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회색지대에서의 인간의 본성이란,




『검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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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단수이허 기슭에서 일어난 커피점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사건의 대한 의구점이 도드라지거나, 미궁 속으로 빠질만한 특이성을 가진 게 아닌, 이미 판결이 내려져 종결된 사건이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다. 


2013년 2월, 3월 79세 늙은 사업가와 57세 중년여교수 부부가 여러 군데 몸에 치명상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범인은 이들이 즐겨찾던 커피점의 점장 27세 자전이라는 여성이었다. 사회는 그를 두고 '사갈녀'라 칭했고, 판사는 일간지의 기자처럼 피고를 추궁했으며, 정해놓은 답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세간은 선한 중년의 부부가 한 악인에게 당한 일을 엄히 심판하고, 흑백이 분명한 벌이 처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작가 핑루는 달랐다. 인물들간의 관계성과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더욱 고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실의 사건과 소설적 상상력 사이의 무게중심,즉 거리 두기가 최대 중점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자전의 시선과 훙보의 아내 훙타이의 시선을 교차하여 서사를 진행시킨다. 각 장의 말미에는 사건과 연관되어 있거나, 혹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말들을 실었다. 사건에 대해, '악'이라는 성질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덕분에 소설 뿐아니라 현실 속 여러 인간군상들의 관점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자전은 사회 밑바닥에 있는 여성들의 축소판이다. 어릴 적 다정했던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가정을 꾸려가는 어머니와 함께 빚을 청산하기 위한 가난한 생활을 이어왔다. 상경한 후에도 가난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리기도 했고, 따뜻한 부정(父情)을 바라기도 했다.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해, 누리는 자에 대한 열등감과 불온한 감정들이 늘 내면에 내재되어 있었고, 이러한 각박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게 늘 속을 감추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의 빛나는 삶과 대조된 자신의 지지부진한 현실을 감추려 애쓰면서도, 열심히 커피점 일을 하며 매달 어머니께 돈을 부쳐드리는 효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셴밍이라는 남자친구와의 미래를 꿈꿨으면서.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하고 흔들렸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자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해보지 못했고,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후 부정(父情)을 그리워하다보니, 소아성애자에 당한 폭행을 무엇인지 인지도 못한 채 자라게 되었다. 반면, 남편의 부정(不正)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훙타이는 어떠한가,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인 결혼생활의 실패와 암담함을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오히려 무던해지려 했던 그녀는 왜 불행한 생활을 지속했을까.


자전이 훙보의 욕망을 자신의 착각으로 이해해버리지 않았다면, 겁탈을 당하게 된 상황에서 저항해볼 수 있었다면. 훙보의 계획을 훙타이에게 전했을 때, 훙타이의 반응이 그때와 달랐다면, 죽음에 이르러서야 하나씩 스쳐지나가는 상황을 그리지 않고 제때 행동했더라면, 불행한 결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훙보와 훙타이 모두에게 안전한 삶을 이어가게 했을까. 여러가지 가정들이 이어진다.


자전의 과거 어린 시절 이야기, 커피점에서 일하며 훙보를 만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사건을 발생되고 난 후의 이야기. 법정에서 진술하는 자전과 강물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훙타이의 시선이 처연하게도 엇갈린다. 


훙타이의 생각도 교차되며 진행됨에 따라 훙보에 대한 원망, 증오에서 그의 죽음을 바라고 그가 없는 삶을 그리다, 그를 연민하며 동정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회한의 시선이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제목과 같이 검은 강이 지나는 어두운 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필연과 우연. 이에 더해진 인연과 악연. 우리가 살아가는 데 피할 수 없는 게 필연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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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전을 동정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전 뿐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 작가는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당시의 사법부의 태도에 문제제기를 하며, 문학과 사회현실 사이에서 거리를 두는 실험적 시도를 해보는 핑루의 메타픽션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그렇게 한 인물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내면도 그만큼의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게 아닐까. 비슷한 예로 <인 콜드 블러드>를 쓴 이후의 트루먼 카포티의 삶을 보자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성이라는 문제(인간 본성이 가진 진실한 모습)를 말하고자 했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지을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의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해 집중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전, 실패한 결혼을 감추려는 훙타이. 그녀들의 침묵이 초래한 결과는 어떠한지. 남의 일이라 여기며 아무렇지 않고 '사갈녀'라 칭하는 언론과 사람들의 태도는 또 어떠한지 말이다. 명명 되어짐으로써 그 안에 가둬버리는 '~녀'라는 꼬리표 같은 표현.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경우라도 타인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갈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은 빈번히 발생된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으로 이뤄지는가. 자전의 이야기보다 '사갈녀'라는 이름으로 감추고자 했던 사회의 이면의 진짜 얼굴은 또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가 출간 후 좌담회에서 밝힌 한 마디를 덧붙이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흑도 백도 아닌 회색 지대를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가 소위 '악인'들과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옮긴이의 말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들은 처음에는 사소한 마찰로 시작되지만 어느 한쪽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상대가 차갑게 노려보면 점점 의심이 깊어지고 서로 다름을 느낀다. 그런 뒤에 두 사람의 인생이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면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멀어진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 두 마리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안전거리를 유지한다.

 모든 결혼 관계에 대해 유효한 질문이 있다.

 그동안 서로를 위해 무엇을 했을가?

 그는 그녀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반대로 그녀는 그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 Ⅲ 안전거리 92쪽



이따금씩 걷다 보면 이런 기분이 울컥 차오를 때가 있었다. 좌표를 잃고 GPS신호도 끊긴 채 빛도 없이 사방에 뿌연 안개만 자욱하게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자전은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섰다. 계속 가야 할까? 


- Ⅳ모퉁이, 그 모퉁이 116쪽


누구에게도 사랑받아본 적 없는 자전은 사랑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 Ⅳ모퉁이, 그 모퉁이 125쪽



자전이 훙타이에게 느낀 감정은 경쟁심, 승부욕, 질투, 부러움 등이 있었던 걸까.


남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무척 경계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걸 경멸하는 자전. 그 마음속엔 타인의 삶이 아무 조건없이 이뤄진 데에 대한 불만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은 공허하게 보낸 수많은 날들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잘근잘근 씹혀 뭉그러졌다. 생리적인 욕구도 벌레 먹은 잎사귀처럼 서서히 시들어버렸다. 


- Ⅴ소원의 거리 162쪽



자전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그녀에게 "잠깐 기다려. 넌 지금 길모퉁이를 잘못 돌았어. 어서 멈춰. 빌어먹을 그 생각을 떨쳐버려!"라고 외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Ⅵ행복의 거리 174쪽


자전은 훙보의 욕망을 알지 못했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과 저항이 늦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기에. 그가 아내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영영 못 벗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돌이켜보면 경고음이 여러 번 울렸다. 결혼 전 누군가가 나이도 많고 살아온 내력이 불분명한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배우자란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보호색을 한 겹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 Ⅶ 기수지역 202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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