시 맥베스 순경, 아니 이제 경사로 승진하여 부하 직원까지 두게 된 그에게 심히 거슬리는 불청객들이 마을에 머무르게 된다. 딱히 해를 가한 것도 없는데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줄기차게 경계하고 불길해하는 해미시는 자칭 집시와 같은 특성으로 떠돌이 여행객이라 소개하는 숀과 셰릴을 못마땅히 여긴다. 


그러나 이런 해미시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싫어했던 해미시보다 더한 게으름을 보여도 한없이 너그럽기만 하다. 


그러나 폭풍전야라고 해야 할까, 사건이 일어나기 전 고요함으로, 해미시의 마음 속에서만 요동을 치고, 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도 얼마 가지 않아 부서지고 말지만. 


경찰인지 청소업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윌리 순경은 해미시와는 정반대의 타입으로 끊임없이 쓸고, 닦고, 광을 내기 바쁘다. 이에 해미시의 숙소는 온통 살균제 냄새로 가득차고, 또 마침 별 것 아닌 해프닝 같은 일들이 연달아 터져 골치가 아프다. 매번 맞춤법을 틀리는 윌리 덕에 보고서를 두 번 작성해야 하는 일상이 이어지고, 이래선 자신이 승진을 한 게 좋은 것인지 도통 알 수 없게 되는 해미시는, 시종일관 불쾌했던 숀의 살인사건이 발생되자,  큰 고심에 빠지게 된다. 


브르디 박사네에서 사리진 모르핀과 어머니협회에서 모은 기부금이 절도당하는 등 마을 내 절도 사건이 연달아 발생된다. 해미시가 숀을 쫓아내기 위해 안달복달하며, 과거 전과이력을 살펴보았을 때도 별 소득이 없었는데, 그런 그가 갑자기 처참히 죽임을 당한 채로 발견되며 사건은 더욱 미궁속으로 빠진게 된다. 그의 연인이었던 셰릴은 얼마 전 숀과 크게 다툰 이후 마을에서 사라지고 없는 상태. 절도 사건의 범인도 당연히 숀 일당이라 믿고 싶었던 해미시와 다르게 그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했고, 멘붕의 연속이 이어진다. 그 멘붕이, 혼란스러움이 텍스트 밖까지 생생히 전달될 정도이다. 


외부인의 소행이길 바라지만, 꼼짝없이 자신이 애정하는 마을 주민을 상대로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해미시는 괴롭기만 하다. 유일하게 사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리실라만이 그의 안식이 되어주지만, 다퉜다가 다시 화해했다 재밌는 관계를 이어가는 둘이다. 


그리하여 해미시의 위상을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던 블레어 경감의 얕은 술수는 간단히 해결했지만,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살인의 진범 찾기.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와 사건의 정황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미시의 고민이 참으로 눈물겹다. 그저 일처럼 대하면 그만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해미시 경사는 정 많고 사람 좋아하는 인물인지라 참 큰일이다. 그러니 프리실라처럼 공과사 구분 확실하고 딱 잘라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인물이 꼭 옆에 필요한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동성애클럽이나, 복장도착증, 히피?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해미시의 반응을 보자면 소설 속 세상은 아직도 폐쇠적이기만 하다. 점점 개방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도 흥미롭다. 


고지인들 특유의 유머가 등장하는 것도 여전히 유쾌하고 재미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게 착착 해결되는 게 싶더니,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세상에, 읽는 독자인 나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가 바라고 있었던 일이라니,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던지. 이제서야 속이 좀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승진 이후 고난을 겪어야 했던 해미시는 모든 문제들이 해소되어 다시금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이제 좀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진 두 사람이 앞날이 어찌될지 기대가 된다. 


해미시의 괴로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시는 마을 주민이 용의자가 되지 않길 바라야 겠다. 


'휴가'라는 것을 도통 모르고, 지나간 여름이 야속했지만, 그 못지 않은 휴식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너무 기쁘다.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는 아직도 그 갈 길이 멀고도 머니, 지친 일상에 좋은 환기가 되어줄 듯 하다. 야호!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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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회색지대에서의 인간의 본성이란,




『검은 강』











**





이 소설은 단수이허 기슭에서 일어난 커피점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사건의 대한 의구점이 도드라지거나, 미궁 속으로 빠질만한 특이성을 가진 게 아닌, 이미 판결이 내려져 종결된 사건이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다. 


