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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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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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에는 시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읽었다. 읽기 어렵다는 편견도 있었고, 세상 살기 팍팍하니 단순하건 복잡하건 이야기 속에 몰두하고 싶었고, 숨어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이름으로 인해 다시금 시를 읽어 보았다. 사실 잘 읽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얼마 전 시인의 강연을 들었을 때, 곧 시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시기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피 흘리는 시적 자아를 보며 마음 아팠지만, 역시 나희덕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어떤 글을 통해 서정이 사라진 시대라는 평을 본 적 있다. 사회가 변해갈수록 문단 내 분위기도 글 쓰는 작법도, 추구하는 세계도 자연히 변화하기 때문에, 긴 산문시가 유행했던 시기가 지나면 다시 짧은 시가 등장하게 되는 것처럼. 시 속 주체도 점점 해체되고 분열되기 시작했으며, 전복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이입됐고, 때론 알 수 없는 허공에 머무르기도 했다. 


시적 화자라는 표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그 존재가 유령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던 시도 보았던 것 같다. 파편적으로 흩어진 시들을 읽는 게 어렵게만 느껴졌고, 다가서기 어려워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시인의 말했던 것처럼 이는 어쩔 수 없는 발화였고, 생존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혼란했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믿기지 않은 사건 사고가 연일 터지는 현실 속에서 말더음이처럼 더듬거리면서도, 발 딛고 서 있기 위해 조심스레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희덕 시인의 신직시집 『파일명 서정시』는 그런 측면에서 기존에 표현했던 방식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섬세하지만, 좀더 거칠고 뿔뿔이 흩어져 파편화됐으며, 날 것의 그대로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시인의 내공과 깊은 내면의 세계로부터 자연히 표현되었기에, 막연한 거부감이 들지 않게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이다. 



비극의 상처, 인간다운 것이란


표제작인 <파일명 서정시>는 냉전기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째를 감시하며 작성한 자료집을 소재로 차용한 것이다. 시대를 퇴보했던 지난 정부의 만행으로 인해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는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시인 역시 그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이에 질문을 던져본다. 서정을 노래하는 게 어떻게 불온한 게 될 수 있나, 그것도 지금 이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말이다. 라이너 쿤째가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시인 역시 시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맞물리듯 구성된 이 시는 다른 시대 속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마주보고 서 있는 라이너 쿤째와 시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료집에 기록되어 있을 법한 라이너 쿤째에 관한 것들과 시인이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나열된 요소들이 그러하다.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18쪽, <파일명 서정시> 중에서


이와 더불어 역사 속 비극과 현실 속 재난과도 같은 비극,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고, 어디에서든 유령처럼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위안부 소녀들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재(人災) 세월호로 인해 어이없이 갇혀버린 아이들까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비극의 상처로 인해 다친 영혼들에 그저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 더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또한 인간다운 게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사실 지구상 가장 잔혹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싶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츠가 72개의 사물을 두고 스스로 대상화 하여 관객에게 정해진 안에 사물들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한 퍼포먼스 <Rhythm 0>. 그리고 그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든 대상이 된 예술가는 온전히 그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사람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습성, 폭력성을 비롯한 비참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역사 속에서도 있었고, 현실에서도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잔혹 행위에 대해 할말을 잃게 된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인간다운 게 무엇인가. 


색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검은색 위에 더 짙은 검은색이 내려앉을 때/검은색이 비로소 한줄기 빛이'(69쪽) 되는 것처럼,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은 어떤 것인지, 착취하고 때때로 절망하게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모순적인 존재인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 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41-42쪽,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에서 


들린 발꿈치로

한번도 온전히 제 땅을 밟고 서보지 못한 발꿈치로

44쪽, <들린 발꿈치로> 중에서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바다 저 깊은 곳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말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50-51쪽, <문턱 저편의 말> 중에서


