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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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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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옷깃을 여미는 계절에 '영혼시'를 가득 담은, 마음을 건드리는 말랑말랑한 글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점점 더 여린 내벽만 쌓게 되는 것 같다. 여물지 못한 마음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병 같은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그립고 또 너무 보고 싶은 이가 있어서인지 구절구절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다. 괜찮아, 하고 다독이며 스스로를 속여 보았지만, 결코 괜찮지 않았던 날들이, 후회들이 많아서 공감이 갔던 것 같다. 


기다리는 슬픔이 있었고 그리는 괴로움이 있었다. 사계절의 경계가 소원해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추억들이 있었고, 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행복한 얼굴도 스쳐갔다. 빛났던 순간들은 그렇게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영혼시'란 결국 내 안으로 자꾸만 파고들게 만드는 것인지, 가끔은 자의식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득 이런 감성 가득한 글들로 인해 한숨 쉬어갈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기에, 너무 각박해진 세상 속에 가끔은 물기 어린 문장에 기대어 울어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쉽게 상처 받는 마음, 견고하지 못한 마음들 모두 그렇게 위로하면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늘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 가지런히 모인 문장들을 읽어나가는 느낌은 낯설지만 낯설지 만은 않았다. 그리워했던 이가 좋아했던 감성적인 글을 쓰던 시기를 생각나게 해서 무척 좋았다. 그 틈 사이로 나의 마음을 새로 써가는 것도 새로운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끄적거리면서, 너무나도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그러기에 충분한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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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력은 너무도 보잘것없어

그대에게 건네줄 가난한 낙서 한 조각 가지지 못했다.

내 마음 얇고 딱딱한 종이와 같아 

그대의 근심 한 점 고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날개를 펴고

추운 겨울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되묻는다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그대를 사랑할 수 있나

파란 성에처럼 맑고 단단한

하늘인 그대를 


77쪽 



(…)

너는 말했지, 겨울은 길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너의 빈 가지를 덮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했지, 내가 너의 

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 윙윙 소리내며

빈 가지 사이를 맴돌기만 하지


105쪽 /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유리벽 너머에 그대가 서 있지. 그대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 그대의 맞은 편에 내가 서 있지. 내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맞잡은 두 손, 마주 보는 두 눈, 슬픔과 행복을 함께 느끼는 심장인데. 우리들 아주 조금씩 어긋나버리는 시간 속에서, 만날 수가 없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지.  121쪽 / 유리벽 너머에



(…)

그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대의 부재

혼자 있을 때도 흔들리지 말라고

그대의 부재는 더욱 무거워지는가


눈물 마르고 천천히 빛이 번지면

슬픈 일들은 잊어도 괜찮은 건가

나는 더 이상 흩날리지 않아도 좋은가


갈피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헤매지 않아도 좋은가


131쪽 



내 마음 아무리 자란다 해도

설마 하늘까지 닿겠어요.

흔들리는 소망들 헤아려보다

아득한 밤 속으로 떨어지곤 하지요.

(…)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해도

어제보다 조금 더 길어진 낮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온종일 햇살 받으며

닿지도 못할 마음만 키우고 있지요.


161쪽 / 닿지도 못할 마음만



그곳이 어디라 해도

그대 안녕하겠지

그 마음 어떻다 해도

그대 아름답겠지

(…)


231쪽 / 그대 안녕하겠지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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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3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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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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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으로 그렇게 지겨웠던 더위가 가고 선선하다 못해 쌀쌀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반갑게도 우리의 붉은 머리 순경 해미시의 세계에도 가을이 찾아온 듯 하다. 격렬한 치통에 눈을 뜬 해미시는 브로디 선생의 항생제 덕에 통증을 잠시 가라 앉혀보지만, 근처에 있는 치과라곤 제대로 된 치료보단 일단 뽑고 보는 브레이키 마을의 길크리스트 치과 뿐이고, 그 와중에 관할 구역 내 스코츠먼 호텔에서 발생한 금고 절도 사건으로 정신이 없다. 수사에 집중하며 애써 참아보려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올라오는 통증에 해미시는 결국 가까운 길크리스트 치과라도 가려 예약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진료 의자에 누워 사망한 길크리스트였다. 그것도 치아에 온통 드릴 구멍이 뚫린 채로 말이다. 