2013년 2월, 3월 79세 늙은 사업가와 57세 중년여교수 부부가 여러 군데 몸에 치명상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범인은 이들이 즐겨찾던 커피점의 점장 27세 자전이라는 여성이었다. 사회는 그를 두고 '사갈녀'라 칭했고, 판사는 일간지의 기자처럼 피고를 추궁했으며, 정해놓은 답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세간은 선한 중년의 부부가 한 악인에게 당한 일을 엄히 심판하고, 흑백이 분명한 벌이 처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작가 핑루는 달랐다. 인물들간의 관계성과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더욱 고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실의 사건과 소설적 상상력 사이의 무게중심,즉 거리 두기가 최대 중점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자전의 시선과 훙보의 아내 훙타이의 시선을 교차하여 서사를 진행시킨다. 각 장의 말미에는 사건과 연관되어 있거나, 혹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말들을 실었다. 사건에 대해, '악'이라는 성질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덕분에 소설 뿐아니라 현실 속 여러 인간군상들의 관점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자전은 사회 밑바닥에 있는 여성들의 축소판이다. 어릴 적 다정했던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가정을 꾸려가는 어머니와 함께 빚을 청산하기 위한 가난한 생활을 이어왔다. 상경한 후에도 가난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리기도 했고, 따뜻한 부정(父情)을 바라기도 했다.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해, 누리는 자에 대한 열등감과 불온한 감정들이 늘 내면에 내재되어 있었고, 이러한 각박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게 늘 속을 감추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의 빛나는 삶과 대조된 자신의 지지부진한 현실을 감추려 애쓰면서도, 열심히 커피점 일을 하며 매달 어머니께 돈을 부쳐드리는 효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셴밍이라는 남자친구와의 미래를 꿈꿨으면서.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하고 흔들렸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자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해보지 못했고,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후 부정(父情)을 그리워하다보니, 소아성애자에 당한 폭행을 무엇인지 인지도 못한 채 자라게 되었다. 반면, 남편의 부정(不正)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훙타이는 어떠한가,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인 결혼생활의 실패와 암담함을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오히려 무던해지려 했던 그녀는 왜 불행한 생활을 지속했을까.


자전이 훙보의 욕망을 자신의 착각으로 이해해버리지 않았다면, 겁탈을 당하게 된 상황에서 저항해볼 수 있었다면. 훙보의 계획을 훙타이에게 전했을 때, 훙타이의 반응이 그때와 달랐다면, 죽음에 이르러서야 하나씩 스쳐지나가는 상황을 그리지 않고 제때 행동했더라면, 불행한 결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훙보와 훙타이 모두에게 안전한 삶을 이어가게 했을까. 여러가지 가정들이 이어진다.


자전의 과거 어린 시절 이야기, 커피점에서 일하며 훙보를 만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사건을 발생되고 난 후의 이야기. 법정에서 진술하는 자전과 강물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훙타이의 시선이 처연하게도 엇갈린다. 


훙타이의 생각도 교차되며 진행됨에 따라 훙보에 대한 원망, 증오에서 그의 죽음을 바라고 그가 없는 삶을 그리다, 그를 연민하며 동정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회한의 시선이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제목과 같이 검은 강이 지나는 어두운 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필연과 우연. 이에 더해진 인연과 악연. 우리가 살아가는 데 피할 수 없는 게 필연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일까.



**




작가는 자전을 동정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전 뿐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 작가는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당시의 사법부의 태도에 문제제기를 하며, 문학과 사회현실 사이에서 거리를 두는 실험적 시도를 해보는 핑루의 메타픽션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그렇게 한 인물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내면도 그만큼의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게 아닐까. 비슷한 예로 <인 콜드 블러드>를 쓴 이후의 트루먼 카포티의 삶을 보자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성이라는 문제(인간 본성이 가진 진실한 모습)를 말하고자 했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지을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의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해 집중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전, 실패한 결혼을 감추려는 훙타이. 그녀들의 침묵이 초래한 결과는 어떠한지. 남의 일이라 여기며 아무렇지 않고 '사갈녀'라 칭하는 언론과 사람들의 태도는 또 어떠한지 말이다. 명명 되어짐으로써 그 안에 가둬버리는 '~녀'라는 꼬리표 같은 표현.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경우라도 타인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갈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은 빈번히 발생된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으로 이뤄지는가. 자전의 이야기보다 '사갈녀'라는 이름으로 감추고자 했던 사회의 이면의 진짜 얼굴은 또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가 출간 후 좌담회에서 밝힌 한 마디를 덧붙이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흑도 백도 아닌 회색 지대를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가 소위 '악인'들과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옮긴이의 말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들은 처음에는 사소한 마찰로 시작되지만 어느 한쪽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상대가 차갑게 노려보면 점점 의심이 깊어지고 서로 다름을 느낀다. 그런 뒤에 두 사람의 인생이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면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멀어진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 두 마리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안전거리를 유지한다.

 모든 결혼 관계에 대해 유효한 질문이 있다.

 그동안 서로를 위해 무엇을 했을가?

 그는 그녀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반대로 그녀는 그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 Ⅲ 안전거리 92쪽



이따금씩 걷다 보면 이런 기분이 울컥 차오를 때가 있었다. 좌표를 잃고 GPS신호도 끊긴 채 빛도 없이 사방에 뿌연 안개만 자욱하게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자전은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섰다. 계속 가야 할까? 


- Ⅳ모퉁이, 그 모퉁이 116쪽


누구에게도 사랑받아본 적 없는 자전은 사랑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 Ⅳ모퉁이, 그 모퉁이 125쪽



자전이 훙타이에게 느낀 감정은 경쟁심, 승부욕, 질투, 부러움 등이 있었던 걸까.