마음을 소등한 자에게만 보이는 

희미한 빛은

끝내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68쪽, <마크 로스코> 중에서



가려진 이름들, 여성


얼마 전 기사에서 노벨물리학상 역사상 여성연구자 수상이 55년만이자, 세 번째라는 소식을 보았다. 시대가 변화하고 여성의 언어에 대한 목소리가 들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성별에 따른 경계로 나누는 게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존재들에 대해 조명하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성으로 대체됐던 여성의 언어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고, 그러한 변화가 반갑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요원하다. 상대적으로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기에 잘 말할 수는 없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에서 뜨악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인지하게 되는 순간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여성의 언어를 이야기할 때, 시인의 소재로 차용한 <슬픈 모유>라는 영화는 시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충격적이면서도 슬픔과 분노가 함께 일었다. 영화는 페루의 수도 리마 근교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파우스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전의 참혹한 시기에 테러범들에게 강간을 당한 임신부들이 아이를 낳으면 모유를 통해 어머니의 공포가 아이에게 전염되어 영혼없이 태어나게 된다는 게 바로 '슬픈 모유'병인데, 파우스타는 자신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인물이다. 혼자서는 길을 잘 걷지도 못하고, 벽에 바짝 걸어야 하며, 강간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질 속에 감자를 넣고 다닌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고향에 묻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파우스타의 모습 또한 그리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과 행위들이 도사리고 있다. 때론 이용당하여 오염된 여론으로 또다시 상처받게 되기도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 듯 하다 두 세 걸음 다시 밀려나기도 한다. 역지사지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포가 무수히 많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한 번쯤은 헤아려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결국은 모두가 잘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마담 뀌리가 처음으로 추출해낸

0.1그램의 라듐처럼


희고 빛나는 것들

그러나 검게 산회되기 쉬운 것들

25쪽, <라듐처럼> 중에서


우리는 저마다 기울어지는 난파선이니

깜박이는 불빛으로 다른 난파선을 비추는 눈동자이니

가라앉은 손을 잡는 또 하나의 손이니


어서 들어오세요

우리의 피로 빚어진 붉은 텐트 속으로

33쪽, <붉은 텐트> 중에서


엄마라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나는 태어났어요

감자 덩굴에 매달린 작은 감자알처럼


노래로 치욕을 견뎌낸 여인

그녀가 낳은 핏덩이는

세상에 던져진 채 간산히 살아남았지요

81쪽, <슬픈 모유> 중에서


이제 누구의 아내도 아닌

늙은 소녀


그녀의 주름 속에서 튀어오른 물고기들은 이내

익숙한 고통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84쪽, <주름들> 중에서



죽음, 그리고 노래하는 것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생처럼 죽음도 언제 어떻게 올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개의 씨앗에서/삶과 죽음은 두개의 떡잎처럼 돋아'(80쪽)났기에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과 같다.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히 찾아오는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 모두 살아있었기에 이뤄진 것들이다. 하지만 난 늘 남겨진 자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고하고 어이없는 희생부터 스스로 선택한 죽음마저 그 후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이기적이게도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삶의 의미도 알 수 없고, 무기력한 마음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그렇게 멀리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내일 당장 뭐 먹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욕망과 욕구는 생존 여부를 앞서는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정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반면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살아갈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확실한 한 가지는 삶과 죽음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과도 같다는 것이다.


시인은 죽음을 다양한 모습으로 소환했다. 죽음은 쓸쓸하고 무력한 것이지만 그 끝엔 언제나 노래가 남아있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시인만의 새로운 서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노래가 가지는 힘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거나, 한 줄기 희망을 염원하기도 한다. 또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도 한다. 시인이 호명한 탄센은 고대 인도 가수이자, 설화 속 인물인데 목소리의 힘만으로 자연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는 간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불의 노래를 부르게 되고, 뜨거워진 강물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지만, 그의 딸이 부른 비의 노래를 통해 점차 불길이 잦아들어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잿더미 속 남겨진 노랫소리에 '삶'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살아있기에 부질없을지라도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커브를 돌 때마다

휘청, 죽음 쪽으로 쏟아지려는 것들이 있다

53쪽, <이 도시의 트럭들> 중에서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숨은 것이다

잦아들던 숨소리와 함께


숨은 숨이다

74쪽, <숨은 숨> 중에서



그러다가도 죽음, 이라는 말 근처에서

마음은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피지 않은 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침묵에 기대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기에

입술도 가만히 그 말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94쪽, <마지막 산책> 중에서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12쪽, <심장을 켜는 사람> 중에서


나이-톰보-톰보, 그곳은 사막에 있지

알타이족은 영혼이 사막을 건너간다고 믿었지

사막에 옛 노래가 울려퍼지면

그제야 죽음이 임한 걸 알게 된다지

112쪽, <나이-톰보-톰보>중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노래의 힘으로 죽음의 사막을 거넜던

