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의 목숨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장안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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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장대한 분량의 서사로 다소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편견을 단숨에 부셔버릴 만큼의 급박한 전개와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해 장안성 면면을 잘 표현해주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해관계 및 심리묘사를 통해 허투루 나오는 인물이 없다고 느낄 만큼 그 존재감 또한 확실하다.

  

이미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방영만을 앞두고 있는 <장안십이시진>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준다. 영상화 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고, 오히려 어떻게 잘 구현해 냈을까 너무 궁금하기만 하다. 보통 어떤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소개에 붙는 수식어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는 편이었는데, ‘문학 귀재’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는 듯 하다. 이로써, 문외한이었던 중국소설 쪽에서는 ‘마보융’이라는 작가는 믿고 읽을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사의 큰 줄기는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장안의 원소절(중국의 정월대보름) 대목에 맞춰 발생하는 테러를 막고자 이를 추격하는 이들과 방해하는 이들 사이 숨겨진 진실을 풀어가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되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천재라 물리는 문관이자, 정안사의 실질적인 수장 ‘이필’과 한때 오존염라라는 별칭을 가진 불량수이었지만 지금은 처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 ‘장소경’이다. 

  

둘은 정반대의 위치해 있고, 각자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른 듯 하지만, 장안의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뜻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하여 상단을 가장하여 온 돌궐 근위대 늑대전사들과 그들이 진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모든 전력을 추구한다. 

  

미리 파놓은 함정으로 늑대전사들을 모두 생포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심지어 이들의 우두머리 격인 조파연을 끝내 쫓지 못했던 최기, 그리고 그 작전을 지시했던 이필 모두 좌절하기에 이른다. 이에 정안사에서 기억력이 좋아 발탁된 서빈은 자신의 지기를 추천하는데 이는 현재 사형수에 처형만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경이었다. 모두가 반대 하였으나, 장안이 곳곳을 아는 자가 필요했고, 반신반의 했으나 곧 장소경의 탁월한 통찰력 앞에 점차 신뢰를 쌓아가게 된다. 


서역 도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조직된 관부, 정안사는 각 분야의 인재가 모여 있고, 젊은 나이의 최고의 인재로서 인정받는 책임자 이필이 있다. 원소절 등롱제를 앞서 정해진 시간 내에 다가오는 큰 위협을 막고자 형식과 규범과 파괴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위기에 위기만 더하는 꼴이 된다. 이필과 장소경의 간절함에 비해 자신의 안위와 가치관만을 우선시하는, 관리사회의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인물들에 의해 매번 좌절되고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위기 속에서 둘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져가지만,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늑대전사 추격과정에서 꼬여버린 왕은수의 납치사건으로 인해 문염을 지키고자 했던 장소경과 이를 알고 분노하게 되는 이필 사이의 긴장감으로 앞으로의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 여부에 대해 궁금증이 일게 된다. 

  

돌궐 토벌의 공을 세운 왕충사의 딸을 납치하는 늑대전사들의 수장 우설, 장소경이 지키고자 했던 전우이자 지기인 문무기의 딸 문염의 생로는 각자 다른 길을 향하게 되고, 아슬아슬하게 그 목숨을 건지게 된다. 상권의 마지막에서 돌아오지 말라는 신호를 받게 된 장소경은 우여곡절 끝에 구한 목숨을 끝내 보전할 수 있을지, 늑대전사들이 등장하게 된 계기와 그 뒤에 있는 진짜 배후세력은 어떤 이들일지, 이필의 생존과 정안사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지도 너무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꿈꾸기에 무사히 생존하기를 바래보기도 한다.

  

소설은 역사서 속 한 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평면적으로 보이는 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입체적으로 장대한 대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단순히 인물과 장면 묘사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이해관계, 신분, 사회구조 등 마치 그 시대에 들어가 직접 목격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 또한 매우 매력적이다. 당시의 국제도시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한 다양한 종교와 국가, 민족들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문장이 입담처럼 맛깔나게 느껴지기란 쉽지 않은데, 과연 개연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독성마저 좋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장황하지 않고, 탄성을 지닌 문장은 흡입력까지 더한다. 단순히 분량에 대한 압박감에 주저하기에 이 작품은 정말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한 번 읽으면 그 호흡 그대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몰입하여 읽게 되는 것이다. 이건 생각지 못한 의외성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재밌는 읽을거리가 또 있다 생각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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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작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작가 마보융은 미스터리, SF, 판타지 등 역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작가라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뛰어난 필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데뷔하게 되었으며, 다년간의 유학생활과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중국소설과 차별화된 세련미와 간결함, 흡인력 넘치는 문장과 유머 감각,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로 ‘5·4 혁명 이후 중국 역사소설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장안 24시』는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찬란했던 인구 100만의 대도시 장안에서 일어난 하루를 다룬다.