너무도 느닷없이 세상을 떠 버린 자신의 개 타우저가 그리웠다. 타우저가 살아 있었다면 침대 끝에 누워 꼬리를 흔들고 있었을 테고,  해미시는 이 드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에 신경을 써 주는 존재가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프리실라 할버턴스마이스, 한때 그에게 필생의 사랑이었던 여자는 친구들과 지낸다고 런던으로 가 버렸고, 그녀가 떠난 자리를 메워 줄 다른 어떤 여자도 아직 그의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다.  12쪽


변덕스럽고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가 스코틀랜드 고지의 분위기를 표현하듯, 사건이 발생한 브레이키 마을엔 생기라곤 없다. 노동보단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펍에서 시간을 죽이기 일쑤고, 상점은 오전 10시만 되어도 제기능을 못한다. 문명이 발전한 시대에, 불법적인 일이 불법적인 일이 아닌 일상인 형태.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아주 잘 그려졌다. 


해미시는 전처럼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커녕 오리무중 상태에 빠져 답답함만 토로할 뿐이다. 



스케일링도 있고, 치실도 있고, 치과 기술이 이렇게 발전해봤자 뭐 하나, 해미시는 생각했다. 이곳은 여전히 스코틀랜드였다. 이를 몽땅 봅아 버리고 멋진 틀니 한 쌍을 끼우면 그만인 곳이었다. 93쪽


(…) 경찰서로 돌아가 형사 소설이나 들고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안 될 게 뭔가? 되도록 미국 형사 이야기, 더 폭력적인 이야기, 주인공이 해미시를 대신해서 그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이야기면 더 좋겠다. 사람들은 벽에다 메어꽂고 두들겨 패서 자백을 받아 내는 것 같은.  97쪽


해미시는 스마일리 형제의 술이 자자하게 알려져 있다는 사실에도 나서서 신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놀랍지도 않았다. 영국의 다른 어느 곳이라면 범죄로 여겨졌을 일이 하일랜드에서는 더러 남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남획을 하지 않는 선에서 연어나 사슴을 밀렵하는 건 하일랜드에서는 불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모든 하일랜드인들에게 언덕에서 사슴을 잡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건 태어날 때부터 얻은 권리, 즉 생득권이었다. 147쪽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 키워드로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젊은 여자와 허영심 가득한 중년 남성, 욕망, 실패한 결혼, 옛 연인, 치정, 돈, 밀주, 엉터리 점성술사, 미적지근한 로맨스, 타우저의 빈자리, 다시금 홀로 남겨진 해미시. 


가을날의 쓸쓸함인가, 우리의 주인공 해미시를 따라 사건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유독 잘 풀리지 않고 자꾸만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욕도 없고, 쓸쓸하고, 자꾸만 실패하게 되는 것 같은. 타우저의 빈 자리도 크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해미시의 천적인 블레어의 속내가 잠깐 등장하는데, 그게 조금 의외였다. 무작정 해미시의 공로를 가로채는 뻔뻔함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속엔 대놓고 드러낼 순 없지만, 해미시의 사건 해결 능력에 대한 인정이 바탕이 되었다. 하긴 누가 그 공을 가져가든 해미시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는 총경은 그가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름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만 해도 컴맹이면서 기기를 사용하는 데 어색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보고서 작성도 거뜬히 해치우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해미시가 기대하는 새로운 로맨스 상대인 세라는 어떤 사연을 감추고 있는 인물로 보여지며, 여지를 주지 않는 듯 하지만, 외로움에 몸부림 치는 해매시에게는 설렘과 수줍음의 상대로 비춰지는 데에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여전히 직관에 의한 수사로 사건 해결에 힘쓰는 해미시. 발로 뛰는 것과 별개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 다소 불법적인 것으로, 블레어의 비밀번호를 엿보는 재미를 주긴 했다. 물론 이전에는 철저한 인맥과 처세술로 얻어낸 정보로 추론하는 것이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유독 해미시의 자조가 많이 느껴졌다. 마치 슬럼프에 빠진 인물처럼. 사건을 꿰뚫어 보지 못한 데서 오는 답답함을 자주 토로한다. 또한, 그의 심리를 대변하듯'외로움'으로 자주 표현된, 홀로 남겨진 채로 늙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해미시의 마음이 자주 드러난다. 마치 이별 직후 실감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 지난 사랑을 추억하며 가슴 아파하는 후회로 보여진다.