알타이 샤먼들처럼

114-115쪽,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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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얼음조각 상처는 서른세개 동사들 사이에서 부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흘리게 하면서도 다시 태어나기를 종용한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이걸 '변화'로 읽어보았다. '서정'의 다른 얼굴로 표현되고 있는 이번 시집은 때론 낯설고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 면을 가둑 채운 ‘둠’이라는 글자는 마치 하나의 감정처럼, 어둠 속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듯이, 이건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면에 쌓인 상처들에 고통스러웠지만, 곧 딱지가 입고 새 살이 돋아나며 익힌 변화들.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러일으킨 발화이다. 세상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고, ‘삶과 죽음은 한 개의 씨앗에서 돋아’나기에, ‘한 열매가 대지로 돌아간 그날에’언젠가 모두가 죽음을 맞게 된다. 더 이상 서로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반복된 실수는 점차 사라져야 할 것이다. 결국 부딪히게 되면서도 포용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다하여 배척되어선 안 될 일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내 삭막해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감돌 게 될 것이다. 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처럼.








(이 리뷰는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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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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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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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작품은 그 본질과 더불어 존재론적인 질문도 함께 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건 혈연 즉, 가족이라는 관계성에 자리하고 있다. 악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인물이 영원성의 종결을 결심했을 때, 재회한 '가족'으로 인해 다시금 생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급 인사들과 현직 국회의원을 살해한 범인, 고요한 자세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곧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1심에서 형을 받아 살고 있는 남자. 수감번호 474번으로 불리는 남자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만한 게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남자이다. 행위의 목적을 묻는 여론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행한 범죄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목적이나 원한도 없다며 무심한 태도를 보이지만, 몸에 생기는 작은 상처에는 민감하게 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곧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성 질환의 일종인 선청성 무통각증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의문이 해소된다.


수감자 474번 말고도 담당 교도관인 윤을 비롯된 다른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윤이라는 인물은 474번 남자와는 다른 결의 ‘악’의 성질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관망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 상황인즉 타인의 고통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윤을 비롯된 다른 인물들 역시 각각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있어서 겉보기에만 좋은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위선적인 태도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한 일면으로 다른 교도관들과는 달리 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여 놓고도 용서를 구하거나 변명을 하지 않는 남자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리듯 호기심이 가진다. 남자가 가진 배경이나 본질,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러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다른 그 누구보다 더. 

  

누가 더 악한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악은 어떻게 탄생되고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주력한 목적 의식이라면 곁가지로 등장하는 문제는 바로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 인지 못하고 있었지만, 알아보니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폐지된 것이 아니었고, 다만 수년간 집행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하는 게 바로 이 작품의 뛰어난 특징이 아닐까 싶다.

  

남자는 그렇게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신해경이라는 인물과의 만남 후에 자신의 사형 집행을 촉구하기 이른다. 여기서 윤의 역할이 크게 작용되는데, 두 사람 사이의 엉킨 오해와 상처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도 순수한 호기심에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남자는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보지만, 이미 세상의 관심과 여론은 죄질에 따른 법집행에 대해 뜨겁게 불붙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폭주하듯이 또 다른 사건이 발생되고, 결국 뒷맛 씁쓸한 결말 만을 남기게 된다.

  

신해경과 남자와의 관계성, 신해경을 자신의 누나이자 친구이자 엄마라고 불렀던,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누나에 대해 원망과 좌절을 품고 있었던 남자의 근원에 대해. 왜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할 때, 신해경의 목소리로 발화하는데 너무 빈번하게 발생된 현실의 사건들로 인해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게 참으로 씁쓸했다.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남자, 신해준의 삶보다도 더 비참했던 신해경의 삶이 모성으로만 직결되기엔 그 주체성 상실이 마음 아프게,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단한 느낌의 어조가 잔잔한 호흡으로 이어졌고, 버석거리는 느낌의 문장들의 끝엔 물기가 어린 듯 했다.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담긴 이야기에 비해 읽는 속도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의미로)걸리는 부분들이 많아서, 읽다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 작품이 더 큰 여운을 남기는 듯 하다. 