  

‘천보 3재 원소절, 장안에 큰불이 있었다’는 역사서 속 짧은 기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찬란했던 고대 국제도시를 배경으로 광대한 서사와 테러의 위협 속에 인간의 욕망이 불러오는 참혹함을 잘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장안 24시』를 시작으로, 『용과 지하철』, 『초원동물원』을 비롯한 마보융의 다양한 작품은 현대문학을 통해 새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기대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북으로 먼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 다음 편은 이북으로 구매해서 읽고 싶다. (막무가내로) 금방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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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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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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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옷깃을 여미는 계절에 '영혼시'를 가득 담은, 마음을 건드리는 말랑말랑한 글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점점 더 여린 내벽만 쌓게 되는 것 같다. 여물지 못한 마음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병 같은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그립고 또 너무 보고 싶은 이가 있어서인지 구절구절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다. 괜찮아, 하고 다독이며 스스로를 속여 보았지만, 결코 괜찮지 않았던 날들이, 후회들이 많아서 공감이 갔던 것 같다. 


기다리는 슬픔이 있었고 그리는 괴로움이 있었다. 사계절의 경계가 소원해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추억들이 있었고, 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행복한 얼굴도 스쳐갔다. 빛났던 순간들은 그렇게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영혼시'란 결국 내 안으로 자꾸만 파고들게 만드는 것인지, 가끔은 자의식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득 이런 감성 가득한 글들로 인해 한숨 쉬어갈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기에, 너무 각박해진 세상 속에 가끔은 물기 어린 문장에 기대어 울어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쉽게 상처 받는 마음, 견고하지 못한 마음들 모두 그렇게 위로하면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늘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 가지런히 모인 문장들을 읽어나가는 느낌은 낯설지만 낯설지 만은 않았다. 그리워했던 이가 좋아했던 감성적인 글을 쓰던 시기를 생각나게 해서 무척 좋았다. 그 틈 사이로 나의 마음을 새로 써가는 것도 새로운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끄적거리면서, 너무나도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그러기에 충분한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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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력은 너무도 보잘것없어

그대에게 건네줄 가난한 낙서 한 조각 가지지 못했다.

내 마음 얇고 딱딱한 종이와 같아 

그대의 근심 한 점 고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날개를 펴고

추운 겨울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되묻는다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그대를 사랑할 수 있나

파란 성에처럼 맑고 단단한

하늘인 그대를 


77쪽 



(…)

너는 말했지, 겨울은 길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너의 빈 가지를 덮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했지, 내가 너의 

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 윙윙 소리내며

빈 가지 사이를 맴돌기만 하지


105쪽 /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유리벽 너머에 그대가 서 있지. 그대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 그대의 맞은 편에 내가 서 있지. 내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맞잡은 두 손, 마주 보는 두 눈, 슬픔과 행복을 함께 느끼는 심장인데. 우리들 아주 조금씩 어긋나버리는 시간 속에서, 만날 수가 없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지.  121쪽 / 유리벽 너머에



(…)

그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대의 부재

혼자 있을 때도 흔들리지 말라고

그대의 부재는 더욱 무거워지는가


눈물 마르고 천천히 빛이 번지면

슬픈 일들은 잊어도 괜찮은 건가

나는 더 이상 흩날리지 않아도 좋은가


갈피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헤매지 않아도 좋은가


131쪽 



내 마음 아무리 자란다 해도

설마 하늘까지 닿겠어요.

흔들리는 소망들 헤아려보다

아득한 밤 속으로 떨어지곤 하지요.

(…)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해도

어제보다 조금 더 길어진 낮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온종일 햇살 받으며

닿지도 못할 마음만 키우고 있지요.