전반적으로 거칠게 표효하는 날씨와는 다르게, 고요하게 침전된 듯한 해미시의 심리는 차분하게 묘사되며, 이전이라면 빠졌을 법한 함정에도 무던히 피해간다. 수사의 함정, 죽음의 위기는 늘 도사리고 있지만, 주인공의 생사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구제되기 마련이다. 무고한 죽음에 마음 아팠고, 다소 불편한 관계도 있었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계절과 맞물려, 쓸쓸하게 남겨지는 여운이 무척 좋았다. 여름날의 열기처럼 정신없이 피로했던 날들이 가고, 여전히 피로한 일들은 많지만 이 '외로움'을 벗 삼아 더 열심히 읽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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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전히 눈에 선명히 그려질 듯한 풍경 묘사의 섬세함과 좋은 부분들을 옮겨본다. 


비가 창을 후드득 때리기 시작했고, 바람이 점점 더 사나워지며 날뛰었다. 서덜랜드의 바람이 습관대로 돌풍으로 변해갔다.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다가는 결국에는 천국의 끝에서 끝까지를 온통 휘덮는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이 동네 사람들이 미신에 빠져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97쪽


어쩌면 어른들 세계의 눈에 순수하다고 증명되기 전까지 모든 아이들이 죄인이었던 저 형편없는 옛날이 다시 추구해 볼 만한 시절일지도 몰랐다. 299쪽


차를 몰고 가면서 해미시는 이 사건에서 자신이 이토록 헤맨 이유가 그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은 속물근성, 아마추어리즘, 순전한 운의 조합이었다. 325쪽


긴 한순간, 해미시 맥베스와 프리실라 할버턴 스마이스는 해안 저쪽과 이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교회에서 아이들이 노래했다. "'참 반가운 성도여.'"

프리실라가 발걸음을 돌리더니, 차에 올라타고 떠나 버렸다.

해미시 맥베스는 용서받지 못했다. 328-329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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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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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되는 패스포트툰,



『퇴근길엔 카프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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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을 접하는 건 의외로 예상치 못한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숨겨진 단서처럼 그 실마리를 얻게 되는데, 예를 들어 체호프 같은 경우에는 즐겨 찾아보던 외국 드라마에서 주인공 중 한명이 체호프 매니아로 나와 대사 중간 중간에 그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는 걸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의 일부였던 일기 쓰기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작법과 후에 '디 아워스'라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경우엔 대학 수업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경우 중학교 때 100권 읽기 프로젝트를 통해 추천 도서 목록에 있어 접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추천을 받지 않았지만, 꼭 읽어야 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은연중에 이러한 고전 작품들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읽히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란 짐작과 약간의 지적 허영심이 투영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었던 게 많아서 반갑고 신기했다. 

그것도 어쩜 마음에 쏙쏙 와 닿는 포인트로 짚어 소개해주는지, 인상 깊은 장면까지 찾아볼 수 있어 좋았다. 그것도 웹툰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니 눈에 더 잘 들어왔던 것 같다. 시리즈로 해서 좀 더 내주면 안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책을 읽더라도 대개 공감하는 부분도 비슷하게 있겠지만, 전혀 다른 부분을 중요하게 기억하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의견들이 늘 궁금했다. 딱히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할 수도 없었고, 낯간지럽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소통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 장면이 좋았는데 혹은 이 책은 진입 장벽이 높았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었나, 읽어봐야겠네, 와 같은 감상을 읽는 동시에 하게 되니 얼마나 설레던지. 

근래에 나의 책임을 벗어난 일들 때문에 어찌나 버겁고 지겨웠는지, 소원해진 관계 속에 얼마나 외로웠는지 떠올랐던 괴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육체의 실질적 고통을 지울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오는 내적 고통에는 특효약처럼 느껴졌다. 