  


그리하여 악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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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이는 윤을 사악하다 했고 어떤 이는 윤을 무섭다고 했지만 대부분 윤을 깔끔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좋아했다. 39쪽

  

  

엄지발가락 옆에 네 개의 까만 발가락이 흐물흐물 흔들리고 있었다. 어둠으로 만들어진, 그러나 만질 수는 없는 모종의 형상. 그것들은 가벼운 연기 같고, 투명한 그림자 같고, 끔직한 악령 같았다.     46쪽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두려움과 공포가 깃들면 나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59쪽

  


시간은 하루 이틀 지나지 않고 기다림과 외로움으로 흘렀다. 어느 날 회색으로 변한 게딱지 위로 눈처럼 하얀 서리가 덮여 있었다. 마침내 받아들였다, 버려졌다는 것을.    81-82쪽

  

  

겁쟁이들은 저로 인해 강해졌고 원한이 많았던 자들은 저로 인해 원한을 풀었습니다. 그는 그 대가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관들이 저를 유령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존재를 숨겨야 존재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습니다. '쁘리즈락', 그곳에서 저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여기 말로 '유령'이죠.     127쪽

  


러시아 사람들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겨울의 세계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몸도 마음도 말투와 음성까지 조금씩 얼음이 섞여 있습니다. 얼음 바다를 보신 적 없으시겠죠. 겨울이 오면 그들은 바다 위에 서 있습니다. 걷고 뛰고 뒹굴기도 하죠.   129쪽

  


그는 계속 미움과 그리움이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중얼거렸다. 나중엔 너무도 작은 소리로 들리지 않게 소곤거려 방 안엔 움, 이라는 희미한 울림과 떨림만 가득했다. 움. 움. 움. 132쪽

  


부서졌던 시간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일그러진 그림. 기괴하고 조립된 얼굴. 한쪽은 웃고 있고 한쪽은 울고 있습니다. 떠나가고 버려지고. 두 가지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고 싶고 죽이고 싶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133쪽



투명한 물약 한 방울에도 피와 근육이 망가지고 녹아버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하찮은가.   153쪽


  

실수였지만 대부분의 실수가 그렇듯 돌이킬 수 없었다. 사수는 죽지 않는 몸을 갖고 있었기에 고통 또한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게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고통을 품은 불사의 몸. 그는 영원한 고통을 참다못해 자신의 죽지 않은 본성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175-176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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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선녀전 1~5 세트 - 전5권 (완결/박스세트)
돌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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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선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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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의 재해석, 새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계룡선녀전』은 인기리에 연재된 웹툰으로 드라마 제작이 결정되었고, 바로 내일 11월 5일 tvN 월화드라마 9시30분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좋아했던 작품이라 그런지 막상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보통 이런 원작이 훌륭한 작품들이 영상으로 구현될 때의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첫 번째가 원작과의 싱크로율이기 때문이었다. 캐스팅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쩜 이리도 찰떡같은지, 문채원 배우로 결정되었을 때 이제 기대할 일만 남았구나 싶었다. 단아하면서도 현대적인 이미지 고루 갖춘 배우이기도 하고, 평상시에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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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선녀전』의 예고편 보기

https://tv.naver.com/v/4220745




이에 앞서 『계룡선녀전』 이 완결이 되고 단행본으로 완간되어 이제는 종이책 읽기 즐거움을 더할 수가 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고운 그림과 이야기를 소장하여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699년 전 날개옷을 잃어버리고 인간 세상에 묶여버린 선녀 탐랑성 선옥남은 나무꾼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되어 슬하여 두 명의 자식을 낳았다. 점순이와 점돌이.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계룡산에서 선녀다방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손으로는 초목을 춤추게 하고, 목소리로는 꽃을 흐느끼게 하며, 북두를 비추는 첫 별이자,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수목을 어루만지는 존재인 탐랑성. 탐랑성은 본디 물과 초목을 다스리는 선녀기에 그 커피 맛 또한  일품이었기에 가히 최고의 맛이라 묘사되고 있다. 직설적이면서도 독특한 이름의 커피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읽으면서도 그 커피 맛이 어찌나 궁금하던지, 하나씩 다 시음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추석 명절을 맞아 김금의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가는 길에 그의 권유로 동행하게 되는 정이현은 계룡산에 있는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선녀다방을 방문하게 되면서 그들의 인연은 다시금 시작된다. 