161쪽 / 닿지도 못할 마음만



그곳이 어디라 해도

그대 안녕하겠지

그 마음 어떻다 해도

그대 아름답겠지

(…)


231쪽 / 그대 안녕하겠지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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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3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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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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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으로 그렇게 지겨웠던 더위가 가고 선선하다 못해 쌀쌀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반갑게도 우리의 붉은 머리 순경 해미시의 세계에도 가을이 찾아온 듯 하다. 격렬한 치통에 눈을 뜬 해미시는 브로디 선생의 항생제 덕에 통증을 잠시 가라 앉혀보지만, 근처에 있는 치과라곤 제대로 된 치료보단 일단 뽑고 보는 브레이키 마을의 길크리스트 치과 뿐이고, 그 와중에 관할 구역 내 스코츠먼 호텔에서 발생한 금고 절도 사건으로 정신이 없다. 수사에 집중하며 애써 참아보려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올라오는 통증에 해미시는 결국 가까운 길크리스트 치과라도 가려 예약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진료 의자에 누워 사망한 길크리스트였다. 그것도 치아에 온통 드릴 구멍이 뚫린 채로 말이다. 


너무도 느닷없이 세상을 떠 버린 자신의 개 타우저가 그리웠다. 타우저가 살아 있었다면 침대 끝에 누워 꼬리를 흔들고 있었을 테고,  해미시는 이 드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에 신경을 써 주는 존재가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프리실라 할버턴스마이스, 한때 그에게 필생의 사랑이었던 여자는 친구들과 지낸다고 런던으로 가 버렸고, 그녀가 떠난 자리를 메워 줄 다른 어떤 여자도 아직 그의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다.  12쪽


변덕스럽고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가 스코틀랜드 고지의 분위기를 표현하듯, 사건이 발생한 브레이키 마을엔 생기라곤 없다. 노동보단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펍에서 시간을 죽이기 일쑤고, 상점은 오전 10시만 되어도 제기능을 못한다. 문명이 발전한 시대에, 불법적인 일이 불법적인 일이 아닌 일상인 형태.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아주 잘 그려졌다. 


해미시는 전처럼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커녕 오리무중 상태에 빠져 답답함만 토로할 뿐이다. 



스케일링도 있고, 치실도 있고, 치과 기술이 이렇게 발전해봤자 뭐 하나, 해미시는 생각했다. 이곳은 여전히 스코틀랜드였다. 이를 몽땅 봅아 버리고 멋진 틀니 한 쌍을 끼우면 그만인 곳이었다. 93쪽


(…) 경찰서로 돌아가 형사 소설이나 들고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안 될 게 뭔가? 되도록 미국 형사 이야기, 더 폭력적인 이야기, 주인공이 해미시를 대신해서 그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이야기면 더 좋겠다. 사람들은 벽에다 메어꽂고 두들겨 패서 자백을 받아 내는 것 같은.  97쪽


해미시는 스마일리 형제의 술이 자자하게 알려져 있다는 사실에도 나서서 신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놀랍지도 않았다. 영국의 다른 어느 곳이라면 범죄로 여겨졌을 일이 하일랜드에서는 더러 남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남획을 하지 않는 선에서 연어나 사슴을 밀렵하는 건 하일랜드에서는 불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모든 하일랜드인들에게 언덕에서 사슴을 잡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건 태어날 때부터 얻은 권리, 즉 생득권이었다. 147쪽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 키워드로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젊은 여자와 허영심 가득한 중년 남성, 욕망, 실패한 결혼, 옛 연인, 치정, 돈, 밀주, 엉터리 점성술사, 미적지근한 로맨스, 타우저의 빈자리, 다시금 홀로 남겨진 해미시. 