독서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하는 중에도 힘들 때면, 아, 그 책 빨리 읽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읽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주 먼 나라, 그것도 먼 과거 속 작품들을 읽는 게 일종의 여행처럼 느껴진다는 작가의 말에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잠깐 등장했던 『한 여름밤의 꿈』 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정작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초상화라든지, 후에 어떻게 작품을 복원해서 출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부끄럽지만, 내가 알고 있던 얼굴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 또한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체호프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제목 또한 얼마나 적절한지, 당시 카프카의 생활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고 하니, 그에겐 퇴근 후의 시간이 사회생활의 퍽퍽함과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잠깐의 휴식과 자유였을지 감히 짐작해본다.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출근하기 싫지만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야 되고, 직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인 것처럼.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의 직장인들이 가지는 돈벌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변신은 이러한 의무와 책임감과 불안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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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롭고, 좋은 작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때론 신간을 알아가는 즐거움 못지 않게 고전문학을 되새기며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는 방법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만화를 통해 다시금 새로이 텍스트를 읽어볼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접근법 같다. 

카프카나 버지니아 울프나 셰익스피어 작품과 같이 좋아했던 작품을 비롯하여 보르헤스나 소포클레스와 같이 다소 용기가 필요한 작품들까지. 작가의 바람대로 작은 환기가 되어 주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쉽게 열어볼 수 없었던, 무겁게만 느껴졌던 책장을 열어볼 용기 또한 주었다. 덕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작품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작가의 고요한 일상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작품을 선정하고 반복해서 읽고 맥락을 잡아 구성하고 그리고 정리하기가 얼마나 고되고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지 생각해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그래서 다음은 또 언제일까요...?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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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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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에 대하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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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선, 이기호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43장』은 2017년 8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 후, 출간된 작품이다. 인터뷰 형식이랄까, 취조 형식의 구성은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사건 혹은 중심인물에 대해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일본소설 『악녀에 대하여』를 통해 접해본 적이 있는데, 하나 차이점이라면 여기선 중심인물인 최근직 장로의 직접적인 증언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 목양면의 한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되고, 담임 목사 최요한 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지만 화재 발생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교회는 최요한 목사의 부친인 최근직 장로에 의해 세워진 곳이다. 환경적인 측면으로 보면 최근직 장로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나이 마흔 일곱이 되던 해, 봉사활동을 가기 위해 탄 기차에서 사고로 인해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를 잃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삶을 포기하려고 올라간 고향의 오구산에서 목을 매려는 순간 신의 음성을 듣고 이를 계기로 새 삶을 살고자 한다. 제 2의 삶을 사는 그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 아들 요한이 있고, 그의 신앙 간증은 대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에게 회자되며 희망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속사정 또한 있었다.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의 증언을 모으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화자로 처음 지목됐던 인물 고등학생부터 교회에 사는 전도사, 화재 사고로 죽은 사람과 가까웠던 인물, 최 목사의 아내, 건물 내 세입자였던 식당 주인들과 최근직 장로에 하나님까지. 범접할 수 없는 영역까지 가뿐히 넘나들 수 있는 역량은 이기호 작가기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보통의 인물 구성에서 하나님(?)이라는 인물 또한 같은 연장선에서 놓고 말하고자 한다면 너무 가벼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숨길 수밖에 없던 이면을 밝혀주며, 중심 화두를 짚어주며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어조와 서술에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각 인물마다 말하는 습관이나 특징이 달라서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말하는 이들로 봐선 질문하는 이는 형사로 추측된다. 질문은 없고 답만 표현됐는데도 대략 어떤 질문을 했겠거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독성도 좋았다. 알맹이가 탄탄한데 읽기에도 재밌다니... 

  