남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무척 경계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걸 경멸하는 자전. 그 마음속엔 타인의 삶이 아무 조건없이 이뤄진 데에 대한 불만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은 공허하게 보낸 수많은 날들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잘근잘근 씹혀 뭉그러졌다. 생리적인 욕구도 벌레 먹은 잎사귀처럼 서서히 시들어버렸다. 


- Ⅴ소원의 거리 162쪽



자전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그녀에게 "잠깐 기다려. 넌 지금 길모퉁이를 잘못 돌았어. 어서 멈춰. 빌어먹을 그 생각을 떨쳐버려!"라고 외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Ⅵ행복의 거리 174쪽


자전은 훙보의 욕망을 알지 못했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과 저항이 늦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기에. 그가 아내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영영 못 벗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돌이켜보면 경고음이 여러 번 울렸다. 결혼 전 누군가가 나이도 많고 살아온 내력이 불분명한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배우자란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보호색을 한 겹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 Ⅶ 기수지역 202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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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소나타
차소희 지음 / 청어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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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여름동화,



『여름소나타』





 


**

 

 

무더위가 잠시 가신 지금이야말로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읽기 딱 좋을 것 같다. 로맨스 소설은 거의 처음 접해본다. 고등학생 때 야자시간에 반 애들이 돌려볼 때도 관심이 없었는데, 근래 너무 삭막하고 건조한 생활이 이어졌기에, 마음을 간지럽히는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 『여름소나타』는 그런 부분에선 적합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24살 윤리교생실습생 민채민, 20살 천재피아니스트 지선우. 이야기는 채민이로부터 시작된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4년간 연애했던 우진에게서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받고,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민은 계절이 바뀌고,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게 된다. 

 

아버지의 사업 악화로 폭력이 이어지고, 어머니가 쓰러지신 뒤, 대신 경제활동과 학교생활을 병행해야 했던 채민.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힘들었지만, 열심히 제 꿈을 향해 노력해왔다.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왔고,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도 하게 되었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에 더 큰 상처를 남긴 우진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던 채민에게 햇살같이 등장한 선우는 '순백' 그 자체로 보인다.

 

유명 쇼팽 콩쿠르 최연소 입상자인 선우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이다. 타고난 재능에 훈훈한 외모, 해사한 미소까지 완벽해보이는 선우에게도 역시 아픈 상처가 있다. 외도를 일삼는 아버지, 그로 인해 황폐해진 삶을 선우의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선택으로 인해 불안과 공황장애를 앓게 된 선우는 웃음 뒤에 자신을 감추고자 했다. 지속적인 상담치료 덕분에 차차 나아지는 듯 싶지만, 매순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다. 그런 선우 앞에 수줍게 웃는 채민은 한 줄기 빛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마치 운명처럼, 서로의 눈에 비친 모습은 모순적이게도 환한 빛으로 각인된다.


'인연'으로 엮인 이들의 관계는 늘 불안해보인다. 불운한 상처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온기와 빛을 찾는다. 상실과 상실이 마주하고, 상쇄되어 서로에게 치유제로 적용되는 것 같다. 본래 자신이 가진 상처와 후유증뿐 아니라, 교생과 학생의 입장이라는 면에서 일종의 불안을 내포하기 있기에 그로 인한 긴장감이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때문에 이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살얼음판 같으면서도 잔잔한 일상이 이어지고, 처음 가진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갈망, 선우의 직진으로 채민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과거의 추억을 사랑하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헤매었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다소 수동적이었던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갈 길을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된 인연은 처연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싱그럽게 마음을 간지럽힌다. 때문에 '곰살맞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




최근 쇼팽의 곡들을 자주 찾아 듣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여름소나타』에서도 쇼팽의 이야기가 나오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목차도 중요하게 보는 편인데 낯선 언어라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슬프게, 계산의?, 정치적으로? 고도의 예술적 기교, 도달, 불안, 끝, 걱정되는……. 뜻이 잘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고, 그저 차례로 검색해보며 파트별 분위기를 유추해가며 읽었다. 아마 클래식과 관련된 용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검색하며 찾은 뜻을 보니 이탈리아어인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수수께끼같은 목차였다. 


당연히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서 음악적 용어가 많이 바탕이 된 게 보였다. 그런 표현들이 인물과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또한 또 다른 커플인 도아와 지민을 통해 심리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인물에 대한 설명을 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채민과 선우 보단 도아와 지민 커플이 담백하니 더 좋았다. 


작가는 사랑을 하니까 사람인가, 사람이니까 사랑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이란 주제 자체가 미지의 세계같고,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숙제같은 느낌이 있다. 소설 초반부에 자주 등장했던 '아지랑이'는 이러한 고민의 흔적들이 드러난 표현이 아닐까. 


낯설고 또 낯선 세계였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로웠다. 몇몇 인물의 어조는 좀 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여전히 선우의 부모님 관계는 이해되지 않지만, 마음을 간지럽히는 이야기는 건조한 일상 속에 적절한 환기와 쌓였던 긴장들을 풀어내주기에 필요한 듯 하다. 여름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쇼팽의 곡과 함께 읽기 좋은 소설인 것 같다.


 



( 이 리뷰는 청어람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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