가을날의 쓸쓸함인가, 우리의 주인공 해미시를 따라 사건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유독 잘 풀리지 않고 자꾸만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욕도 없고, 쓸쓸하고, 자꾸만 실패하게 되는 것 같은. 타우저의 빈 자리도 크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해미시의 천적인 블레어의 속내가 잠깐 등장하는데, 그게 조금 의외였다. 무작정 해미시의 공로를 가로채는 뻔뻔함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속엔 대놓고 드러낼 순 없지만, 해미시의 사건 해결 능력에 대한 인정이 바탕이 되었다. 하긴 누가 그 공을 가져가든 해미시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는 총경은 그가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름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만 해도 컴맹이면서 기기를 사용하는 데 어색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보고서 작성도 거뜬히 해치우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해미시가 기대하는 새로운 로맨스 상대인 세라는 어떤 사연을 감추고 있는 인물로 보여지며, 여지를 주지 않는 듯 하지만, 외로움에 몸부림 치는 해매시에게는 설렘과 수줍음의 상대로 비춰지는 데에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여전히 직관에 의한 수사로 사건 해결에 힘쓰는 해미시. 발로 뛰는 것과 별개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 다소 불법적인 것으로, 블레어의 비밀번호를 엿보는 재미를 주긴 했다. 물론 이전에는 철저한 인맥과 처세술로 얻어낸 정보로 추론하는 것이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유독 해미시의 자조가 많이 느껴졌다. 마치 슬럼프에 빠진 인물처럼. 사건을 꿰뚫어 보지 못한 데서 오는 답답함을 자주 토로한다. 또한, 그의 심리를 대변하듯'외로움'으로 자주 표현된, 홀로 남겨진 채로 늙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해미시의 마음이 자주 드러난다. 마치 이별 직후 실감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 지난 사랑을 추억하며 가슴 아파하는 후회로 보여진다.


전반적으로 거칠게 표효하는 날씨와는 다르게, 고요하게 침전된 듯한 해미시의 심리는 차분하게 묘사되며, 이전이라면 빠졌을 법한 함정에도 무던히 피해간다. 수사의 함정, 죽음의 위기는 늘 도사리고 있지만, 주인공의 생사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구제되기 마련이다. 무고한 죽음에 마음 아팠고, 다소 불편한 관계도 있었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계절과 맞물려, 쓸쓸하게 남겨지는 여운이 무척 좋았다. 여름날의 열기처럼 정신없이 피로했던 날들이 가고, 여전히 피로한 일들은 많지만 이 '외로움'을 벗 삼아 더 열심히 읽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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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전히 눈에 선명히 그려질 듯한 풍경 묘사의 섬세함과 좋은 부분들을 옮겨본다. 


비가 창을 후드득 때리기 시작했고, 바람이 점점 더 사나워지며 날뛰었다. 서덜랜드의 바람이 습관대로 돌풍으로 변해갔다.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다가는 결국에는 천국의 끝에서 끝까지를 온통 휘덮는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이 동네 사람들이 미신에 빠져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97쪽


어쩌면 어른들 세계의 눈에 순수하다고 증명되기 전까지 모든 아이들이 죄인이었던 저 형편없는 옛날이 다시 추구해 볼 만한 시절일지도 몰랐다. 299쪽


차를 몰고 가면서 해미시는 이 사건에서 자신이 이토록 헤맨 이유가 그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은 속물근성, 아마추어리즘, 순전한 운의 조합이었다. 325쪽


긴 한순간, 해미시 맥베스와 프리실라 할버턴 스마이스는 해안 저쪽과 이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교회에서 아이들이 노래했다. "'참 반가운 성도여.'"

프리실라가 발걸음을 돌리더니, 차에 올라타고 떠나 버렸다.

해미시 맥베스는 용서받지 못했다. 328-329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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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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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되는 패스포트툰,



『퇴근길엔 카프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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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을 접하는 건 의외로 예상치 못한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숨겨진 단서처럼 그 실마리를 얻게 되는데, 예를 들어 체호프 같은 경우에는 즐겨 찾아보던 외국 드라마에서 주인공 중 한명이 체호프 매니아로 나와 대사 중간 중간에 그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는 걸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의 일부였던 일기 쓰기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작법과 후에 '디 아워스'라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경우엔 대학 수업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경우 중학교 때 100권 읽기 프로젝트를 통해 추천 도서 목록에 있어 접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추천을 받지 않았지만, 꼭 읽어야 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은연중에 이러한 고전 작품들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읽히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란 짐작과 약간의 지적 허영심이 투영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었던 게 많아서 반갑고 신기했다. 