이건 이기호라는 하나의 장르로서 바라보면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극적이지만, 마냥 진창에만 빠지지 않고 삶의 비루한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데, 특유의 위트를 가미하며 무게중심의 조화로움을 줄 수 있는 건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전체 42장으로 이루어진 성경 ‘욥기’의 번외로 이 작품이 쓰인 것이다. 자신의 자식들이 고통 속에서 죽은 뒤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상한 아버지로 보였던 욥은, 정작 자신의 발바닥에 악창이 나자 비로소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이 아버지란 사람이 도통 이해가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아버지가 된 후에도 이해가지 않았으나 관습적으로 읽지 않으려 애쓰며, 자식을 잃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전제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했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최요한 목사는 모범생이라는 증언과 미혼모를 괴롭힌 인물로 증언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결핍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최근직 씨의 두 번째 삶을 영위하는데 기적 같은 요소로만 여겨졌을 것만 같은, 그렇기에 아버지를 향해 순종적이었고, 두려워했으며, 한없이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하에 가려진,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보여 안타까웠다. 물론 제목에서 이미 밝혀진 바, 그의 방화가 진실이라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이기심에서 온 범죄라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커 보였던 아버지의 삶 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그리하여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 최근직 씨가 화상으로 인해 진물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삶을 포기하는 것보단 살아내고자 했던 걸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게 고통이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지옥같고 편히 잠들고 싶은 욕망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졌듯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기도 하며,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욥이라는 인물도, 최근직이라는 인물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최근직이라는 인물은 형편이 살만 했기에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 화목했고, 소중했던 존재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지게 된다면, 과연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그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역시 그냥 개인적인 판단이나 논리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된다. 삶, 그리고 사람 모두 복합적이고 알게 모르게 얽혀있는 것들이 많기에. 때론 나조차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지금껏 읽은 작품들 모두 만족스러웠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판형과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에 소장 욕구를 높이고, 중요 요소인 작품까지 좋으니 앞으로도 출간 예정에 있는 핀 시리즈의 다른 소설 작품 또한 너무 기대된다. 기다림으로 그렇게 또 버텨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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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아버님이 말이야…… 하나님을 만난 게 먼저일까, 우리 어머님을 만난 게 먼저일까?”

저는 그 말에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최 목사님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최 목사님이 또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우리 어머님을 먼저 만나고, 내가 태어나고…… 그러고 나서 아버님이 신앙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면…… 그럼, 도대체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거지?” 110쪽

  


목사라는 직업이요, 어쨌든 다 우리 같은 영업직 아니겠습니까? 영업적 마인드가 있어야지 하나님도 팔고, 예수님도 팔고, 신앙심도 팔고, 복도 팔고, 하는 거죠. 네? 뭐 심한 말이에요? 그게 사실이죠……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보면 다 마찬가지에요. 열심히 하나님 믿고 신앙생활 하면 복 받는다, 그게 우리나라 교회에서 하는 말 아니에요? (…) 117쪽

  


최근직이 목을 매려는 순간,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네가 아느냐? (…) 그때 최근직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 거 같더냐? 네가 그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느냐? 그건 최요한의 모친, 손순녀가 아니더냐? 그때 최근직과 손순녀가 만난 것이 나의 의지 같더냐? 내가 최근직을 그렇게 죽음에서 구한 것 같더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최근직은 손순녀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살려고 했던 사람이니라. 네가 그것을 알더냐? 가족을 다 잃어도 제 목숨을 스스로 끊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니라. 슬픈 것은 슬픈 것이요,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 최근직은 자기 의지로 산 사람이니라. 154~155쪽

  

거, 아이 큰 사람으로 만들려면 하루빨리 우리 동네에서 이사 가야 할 텐데…… 여기 있으면 그냥 닭 되는데……. 164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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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포제션:그녀의 립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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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 남겨진 자의 슬픔 속에서 떠난 이들과의 조우를 도와주는 곳, 엘리시움 소사이어티. '로터스'라는 신비한 약물과 '바디' 역할을 하는 사람을 통해 망자의 영혼을 소환하는 곳이다. 소환하고 싶은 사람이 생전에 착용했거나 관련된 소지품을 가지고 알약을 삼키면 바디의 영혼은 곧 그 자리를 내어준다. 신비하고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는 그곳에서 훌륭히 '바디' 역할을 해내며 5 년째 유능한 영매로 일하고 있는 에디. 그런 그녀에게 여느 날과 같이 죽은 아내 실비아를 만나고 싶어 찾아온 패트릭. 에디는 매력적인 패트릭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를 향한 에디의 욕망도 점점 커져만 간다. 고요했던 에디의 일상은 이제 그의 곁에 있기 위한 더 과감한 행동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한편 '희망'이라고 불리게 된, 한 폐가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여자 시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고객을 가장한 캔디스 파울러 부인이 찾아오고,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에디 대신 다른 바디가 채널링을 시도한다. 레너드 부인은 엄격한 규정으로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를 관리하지만, 원치 않은 변수가 발생되고, 감춰왔던 추악한 이기심도 드러나게 된다. 

