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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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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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옷깃을 여미는 계절에 '영혼시'를 가득 담은, 마음을 건드리는 말랑말랑한 글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점점 더 여린 내벽만 쌓게 되는 것 같다. 여물지 못한 마음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병 같은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그립고 또 너무 보고 싶은 이가 있어서인지 구절구절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다. 괜찮아, 하고 다독이며 스스로를 속여 보았지만, 결코 괜찮지 않았던 날들이, 후회들이 많아서 공감이 갔던 것 같다. 


기다리는 슬픔이 있었고 그리는 괴로움이 있었다. 사계절의 경계가 소원해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추억들이 있었고, 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행복한 얼굴도 스쳐갔다. 빛났던 순간들은 그렇게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영혼시'란 결국 내 안으로 자꾸만 파고들게 만드는 것인지, 가끔은 자의식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득 이런 감성 가득한 글들로 인해 한숨 쉬어갈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기에, 너무 각박해진 세상 속에 가끔은 물기 어린 문장에 기대어 울어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쉽게 상처 받는 마음, 견고하지 못한 마음들 모두 그렇게 위로하면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늘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 가지런히 모인 문장들을 읽어나가는 느낌은 낯설지만 낯설지 만은 않았다. 그리워했던 이가 좋아했던 감성적인 글을 쓰던 시기를 생각나게 해서 무척 좋았다. 그 틈 사이로 나의 마음을 새로 써가는 것도 새로운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끄적거리면서, 너무나도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그러기에 충분한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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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력은 너무도 보잘것없어

그대에게 건네줄 가난한 낙서 한 조각 가지지 못했다.

내 마음 얇고 딱딱한 종이와 같아 

그대의 근심 한 점 고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날개를 펴고

추운 겨울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되묻는다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그대를 사랑할 수 있나

파란 성에처럼 맑고 단단한

하늘인 그대를 


77쪽 



(…)

너는 말했지, 겨울은 길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너의 빈 가지를 덮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했지, 내가 너의 

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 윙윙 소리내며

빈 가지 사이를 맴돌기만 하지


105쪽 /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유리벽 너머에 그대가 서 있지. 그대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 그대의 맞은 편에 내가 서 있지. 내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맞잡은 두 손, 마주 보는 두 눈, 슬픔과 행복을 함께 느끼는 심장인데. 우리들 아주 조금씩 어긋나버리는 시간 속에서, 만날 수가 없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지.  121쪽 / 유리벽 너머에



(…)

그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대의 부재

혼자 있을 때도 흔들리지 말라고

그대의 부재는 더욱 무거워지는가


눈물 마르고 천천히 빛이 번지면

슬픈 일들은 잊어도 괜찮은 건가

나는 더 이상 흩날리지 않아도 좋은가


갈피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헤매지 않아도 좋은가


131쪽 



내 마음 아무리 자란다 해도

설마 하늘까지 닿겠어요.

흔들리는 소망들 헤아려보다

아득한 밤 속으로 떨어지곤 하지요.

(…)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해도

어제보다 조금 더 길어진 낮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온종일 햇살 받으며

닿지도 못할 마음만 키우고 있지요.


161쪽 / 닿지도 못할 마음만



그곳이 어디라 해도

그대 안녕하겠지

그 마음 어떻다 해도

그대 아름답겠지

(…)


231쪽 / 그대 안녕하겠지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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