그것도 어쩜 마음에 쏙쏙 와 닿는 포인트로 짚어 소개해주는지, 인상 깊은 장면까지 찾아볼 수 있어 좋았다. 그것도 웹툰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니 눈에 더 잘 들어왔던 것 같다. 시리즈로 해서 좀 더 내주면 안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책을 읽더라도 대개 공감하는 부분도 비슷하게 있겠지만, 전혀 다른 부분을 중요하게 기억하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의견들이 늘 궁금했다. 딱히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할 수도 없었고, 낯간지럽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소통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 장면이 좋았는데 혹은 이 책은 진입 장벽이 높았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었나, 읽어봐야겠네, 와 같은 감상을 읽는 동시에 하게 되니 얼마나 설레던지. 

근래에 나의 책임을 벗어난 일들 때문에 어찌나 버겁고 지겨웠는지, 소원해진 관계 속에 얼마나 외로웠는지 떠올랐던 괴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육체의 실질적 고통을 지울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오는 내적 고통에는 특효약처럼 느껴졌다. 

독서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하는 중에도 힘들 때면, 아, 그 책 빨리 읽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읽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주 먼 나라, 그것도 먼 과거 속 작품들을 읽는 게 일종의 여행처럼 느껴진다는 작가의 말에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잠깐 등장했던 『한 여름밤의 꿈』 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정작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초상화라든지, 후에 어떻게 작품을 복원해서 출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부끄럽지만, 내가 알고 있던 얼굴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 또한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체호프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제목 또한 얼마나 적절한지, 당시 카프카의 생활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고 하니, 그에겐 퇴근 후의 시간이 사회생활의 퍽퍽함과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잠깐의 휴식과 자유였을지 감히 짐작해본다.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출근하기 싫지만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야 되고, 직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인 것처럼.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의 직장인들이 가지는 돈벌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변신은 이러한 의무와 책임감과 불안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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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롭고, 좋은 작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때론 신간을 알아가는 즐거움 못지 않게 고전문학을 되새기며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는 방법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만화를 통해 다시금 새로이 텍스트를 읽어볼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접근법 같다. 

카프카나 버지니아 울프나 셰익스피어 작품과 같이 좋아했던 작품을 비롯하여 보르헤스나 소포클레스와 같이 다소 용기가 필요한 작품들까지. 작가의 바람대로 작은 환기가 되어 주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쉽게 열어볼 수 없었던, 무겁게만 느껴졌던 책장을 열어볼 용기 또한 주었다. 덕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작품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작가의 고요한 일상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작품을 선정하고 반복해서 읽고 맥락을 잡아 구성하고 그리고 정리하기가 얼마나 고되고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지 생각해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그래서 다음은 또 언제일까요...?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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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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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에 대하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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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선, 이기호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43장』은 2017년 8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 후, 출간된 작품이다. 인터뷰 형식이랄까, 취조 형식의 구성은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사건 혹은 중심인물에 대해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일본소설 『악녀에 대하여』를 통해 접해본 적이 있는데, 하나 차이점이라면 여기선 중심인물인 최근직 장로의 직접적인 증언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 목양면의 한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되고, 담임 목사 최요한 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지만 화재 발생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교회는 최요한 목사의 부친인 최근직 장로에 의해 세워진 곳이다. 환경적인 측면으로 보면 최근직 장로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나이 마흔 일곱이 되던 해, 봉사활동을 가기 위해 탄 기차에서 사고로 인해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를 잃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삶을 포기하려고 올라간 고향의 오구산에서 목을 매려는 순간 신의 음성을 듣고 이를 계기로 새 삶을 살고자 한다. 제 2의 삶을 사는 그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 아들 요한이 있고, 그의 신앙 간증은 대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에게 회자되며 희망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속사정 또한 있었다.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의 증언을 모으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화자로 처음 지목됐던 인물 고등학생부터 교회에 사는 전도사, 화재 사고로 죽은 사람과 가까웠던 인물, 최 목사의 아내, 건물 내 세입자였던 식당 주인들과 최근직 장로에 하나님까지. 범접할 수 없는 영역까지 가뿐히 넘나들 수 있는 역량은 이기호 작가기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보통의 인물 구성에서 하나님(?)이라는 인물 또한 같은 연장선에서 놓고 말하고자 한다면 너무 가벼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숨길 수밖에 없던 이면을 밝혀주며, 중심 화두를 짚어주며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어조와 서술에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각 인물마다 말하는 습관이나 특징이 달라서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말하는 이들로 봐선 질문하는 이는 형사로 추측된다. 질문은 없고 답만 표현됐는데도 대략 어떤 질문을 했겠거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독성도 좋았다. 알맹이가 탄탄한데 읽기에도 재밌다니... 