북두성님께 간절히 나무꾼과의 재회를 비는 선녀 옥남의 앞에 나타난 두 남자 중 과연 서방님이자 나무꾼은 누구인가. 
이원대학교 생물학과 연구원 김금과 같은 과 부교수인 정이현은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인물들이다. 알려주지도 않은 점순의 이름과 선계의 꽃인 모래작약을 기억하는 까칠한 남자 정이현, 고운 심성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으로 선녀의 본래 모습을 보는 순박한 청년 김금. 과연 누가 선녀 옥남이 간절히 재회를 바라는 서방님의 환생일까, 분명한 것은 두 인물 모두 그녀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 『계룡선녀전』을 읽어나가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나의 추리는 멋드러지게 빗나갔지만, 그 또한 너무 멋진 결말이었다.

『계룡선녀전』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행태에 보이는 것만이 다 진실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히 고전 설화의 재구성뿐 아니라 담긴 메시지 또한 매력적인 게 이 작품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이야기의 구성이 훌륭하고, 전생과 환생,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고,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현재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처 받은 마음들에 대한 치유를 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치유 웹툰이라 추천받기도 했던 작품이다. 








(↑↑↑ 사슴과 나무꾼, 본래 설화와는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었는지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이렇게 스포일러 하나 남겨본다.)





이야기가 진행되가는데 또다른 흥미로운 인물로 등장하는 게 바로 선녀의 자식은 점순과 점돌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늘나라와 인간계의 피를 반반 물려받게 된 점순에겐 신비한 힘이 있다. 여러 모습으로 환생하여 현재는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점순은 굉장한 창의성을 가진 아이로, 색다른 코드의 창작물을 쓰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호랑이의 손으로 타자치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다. 일찍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컸던지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 500년이 지나서야 홀연히 알의 모습으로 나타난 점돌이. 알을 깨고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지 궁금증을 일게 한다.







정이현과 김김이의 만남으로 인해, 서방님을 찾았다는 기쁨으로 얼떨결에 서울로 상경한 선옥남은 김금과 정이현의 학교인 이원대학교 내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터주신 조봉대 부인을 만나게 된다. 탐랑성 선녀의 커피 맛에 반한 터주신은 그녀에게 자신의 카페에서 일하며 머물기를 권하게 된다. 그 덕에 묵을 숙소까지 얻게 된 선녀의 서방님 찾기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가 보았던 대로 그 인물이 간절히 찾던 서방님이 맞는 것일까. 흥미진진한 전개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당장 내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 덕에 당분간 월요병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참 눈과 귀가 다양하게 즐겁다. 좋은 읽을 거리, 볼 거리들이 넘쳐 나서 현생의 치열함과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원작과 드라마를 동시에 볼 수 있으니 같이 읽고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당장 내일부터 본방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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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선녀전』 하이라이트 보기

https://tv.naver.com/v/4400420



『계룡선녀전』 돌배 작가님과 특별 인터뷰 보기

https://blog.naver.com/wisdomhouse7/221387981765






(이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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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경영 - 한국을 깬 골프장, 스카이72 이야기
황인선.SKY72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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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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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경영이라...골프도 생소한데 하물며 경영이라니,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스스로 결코 찾아보지 않았을 분야이다. 이게 바로 서평단이 순기능이 아닐까, 지나친 편독으로 문학 외의 분야에는 무지하고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계기로라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큰 행운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서문에 잠깐 언급했듯이 미디어 매체에 비춰진 모습의 일부와 나 역시 골프는 고급 스포츠에 주로 있는 사람들만 하는 거라는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정보 습득도 굳이 하지 않았으니 이런 인식이 흔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서문을 읽다 보니 참 흥미롭게 다가왔다. 골프라는 경기 자체가 너무 궁금하고 골프장이라는 곳이 마냥 먼 곳인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차례대로 읽어나갈수록 이 책은 저자의 골프 그리고 스카이72라는 곳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그 애정 충만한 열정으로 왜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다른 골프장들이 벤치마킹 하려 했는지, 그 속속들이 모든 걸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게 느껴지는 책이다.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이야기를 건네듯, 대화를 나누는 듯 서술한 어조도 그러하거니와, 스카이72의 구석구석을 조명하며 말하다 보면, 결국 경영은 사람을 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심과 경영이 무슨 상관이 있나, 골프장에 웬 붕어빵이냐 하지만, 이는 단순한 요깃거리나 간식을 넘어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즉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기억하며 먹는 것에 중심을 두었기에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수록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신곡보단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를 더 많이 찾아 듣게 된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만 봐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렇게 훌륭한 기술력으로 새로운 모델이 많이 등장하지만 외관이 옛 필름카메라의 모습을 한 카메라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감성은 그런 곳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것이다. 