실비아의 죽음과 엇갈린 관계성,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진 욕망과 뒤틀린 관계의 비극성은 강렬한 빛을 발하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야기는 에디를 찾아온 패트릭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를 만나게 된 순간부터 이제껏 조우를 위해 대면했던 고객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된 에디는 패트릭이 전해준 아내 실비아의 유품인 립스틱을 바르며 채널링을 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커져가는 욕망을 억눌러보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 사무적인 그녀의 태도에 반해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 패트릭은 역시그녀에게 관심을 주었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한편, 자살자의 채널링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엘리시움 소사이어티의 규정에 반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어느 폐가에서 발견되 '희망'이라는 신원미상의 여자시신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며 찾아온 캔디스 파울러 부인은 에디의 거절에 굴하지 않고, 다른 바디와의 접촉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려 한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다른 바디들과 달리 5 년째 꾸준히 일해오고 있는 에디와 그녀와 상극인 듯한 애나, 신입인 판도라, 에디를 애정어린 관심으로 보는 리까지. 이야기 초반부는 에디의 직업적인 측면에서 오는 혼란함과 사람들과의 관계, 패트릭에 대한 관심과 욕심 등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 진전이 없다. 


중반부가 지나고 에디가 폭발하듯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할 때, 한층 더 날선 긴장감과 함께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그 탄력성과 가독성을 더한다. 그리하여 끝끝내 밝혀지는 진실들은 작품 속에 내재된 신비롭고도 수상한 분위기에 반해 다소 힘에 부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추고 싶었고, 없던 과거이길 바랬던 에디의 진짜 이름과 그에 관한 사건은 생각보다 큰 힘을 얻지 못한다. 엄청난 비극성을 띠고 있는 건 맞지만, 개연성을 떠올리면 그 결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비아의 죽음 속에 감쳐진 여러 관계성 또한 김 빠지는 전개이다. 물론 서사가 진행되어 가는데, 엄청난 비밀을 감춰져 있다는 듯 비약이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 반해 드러난 민낯은 밋밋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모든 게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매력이 전반적으로 평이해진 느낌이다. 


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패트릭과 에디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존재하는 아슬한 긴장감이 있었을 뿐이지, 패트릭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인 건지도 에디의 말로 전해지는 것 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에디 역시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과감해진 게 다른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되레 '희망'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시도한 채널링에 대한 묘사가 더욱 매력적이고 긴장감 있었던 부분이었다. 패트릭과 에디의 로맨스도 매력적인 부분이었던 것 같다. 에디의 내면에 관한 심리 묘사는 섬세하지만, 어지러웠다. 에디의 행동이 어떤 측면에선 과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배경이 독특한 만큼 이해하고 읽어갈 수 있었다. 고딕 소설에 대한 이해도 없이 처음 접한 작품이 잘 읽히지 않아 좀 당황스러웠다. 초반부를 힘겹게 읽어나간 후에서야 책장을 넘기는 게 수월해졌다.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정말 매력적인 설정 아닌가, 영매 역할을 하던 여자가 의뢰인이자 죽은 아내가 그리워 찾아온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를 갖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며, 자신의 비밀을 감추면서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되는.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삐걱대는 관계들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곁가지로 등장하는 미해결 사건과 채널링 과정 그리고 그에 서린 비극성까지. 


456쪽에 달하는 분량의 첫 부분에서의 머뭇거림이 없었다면 더욱 인상 깊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가진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몇몇 설정은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영매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점, 그 작업이 '로터스'라는 알약 하나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를 찾는 사람들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잘 살아가다 문득 소중한 이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그와 다시 조우하기 위해 방문한다는 점까지. 조우라는 표현도 무척 좋았다. 이야기의 큰 줄기와 주변을 확실히 하고 중심을 잘 잡고 진행한 것도 좋았다.


이 장르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지만 처음 접하는 작품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은 이 작품과 설정이 비슷하다는 고딕 미스터리의 고전인 『레베카』를 읽어봐야 겠다.




(이 리뷰는 한스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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