  

이건 이기호라는 하나의 장르로서 바라보면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극적이지만, 마냥 진창에만 빠지지 않고 삶의 비루한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데, 특유의 위트를 가미하며 무게중심의 조화로움을 줄 수 있는 건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전체 42장으로 이루어진 성경 ‘욥기’의 번외로 이 작품이 쓰인 것이다. 자신의 자식들이 고통 속에서 죽은 뒤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상한 아버지로 보였던 욥은, 정작 자신의 발바닥에 악창이 나자 비로소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이 아버지란 사람이 도통 이해가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아버지가 된 후에도 이해가지 않았으나 관습적으로 읽지 않으려 애쓰며, 자식을 잃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전제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했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최요한 목사는 모범생이라는 증언과 미혼모를 괴롭힌 인물로 증언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결핍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최근직 씨의 두 번째 삶을 영위하는데 기적 같은 요소로만 여겨졌을 것만 같은, 그렇기에 아버지를 향해 순종적이었고, 두려워했으며, 한없이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하에 가려진,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보여 안타까웠다. 물론 제목에서 이미 밝혀진 바, 그의 방화가 진실이라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이기심에서 온 범죄라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커 보였던 아버지의 삶 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그리하여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 최근직 씨가 화상으로 인해 진물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삶을 포기하는 것보단 살아내고자 했던 걸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게 고통이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지옥같고 편히 잠들고 싶은 욕망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졌듯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기도 하며,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욥이라는 인물도, 최근직이라는 인물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최근직이라는 인물은 형편이 살만 했기에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 화목했고, 소중했던 존재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지게 된다면, 과연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그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역시 그냥 개인적인 판단이나 논리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된다. 삶, 그리고 사람 모두 복합적이고 알게 모르게 얽혀있는 것들이 많기에. 때론 나조차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지금껏 읽은 작품들 모두 만족스러웠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판형과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에 소장 욕구를 높이고, 중요 요소인 작품까지 좋으니 앞으로도 출간 예정에 있는 핀 시리즈의 다른 소설 작품 또한 너무 기대된다. 기다림으로 그렇게 또 버텨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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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아버님이 말이야…… 하나님을 만난 게 먼저일까, 우리 어머님을 만난 게 먼저일까?”

저는 그 말에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최 목사님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최 목사님이 또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우리 어머님을 먼저 만나고, 내가 태어나고…… 그러고 나서 아버님이 신앙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면…… 그럼, 도대체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거지?” 110쪽

  


목사라는 직업이요, 어쨌든 다 우리 같은 영업직 아니겠습니까? 영업적 마인드가 있어야지 하나님도 팔고, 예수님도 팔고, 신앙심도 팔고, 복도 팔고, 하는 거죠. 네? 뭐 심한 말이에요? 그게 사실이죠……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보면 다 마찬가지에요. 열심히 하나님 믿고 신앙생활 하면 복 받는다, 그게 우리나라 교회에서 하는 말 아니에요? (…) 117쪽

  


최근직이 목을 매려는 순간,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네가 아느냐? (…) 그때 최근직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 거 같더냐? 네가 그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느냐? 그건 최요한의 모친, 손순녀가 아니더냐? 그때 최근직과 손순녀가 만난 것이 나의 의지 같더냐? 내가 최근직을 그렇게 죽음에서 구한 것 같더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최근직은 손순녀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살려고 했던 사람이니라. 네가 그것을 알더냐? 가족을 다 잃어도 제 목숨을 스스로 끊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니라. 슬픈 것은 슬픈 것이요,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 최근직은 자기 의지로 산 사람이니라. 154~155쪽

  

거, 아이 큰 사람으로 만들려면 하루빨리 우리 동네에서 이사 가야 할 텐데…… 여기 있으면 그냥 닭 되는데……. 164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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