크게 세 장으로 나누어, 스카이72라는 대표적인 사례를 두고 말하는 골프 경영에 대해 주로 인물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나가기에 읽기에는 아주 수월하다. 입말을 생생하게 잘 살린 글 같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골프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스카이72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저자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던 프로젝트가 꼬리에 꼬리에 물고 어떤 문화 형식으로 꽃피우게 되었는지, 수요자(소비자)는 부정적이기 보다 긍정적인 피드백도 해줄 필요가 있고, 그건 곧 선방향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블랙컨슈머, 즉 진상이라 불리는 소비자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사소한 배려와 서비스에 감동한다. 상대하는 사람이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존중 받고 싶어하고 귀하게 대해지고 싶다. 그렇기에 자기가 대단하다는 인식을 버리자는 말은 약간의 모순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단순히 손님이 왕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은 사소한 배려와 서비스에 감동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또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극히 다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소위 갑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고 하여, 업계 유행이라고 하여, 회사 방침이라고 해서 어떤 이벤트에 강요받듯 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하기까지 말 그대로 스스로에게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고, 이를 진심으로 전할 수 있어야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72의 차별점과 성공 요인은 다른 골프장들이 가진 권위 의식에서 탈피한 파격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진심으로 애정을 표하는 고객에게 빠른 소통을 하고 이를 훌륭하게 다른 긍정적인 측면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실행력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곳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결국은 일반 사람들에게 지금의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격식과 형식은 그들만의 세계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와닿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너무 사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중간 중간 최신 트렌드와 소식을 담아 서술하고 있지만 큰 알맹이가 뭔지, 너무 많은 얘기를 담고자 하여 흐려진 건 아닌지 아쉬움이 들었고, 골알못인 내가 이렇게 판단하는 게 오만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서문에서 느꼈던 매력이 1장을 다 읽기도 전에 팍 식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말 사람이 제일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많이 언급된 캐디에 대해 단순히 스쳐 지나가듯 언급만 한 것 또한 아쉽다. 


마구 쏟아져 나오는 골프 용어에 어리둥절 했는데 중간에 골프의 기원이라든지 용어에 대한 설명이 있어 읽는 데 많은 도움에 됐다. 아마 처음부터 골프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이 책의 주제와 맞지 않았기에 처음이 아닌 중간 부분에 넣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를 벤치마킹 할 분들에겐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국내 골프장 매출 1위에 달하고, 소비자 중심 경영 인증을 받은 유일한 골프장이자, 베스트 코스 7년 연속 선정된 곳이다. 언젠가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 고객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마음마저 즐겁게 하는 곳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 꿈만 같은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찾아가고픈 생각이 드는 당연한 것일테니.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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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의 목숨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장안 24시』









**

  



『장안 24시』장대한 분량의 서사로 다소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편견을 단숨에 부셔버릴 만큼의 급박한 전개와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해 장안성 면면을 잘 표현해주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해관계 및 심리묘사를 통해 허투루 나오는 인물이 없다고 느낄 만큼 그 존재감 또한 확실하다.

  

이미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방영만을 앞두고 있는 <장안십이시진>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준다. 영상화 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고, 오히려 어떻게 잘 구현해 냈을까 너무 궁금하기만 하다. 보통 어떤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소개에 붙는 수식어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는 편이었는데, ‘문학 귀재’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는 듯 하다. 이로써, 문외한이었던 중국소설 쪽에서는 ‘마보융’이라는 작가는 믿고 읽을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사의 큰 줄기는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장안의 원소절(중국의 정월대보름) 대목에 맞춰 발생하는 테러를 막고자 이를 추격하는 이들과 방해하는 이들 사이 숨겨진 진실을 풀어가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되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천재라 물리는 문관이자, 정안사의 실질적인 수장 ‘이필’과 한때 오존염라라는 별칭을 가진 불량수이었지만 지금은 처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 ‘장소경’이다. 

  

둘은 정반대의 위치해 있고, 각자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른 듯 하지만, 장안의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뜻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하여 상단을 가장하여 온 돌궐 근위대 늑대전사들과 그들이 진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모든 전력을 추구한다. 

  

미리 파놓은 함정으로 늑대전사들을 모두 생포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심지어 이들의 우두머리 격인 조파연을 끝내 쫓지 못했던 최기, 그리고 그 작전을 지시했던 이필 모두 좌절하기에 이른다. 이에 정안사에서 기억력이 좋아 발탁된 서빈은 자신의 지기를 추천하는데 이는 현재 사형수에 처형만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경이었다. 모두가 반대 하였으나, 장안이 곳곳을 아는 자가 필요했고, 반신반의 했으나 곧 장소경의 탁월한 통찰력 앞에 점차 신뢰를 쌓아가게 된다. 


서역 도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조직된 관부, 정안사는 각 분야의 인재가 모여 있고, 젊은 나이의 최고의 인재로서 인정받는 책임자 이필이 있다. 원소절 등롱제를 앞서 정해진 시간 내에 다가오는 큰 위협을 막고자 형식과 규범과 파괴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위기에 위기만 더하는 꼴이 된다. 이필과 장소경의 간절함에 비해 자신의 안위와 가치관만을 우선시하는, 관리사회의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인물들에 의해 매번 좌절되고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위기 속에서 둘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져가지만,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늑대전사 추격과정에서 꼬여버린 왕은수의 납치사건으로 인해 문염을 지키고자 했던 장소경과 이를 알고 분노하게 되는 이필 사이의 긴장감으로 앞으로의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 여부에 대해 궁금증이 일게 된다. 

  

돌궐 토벌의 공을 세운 왕충사의 딸을 납치하는 늑대전사들의 수장 우설, 장소경이 지키고자 했던 전우이자 지기인 문무기의 딸 문염의 생로는 각자 다른 길을 향하게 되고, 아슬아슬하게 그 목숨을 건지게 된다. 상권의 마지막에서 돌아오지 말라는 신호를 받게 된 장소경은 우여곡절 끝에 구한 목숨을 끝내 보전할 수 있을지, 늑대전사들이 등장하게 된 계기와 그 뒤에 있는 진짜 배후세력은 어떤 이들일지, 이필의 생존과 정안사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지도 너무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꿈꾸기에 무사히 생존하기를 바래보기도 한다.

  

소설은 역사서 속 한 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평면적으로 보이는 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입체적으로 장대한 대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단순히 인물과 장면 묘사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이해관계, 신분, 사회구조 등 마치 그 시대에 들어가 직접 목격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 또한 매우 매력적이다. 당시의 국제도시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한 다양한 종교와 국가, 민족들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문장이 입담처럼 맛깔나게 느껴지기란 쉽지 않은데, 과연 개연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독성마저 좋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장황하지 않고, 탄성을 지닌 문장은 흡입력까지 더한다. 단순히 분량에 대한 압박감에 주저하기에 이 작품은 정말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한 번 읽으면 그 호흡 그대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몰입하여 읽게 되는 것이다. 이건 생각지 못한 의외성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재밌는 읽을거리가 또 있다 생각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

  


그러니 이 작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작가 마보융은 미스터리, SF, 판타지 등 역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작가라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뛰어난 필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데뷔하게 되었으며, 다년간의 유학생활과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중국소설과 차별화된 세련미와 간결함, 흡인력 넘치는 문장과 유머 감각,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로 ‘5·4 혁명 이후 중국 역사소설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장안 24시』는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찬란했던 인구 100만의 대도시 장안에서 일어난 하루를 다룬다.

  

‘천보 3재 원소절, 장안에 큰불이 있었다’는 역사서 속 짧은 기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찬란했던 고대 국제도시를 배경으로 광대한 서사와 테러의 위협 속에 인간의 욕망이 불러오는 참혹함을 잘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장안 24시』를 시작으로, 『용과 지하철』, 『초원동물원』을 비롯한 마보융의 다양한 작품은 현대문학을 통해 새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기대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북으로 먼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 다음 편은 이북으로 구매해서 읽고 싶다. (막무가내로) 금방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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